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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68화 (16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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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린 봉인 덕에 다시 날 수 있게 된 카린.

전장의 제공권은 이쪽에 있다.

도진은 공중에서 일방적인 폭격을 가했다.

‘이런 환경이면 카린이 나설 것도 없이…….’

‘내가 다 마무리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려는데.

“무슨 재생 속도가 저렇게 빨라?”

말도 안 되는 보스의 재생 속도를 보고 기겁을 했다.

“저 정도면 저랑 비슷하거나 더 빠른 거 같은데요!”

폭염으로 터뜨리고, 바람으로 자르고, 냉기로 얼리고 해도 상처 부위가 마치 역재생 버튼이라도 누른 듯이 멀쩡해진다.

뱀파이어 나라의 공주님까지 놀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모든 것의 끝은 별께서 정하신다! 우리의 끝은 지음 받지 않았으니, 너희 따위가 우리의 끝을 정할 수 있겠느냐!”

할멈의 포효는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고깃덩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피해!”

각각의 구멍에 불길한 일렁임을 감지한 도진이 경고했다.

직후 고깃덩이의 몸뚱이 이곳저곳에서 붉은 레이저가 사출됐다.

지이잉- 콰아앙!

레이저가 긁고 간 절벽과 지면에 요란한 폭발이 뒤따른다.

카린은 곡예비행을 펼쳐 자신들을 노리는 레이저 세례를 회피했다.

“이런… 아직 이 몸에 익숙하질 않아서 그런가?”

할멈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날파리를 노리고 쏜 공격이 다른 방향으로 낭비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듯이.

도진은 그런 할멈을 노리고 뇌전 한 줄기를 쐈다.

몸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와중에도 「뇌전의 창」은 정확히 목표물에 착탄했다.

왜소한 할멈의 몸뚱이 3할 정도로 퍽 하고 터져 나간다.

“아아아악!”

할멈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른다.

됐나?

“아니군.”

피어나던 기대는 바로 가라앉았다.

터졌던 몸이 순식간에 고깃덩이와 같은 재료로 채워지며 더 튼튼하게 재생된 것이다.

“제가 한번 해 봐도 될까요?”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도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카린은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됐다.

‘도진 님을 들고 있으면 전력을 낼 수 없어요. 그렇다고 내려놓으면 위험해지고.’

어떻게 하지?

“아, 그러면 되겠군요!”

혼자서 감탄한 카린은 도진을 그대로 냅다 위로 던져 버렸다.

“……?”

순간 도진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인지하지 못했다.

워낙 빠르게 몸이 치솟아서, 카린이 고속으로 고도를 더욱 높였나 하고 착각했을 정도다.

그런 도진을 하늘에 맡겨 두고, 카린은 전속력으로 포효하는 할멈 앞에 섰다.

너무나 빠른 속도여서 할멈은 카린의 이동을 보지도 못했다.

“안녕히 가세요!”

예의 바르게 작별 인사를 건넨 카린이 손을 뻗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사출됐다.

다량의 피를 고압으로 발사할 뿐인 무식한 공격.

하지만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카린은 단 일격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고깃덩이 보스의 3분의 1가량을 갈아 버렸다.

“앗!”

하지만 보스는 죽지 않았다.

남은 몸에서 촉수 같은 걸 만들어 카린을 붙잡으려 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육체를 고속으로 재생한다.

카린은 재빨리 촉수를 피해 원래 있던 하늘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낙하하는 도진을 멋지게 받아냈다.

“야아아아! 미쳤어?”

강제로 하늘로 솟구쳤다가 자유낙하, 아니 추락을 겪은 도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카린이 주눅 든 얼굴로 묻는다.

“재밌지 않으셨나요……?”

도진은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길 하늘로 던져 주면 좋아하던데요. 책에서 봤어요.”

세상 그 어떤 아빠도 자유낙하에 몇 초씩 걸릴 만큼 높은 높이까지 자식을 집어 던지지 않는다.

하아. 말을 말자.

