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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함께 찍은 인게임 스크린샷 한 장으로 사태를 종결시킨 도진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상이라고 해 봐야 던전과 몬스터로 가득한 폐인 생활이긴 하지만, 종교 단체에 쫓기는 도망자 신세보다는 훨씬 나았다.
-도진아, 고생 많았어!
“감사합니다.”
새로 시작한 부유대륙 각종 던전 탐방은 실시간 방송으로 송출했다.
원래 처음에는 테레사만 켰었지만, 지금은 테레사는 물론이고 도진, 탄토까지 다 켰다.
신고 러시를 했던 안티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방송을 켜니 이번 이슈 그리고 부유대륙에 대한 질문이 계속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하며 묻는 팬들도 많았다.
이미 예상했던 바라 채팅을 확인할 여유가 있는, 휴식 시간에 맞춰 도진은 답변을 했다.
“잠깐 쉬는 김에 부유대륙 관련해서 얘기 좀 할게요. 일단… 오는 길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괜히 피해자를 늘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한두 명이 어디 비밀 시설 침투하듯이 조용히 통과해야 하는 길에 사람이 우르르 몰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질문 형태를 한 답변에 방송까지 와서 루트를 밝히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어요. 어차피 중앙대륙 북쪽 끝에 도착한다고 해도 부유대륙에는 못 들어올 확률이 높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수단이 있어도 어차피 못 들어와요. 부유대륙의 주인인 티룬드 대공의 허락 없이는 발을 붙일 수가 없거든요.”
예전처럼 엘더들이 돌아다니면서 인간 사냥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자유롭게 부유대륙에서 활보하게 두지도 않을 거다.
괜히 따뜻한 피를 잔득 담은 주머니들이 돌아다니면 기껏 억누르고 있는 뱀파이어들의 흡혈 본능이 더 날뛸 가능성이 높으니.
이때 누군가가 1,000달러를 후원하면서 물었다. ‘그럼 네가 티룬드 대공한테 허락을 받아주면 안 되냐고’.
“허락을 해 줄지 안 해 줄지는 몰라도, 전 절대 그런 건 안 합니다. 제 팬들은 몰라도 성황청에 신고나 넣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그런 도박을 해요? 뱀파이어랑 전쟁 나는 거 볼 일 있어요?”
도진의 말에 팬들이 수긍했다.
-맞아, 맞아. 이번에 아주 지랄들 하는 거 보면 도진이 판단이 맞음.
-괜히 그런 새끼들 저기 가면 뱀파이어들이랑 관계만 틀어지지.
-그런 애들 보면 바로 인간 혐오 발동해서 휴전 상태에서 바로 전면전 돌입이지 ㅋㅋ
이미 극성 안티가 벌인 일이 있는지라 여론은 도진의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성황청에 찍힌 사람들 게임하기 너무 힘들 거 같던데… 그래도 선처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공인이시니까 좋게 가는 게 님 이미지에도 좋을 거 같은데요.
그런 와중에 범지구적 인류애를 발휘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황청에 신고를 넣었다가 신전 밴을 먹은 인간들을 용서해 주라는 가슴 뭉클해지는 박애주의자의 의견.
하지만 애석하게도 도진은 박애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지자면 도진은 편애주의자였다.
“충분히 쉰 거 같네요.”
도진은 박애주의자에게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 * *
도진 파티는 부유대륙에서 한동안 강행군을 이어 갔다.
치열하지만 평화로운 파밍 기간이 끝날 때쯤 도진은 목표로 했던 150레벨을 초과 달성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좀 더 느긋하게 파밍이나 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도진은 중앙대륙으로 돌아왔다.
벨라와의 대면도 그렇고, 별의 사도가 된 것도 그렇고, 뱀파이어의 저주 문제도 그렇고.
빨리 해결하고 싶은 떡밥들이 너무 많았다.
뭐랄까… 퀘스트 창 인터페이스가 지저분하게 더럽혀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해서, 도진은 원래 계획보다 빠르게 멸망교단을 추적하는 일에 착수하기로 했다.
문제는 현재는 잔뜩 웅크리고 있는 놈들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나중에야 대형 사고를 뻥뻥 치고 다니면서 흔적이 여기저기 남는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안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소용이 없겠지. 그 현장에 가 봐야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점이니까.’
하지만 도진이 기댈 수 있는 건 미래에서 가지고 온 기억뿐이었다.
그래서 도진은 자신의 머릿속에 남은 멸망교단에 관한 기억을, 놈들이 친 사고를 다각도에서 분석했다.
그러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놈들이 친 사고 중 몇 개는 단기간에 준비해서 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멸망교단은 주로 자연 발생하는 재해나 재앙 등에 개입해 규모를 키우는 식으로 피해를 늘렸었다.
그러나 전부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것들 중 몇몇 개는 분명 놈들이 자체적으로 공을 들인 프로젝트가 있을 터.
‘균열 관련 사건은 다 제외해야 돼.’
변수가 무수한 균열 현상은 후보군에서 전부 제외했다.
‘단발성 테러도 전부 제외하고…….’
떠오르는 것 하나하나 제외하고 소거하며 기억 속을 걷다 보니 하나의 사건이 턱 하고 발치에 걸렸다.
‘독각룡 갈란테.’
4년? 아니, 5년이었던가.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나 등장할 월드 보스 레이드의 주인공.
갈란테는 피해의 단위가 도시나 성이 아니라 ‘대륙 일부’라고 표현된 최초의 보스였다.
놈이 토벌된 이후에도 갈란테의 독에 오염된 지역은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몇 년 뒤의 일. 그래, 몇 년 뒤에나 일어날 일이다.
월드급 이벤트이니 이벤트 시기가 돌아오면 준비하려 했었다.
