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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56화 (15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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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모루> 공략 이후 도진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인간관계의 확장이었다.

[테레사: 오늘 1시 회사 앞에서 보는 거 잊으면 안 된다?]

테레사는 이제 도진을 편하게 대하게 됐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도진과 테레사는 가라앉는 강철섬을 뒤로하고 귀환을 위한 항해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사흘을 바다에서 표류해야 했다.

이미 만난 이후로 함께한 고생도 고생이지만,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바다 위에서 단둘이 사흘을 떠 있으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나가기 귀찮은데.’

오늘 오후 1시로 잡힌 약속도 테레사가 잡은 거였다.

던전 공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을 기념해서 자신이 한턱 쏜다며 불러낸 것이다.

‘귀찮아.’

도진은 귀찮았다.

마음 같아서는 거절도 하고 싶었고.

그러나 하지 못했다.

아무리 도진이라 해도 사흘 밤낮을 함께 표류한 사람이 한껏 들떠서 하는 식사 초대를 단칼에 거절할 정도로 단호하진 못했다.

“누나, 나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을게.”

도진은 막 출근한 천지현에게 말했다.

그러자 천지현이 깜짝 놀란다.

“밖?”

그러더니 매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도진아, 아무리 가상현실이 익숙해도 거긴 밖이 아니야. 물론 거기도 야외가 있고 그렇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상현실이거든……? 그러니까…….”

“…….”

도진은 착잡한 심정으로 천지현의 오해를 풀어야 했다.

자신이 오늘 나가는 곳은 캡슐 안에 펼쳐진 밖이 아니라 제대로 현관문을 걸어 나가면 나오는 밖이라고.

* * *

도진은 택시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천지현은 용납하지 않았다.

“나 회사에 있을 거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집에 갈 때는 무조건 연락하고.”

지하 주차장에 도진을 내려 준 천지현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무슨 어린 아들 유치원 보내는 엄마 같은 모습이었다.

“어.”

대충 대답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띵.

목적지는 5층이었으나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섰다.

사람이 타려나 보다 하고 한 걸음 물러서는 도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집으로 유명하대.”

문틈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테레사와 소소였다.

갑옷과 사제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그녀들의 모습은 생소하면서 신기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진짜 현실이긴 하구나 하는 느낌.

서로 마주 보고 얘기하던 테레사와 소소가 엘리베이터를 타며 도진을 봤다.

두 사람 모두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바로 도진을 알아보진 못했다.

소소 쪽은 아예 관심 자체를 두질 않았다.

다만 테레사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도진을 몰래 살폈다.

그러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 이미 5층 버튼에 불이 들어온 걸 보고는 다시 도진 쪽을 바라봤다.

“저기 혹시…….”

이에 도진이 모자와 마스크를 동시에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맞아요.”

“아!”

테레사가 소소의 어깨를 탁탁탁 쳤다.

“소소야, 도진이야, 도진이.”

“어. 나도 봤어.”

소소가 도진 쪽을 슥 보며 눈인사를 했다.

그게 끝이었다.

가상현실에서나 여기서나 소소는 소소였다.

‘오히려 포스는 이쪽이 더 센 거 같기도 하고.’

부티라고 해야 할지 귀티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게 아우라처럼 느껴진다.

그에 반해 테레사 쪽은…….

“저쪽에서 볼 때랑 다를 게 없네요.”

이쪽도 똑같았다.

반가운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밝고 명랑한 모습.

그런 와중에 보이는 어색함의 편린은 가상현실에서만 보던 사람을 현실에서 만난 것에 대한 어색함일 것이다.

“도진 씨… 아니, 도진이 너도 똑같네.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띵.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소소가 휙 내렸다.

무심해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들뜬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휴. 새로 오픈한 가게라고 저러는 거야.”

소소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카페와 레스토랑을 섞어 놓은 듯한 분위기의 가게였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오늘은 내가 쏜다!”

도진은 양갈비 스테이크를 골랐다.

테레사는 고르지 않았다.

소소가 혼자서 무려 8개의 메뉴를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얜 궁금하면 일단 시키거든. 덕분에 옆에서 나만 살이 찐다니까.”

고개 저으며 한숨을 내쉬는 테레사.

하지만 정작 그리 말하는 테레사는 가상현실에서나 여기에서나 뚱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류하자면 엄청 마른 편이지.

“뭔가 신기하네.”

도진이 먼저 나온 음료 잔을 쥐며 말했다.

“뭐가?”

“게임에서 만난 사람을 실제로 보니까. 이런 적은 처음이거든.”

“솔직히 나도 그래.”

찰칵, 찰칵, 찰칵.

대화 중간에 소소의 사진 찍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매우 집중한 얼굴이 나름 재미가 있었다.

“탄토 씨도 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일본 사람이잖아.”

