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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을 꼽자면, 그건 아마 로트라넷 마법사 게시판일 것이다.
특히 도진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는 때면 마법사 게시판은 올라오는 글의 절반 이상이 도진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제목: 내가 그 새끼 우리한테 도움 1도 안 된다고 그랬지?]
[이번 영상 처음 나온 네임드는 전형적인 메이지 킬러형 몬스터였다. 이건 다 인정하지?
근데 그 새끼는 ‘마법사랑 상성이 좋다’ 이 지랄을 했어.
그 탓에 또 다른 직업 게시판에서 마법사 사기다 소리 나오고 있고.
영상에 나온 공략대로 잡으려면 적어도 마법사가 3~4명은 필요할 거고, 그걸 모르지도 않을 놈이 그딴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요약: 진은 혼자서 3~4인분 이상을 해내는 개쩌는 마법사다. 그리고 나는 병신이다.
└요약추
-뭐래 병신이
-왜 이 새낀 혼자 풀발기함? 아무도 너나 평범한 마법사한테 저런 거 안 시킴 ㅋㅋ
[제목: 이쯤 되면 진이 히든 클래스 보유한 건 기정사실이라고 봐야겠네]
[분석 좀 해 본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단순히 기본 마법사 클래스만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은 예전에 넘은 듯.
마법사 상위 클래스를 가졌든 히든 마법을 얻었든, 일단 뭐가 됐든 그냥 마법사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임.]
-이거 모르는 분?
-이런 분석은 이미 옛날 옛적에 법게에서 다 결론 난 거임. 아무도 도진이 평범한 마법사라고 생각 안 한다.
-지금까지 진이 공략 영상 올린 것들만 합쳐도 히든 피스 얻을 만한 게 몇 개였는지는 세 봤냐? 이미 다 알고 있는 걸 자기 혼자 알고 있는 거처럼 떠들고 있어 ㅋㅋ
[제목: 이번에 올라온 전투 중에 난 마지막 게 제일 좋더라]
[첫 번째 네임드는 기믹 파악 바로 해 버리는 뇌지컬에 그 기믹 혼자 박살 내는 피지컬 보는 맛이 있었고.
두 번째 네임드는 욕으로 어그로 끄는 탱커 보느라 웃겼는데.
마지막 네임드는 던전 침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숨도 못 쉬고 봤다, 진짜로.
보스방 가는 과정부터 뭔가 밀도가 꽉 찬 느낌이었음.
중간에 탄토 게임 오버되니까 진 표정 확 변하는 데서 일단 한 발 쌌고, 보스랑 대치하고 담배 태우는 씬에서 두 발째 쌌고, 보스전 시작되고 나서는 끝날 때까지 계속 쌌다.]
-이 새낀 시발 뭘 이렇게 싸 대냐?
-글이 지저분하긴 한데 싼 타이밍 보니까 멋잘알 ㅇㅈ
└맛잘알은 무슨 맛잘알이야; 지저분하게
└멋, 이 새꺄, 멋. 뭘 생각했길래 맛이 나와
-진짜 마지막 전투는 역대급이긴 했음. 보스 패턴은 정신없이 몰아치는데, 시간은 촉박하고, 그래서인지 도진이 몸 안 사리고 사생결단 낼 기세로 몰아쳐서 속도감이 미쳤어.
-그런데 보스 죽이고 다음에는 어떻게 됐을까? 영상 딱 거기서 끝났잖아. 탈출을 못 해서 끊은 건지… 보상 정보 감추려고 끊은 건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도진의 영상을 즐기고 분석하고 곱씹고 있었다.
* * *
모두가 궁금해하는, 영상에 담기지 않은 시간.
“우웨엑……!”
영상에 담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보여 주기에는 좀 그래서’였다.
멋들어지게 싸운 뒤 몰려온 후폭풍에 토악질을 하는 장면을 넣기는 좀 그렇잖은가.
핏물을 한 바가지 쏟아낸 도진은 가슴을 움켜쥐며 괴로움을 견뎌 냈다.
