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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만의 이름이 나오자 마리올라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종교적 흥분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할 만큼 그녀가 요즘 느끼는 위협은 커다랬던 것이다.
“호세 푸아디고… 그자가 브만 추기경과 아니, 성황청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암덩이라는 표현까지 쓰시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하나 겁만 집어먹었지 도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한 모습이었다.
그걸 본 도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거 완전 맹탕이잖아?’
대충 알아먹으리라 생각하고 은유적으로 돌려 말했더니 알아듣지를 못한다.
생의 대부분을 성황청에서 성녀로 살아서 세상물정을 아예 모르는 건가.
사창가, 호세, 브만, 성황청. 네 가지 키워드를 서로 연결할 생각조차 못 하는 눈빛이었다.
‘이런 걸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건 품위가 죽는 일이지만, 이렇게 순진하시면 어쩔 수 없지.’
도진은 할 수 없이 직설적으로, 성녀도 이해할 수밖에 없게끔 말했다.
“호세 푸아디고는 브만이 쓰는 가짜 신분 중 하나예요. 주로 대도시 사창가에서 돈을 뿌리고 여자를 살 때 쓰는 이름이죠. 뭐, 저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쪽을 파다 보면 줄줄이 엮여 나오는 게 있을 겁니다. 가짜 신분이 하나가 아니라는 건 그만큼 구린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오죽하면 당시 성황청은 현직 성황의 복상사 이슈가 퍼지는 걸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었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지만, 아마 브만이 저지른 다른 일들을 덮기 위해 눈을 감았던 게 아닐지.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동서고금은 물론 다른 세계에서도 사람들 눈을 가리는 데는 자극적인 걸로 눈을 가리는 것만 한 게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 그게 무슨 말- 당신은 지금 성황청 자체를 욕보이려는 건가요?”
마리올라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럴 리가요. 성녀님 말씀대로 잘못 뱉었다가는 성황청을 모욕하는 말이 될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걸 확신도 없이 질렀을 것 같습니까?”
도진은 오히려 성녀가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는 듯이 말했다.
“제 입장, 아니 엘토마기아 입장에서는 브만의 기행에 대한 증거를 다 확보한 뒤에 그걸 무기로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은 것만으로 저는 예의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물며 성황청 입장에선 상처가 곪아 터지기 전에 돌아볼 기회까지 드린 겁니다.”
논리정연한 도진의 말에 성녀는 할 말이 없었다.
“분노를 표출하는 건 진위 여부를 파악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성녀님. 아마 이 일로 저한테 화를 내실 일은 없겠지만요.”
진정이 된 건지 위축이 된 건지 조용해진 성녀를 보던 도진은 슬쩍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용하다 싶더니 젊은 사제 놈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 걷어찼을 때 기절한 건가? 아니지, 무슨 종이인형도 아니고 사람이 그 정도로 기절을 해.
아마 주기적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시끄럽게 구니까 시온이 재워 버린 게 아닐까.
“어윽……!”
봐라. 대화가 대충 마무리된 거 같으니 전기충격을 받은 불고기처럼 펄떡대며 의식이 돌아오는 걸.
“자, 그럼 나눌 이야기는 다 나눈 거 같으니, 오늘 만남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할까요? 아, 그 전에. 잠시 저랑 나란히 서 주실 수 있을까요? 원판 반대쪽 잡으시고 이렇게요.”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성녀를 일으켜 세운 도진은 그 옆에 나란히 서서 활짝 웃었다.
* * *
성녀는 도진과의 약속대로 도진과 벨라에 얽힌 많은 진실에 대해 함구했다.
도진이 일러 준 각본대로 성황청에 보고했다.
그리고 성황파 쪽에는 도진이 속삭인 비밀스런 이야기도 전했다.
도진이 던진 돌이 일으킨 파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밑에서 브만과 호세의 연관성에 대해 조사를 하던 성황파는 진실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혀를 내둘렀다.
‘숨겨 둔 자식이 셋이나 있어?’
‘오, 별이시여. 이 세상이 어찌 되려는 겁니까.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마저 몸을 팔다니요. 심지어 당신의 종이란 작자가 그런……!’
‘이게 다 뭐야! 어찌 사람의 탈을 쓴 자가 이런 악독한 일을……!’
아니, 혀만 내두르면 다행이었다.
브만의 악행은 그들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고, 조사 과정에서 그들은 경악을 하다못해 주저앉아 토악질까지 해야 했다.
도진의 예상대로 사창가 VIP는 브만이 저지르고 있던 악행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볍게는 마약 유통부터 시작해 주요 상품이 고아인 인신매매까지.
적당한 크기의 비리로는 추기경파의 수장인 브만을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을까 걱정했던 성황파였으나 나중에는 ‘이 정도면 그만 조사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브만은 조용히 숙청됐다.
대외적으로는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됐다.
브만과, 브만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가짜 신분은 서로 철저히 분리되어 처리됐다.
추기경파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일제히 침묵했다.
괜히 조금이라도 얽혔다가는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
원래대로라면 계속해서 이어졌을 소모적인 파워 게임이 도진에 의해 빠르게 종식된 셈이었다.
* * *
성황청이 자정작용을 거치는 동안 도진은 엘토마기아에 남아 있었다.
