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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57화 (15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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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많이 먹는 편이 아닌 도진은 금방 배가 찼다.

하지만 식사가 끝난 건 아니었다.

음식은 순차적으로 조리되어 나왔고, 테레사와 소소는 둘이서 천천히 계속해서 먹었다.

먹는 양을 보면 소소 쪽은 맛만 보는 정도고, 테레사 쪽이 소소의 세 배는 먹고 있었다.

‘저렇게 먹고 저 체형이 유지가 된다고?’

식단 관리와 더불어 운동까지 빡세게 하고 있는 도진은 억울함마저 느껴졌다.

먹지 않고 남기는 양이 상당하다고는 하나 높게 잡아도 40킬로그램 초중반을 오갈 체중의 여자치고는 상당한 식사량이었다.

‘역시 모든 건 유전자빨이라니까.’

10분쯤 더 지나니 테레사도 포크 놀리는 속도가 느려졌다.

소소는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였고.

“후아. 오늘도 소소 너 때문에 너무 먹었잖아.”

소소는 대꾸도 안 했다.

테레사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그 부분은 신경도 안 썼고.

다시 봐도 둘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있으니까 상수 생각난다. 그지, 소소야?”

“아니,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네가 말 안 했으면 내일쯤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을 예정이었을 정도로.”

“입가에 썩소나 지우고 말하시죠, 소소 씨. 아주 또 상수 머리 빡빡이 된 거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시죠?”

“웃기긴 했잖아.”

테레사는 ‘웃기긴 했지’ 하고 자신도 웃으며 도진에게 물었다.

“도진아, 너도 기억하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있던 애. 상수 말야.”

“기억하지.”

시종일관 지쳐서 죽을 거 같다는 표정으로 구르고 구르던 검사.

풀네임이 곽상수였던가?

“걔 지금 군대 갔거든. 소소가 이렇게 말해도 나랑 같이 걔 입대할 때 훈련소도 따라가고, 면회도 갔다 왔어.”

그건 아마 빡빡이 친구가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순간에 지을 표정을 실제로 눈에 담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도진은 소소의 입가에 자리 잡은 비틀린 미소를 보고 그렇게 추측했고, 그 추측은 정확히 진실에 닿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도진이 너도 곧 군대 가겠…….”

생각 없이 말하던 테레사는 헉- 하고 말을 흐렸다.

‘아오, 이놈의 입!’

테레사는 눈치 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했다.

“미안. 이런 얘기 할 필요 없는 자리에서.”

친구가 군대 갈 때야 농담 삼아 놀려먹곤 했지만, 도진은 스케일이 다른 사람이었다.

1년에 버는 돈이 얼만데, 군대에서 빼앗기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게 다 얼마일지 감도 안 잡힌다.

군입대를 최대한 미루고 미룬다는 선택지가 있긴 하겠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도진에게 스트레스일 테고.

그런 주제를 왜 이런 좋은 자리에서 꺼냈을까. 테레사는 눈치라고는 밥 말아먹은 자신이 오늘따라 더 미웠다.

“나? 난 군대 안 가는데. 그러니까 신경 쓸 거 없어.”

비 맞은 강아지처럼 눈매를 축 늘어뜨리고 미안해하던 테레사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검은 머리 외국인 만세!’

테레사는 도진의 면제 사유가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 확신했다.

“아직은 고아는 면제되거든. 이제 곧 천애고아도 끌고 간다 만다 말은 나오는데… 난 이미 면제 확정이라.”

하지만 아니었다.

방금 밝아졌던 테레사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죽어 버렸다.

“…….”

여기서 미안하다고 하면 더 이상하겠지.

죽고 싶다.

이게 현재 테레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지 마. 그러는 게 더 신경 쓰여. 난 아무렇지 않은데 상대가 심각해지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그래서 원래 이런 말을 잘 안 한다.

그런데 무심코 해 버렸다.

왜일까. 모르겠다. 어쩌면 길게 갈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혹은 그랬으면 싶어서 자기 얘길 꺼낸 걸지도.

