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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63화 (16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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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밝으면 주변 몬스터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옅은 「빛」을 만들기는 했지만, 불안하진 않았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언젠가는 발견할 것이다.

‘못해도 일주일 안에는 발견하겠지.’

여유롭게 생각하자.

이 자리는 안전하니, 일주일 정도 콕 박혀서 버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밤마다 저 멀리 하늘에 뜬 부유대륙과 검게 물든 밤바다를 보며 불빛을 쏘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지 않나.

‘더럽게 춥긴 하지만.’

이럴 거면 통신 가능한 뭐라도 받아 올 걸 그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저 멀리 작은 점 하나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적야」 덕에 어둠은 제약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원시」를 사용하면 먼 거리가 주는 제약도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다.

‘설마 벌써 본 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는 점은 생각을 길게 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카린인가? 하고 생각하니, 눈앞에 나타나 버렸다.

“도진 님!”

숨은 쉬지 않기에 흐트러짐이 없다.

언제나 창백한 피부는 상기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저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있구나 싶은 얼굴 하나면 충분했다.

카린이 느끼는 감정이 전달되기에는 말이다.

“카린.”

활짝 웃는 카린을 향해 도진도 웃어 보였다.

꾸미지 않은 웃음이었다.

자신을 보고 저렇게 웃고, 저렇게 반가워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했고.

“신호를 보내도 발견하는 데 며칠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 원래 책을 읽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멍하니 있었으니까요. 이젠 그 시간에 항상 이쪽을 보고 있답니다!”

순간 도진은 가슴이 저릿했다.

뭔가 집에 혼자 기다리는 강아지를 방치한 주인이 된 거 같은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올게.”

“정말요?”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카린은 정말 많이 기뻐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건가요? 얼마나 머무실 예정이세요? 설마 바로 가셔야 하는 건……?”

질문의 말미에 불안함을 내비치는 카린.

도진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당분간은 있을 거야. 부유대륙을 좀 둘러봐야 하거든.”

카린이 다시 활짝 웃었다.

“그 전에 일단 대공님한테 허락부터 받아야겠지만.”

부유대륙은 대공의 영역.

거꾸로 선 아래쪽이 아닌 지상을 다닐 때도 그의 허락은 필수였다.

‘말없이 돌아다닌다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지.’

카린이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아버님은 바로 허락해 주실 거랍니다!”

“그럼 바로 가자.”

카린이 도진을 잡고 날아올랐다.

무시무시한 속도감이 덮쳐온다.

도진을 배려해 적당히 조절한 속도였음에도 부유대륙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린은 부유대륙 아래로 날았다.

대륙 아래에 거꾸로 붙어 있는 공국으로 가기 위해서.

서서히 공국에 가까워지자 중력이 반전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중력이 완전히 뒤집혔다.

거꾸로 선 세계, 그림자 공국이었다.

“아버님! 손님이 오셨-”

도진을 매달고 밝게 외치던 카린은 당황했다.

검은 안개가 휙 하고 도진을 덮치더니, 손이 휑해진 탓이었다.

“아앗! 아버님!”

도진을 대공에게 빼앗긴 카린은 당황스러움에 날개를 파닥거렸다.

* * *

눈을 뜨니 대공의 서재였다.

“…….”

대마법사님께선 납치도 참 남다른 방법으로 하신다.

“왔군.”

티룬드 대공의 눈이 도진을 훑었다.

“빠르군.”

급격히 성장한 도진을 확인한 대공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특히 전에는 어설펐던 「적야」에 완벽히 적응한 게 보여 놀라웠다.

하지만 대공의 반응은 그게 다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공.”

“내가 느끼기엔 어제 사라진 자가 오늘 나타난 것과 같지만, 그 아이는 널 기다리는 게 꽤 어려워 보였다.”

“…….”

이거 참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호감도 하락 메시지는 뜨지 않으니 미움 받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찔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죄송…….”

할 말 없으면 일단 사과부터, 라고 생각하며 입을 떼는데 대공이 픽 웃음을 흘렸다.

“사과할 거 없다. 우리처럼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에게 그런 기다림은 일종의 축복에 가까운 거겠지.”

대공의 시선이 잠깐 옆을 향했다.

“조금 더 붙잡아두었다가는 원망을 사겠어. 네가 부유대륙에서 뭘 하든 전부 허락하겠다. 그러니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올리는 대공.

스멀스멀 피어난 검은 연기가 도진을 덮쳤다.

입을 열어 볼 새도 없이 다시 강제로 이동된 도진은 카린 앞에 던져졌다.

“앗!”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 복도를 날아가던 카린은 뚝 하고 떨어지는 도진을 보고는 냅다 낚아챘다.

“되찾았어요!”

“…내가 물건이냐.”

휙 가져갔다가 휙 돌려놓고.

못된 흡혈귀 놈들……!

이리저리 휘둘려서 그런지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며 도진은 이를 갈았다.

* * *

도진은 바로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오매불망 자신이 오기만 기다린 카린 앞에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하기에는 양심이 너무 찔렸다.

“오오오!”

해서, 도진은 먼저 뇌물부터 투척했다.

제국 대도시에서 구한 책들을 잔뜩 인벤토리에서 쏟아 낸 것이다.

최대한 최근에 출판된 것들 위주로 고른 책들을 본 카린의 눈은 맹렬하게 반짝였다.

