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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75화 (17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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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만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마친 시온은 도진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다.

애초에 도진에게 준 증표가 자신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하아…….”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시온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평상시였다면 걱정부터 되었을 터이나 지금은 달랐다.

‘북쪽으로 향하다 안개에 가려지듯 사라졌다라.’

방금 성황청 추기경이 한 말이 사실인 건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꼰대 흡혈귀가 만든 게 뻔히 보이는 마안까지 이식한 걸 봤으니.

하지만 지금도 거기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쯧쯧 하고 혀를 찬 시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그놈의 성안에 있는 모양이군. 이 기분 나쁜 안개에 가려진 듯한 느낌이 딱 그래.

‘그런 꼰대 녀석과 어울려 다니면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마법사란 자들은 다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 있다지만, 북쪽 꼰대는 좀 심했다.

‘최소한 그놈보단 내가 낫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시온은 마법진 하나를 띄웠다.

마법진은 허공에서 선으로 흩어지며 새 모양으로 뭉쳐졌다.

새하얀 빛의 실로 짠 새로 변한 마법진이 공간의 틈을 열고 탑 밖으로 날아갔다.

‘아무래도 아직 소식을 모르고 있을 테니, 알려는 줘야겠지.’

혹여 불안해할지도 모르니 안심하라고 다독여 줄 필요도 있을 테고.

시온은 생각했다.

자신이 꽤 어른스럽지 않은가 하고.

“후후.”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짓는 그녀의 웃음은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온 그레이스의 웃음은 역할이 생겨 뿌듯해하는 천진한 아이와 닮아 있었다.

* * *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오늘치 경험치를 벌기 위해 부유대륙 지상으로 올라왔다.

마음 같아서는 쉬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기껏 부른다고 여기까지 온 파티원들은 어떻게 하겠나.

‘하아… 세상 참 존나게 아름답네.’

탁 트인 풍경을 보며 도진은 한숨을 쉬었다.

세상은 이렇게 예쁘고 찬란한데 내 신세는…….

괜히 멀쩡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그랬다.

‘그래도 성황청 애들이 대놓고 수배 때리고 그러진 않겠지.’

리제니안은 생각보다 매우 민감한 존재였다.

몬스터는 날뛰고, 벨라는 침묵하고, 라베스는 밝게 빛나고 있는 상황은 성황청 입장에서는 종교로서의 위신이 흔들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

그걸 타개하고 로스타니아 전체를 안정시키기 위한 게 대량의 이세계 용병 집단인 리제니안이다.

성황청 입장에서는 이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야 약해질 대로 약해진 종교적 권위를 회복하든 유지라도 하든 할 수 있는 입장인 것.

한데 이런 상황에 리제니안이 성황청에서 오래도록 인류 공적이라고 광고했던 뱀파이어랑 친구를 하고 있다?

이걸 동네방네 떠들면서 수배령 때리는 건 제 얼굴에 똥칠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한발 걸치고 있는 제국 쪽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을 거고.’

이걸 잘 활용해서 줄타기를 하면 상황을 잘 풀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지금 시점의 성황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걸 모른다는 거다.

도진이 가진 성황청에 대한 이미지와 지식은 상당히 나중이 되는 미래 시점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멸망교단이 본격적으로 사고를 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성황청이란 집단도 수면 위로 부상했으니.’

달리 이야기하면, 성황청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시점에 멸망교단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아는 NPC들이 지금도 있을 테니 그쪽으로 알아보면-’

되겠지, 하고 생각을 하려는 순간 저 멀리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반응하기도 전에 그것은 공간을 도약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진을 포함해 파티원 전원은 반응도 하지 못했다.

쾅-!

단 한 명.

사냥하는 걸 구경한다며 따라온 카린을 제외하고는.

도진을 향해 쇄도하는 빛을 후려치며 막아선 카린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앗?”

그러나 빛나는 새와 힘겨루기를 하던 카린은 번쩍- 하고 사라져서는 저 멀리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심지어 그녀는 빛의 실로 만들어진 우리에 가둬졌다. 쾅쾅쾅! 하고 벽을 두드려 보는 카린이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카린을 치워 버린, 시온 그레이스가 보낸 새는 분열하며 통신을 위한 마법진으로 변신했다.

【오랜만이구나.】

갑자기 나타난 새가 마법진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 당황한 파티원들.

도진은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는 한편, 갑작스럽긴 해도 익숙한 목소리에 침착하게 답했다.

“시온 님.”

본 지 꽤 된 대마법사 시온 그레이스.

그녀다.

그런데 지금 왜 갑자기.

‘설마…….’

【성황청 녀석들이 시끄럽게 굴더구나.】

설마 맞네.

바로 훅 들어오는 본론에 도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참 맑네.

내 인생은 이리도 우중충한데 말이야.

비도 오고 벼락도 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하긴, 그러면 기분도 좆 같은데 날씨도 좆 같네 같은 생각이 들었겠지.

결국 마음이 힘들면 뭘 보든 기분이 안 좋기 마련이었다.

“하아…….”

도진의 깊은 한숨에 시온이 웃음기를 섞어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예… 설마 그쪽으로 불똥이 튀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요.”

사실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전개였는데.