잠깐 대화가 중단됐다. 어색한 침묵이어서, 테레사는 이걸 깨고 싶어 안달 난 게 보일 정도로 눈을 굴려 댔다.

그때 한 줄기 구원과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소소의 스마트폰이 울린 것이다. 소소가 전화를 받았다.

“어.”

[“소소 너 지금 어디야.”]

상대방 목소리는 다른 둘에게도 들렸다.

통화 상대는 주강희였다.

“왜?”

[“잠깐 회사로 들어오라고.”]

소소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엄마야?”

[“…일단 들어와.”]

“지금 통화 듣고 있는 건 아니지?”

[“이모가 그럴 분이야? 시끄럽고. 그냥 일 때문에 오셨다가 네 얼굴도 한번 보시려는 거니까 그냥 들어와.”]

“놀고 있는 거 아닌지 감찰 나온 거 같은데.”

이 대목에서 테레사가 입을 뻐끔거렸다.

‘놀고 있는 거 맞아요!’ 하고.

도진은 그걸 보고 풉 하고 웃었다.

“레사도 데리고 갈래.”

켁켁. 음료수를 홀짝이던 테레사가 기침을 했다.

저게 어디서 나를 방패로 쓰려고……!

[“레사는 바쁠 거 아냐.”]

“안 바빠. 지금 나랑 회사 앞에 있는 식당에서 밥 먹고 있어.”

[“그럼 레사 데리고 들어와.”]

테레사가 소소 스마트폰에 얼굴을 가져다 대며 다급히 말했다.

“언니, 언니! 저 바빠요! 그리고 다른 친구도 같이 있단 말이에요!”

[“…다른 친구? 레사 너는 몰라도 소소는 다른 친구 없잖아.”]

“그렇긴 한데… 아니, 이게 아니지. 도진이랑 같이 밥 먹으러 나온 거예요.”

[“도진이? 설마 도진 씨 말하는 거니?”]

스마트폰 너머 주강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요즘 같이 파티 플레이를 했다는 소식이야 보고를 통해 듣긴 했다.

하지만 레사면 몰라도 소소가 겨우 그 정도로 타인이랑 밥까지 같이 먹을 정도로 친해질 리가…….

김소소의 처참한 사회성을 익히 알고 있는 주강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으나 재빠르게 수습했다.

‘어찌 됐든 잘된 일이야.’

레사는 소소랑 한 묶음이고.

소소는 라엘이랑 한 묶음.

그런 둘이 도진과 친해졌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이쪽에서 오래 걸리진 않을 텐데. 도진 씨만 괜찮으면 같이 들를래? 정 안 되면 잠깐 근처 카페에서 놀고 있어. 금방 끝내고 소소 보내줄게.”]

테레사가 도진 눈치를 살폈다.

도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차피 특별히 뭘 하려고 만난 것도 아니었고, 지현이 누나도 회사에 있을 테고.

도진이 승낙하자 테레사가 소소 대신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그럼 지금 소소 데리고 갈게요.”

세 명은 라엘 엔터테인먼트 건물로 향했다.

* * *

따로 안내 직원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소소가 직원이긴 하지.

전용 엘리베이터로 조용히 올라가자 주강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도진 씨.”

상황이 상황인지라 도진은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네, 오랜만이네요.”

소소는 뚱한 표정으로 입을 내밀고 있고, 테레사는 반갑게 웃으며 주강희에게 인사했다.

“언니!”

“레사도 오랜만이네. 소소 케어하느라 힘들지?”

“익숙해서 괜찮아요.”

“매니저는 난데.”

침묵하던 소소가 불만스레 한마디 했으나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주강희가 실장실 방향을 가리켰다.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도진아, 잠깐 기다려. 난 인사만 드리고 나올게.”

“어.”

세 사람은 함께 실장실로 들어갔다.

주강희의 비서가 준 음료를 홀짝이며 5분쯤 시간을 보내니 실장실 문이 열리고 테레사가 나왔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밖으로 나와 문틈으로 고개를 쏙 집어넣고 하는 말.

“그래, 레사야, 나중에 또 보자. 소소 데리고 집에도 좀 놀러 오고.”