도진은 순박한 뱀파이어 엘더에 대한 상식 교육을 잠시 뒤로 미뤘다.

그보다 급한 게 아래에서 아주 쌩쌩하게 지랄을 하는 중이다.

“재생력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야. 정상적인 방법으로 딜을 해서 죽이는 구조가 아닌 거 같은데.”

저 새끼 또 광선 쏘네.

재생은 돼도 아프긴 한지 할멈은 아주 지랄발광을 하며 악을 쓰고 있었다.

이제는 조준도 나름 정확해져서 카린의 비행은 더욱 현란한 궤적을 그렸다.

끌려다니는 도진 입장에서는 아주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도진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상황을 살폈다.

‘저런 재생이 그냥 될 리는 없고. 힘을 공급하는 게 있을 텐데.’

이 경우엔 범인이 확실했다.

성물.

혹은 성물이 트리거가 되어 깨운 성역.

무슨 짓을 한 건지 몰라도, 저 고깃덩이는 성물과 성역이 가진 벨라의 힘을 다른 걸로 변환해 흡수하고 있는 거 같았다.

‘성물을 부숴서 힘의 공급을 끊는 건… 아니군.’

광선에 직격으로 얻어맞고도 완전히 멀쩡한 걸 내가 뭔 수로 부숴.

도진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지금 가진 정보를 전부 떠올리며 분석했다.

보고 들었던 모든 걸.

‘환영.’

이 산이 보여 주고 들려주었던 것.

특히 성물의 반쪽을 찾으러 갈 때 보았던 건.

‘거기까지 그걸 옮겼던 자들. 그 사람들은 멸망교단 사람이 아니었어.’

그때 당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성물을 가지고 탈출한 자들이었다면.

‘여기 있던 반쪽을 그쪽으로 가져가야 했던 거야.’

이거 말고는 떠오르는 것도 없고, 현실적으로 공략할 방법도 없었다.

저 무식한 걸 쓰러뜨릴 방법?

카린이 없었으면 환상적인 광선 쇼에 벌써 먼지가 되어 저 멀리 날아갔을 거다.

“카린, 저 근처에 내려 줄 수 있겠어?”

도진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카린이 기겁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괴물 바로 옆에 내려달라니!”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

“…힘들어요. 저쪽 근처로 가면 아까처럼 될 거 같아요.”

라베스의 빛이 가득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푸른빛을 유지하는 곳이 성물 근처였다.

카린이 비행을 하면서도 그쪽으로는 날지 않는 이유가 그거였다.

“그럼…….”

도진은 보스, 성물 그리고 위로 향할 루트를 머릿속에 정리했다.

“잘 들어. 지금부터 내 말대로 하는 거야.”

“들어보고 결정할 거예요! 위험해 보이면 이대로 납치할 거랍니다!”

“먼저 네가 다가갈 수 있는 거리까지 간 다음 날 저쪽으로 던져. 적당한 속도로 던져. 죽을 정도로 던지지 말고. 그런 다음 넌 저놈한테 아까처럼 큰 거 한 방 먹여. 잠깐 동안 전투력을 상실할 정도로.”

“다음에는요?”

“저 성물을 찾았던 장소로 가져갈 거야. 거기에 뭔가 있어.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거든. 그동안 버틸 수 있겠어?”

“저 할머니가 도진 님을 방해 못 하게 만들면 된다는 거죠?”

카린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하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

“시작해!”

도진이 전장에서 멀어진다고 하니 카린은 군말 없이 작전에 동의했다.

광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성물 방향으로 날아간 카린이 도진을 투하했다.

빠르게 날던 관성에 실려 날아간 도진은 염동력으로 충격을 상쇄하며 눈밭을 굴렀다.

코앞에 성물이 보인다.

“이놈, 이제야 떨어졌구나!”

잡히지 않는 모기를 사냥하는 심정으로 짜증을 있는 대로 내던 할멈이 반색했다.

하나 기쁨은 길지 않았다.

“얍!”

귀여운 기합을 지르며 카린이 수직으로 할멈을 강타한 것이다.

