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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83화 (18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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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달려오는 소리도.

아마 현장을 목격한 여자나 다른 자가 사람들을 부른 모양이었다.

도진은 여러 아이의 얼굴로 바뀌어 가며 일렁이고 있는 오르펜에게 말했다.

“나랑 처음 만났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찾아갈 테니까.”

오르펜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현장에 남은 건 처참한 시체와 도진뿐이었다.

“헉- 헉- 여기라는 말이지!”

잠시 후 배가 뿔룩 나온 중년 기사 하나가 나타났다.

작지 않은 마을이다 보니 퇴역 기사가 경비대장쯤으로 임명돼서 상주하는 모양이다.

“너, 너, 아니, 당신 뭐 하는 거야!”

달려오느라 비뚤어진 투구를 고쳐 쓰며 고함을 치는 기사

손가락 끝은 당연히 도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아…….”

도진은 한숨부터 쉬었다.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 * *

“그러니까… 당신은 이번 사건이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시겠다?”

도진을 경비대로 데려온 경비대장은 매우 못마땅한 눈을 하고 있었다.

살해 현장에 있던 외부인.

증거고 뭐고 일단 가둬 두고 조사부터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럴 수가 없는 상대였다.

모험가 길드 소속인 것도, 리제니안인 것도 거슬리는데…….

‘엘토마기아라니.’

심지어 마법사에다 제국 마탑 엘토마기아 소속이라신다.

증거도 없이 현장에 있었다고 다짜고짜 가두고 볼 수 있는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웬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려서 달려갔더니 시체만 덩그러니 있었단 말이시군.”

턱수염을 거칠게 쓸며 말하는 경비대장.

이름이 커클리였던가.

도진은 흘려들은 그의 이름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괜찮으시면 이거라도…….”

그때 경비대 사무소 직원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조심스럽게 도진 앞에 음료를 내려놓았다.

설탕을 잔뜩 넣고 데운 우유였다.

“안 그래도 목이 마르던 참인데 감사합니다.”

“손님이신데 당연한 일인걸요.”

쑥스러워하며 대답하는 여직원을 커클리는 못마땅하다 못해 속이 터진다는 눈으로 노려봤다.

“심문 중인 거 안 보이냐? 그럴 거면 그냥 집에 들어가!”

그러자 여자는 커클리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심문은 무슨 심문이에요? 괜히 험한 일에 휘말려서 충격 받으셨을 분한테!”

“이런 젠장. 기생오라비처럼 보인 놈들만 보면… 너 그러다 전에 제비 새끼한테 털린 거 기억 안 나냐!”

“아! 아빠는 왜 또 그 얘길 하고 그래요! 창피하게!”

정말 창피했는지 여자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 버렸다.

딸이었구나. 하나도 안 닮았네.

“…후우, 지 애비한테는 물 한 잔을 안 줘 놓고는.”

별생각 없이 설탕 맛이 진한 따뜻한 우유를 홀짝이던 도진은 그걸 내려놨다.

가장의 아픔이 느껴지는 한마디에 우유가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크흠, 큼. 어쨌든 거기서 시체 말고는 아무것도 못 본 게 맞소?”

“네.”

“그… 혹시 유령이나 뱀파이어, 인간 형상을 한 거미 괴물 같은 건…….”

말을 하던 커클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이런 말을 하고 있으려니 멍청함에 자괴감이 드는구만. 하지만 이 문제로 워낙 골치를 썩고 있는 처지니 이해하시오. 꽤나 장기간 동안 소리 소문 없이 사람이 사라져 대니 근방에 괴담이 워낙 넘쳐나서.”

말하며, 경비대장은 투박한 모양을 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릴, 불 좀… 젠장.”

그러고는 딸을 부르려다 고개를 젓는다.

화륵.

도진은 조용히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 줬다.

깜짝 놀란 눈을 하다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커클리.

“유령 얘기는 들었습니다. 꿈에 행방불명된 사람이 나온다는 자들이 많다고.”

“허, 이미 어디서 주워들으신 모양이군.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어. 그래, 마법사 입장에서 이 현상이 어떻게 느껴지시오?”

“지금 이걸 묻는다는 건 죽은 자가 유령 타령을 하던 사람인가요?”

도진의 물음에 커클리의 실눈이 조금 커졌다.

“어떻게 아셨소? 최근 유령, 아니 악령이라고 했지. 악령이 나타나서 자길 죽이려 든다면서 여기 찾아와 울고불고 하던 놈이었소. 그러다 그렇게 죽어 버렸으니…….”

악령이 몬스터의 형태로 실제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커클리 또한 그쪽으로도 의심이 드는 게 당연했다.

사실 현장에 있던 사람이 범인인 게 경비대장 입장에선 제일 편한 거긴 한데.

‘이쪽은 또 이쪽 나름대로 골치가 많이 아픈 상대라…….’

엘토마기아 마법사면 차라리 악령이 범인인 게 낫다 싶을 정도.

그래서 커클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법사의 조언이나마 구해 보고자 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 고고한 제국 마탑의 마법사가 이런 사건에 조언 한마디 보태주기나 하겠나.

“악령을 봤다는 사람이 한 명이면 몰라도 다수가 같은 증상을 호소하면 진짜 악령이 있을 확률은 충분히 높다고 봅니다.”

도진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커클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여관에서 악령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기던 차에 이런 일이 터지니… 궁금하긴 하네요.”

흥미가 생긴 것처럼 연기를 하자 커클리도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제가 조사를 좀 해 봐도 될까요? 살인 사건은 모르겠고, 악령 쪽으로 해서요. 물론 연관성이 있다면 그쪽도 조사를 하는 셈이 되겠지만.”

도진의 말에 커클리가 반색했다.