“새로운 책도 좋지만, 전 도진 님 이야기가 더 궁금해요! 그동안 중앙대륙에서 어떤 모험을 하셨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런 뒤에는 그간 있었던 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도진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당히 각색하고 다듬어서 이야기해 줬다.

도전의 탑과 세 정령.

중년 드워프와 함께했던 모험.

사람들과 함께 끔찍하고 커다란 아기를 상대로 싸운 일.

하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카린은 감탄하고 울먹이고 기뻐하며 좋아했다.

특히 카린은 죽은 채로 숲을 떠돌던 소녀 이야기에 매우 관심을 보였다.

“어, 어떻게 됐나요? 어쩌죠?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한 결말이 떠오르지 않아요……! 가면 소녀님도, 늑대님도, 사슴님도 다 너무 안타까운데…….”

조마조마한 눈으로 결말을 기다리는 카린.

도진은 안타까운 눈으로 말했다.

“눈을 떴더니 파수꾼은 없었어. 완전히 소멸해 버린 거야. 늑대 정령이랑 사슴 정령도 죽어가고 있었고.”

“안 돼!”

카린이 안타까워하며 바닥을 콩 쳤다.

그러자 쿵 하고 바닥이 울렸다.

대공의 마법으로 지어진 성이라 망정이지 일반적인 성이었으면 이거 100퍼센트 바닥에 구멍이 뚫렸을 거다.

“기분 참 거지 같더라. 두 정령도 죽고, 혼자 남게 된 나는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어. 날 살리고 소멸한 파수꾼이랑 그 아이랑 같은 처지였던 다른 아이들의 무덤까지.”

카린은 완전히 절망한 사람의 눈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리액션이 너무 좋으니 이야기하는 입장에서 재미가 장난이 아니다.

너무 반응이랑 표정 변화가 역동적이라 더 괴롭히기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러니 놀리는 건 여기까지.

“무덤을 다 만들고 떠나려는 순간 작은 늑대 정령이 태어났어. 숲의 파수꾼, 그 소녀가 정령으로 다시 태어난 거야.”

카린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인가요? 제가 슬퍼할까 봐 지어 내신 건 아니죠?”

“지어 내긴 뭘 지어 내.”

도진이 작게 이야기의 주인공을 불렀다.

잠들어 있던 늑대 정령님께서 깨어나 등장하셨다.

【……?】

반갑게 진부터 찾으려던 아네모네가 움찔했다.

입을 틀어막고 울먹이는 새하얀 여자가 자신을 감격스런 눈으로 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야.’

게다가 불사의 존재는 상성상 정령과 상극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느껴지는 기운이 불길하여 아네모네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면서 이를 드러내려는데.

“앗! 죄송해요! 정령님들은 저희를 싫어하실 텐데!”

카린이 사과하며 호다닥 물러났다.

“아네모네, 전에 말했던 걔야.”

전에 말했던?

아네모네는 도진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새하얗고 불길한 기운을 풍길 만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한정적이었다.

【설마……?】

뱀파이어 엘더 카린 티룬드.

도진과 친분이 있다는 흡혈귀 소녀.

아네모네는 도진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한 번쯤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죽은 채 존재했던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져서.

【카린?】

아네모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카린의 고개가 맹렬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네!”

흡혈귀와 정령.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나 둘은 서로 공통점이 많았다.

전혀 다른 환경이라 해도 ‘불사’와 ‘고립’이라는 걸 겪어 봤기 때문.

【그럼 카린은 인간 피를 안 마셔?】

“네! 엘더는 인간의 피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거든요!”

【그럼 흡혈귀가 아닌 거잖아,】

“마실 수는 있답니다!”

【마시는 건 인간도 할 수 있는데?】

“그거랑은 조금 달라요. 전 인간, 아니 다른 존재의 피를 마시는 걸로 힘을 얻을 수는 있거든요.”

어느새 둘은 도진이 끼어들기 힘들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나눴다.

카린과 아네모네가 서로 좋은 친구가 되길 바랐던 도진으로선 흐뭇한 일이었다.

‘역시 잘 어울리네.’

여러모로 좋은 조합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을 딱 들어맞았다.

흡혈귀와 정령은 서로 궁금한 걸 물어보고 대답하며 급속도로 거리감을 좁혔다.

“그럼 아네모네는 도진 님이랑 완전히 연결된 상태인 거예요?”

【응. 정령과 인간이 나누는, 죽는 순간까지 함께하는 그런 계약이야.】

“부러워요!”

부러워하는 카린을 보며 아네모네가 훗 하고 으쓱였다.

“아쉬워요. 뱀파이어도 그런 낭만적인 계약이 있으면 좋을 텐데.”

【뱀파이어는 어떤데?】

“뱀파이어의 계약은 철저한 주종관계의 성립에 맞춰져 있어요. 위에 선 자가 아래에 선 자의 모든 걸 통제하죠. 완전한 노예가 되는 거예요. 감정마저 통제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답니다.”

【…뭔가 무서워.】

“네. 뱀파이어는 무서운 존재거든요.

카린이 쓰게 웃으며 자조했다.

아네모네가 그런 카린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위로했다.

【하지만 카린은 무섭지 않은걸. 난 정령인데도 카린은 거북하지 않아. 처음에는 불길했어도 지금은 아냐.】

카린이 다시 활짝 웃었다.

“전 무섭지 않은 뱀파이어가 되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하고 있거든요!”

듣고 있던 도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을 연기하던 카린이 떠올라서였다.

그래도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거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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