머리가 복잡해서 그쪽으로는 사고의 가지를 뻗지 못했다.

이래서 시야가 좁아지면 안 되는데. 자책하는 도진에게 시온이 말했다.

【불똥이랄 것도 없다. 성황청 놈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일 뿐이니.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뭔가 의기양양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럴 만한 내용이기도 했다.

아무리 힘과 권위를 많이 잃은 상태라고는 해도 상대가 성황청인데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이런 든든한 뒷배를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도진은 든든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시온이 말하는 해결법이 매우 신경 쓰이기는 했다.

사회성 없는 걸로 치면 또 이분께서 밀릴 분이 아니거든.

“혹시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신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두 가지쯤 방법이 있지. 하나는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이다. 조사를 해 봐야 내가 작정하고 가리면 놈들이 뭘 알아낼 수 있겠느냐.】

예, 못 찾겠죠. 그런데 작정하고 가린 건 알지 않겠습니까.

뜯어 봐도 뜯어 봐도 열리지 않는 상자를 보면 의심은 더 깊어질 거다.

마치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하는 놈들이 범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 방법은요?”

【그냥 무시하면 된다. 엘토마기아가 내어주지 않겠다 선언하면 성황청이라 한들 방법이 없을 테니. 어차피 놈들도 대놓고 내 제자를 내 놓으라 할 처지가 못 된다. 대충 덮으려 들겠지.】

확실히 그럴 거다.

지금의 성황청은 엘토마기아와 시온 그레이스를 상대로 파워 게임을 할 수 없는 처지이니.

하지만 그런 만큼 더 큰 모욕을 느낄 거고, 그만한 크기의 앙금을 품게 될 것이다.

이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발생시킬 암덩이가 될 거고.

‘나중에 찾아올 위기들을 극복하려면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라다. 성황청이 엘토마기아, 나아가서는 마법사라는 집단과 반목하게 만들면 좋을 게 없어.’

결국에는 협력하게 되긴 할 거다.

다 망하게 생겨서 서로 기 싸움 할 여력도 남지 않은 시점이 되면 말이다.

도진은 그런 데다 무엇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불안한 불씨들을 하나하나 없애 가도 모자랄 판에 직접 그런 불씨를 새롭게 만들 생각은 없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런 식으로 뭉개고 넘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직접 해결하고 싶습니다.”

도진은 별의 사도다.

무려 걔들이 믿는 별이 점지한 사도란 뜻.

현재는 스킬도 뭐도 없이 상태창에 글자만 박혀 있지만, 뭔가 증명할 방법을 찾다 보면 나오지 않겠나.

【직접? 쉽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염치없지만 다른 방향으로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요.”

시온이 흥미로움을 담아 물었다.

【도움? 주겠다는 도움을 거절하고 다른 도움이라. 어떤 것인지 궁금하구나.】

“현재 성황청에서 대화가 통할 상대를 찾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성황청 내부 상황이랑 주요 인물들에 대해 파악을 해야 하는데… 이런 쪽으로 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

순간 시온이 말을 잃었다.

마법 말고 다른 쪽으로 도움을 요청하니 뇌가 정지한 모양.

도진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 줬다.

“아래에 시키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통신 마법진이 반짝였다.

마치 ‘아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걱정 말거라. 그 정도는 금방 처리하겠지.】

“이런 일도 신경 쓰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고요.”

도진은 말하며 생각했다.

오늘은 왠지 시온이 더 무게를 잡았던 거 같다고.

말투부터 단어 선택까지…….

‘잠깐.’

생각을 잇다 보니 중간에 휙 지나친 단어 하나가 턱 걸렸다.

‘제자’.

시온은 분명 자신을 제자라고 표현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엘토마기아 소속 마법사는 모두 그녀의 제자격이 되는 게 맞긴 하지만…….

지금 시온이 언급한 단어는 그런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는 걸 모를 정도로 도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 먼 부유대륙까지 새를 날려 보내 이런 말을 해 줄 정도면, 인세에 무관심한 시온 그레이스에게 아주 이례적인 일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도진은 느낀 것을 담백한 말로 담아 전달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풀어서, 제자니 뭐니 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특히 시온 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을 상대로는 말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온 본인도 자기 마음을 제대로 모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일 때가 좋다.

그걸 의식하게 만들면 거북이처럼 숨어 버릴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튈 수도 있으니.

【그럴 거 없다. 무료한 나날에 흥미로운 일이 퍽 반가울 지경이니. 다만 걱정되는 거라면…….】

중요한 말을 할 거 같은 분위기에 도진이 귀를 기울였다.

그런 그에게 시온은 아주 중대한 사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속삭였다.

【꼰대를 멀리하거라.】

“예? 꼰대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북쪽의 꼰대 말이다.】

“혹시 대공님을 말씀하시는…….”

【그래, 그 음침한 녀석 말이다.】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늙어빠진 게 뭐가 그렇게 자랑이라고 어리다고 무시하는지.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투덜투덜 대는 시온을 보며 도진은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대마법사끼리 안면이 있는 거야 그렇다 치겠는데… 유치해도 너무 유치한 거 아닌가?

‘대공이 꼰대인 게 아니라… 저쪽이 어린애 같은 게 맞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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