“그래도. 탄토 씨 아니었으면 우리 던전 공략 못 했을 거잖아.”

테레사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실제로 그녀는 탄토에게 비행기표를 보낼 테니 올 수 없겠냐고 묻기까지 했다.

“덕분에 깼지. 거기서 시간이 끌렸으면 보스 얼굴도 못 봤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도 위기 상황이긴 했다.

길은 막혔지. 뒤에서 몬스터는 몰려오지. 물은 차오르지.

탄토가 길을 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티가 시간 낭비를 할 수 없게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전멸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도 잘하긴 했어. 그 상황에서도 보스를 꾸역꾸역 잡았잖아. 탄토 씨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진짜 열심히 싸웠거든. 덕분에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게 돼서 너무 좋다.”

테레사의 표정은 싱글벙글 그 자체였다.

신나서 날아가 버릴 거 같은 얼굴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의 기분이 지금 딱 그랬다.

숨겨진 던전을 최초로 발견해서 최초 클리어를 달성해도 S급 아이템은 1개가 보통이고 2개면 대박을 쳤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신의 모루>는 무려 4개의 S급 아이템을 전리품으로 줬다. 지금 당장은 착용도 못 할 140레벨 장비로 말이다.

파티원 한 명당 1개의 S급 아이템을 분배받았으니, 성공적이다 못해 초대박을 친 던전 공략이었다.

“탄토 씨 걱정은 할 거 없어. 탄토 씨한테 내 몫까지 줬거든.”

“뭐?”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거 같아서.”

도진은 탄토에게 자기 몫으로 분배된 전리품을 전부 넘겼다.

그는 받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강제로 떠넘겼다.

그러지 않으면 투명한 벽 너머에서 스스로 독단을 삼키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릴 거 같았다.

‘난 새로운 히든 퀘스트를 얻은 걸로 충분해.’

결과적으로 도진은 돈으로도 못 구할 히든 퀘스트의 실마리를 손에 넣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그럴 거면 나한테도 얘기해 주지! 그걸 왜 도진이 네가 다 부담해? 탄토 씨 덕에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던 건 파티 전체인데.”

테레사가 인상을 쓰며 화를 냈다.

도진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당황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내가 모은 파티니까. 책임도 내가 져야지. 탄토 씨는 특히 내가 용병으로 부른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테레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입을 삐죽였다.

그러는 사이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갈비 스테이크를 비롯해 소소가 시킨 메뉴들이 테이블을 채웠다.

음식은 맛있었다.

그런데 조금 거슬리는 게 있었다.

조금 떨어진 옆 테이블 남자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계속 눈에 밟혔다.

도진은 해맑게 웃으며 이런저런 말을 하는 테레사와 그걸 무표정하게 받아 주는 소소를 보며 생각했다.

‘예쁜 여자들은 진짜 많이 피곤하구나.’

남자들은 이제 아주 대놓고 힐끔거렸다.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그때 남자 중 하나가 일어서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걸 곁눈질로 살핀 도진은 경악했다.

‘설마…….’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에 이어지는 대사를 현실에서 들을 수 있는 건가?

여자가 하는 건 들어 본 적이 있긴 했다.

고등학생 시절 옆 학교 누나한테 붙잡혀서 번호를 뜯긴 전적이 있어서.

“저기…….”

남자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테레사와 소소도 그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쯤 되니 도진은 기대가 됐다. 둘 중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고.

“식사하시는 데 정말 죄송해요. 그래도 너무 궁금해서… 혹시 도진 님 아니세요?”

“예?”

도진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여기서 왜 내 이름이 나와?

“너무 팬이거든요. 저랑 제 친구들 다요. 꼭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괜찮으시면 드시고 싶은 거…….”

하며 테이블을 본 남자는 입을 잠시 다물었다.

셋이 먹기엔 과하게 많은 양의 메뉴가 이미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쨌든 정말 팬입니다. 그리고 저는 특히 마법사거든요. 도진 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어요! 이번 영상도 엄청 잘 봤습니다!”

남자는 횡설수설하며 냅킨을 내밀었다.

“그리고 괜찮으시면 사인 좀…….”

냅킨에 사인이라니. 하긴 요즘 세상에 필기할 종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도진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군말 없이 사인을 해 줬다.

물론 정자로 이름을 쓰는, 사인보다는 서명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감사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식사 맛있게 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일행에게 돌아갔다.

“…….”

도진은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겨우 한 명이긴 했지만, 천지현이 왜 모자에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했는지 이해가 갔다.

“…나도 사인할 줄 아는데. 연습도 했는데.”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테레사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니 더 웃음이 나왔다.

도진은 당황을 털어 내고 다시 음식을 먹으며 생각했다.

‘많이 달라지긴 했어.’

새삼 달라진 삶을 곱씹을 때마다 도진은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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