‘젠장… 진짜 내장까지 다 토할 거 같은 기분이야.’
이미 하루치 「한정회귀」를 쓴 도진은 너덜너덜해진 몸 상태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그나마 도진은 멀쩡한 편이었다. 망가지긴 했어도 죽음은 면했으니.
소소는 ‘영원의 대장장이 켈루온’의 지속적인 광역 패턴 중 하나에 휩쓸려 사망했다.
저기 구석에 처박혀서 경련하고 있는 테레사는 오른팔이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 지가 무슨 토르야 뭐야.’
도진은 방금 전까지 벌인 사투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대장장이 켈루온은 이름답지 않게 번개를 다루는 놈이었다.
보스전을 앞두고 던전에 물이 차기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
켈루온이 번개가 요동치는 망치를 내려칠 때마다 물바다가 아니라 전기 바다가 되어 버리는 끔찍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었다.
또, 켈루온이 전기 폭풍을 몰아칠 때마다 보스방에 들어찬 물이 일시에 증발하면서 엄청난 증기가 발생했고, 놈은 자욱한 물안개에 숨어 위협적인 공격을 일삼았다.
‘정말 이 눈이 없었으면 나도 갈 뻔했어.’
마나를 볼 수 있는 마안 덕에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아 내야 하는 안개 패턴 때도 맞딜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누나… 괜찮아요?”
“소소보다는요…….”
테레사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도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전기 구이가 돼서 까맣게 타 버린 사람보다 나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쨌든… 우린 산 거 같네요. 물 들어오는 소리도 멈춘 걸 보니.”
보스 켈루온을 죽이고,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뜬 뒤로 침수는 멈췄다.
‘최소한 물귀신은 안 돼서 다행이네.’
도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죽은 켈루온은 포스에 걸맞게 4개나 되는 S급 장비를 남겼다.
중간에 뭘 빼먹었는지 몰라도 퍼펙트 클리어는 놓쳤으니,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가 되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도진은 왠지 이게 끝이 아닐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진은 켈루온이 최초에 앉아 있던 곳까지 비틀대며 걸어갔다.
‘역시……!’
대놓고 수상해 보이는 게 있었다.
커다란 모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투명한 항아리와 그 안에 담긴 푸른 빛 덩어리들.
도진은 가까이 다가가 항아리를 살폈다.
【자네.】
그런데 갑자기 빛 덩어리 하나에 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더니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이런 미친!’
도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지치고 망가진 몸뚱이 탓에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상 올릴 땐 여긴 편집이다.’
몸만 멀쩡했어도.
속으로 투덜거리는 도진에게 항아리 속 노인이 말했다.
【미안하군. 놀라게 한 모양이야. 하긴 이런 꼴을 보면 놀랄 만도 하지.】
적대적인 존재는 아닌 거 같고.
이런 곳에서 이런 대화는… 십중팔구 다른 히든 피스로 이어지는 대화다.
“저 대장장이가 이렇게 만든 건가요?”
켈루온의 시체를 가리키며 묻자 노인이 긍정했다.
【그렇지. 저놈은 우릴 사용해서 어떤 물건을 만들려고 했거든.】
혼령을 재료로 무언가를 만든다. 흔한 일이라 놀라울 것도 없었다.
“혼자가 아니군요.”
다른 빛 덩어리도 하나둘 얼굴이 나타났다.
어떤 이는 여자고, 어떤 이는 남자, 또 어떤 것들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돌아보며, 노인이 말했다.
【그들은 흔적만 남은 이들이라네. 나처럼 아직까지 자아를 유지한 자들은 이 안에 없어.】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도진은 정중히 물었다. 혹시 줄 퀘스트 있냐고.
【이미 자네는 우릴 구한 셈이야. 세상을 멸하는 데 일조할 물건으로 바뀌기 직전 그걸 막아 주었으니.】
설마.
‘이제는 안심하고 성불할 수 있겠어, 허허’ 하고 증발하는 엔딩은 아니겠지.
