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72화 (172/271)

172

어차피 도진은 언젠가 부유대륙 전 지역을 탈탈 털 생각이었다.

부유대륙은 특성상 어딜 가든 히든이고 최초인 동네라서, 무엇이든 온갖 보너스가 붙어 보상이 튀어나온다.

이런 지역을 방치하는 건 인류의 낭비였다.

하지만 보상이란 게 다 때가 있는 법.

나중에 레벨이 한참 높아진 뒤에 숙제를 끝내듯이 부유대륙 탐방을 한다면 저레벨 구간에 대한 낭비가 발생하게 된다.

‘이왕 온 김에 여기서 150은 찍고 돌아가자.’

그래서 도진은 중앙대륙으로 돌아가기 전에 몇 군데나마 부유대륙 필드와 던전을 탐방하기로 했다.

부유대륙은 기본적으로 레벨대가 높은 놈들만 사는 곳이라 대충 이 동네에서 저레벨 취급을 받는 곳만 돌아다녀도 150레벨은 금방 찍을 터였다.

‘지금 145니까… 변수까지 고려하면 얼마나 걸리려나. 근데 아무리 창세성한테 소원을 썼다고 해도 그렇지. 퀘스트 경험치는 별개 아니야?’

도진은 속으로 툴툴댔다.

창세성을 위해 소원을 소모한 탓인지 다른 기대 보상은 물론이고 퀘스트 클리어 경험치마저 들어오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비, 특성, 돈, 경험치. 이번 퀘스트에서 도진이 얻은 직접적인 보상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얻은 게 그만큼 커 보이니 참아야지.’

도진은 레벨 밑으로 보이는, 새롭게 만들어진 숙명 클래스 ‘별의 사도’를 보며 쓰라린 속을 달랬다.

어쨌든지 간에 이미 흘러간 일이니 미련은 접고. 레벨 측면에서 증발해 버린 시간과 경험치를 빠르게 복구해야 했다.

“바로 준비부터 시작해야-”

잠깐. 그런데 나 언제 마지막으로 로그아웃했지?

도진은 소름이 돋았다.

부유대륙에 발을 들이기 전에 접속한 이후로 며칠이나 게임을 했는지 헷갈렸다.

거기다 머릿속으로 한 생각들도 전부 이곳 로스타니아와 관련된 것뿐이고.

부유대륙, 던전, 레벨, 벨라, 멸망교단…….

며칠 동안 머리에서 연기가 나도록 돌려대면서 한 생각 중 단 한 줄도 현실에 관련된 건 없었다.

‘이러다 잘못하면 진짜 폐인 되겠어.’

아니, 이미 폐인은 됐고.

여기서 더 나가면 폐기물이 되기 십상이다.

순수하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불안에 도진은 로그아웃부터 하기로 했다.

‘준비는 밖에서 해도 되니까.’

끝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 * *

“오늘부터 하루, 아니 이틀… 아냐, 사흘은 캡슐에 누울 생각도 하지 마. 알겠지?”

눈을 부라리며 말하는 사람은 천지현이었다.

듣는 사람은 당연히 도진이었고.

“…사흘이나?”

“씁……!”

“…….”

협상을 해 보려던 도진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로그아웃해서 캡슐에서 일어난 도진은 방에서 나오자마자 천지현과 마주쳤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반갑게 인사를 하려는 와중에 현기증을 느껴 도진이 쓰러질 뻔한 것이다.

벽을 어지러움에 휘청이다 벽을 짚은 도진은 딱히 별생각이 없었다.

캡슐에 오래 누워 있다가 일어났을 때 흔히 겪는 증상이란 걸 알기 때문에.

하지만 천지현은 달랐다.

「너, 너……! 안 그래도 너무 오래 게임한다 했어. 오늘도 안 나오면 강제로 끄집어내려고 했더니!」

캡슐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 도진을 걱정하던 와중에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비틀대는 걸 본 천지현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천지현은 일단 도진을 먹이고 재운 뒤.

「씻고 준비해. 병원 가자.」

병원으로 연행했다.

건강검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때보다 더 철저한 정밀검사를 VIP 코스로 받아야 했다.

「누나, 나 진짜 괜찮다니까?」

「그럼 증명해.」

검사 받아서 증명하라고.

도진의 반박은 통하지 않았다.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고급스럽고 푹신한 병원 의자에 앉아 도진은 흘러가는 상황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간호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천지현을 보며, 도진은 오히려 뭔가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는 방바닥에 이틀 동안 기절해 있어도 아무도 몰랐는데.’

그때 도진을 발견한 건 사회복지사였다.

전화도 받지 않고, 가상현실기기 접속도 하고 있질 않으니 집으로 찾아왔다가 발견한 거다.

그런데 이제는 게임 오래해서 비틀댄다고 걱정하며 병원으로 끌고 오는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진은 군말 없이 천지현이 바라는 대로 온갖 검사를 받았고,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젊은 분이라 그런지 수치가 좋네요. 좀 더 정확한 건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아는 거지만, 크게 걱정하실 부분은 당장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가상현실기기에 누워 있는 상태로 지내는 건 안 좋아요. 아무리 캡슐의 헬스케어 시스템이 좋아졌다고 해도 주기적으로 직접 움직여 주셔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도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의사란 직업은 원래가 ‘무조건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었다.

‘당장은’, ‘그래도’ 등이 붙는 바람에 도진은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사흘…….”

“그래, 사흘. 사흘만 참아.”

“흠. 내가 일주일씩 게임하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내가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너 일어나서 밥 먹고 침대까지 가서 잠드는 거 봐야 안심하고 그랬어.”

누가 걱정해 주는 게 기분 좋으면서도 어색한 거구나.