“넵!”

완전히 문이 닫힌 뒤 테레사는 도진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오래 기다렸지? 소소 얘기 끝날 때까지 카페라도 가 있을까?”

“그러지 뭐. 잘 마셨습니다.”

도진은 마시던 음료잔을 돌려주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음료를 식당에서도, 여기서도 마셨지만… 원래 카페란 곳은 뭘 마시러 가는 데가 아니니.

장소를 1층 사내 카페로 옮긴 도진과 테레사는 의미 없는 잡담을 이어 갔다.

대화 주제는 당연히 게임이었고, 서로 함께 겪은 일이 꽤 돼서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저기 팀장님, 저기 저 사람…….”

그런 둘을, 카페에 들어선 한 여자가 발견했다.

최근 라엘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해 소속 회사를 옮긴 스트리머 ‘크아앙’이었다.

콘텐츠 팀장 오영식과 미팅이 있어서 왔다가 도진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

크아앙의 손짓에 도진을 발견한 오영식의 표정이 무너졌다.

이유는 크아앙이 회사를 옮긴 후부터 ‘도진, 도진, 도진.’ 하고 노래를 불렀던 탓이었다.

합방하게 소개 좀 해 달라, 얘기만이라도 좀 해 봐라, 부탁 좀 드려 보면 안 되냐 등등.

크아앙은 기회만 있으면 졸라 댔고, 그때마다 오영식은 진땀을 흘려야 했었다.

‘왜 하필 나랑 있을 때……!’

크아앙이 ‘도진, 도진.’ 노래를 부르는 상대가 자신만 있는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왜 오늘 여기서 이딴 식으로 마주치게 된 건지.

오영식은 세상 모든 게 자신을 억까 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저기 크아앙 님, 계속 말씀드렸지만 도진 님은 워낙 혼자 플레이하시는 걸 좋아하셔서요.”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해도 되잖아요. 팬으로서도 그렇고, 같은 소속사이기까지 한데.”

오영식에게는 크아앙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인사도 하지 말라고 뜯어말릴 명분이 어디 있겠나.

문제는 크아앙이 거기까지만 하진 않을 거라는 거지.

‘하아. 그래, 차라리 개인적으로 질렀다가 차이는 게 낫지.’

회사 차원에서 도진에게 제안을 하는 것과 스트리머 개인이 합방 제안을 하는 건 느낌이 확 다르니까.

“그럼 저는 음료 주문해 놓겠습니다.”

오영식은 말리는 걸 포기했다.

크아앙은 조심조심 도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정작 직접 인사하고 말을 꺼내려니 긴장이 됐지만, 힘을 냈다.

“저기… 안녕하세요.”

서로 대화를 나누던 도진과 테레사의 시선이 크아앙을 향했다.

약간의 당황과 상당량의 궁금증이 담긴 눈빛.

크아앙은 최대한 밝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도진 님이랑 테레사 님이시죠? 이번에 올라온 영상 너무 잘 봤어요. LOST 게임 방송하고 있는 스트리머 크아앙이라고 해요. 저도 이번에 라엘 엔터로 옮겼거든요. 그래서 인사나 드리려고…….”

“아……!”

테레사가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테레사예요! 본명도 태레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아… 넵!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도진도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도 크아앙 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몇 번을 탈색한 건지 묻고 싶을 만큼 창백한 백금발이 인상적인 크아앙은 도진도 아는 방송인이었다.

전생에,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시절 몇 번인가 영상으로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딱히 찾아보지 않아 어떻게 됐는지 아는 바가 없지만.

겨우 영상 몇 번 본 걸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녀가 마법사라는 것과… 그녀의 게임 실력이 정말 처참할 정도였다는 것.

‘처음 봤던 영상이 아마…….’

달려드는 몬스터에 겁먹고 허우적대다가 캐스팅하던 마법이 터져서 폭사하는 거였지.

도진은 그런 크아앙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겠다며 온 이유가 궁금했다.

순수하게 인사만 할 거였으면 저렇게 우물쭈물하진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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