“정말이오? 제국 마탑 마법사가 조사에 나서 준다면 나야, 아니 우리 입장에서야 고맙지.”

“정보가 필요합니다. 특히 꿈에 유령이 나온다고 호소했던 사람들 위주로요. 가능하면 이 마을 말고 다른 마을까지 포함하면 좋겠습니다.”

“그건 걱정 마시오. 어차피 이 근방은 협조 요청을 하면 바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내 이름으로 임시로 조사관 자격을 증명할 서류를 써 주겠소.”

이래서 간판이 중요하다.

잘못하면 용의자로 몰릴 상황에서 이런 협조까지 다이렉트로 갈 수 있다니.

“마법사는 하나같이 고개 뻣뻣하고 비싸게 구는 작자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군. 아, 이런 마법사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나.”

입맛을 쩝 다시며 ‘실언이었소’ 하는 커클리.

“별로 기분 나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마법사가 그런 게 맞잖아요?”

“허, 성격이 꽤 좋은 마법사시군. 자, 여기 있소.”

투박한 글씨체로 휘갈겨 쓴 서류.

이걸로 도진은 이 근방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조사 성과가 나오면 제일 먼저 내게 알려 줄 수 있겠소? 부끄럽지만 성과 문제도 있고 해서. 대신 영주님께 보고를 올릴 때 당신에 대해서도 누락 없이 보고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겠소.”

도진 앞에 퀘스트 창이 떴다.

악령과 얽힌 사건에 관해 조사해 달라는 의뢰 형태의 퀘스트였다.

“물론이죠. 대신 조사 과정에서 추가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말만 하시오.”

“그럼 바로 하나만 부탁드리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꿈에서 봤든 뭐든 간에 악령에 관해 말을 꺼낸 사람들 이름이랑 사는 곳을 알고 싶습니다.”

“아예 여기로 불러 드리지. 다른 마을에 있는 자들도 다 한꺼번에 모아오면 되겠소?”

“조용히 조사해야 할 일입니다. 조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도 모르게요.”

“음,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일단 우리한테 하소연하러 온 자들부터 알려 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알려 주겠소.”

도진은 악령이 나온다면서 신고를 했거나 술집에서 난동을 부렸던 자들의 기록을 얻었다.

‘이놈들 뒤를 캐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행방불명.

단순 범죄일 가능성도 있지만, 분명 멸망교단이 얽혀 있을 가능성도 낮지 않았다.

‘비밀스럽게 조사를 할지, 아니면 들쑤셔서 저쪽 반응을 볼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도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료는 나중에 들러서 챙겨 가겠습니다.”

“고맙소. 조사하다 뭐라도 발견하면 바로 알려 주시오.”

“그렇게 하죠.”

날은 여전히 어두웠다.

잠을 자 둬야 할 시간이지만, 도진은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갔다.

오르펜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오르펜.”

꼬마를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이름을 부르자 발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르펜이다.

망령의 집합체인 꼬마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간 꼬마로 보였다.

“금방 왔네요, 아저씨.”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들어야겠어.”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도진은 아이들의 이야기부터 듣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의 기억이 뒤섞여서 그런지, 아니면 각자가 충격을 크게 받아서 그런지 기억의 결손이 너무 심했다.

애초에 자신들도 죽어서 유령이 된 상태에서 사라진 부모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정황상 부모와 함께 희생됐을 아이들이니.

“어른들한테 물어봤어요. 처음에는 대답을 안 해 주다가 결국에는 해 줘요. 대부분 다른 어른이 잘못한 거라고 그래요. 그러면 그 어른한테 물어보러 가는 거예요.”

한 명의 기억을 먹고, 그 기억에서 단서를 찾아 추적해 가는 식으로 범인들을 찾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나쁜 어른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대답해 주지 않았어?”

“음… 돈을 받았어요. 그런데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어요. 자기들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막 그랬어요.”

“오늘처럼… 이런 경우가 또 있었어?”

오르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죽인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란 뜻이다.

“직접 나쁜 짓을 했다고 대답하는 어른만요.”

“몇 명이나 그렇게 대답했어?”

“둘……? 아니, 처음이었던 거 같기도… 아냐, 다섯 명인가? 모르겠어요. 너무 많이 물어보고 다녀서 헷갈려요.”

아이들의 형상이 겹치며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도진은 잠시 오르펜과 아이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혹시 지금 계속 물어보고 있는 어른이 또 있니?”

이렇게 원한에서 태어나는 악령은 원한을 다 갚을 때까지는 목적의식도 확고하고 행동 원리도 명확하기 때문에, 오히려 무고한 자들을 굳이 괴롭히지 않는다.

즉, 확답을 얻기 위해 계속 그자를 괴롭힌다는 건, 기억의 편린에서 죄책감이든 뭐든 냄새를 맡았다는 소리다.

“네. 오늘도 물어보려던 아줌마가 있어요. 벌써 여덟 번이나 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해 줬거든요. 오늘은 꼭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거예요!”

처음 보는 소녀가 나타나서 대답했다.

도진은 그 아이에게 최대한 자상하게 물었다.

“오늘은 그 아줌마한테 내가 대신 물어봐도 될까?”

그러자 소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안 돼요! 그 아줌마가 대답하면 바로 벌을 줘야 한단 말이에요!”

악령처럼 살기와 어둠을 뿜어내는 소녀.

도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면 엄마를 찾기 힘들어지잖아. 어차피 내가 대답을 듣고 나면 너한테도 알려 줄 거야. 그때 혼내도 되지 않을까?”

도진의 자상한 태도에 소녀의 눈매가 급격히 순해졌다.

오히려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울먹이던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내서 미안해요. 그렇게 할게요.”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도진은 첫 번째 조사 대상으로, 다음 희생자가 될 예정이었던 여자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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