도진은 새삼 그걸 알게 됐다.

천지현도 호들갑을 떤 게 민망한지 시선을 돌리고는 코를 찡긋거렸다.

도진은 어색한 공기를 몰아내기 위해 적당한 말을 고르다 일 얘기를 꺼냈다.

“맞다. 누나, 이번에 올릴 영상 있거든. 일단 회사로 보내 줄래? 이번에는 자를 부분이 많긴 한데, 그 부분은 나중에 내가 따로 얘기할게.”

천지현의 눈이 커졌다.

도진이 오래 게임을 한다고 무조건 사고를 치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반복 사냥을 오래 하는 경우가 많으니.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는 거의 무조건 대형 사고를 예고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잠깐만. 바로 보내고 전화 좀 하고 올게!”

천지현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회사원이란 게 회사에 좋은 일을 보고할 때만큼 뿌듯하고 기분 좋은 경우가 별로 없는 법이다.

동생 걱정하는 누나였던 천지현은 어느새 회사원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 * *

현실에서 사흘간 유배 생활을 하게 된 도진은 테레사에게 연락했다.

“레사 누나, 부유대륙에서 던전 돌 건데 같이 갈래?”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한 말에 테레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콜을 외쳤다.

[“근데 거길 어떻게 가? 가다 죽을 텐데.”]

“부유대륙으로 오는 길 알려 줄 테니까 와.”

[“뭐? 오라고? 넌 벌써 거기 가 있는 거야?”]

지금부터 같이 가자는 거 아니었어? 하는 투로 묻는 테레사.

도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영상 보낼 테니까 그대로 찾아오면 돼. 안전하긴 한데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그건… 안전한 게 아니잖아.”]

도진은 테레사에게 부유대륙으로 가는 동안 찍은 영상을 보냈다.

이건 대외적으로는 비밀에 부칠, 채널에는 올리지 않을 부분이었다.

“소소 누나도 데리고 올 거지?”

[“당연하지. 두고 가면 날 죽이려고 들 텐데…….”]

“음, 탄토 씨한테도 얘기해 볼까 하는데. 괜찮으면 같이 올래? 그 편이 좀 더 안전하게 올 수 있을 거 같은데.”

캐릭터 레벨만 올린다고 세지는 게 아니다.

성장이란 게 밸런스를 잘 잡아 가면서 성장해야 하는 거다.

장비 레벨도 함께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진은 방어구(테레사), 물약(소소), 물리공격 무기(탄토)를 불러들였다.

“사정이 있어서 금요일 이후에 게임할 수 있으니까 그때 이후로 도착하게 오면 돼.”

[“응, 알겠어. 그럼 우리끼리 상의한 다음에 연락할게.”]

“알았어.”

통화를 마친 도진은 게임 없이 오늘을 어떻게 녹일까 궁리했다.

‘산책부터 할까.’

오랜만에 현관 밖으로 나가 현실의 태양 아래서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 * *

도진과 테레사, 소소, 탄토가 합류하여 부유대륙 탐험에 나설 때쯤.

영상이 올라왔다.

[다시 찾은 부유대륙]

[3시간 뒤 최초 공개]

3시간짜리 예약 업로드로.

한때 이슈가 되었던 부유대륙.

하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지금 갈 방법이 없다는 게 밝혀진 후로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땅이 다시 언급됐다.

-3시간… 미쳤냐고!

-업로드도 불규칙해. 주기는 더럽게 길어. 그런데 또 재미는 더럽게 있어. 아무래도 도진이한테는 매가 약이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형,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형,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형,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다른 유저들은 별 지랄발광을 다 해도 근처도 못 갔는데 얘는 가고 싶으면 가나 보네. 그 흡혈귀 여자애 불러서 타고 간 건가?

-캬, 이 새낀 게임하기 더럽게 쉽겠네 ㅋㅋ 다른 사람들 저기 도착할 때까지 혼자서 개꿀 빨 거 아냐. 이딴 게 밸런스? 운빨 좆망겜 클라스 어디 안 가죠?

└그러면 너도 뱀파이어랑 호감도 뚫고 날아가든지.

└결과만 놓고 보면 뭐가 안 쉬워 보이냐 ㅋㅋ 이런 새끼들은 꼭 도진이 깬 퀘스트들 난이도가 미쳐 돌아간다는 건 쏙 빼더라.

영상이 완전히 공개되기도 전부터 이미 반응은 불타올랐다.

얌전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사람.

왜 바로 공개 안 하냐고 드러눕는 사람.

보지도 않고 시기와 질투부터 하는 사람.

그걸 또 두드려 패는 팬들까지.

빠르게 늘어나는 댓글들은 현세의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무언가였다.

[제목: 속보!]

[바빠서 길게는 못 적는다.]

-……? 병신아, 적어도 뭐가 속보인지는 적고 가야지.

-내가 대신 적음. 법게 유일신 영상 새로 떴다.

마법사 게시판을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와 게시판도 함께 달궈졌다.

그런 반응을 살피며 라엘 엔터 콘텐츠 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 도진 씨 영상은 참 좋은 거 같아요. 따로 홍보를 할 것도 없잖아요.”

이번 영상을 편집한 여직원의 말에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썸네일이랑 제목으로 과장할 것도 없이, 그냥 내용 자체가 어그로 머신이잖아. 진짜 경이로워.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 관심이 몰릴 소스만 딱딱 뽑아내는지. 그래서 마케팅 쪽에서도 좋아하잖아.”

“그렇겠죠. 굳이 광고니 PPL이니 물어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붙어 주는데 어떻게 안 좋아하겠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번 영상이 가져올 아주 큰 풍파에 대해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