시온이 당분간 자기 옆에 머물며 말동무를 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거기 있느냐.”
시온이 시선은 세상 바깥에 둔 채 물었다.
“네. 있습니다.”
도진은 떠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시온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나쁘지 않구나. 제자를 둔다는 것도.”
제자는 무슨.
벌써 일주일이 넘게 세상 바깥만 바라보면서 가끔 말을 걸어오는 게 전부인데.
도진은 이젠 퍽 익숙해진 시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펑퍼짐한 로브를 입었음에도 작은 체구를 가리진 못했다.
저 작은 몸뚱이로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건 무한한 공간.
그곳을 바라보며 시온은 단 한 명의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제가 아는 제자의 역할은 이런 게 아닌데요. 뭐라도 배워야 제자가 아닐까요?”
시온이 어깨를 들썩였다.
웃는 거 같았다.
“네가 내 가르침을 이해할 날이 온다면 얼마든지.”
“그게 언젠데요?”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지은 미소를 조금 더 선명히 만들었을 뿐.
이게 다다.
정말 도진이 엘토마기아에 머무는 동안 한 일이라고는 시온이 가끔 걸어오는 말에 대꾸나 하는, 말동무가 전부였다.
‘다른 마법사 놈들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했겠지.’
저 경계를 자유롭게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일 테니.
하지만 도진은 그런 것보다는 시온 그레이스가 외로이 세상 끝에 서서 친구를 찾아 헤매는 걸 보는 게 싫었다.
“계속 그러고 있으면 힘들지는 않습니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힘들지.”
생각보다 훨씬 더 담백한 시온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이러고 있는 게 나아. 안 그러면 더 힘들거든.”
계속 잡던 무게를 내려놓은 말투였다.
그만큼 진심이 잔뜩 담긴 말이라는 뜻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쪽도 해결해 주고 싶지만.’
도진도 이쪽은 어쩔 수 없었다.
정확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애초에 전생에도 시온은 결국 친구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했었으니.
찾은 건 시온 쪽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쪽에서-
“너를 찾는구나.”
생각의 중간을 시온이 파고들었다.
“네?”
“아무래도 성황청에서 너를 찾는 모양이다.”
거기까지 말한 시온이 손을 저었다.
그러자 도진이 앉아 있던 자리가 ‘재배치’되었다.
놀이기구라도 탄 것처럼 휘익 하고 무게중심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도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적색위 마법사 옆에 앉아 있었다.
“꺄아아아악-”
오늘 당번인 적색위 마법사는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성황청에서 연락이 와서 당황하는 와중에 갑자기 옆에 없던 인간이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아…….”
도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시온의 배려는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돌발적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사후처리도 나름 깔끔하다는 거다.
비명을 지르던 적색위 마법사가 툭 고개를 떨궜다.
시온이 재운 것이다.
[“무, 무슨 일인가요?”]
수정구 건너편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녀인데, 아마도 비명 소리에 놀란 듯했다.
“성녀님이시군요. 오랜만이네요.”
[“도진 님? 아니, 그것보다 그쪽에서 분명 비명소리가…….”]
“별거 아닙니다. 이쪽 마법사들이 워낙 잠이 부족해서요. 자다가 악몽이라도 꾼 모양입니다.”
[“…….”]
숨소리만으로도 성녀가 어이없어 하는 게 느껴졌다.
“그보다 왜 절 찾으신 거죠?”
도진은 말을 돌렸다.
[“…성황파, 아니 성황청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 말이 맞았습니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이 될 뻔한 걸 예방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잘 처리하셨다니 기쁘네요.”
[“그리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당신이, 엘토마기아가 이 일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비밀로 해 달라, 이거군요.”
[“…….”]
성녀는 침묵으로서 긍정했다.
하긴 저쪽에서는 엄청 신경 쓰이긴 할 거다.
들춰 보니 자기들이 생각해도 ‘아, 이거 노답인데’ 싶은데, 그 정보 출처가 엘토마기아라니.
약점을 잡힌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당신께서 원하신 대로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때가 될 때까지 비밀로 간직하겠습니다. 당연히 ‘누명’ 또한 없던 일이 될 거고요. 이외에도 엘토마기아의 요구사항이 있다면 협상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창한 요구를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제가 정보를 드린 건 정말 성황청이 제 기능을 했으면 해서 드린 거니까요.”
[“정말인가요?”]
“네. 이후에도 이 문제로 성황청이 곤란해할 걱정은 않으셔도 된다고, 그렇게 전해주세요. 아, 대신 개인적인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역시나, 하고 긴장하는 기색의 성녀.
하지만 도진의 부탁은 그녀가 생각하는 그런 거창한 게 아니었다.
“절 신고한 놈이요. 신분 특정이 가능하면 허위 신고로 성황청 쪽에서 제재를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요. 일정 기간 신전에 출입을 금하거나 뭐 그런 쪽으로요.”
너 이 새끼.
넌 신전도 못 들어가고, 성황청에서 만든 포션도 사기 힘들 거다.
사소한 복수까지 마무리한 도진은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침묵을 풀었다.
그날 도진 채널에 올라온 건 영상은 아니었다.
[성녀님과 함께 뜻깊은 시간 ^^]
성녀 마리올라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스크린샷 한 장이었다.
뒤에 붙인 이모티콘은 도발을 위해 붙인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