두 손을 쭉 뻗고 날아가 부딪치는 모습이 슈퍼맨을 닮아 있었다.

“크아악! 그만!”

그사이 도진은 성물을 들고 냅다 달렸다.

직각이나 다름없던 절벽은 무너져 내려서 달려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믿는다, 카린!’

카린은 도진을 노리는 보스의 몸뚱이를 뭉텅뭉텅 떼어 내고 뭉갰다.

결국 도진은 무사히 절벽을 올라 아까 보았던 설원을 다시 맞이했다.

“아네모네!”

소환된 아네모네는 아래쪽으로 보이는 고깃덩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도 사고쳤구나’ 하는 눈빛.

【타.】

그래도 태워는 줄게.

도진은 아네모네를 타고 설원을 질주했다.

원래라면 보스인 고깃덩이 할멈과 추격전을 벌이며 주파해야 했을 구간.

카린 덕에 최대의 난관이었어야 할 단계를 아무런 방해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아까 이쯤에서 발견했는데.’

원판의 절반을 발견했던 지점까지 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 도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멀쩡하던 산이 뭉개질 정도로 지형변화가 일어난 장소다. 오브젝트가 제 위치에 있을 리가 없지.’

더 찾아보는 수밖에.

도진은 「원시」를 적극 활용해 가며 더 먼 곳까지 나아갔다.

그러다 기둥을 발견했다.

비스듬하게 땅에 박혀 있는 기둥.

“아네모네, 저쪽으로!”

기둥을 중심으로 도진은 주변을 수색했다.

그러다 발견했다.

제단의 일부였을 것만 같은 아주 커다랗고 평평한 원형 구조물을.

‘성물이 반응한다.’

그곳으로 다가가자 성물이 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도진은 제단 위에 서서 성물을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아니군.

빠르게 포기한 도진은 이번에는 퀘스트 아이템 ‘별빛 영혼 주괴’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역시.”

안 풀리면 일단 퀘템부터 비비고 봐야 하는 게 게임이다.

별빛 영혼 주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아-!】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환희를 뱉는 소리가 주괴 안에서 흘러나왔다.

【별이시여… 저희가, 저희가 당신께 돌아왔나이다……!】

성물에서 흘러나오던 푸른빛이 딱 멈췄다.

[오랜 세월 내리지 않았던 별의 시선이 세계를 향합니다.]

대신 하늘에서 파아란 빛 한 줄기가 내려왔다.

빛은 안타깝게 흔들렸다.

도우미를 자처했던 그 빛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푸른빛에서는 감정이 전달됐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정말 궁금하긴 한데,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에요. 밑에서 당신들 신전에서 난리가 났다고요.”

주괴 안에 갇힌 영혼님들이든,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별님이든 빨리 어떻게든 해 보라는 의미로 한 말.

그러자 푸른빛이 일렁였다. 도진은 하늘과 연결된 빛줄기에서 약간의 갈등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에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어떤 결의가 채웠다.

흔들림이 사라진 빛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 산 전체를 감쌌다가 사라졌다.

마법사인 도진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벨라의 힘이랑 라베스의 힘, 전부 사라졌어.’

힘의 균형이고 뭐고, 방금 그 파장으로 모든 힘이 일시에 소멸했다.

즉, 이곳은 더 이상 성역이니 뭐니 하는 장소가 아니게 된 것이다.

성역의 힘을 역이용해 자신의 것으로 탈바꿈시키던 보스도 깡통이 됐을 거란 소리.

도진은 별빛 영혼 주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실한 분들께서는 별님이랑 감동적 재회를 즐기시고.

‘난 돌아가야지.’

카린을 놓고 왔거든.

돌아서는 도진에게 별빛이 말했다.

【할 일을 마치면 돌아오세요. 기다릴 테니. 당신께는 보답을 해야 하니까요.】

퀘스트의 끝이 보인다.

정말 별님이 주시는 보상은 무엇일지 궁금해서라도 멀쩡히 살아서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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