‘그런데… 갈란테는 이 세계의 몬스터가 처음으로 월드 보스로 등장한 거였어.’
갈란테는 죽음에서 부활한 언데드였다.
한참 나중에 제기된 의혹이긴 해도, 멸망교단의 개입에 대한 의혹도 있긴 했었던 거 같고.
‘단순히 죽은 용을 본 드래곤 따위로 되살린 게 아니었어. 갈란테는 생전의 이성을 그대로 지닌 채로 되살아났었다.’
급을 따지자면 좀비나 스켈레톤이 아닌 리치급.
그것도 드래곤을 대상으로 한 그만한 규모의 언데드화라면.
‘1, 2년 가지고도 부족해.’
지금부터도 아니다. 이미 예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야 앞뒤가 맞을 정도다.
티룬드 대공처럼 죽음을 전공으로 둔 대마법사가 끼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인물이 흔한 것도 아니고.
‘헛다리일지도 모르지만,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해.’
멸망교단을 붙잡지 못해도 좋다.
갈란테가 일으킬 재앙의 규모를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일 테니.
방향을 정한 도진은 아직은 푸르름을 간직한, 갈란테에 의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그곳으로 향했다.
* * *
발리스 산악지대.
산악지대라고는 해도 중간중간 평야가 뒤섞인 아주 넓은 곳으로, 제국의 북서부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평화롭네. 아직은.’
도진은 며칠 동안이나 발리스 산악지대를 돌아다녔다.
지금은 한적한 평야를 지나는 중이었는데, 저 아래로 목동이 양떼와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었다.
지금은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을 닮은 곳이지만, 갈란테 이후로는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같은 곳보다 더 처참한 지역이 된 동네가 여기였다.
방사능 유출 지역에 방사능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듯 독 내성 장비를 잔뜩 껴입고 들어와야 하는 곳이었으니.
“하아… 갈란테가 처음 튀어나온 데가 여기 어디쯤일 텐데.”
빵을 꺼내 입에 물면서 시선을 던지는데, 정말 막막했다.
눈에 밟히는 산이랑 평야가 너무 넓고 많다.
여기 어디 묻혀 있을 갈란테의 뼈를 찾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왁!”
“케, 케헥!”
갑자기 발치에서 들린 괴성에 도진은 먹던 빵이 목에 걸려 기침을 했다.
“뭐, 뭐야?”
눈을 돌려보니 작은 꼬마 하나가 히히 하고 웃는 게 보였다.
예쁘장한 남자아이 같기도 하고, 소년 같은 소녀 같기도 하고.
6~8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꼬마가 도진을 놀라게 만든 범인이었다.
“이 새…….”
끼가, 하고 화를 내려다 도진은 필사적으로 참았다.
애가 장난 친 건데 진심으로 화를 내기에는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도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친절히 물었다.
“넌 뭐 하는 놈이냐? 왜 이런 데 혼자 있어?”
아니, 그러고 보니까 이 자식이 옆에 접근하는 걸 전혀 눈치도 못 챘잖아?
도진은 혹시나 싶어 마안까지 써서 꼬마를 자세히 살폈다.
정체를 숨긴 몬스터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냥 애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었다.
이쪽 지역 몬스터 레벨대는 도진보다도 아래.
「적야」를 통한 탐색을 벗어날 도플갱어 같은 몬스터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나요? 그냥 놀러왔어요!”
당차게 말하는 꼬마.
매서운 눈매에 로브까지 입은 도진을 전혀 겁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진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넌 내가 무섭지도 않냐?”
“왜요? 아저씨 나쁜 사람이에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 엄청 잘 도망치거든요.”
말하며, 꼬마는 제자리에서 뛰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걸 본 도진의 눈빛이 빛났다.
‘괜히 내가 기척을 눈치 못 챈 게 아니네.’
발이 빠른 건 둘째 치고 소리가 잘 들리질 않는다.
숙련된 레인저나 도적, 암살자들 수준.
소위 말하는 타고난 재능(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너 이름이 뭐냐?”
“오르펜이요!”
모르는 이름이네.
하긴 이 지역에서 자라고 있었으면… 젠장.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도진은 꼬마의 머리를 헝클었다.
오르펜은 약간 거친 손길에도 기분 좋게 웃었다.
“난 괜찮지만, 괜히 모르는 사람한테 접근하지 마라. 위험한 세상이니까.”
도진은 인벤토리에서 과자를 꺼내 오르펜에게 쥐여 줬다.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에요?”
“착한지는 몰라도 나쁜 사람은 아냐.”
“우움. 착한 사람이구나. 엄마가 나쁜 사람은 자기가 착하다고 하고 착한 사람들은 자기가 착하다고 절대 안 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냐.”
그런 현명한 분이 왜 모르는 사람한테는 접근 말라는 교육은 안 하신 건지.
아니지, 이런 꼬마면 교육은 했는데 말을 안 듣는 거겠지.
“훌륭한 어머님이시네. 훌륭한 어머님 걱정시키면 안 되지. 이제 그거 먹고 집에 가… 자.”
‘가라’고 하려던 도진은 말을 바꿨다.
생각해 보니 여기가 안전한 곳이 아니다.
애 혼자 돌아다니게 두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르펜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엄마 찾으러 온 거예요. 마을 어른들한테 물어봐도 우리 엄마가 어디 갔는지 말을 안 해 주잖아요. 그래서 찾아다니는 거예요.”
“…….”
도진은 순간 차라리 눈앞에 부활한 독각룡 갈란테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도진에게 꼬마 아이 오르펜이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도와주면 안 돼요? 우리 엄마 찾는 거요.”
멸망교단과 갈란테의 단서를 잡으러 온 곳에서 도진은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