다행히 그것은 기우였다.
【그래도… 자네가 내 염치없는 부탁 하나를 더 들어줄 수 있다면,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
왔다. 퀘스트다.
“말씀하세요.”
【이 항아리 바닥에는 켈루온이 우리를 재료로 만든 물건이 있다네. 사실상 그것이 우리의 유해라 할 수 있지. 그걸 우리의 성역에 가져다줄 수 있겠나?】
“성역이라고요? 그게 어디죠?”
【…별을 향해 기도를 올리던 그곳으로. 창조의 별과 가장 가까운 그곳으로 우리를…….】
지지직 하고 노인의 형상이 일그러졌다.
여기까지가 주어지는 정보의 전부인 모양이었다.
[퀘스트]
별과 닿는 곳
등급: 히든
[대장장이 켈루온에 의해 재료로 희생된 자들의 유해를 그들의 성역으로 인도하자.]
목표: 성역 발견 및 유해 운반 완료
보상: ???
LOST에서 별 하면 벨라와 라베스. 창소와 멸망을 주관하는 별을 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벨라 교단부터 떠올리는 게 맞겠지만…….
‘딱 봐도 현재의 벨라 교단이랑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단 말이지.’
현재의 벨라 교단은 인간의 종교다.
언제 멸망했는지 모를 거인들의 창세성 신앙과는 아예 뿌리도 겹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왠지 이들의 성역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창조의 별과 가장 가까운 곳.’
옛 문명, 옛 종교의 은유는 다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다.
‘틀리면 뭐 어쩔 수 없고.’
도진이 새로이 얻은 히든 퀘스트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항아리 속 빛 덩어리는 서서히 증발해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창조의 별과 가장 가까운 곳’을 계속 반복해 말하던 노인의 얼굴도 사라졌다.
마침내 투명했던 항아리마저 연기로 흩어지고 남은 건 도진의 몸통만 한 크기의 직사각형 금속이었다.
[히든 퀘스트 아이템 ‘별빛 영혼 주괴’를 획득했습니다.]
오브젝트가 아니라 아이템이라 다행이다.
인벤토리에 안 들어가면 옮기지도 못할 만큼 크고 무거운 쇳덩어리이니.
‘이제 더 얻을 건 없겠지.’
도진은 휑한 분위기를 풍기는 던전을 둘러봤다.
보스를 죽이기 전까지 느껴지던 음산함과 위압감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그저 텅 빈 듯 공허함만이 느껴진다.
보스 켈루온이 전투를 하며 계속 던전 전체에서 영혼과 힘을 흡수해버린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탓이었다.
“누나 다 끝났어요. 이제 빠져나가기만 하면…….”
돌아와 보니 테레사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죽은 건 아니고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젠장.
물약을 먹여 봤으나 깨지 않는다.
제대로 탈진한 모양인데…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일이라 도진은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테레사까지 끌고 탈출 루트를 밟아야 했다.
‘그래도 근력이 높아져서 다행이지.’
도진은 새로 얻은 유물 목걸이에 감사했다.
‘소소 누나랑 탄토 씨 둘 다 잡템만 잃었구나.’
전리품은 물론 소소, 심지어 탄토가 죽은 장소까지 들러 사망자 유품까지 회수하여 지상으로 올라온 도진은 테레사를 정박해 두었던 배에 내팽개쳤다.
“컥……!”
바닥에 버려지는 충격에 그때서야 눈을 뜨는 테레사.
“…헉! 도진 씨……!”
발작하는 참치처럼 펄떡대며 깨어나는 테레사를 본 도진은 조용히 중얼댔다.
“저 인간 일부러 지금 눈뜬 거 아냐?”
기절한 여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업어 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지칠 대로 지친 도진은 당분간 게임을 쉬엄쉬엄 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번에 얻은 히든 퀘스트?
몰라. 언젠가는 하겠지.
“하아…….”
도진은 안개로 가득한 바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배를 몰아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저주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