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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모루>는 전체적으로 모든 게 커다랬다.
천장은 이상할 정도로 높고, 드문드문 눈에 띄는 장식을 비롯해 모든 구조물이 다 컸다.
그 이유를 지하로 내려오자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침입자다!】
【저기다, 문지기를 파괴하고 침입한 놈들이 저기 있다】
지하로 내려오자마자 마주친 몬스터들이 키 5미터가 넘는 거구의 유령들이었다.
외모를 묘사하자면, 인간은 인간인데 우락부락함이나 험악함은 오우거, 트롤, 드워프를 뒤섞은 느낌이 드는 놈들이었다.
【신께 바칠 검과 창에 불순물이 섞여선 안 된다!】
유령 거인들은 뭉툭한 검과 도끼는 물론이고 스파이크 달린 방패 등으로 무장하고 우르르 몰려왔다.
도진 일행도 바로 대응했다.
테레사가 앞서고, 도진은 마법을 난사해 달려오는 유령 거인들을 견제했다.
탄토도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은신해서 사라졌다가 적진 한복판에서 나타나 공격을 개시했다.
중간중간 섞여 있는 유령 거인(방패)가 움직이는 토치카. 즉, 장갑차처럼 다른 놈들을 보호하며 밀고 들어오려 했으나.
“방패 든 놈 위주로 처리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탄토가 흘러가는 상황을 보자마자 방패병의 아킬레스건과 오금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크아악!】
마법적 힘이 있는 무기는 유령을 상대로도 타격을 줄 수 있다. 하물며 탄토의 무기는 유물 도끼였다.
탄토의 손도끼에 찍힌 유령 거인의 신체는 연기처럼 흩어졌고, 상처 부위에서는 피 대신 푸른 연기가 줄줄 샜다.
【발밑을 조심해! 우리 사이에 쥐새끼 하나가 숨어들었다!】
【보이질 않는데 무슨 소리야!】
잘 큰 탄토 하나가 열이 넘는 유령 거인의 발을 묶었다.
유령 거인들은 기름 떨어진 장갑차에 탄 보병 신세가 됐다.
도진은 놈들에게 아낌없이 마법을 퍼부어 주었다.
유령 거인들의 피통은 덩치만큼이나 컸다.
일반적인 마법사 유저는 한 무리를 처리하려면 가진 마나를 전부 써 버려야 할 정도로.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공격 능력이 차원이 다른 도진은 순식간에 열 마리가 넘는 유령 거인을 싹 정리해 버렸다.
“약간 뻘쭘할 정돈데요…….”
긴장만 하고 정작 몬스터와는 충돌도 못 해 본 테레사가 방금 전까지는 유령 거인이었던 뼈, 갑주, 병장기 등을 보며 중얼댔다.
“원래 탱커가 할 일 없는 파티가 잘 돌아가는 파티예요.”
탱커가 시종일관 고생스럽게 굴러야 한다는 건 파티 딜이 현저히 부족하단 뜻이다.
그런데 지금 이 파티는 딜이 부족할 일이 없었다.
인원은 두 명뿐이어도 둘 다 무기부터가 유물 등급이라 공격력이 차고 넘쳤다.
“일단 이동하죠. 이놈들 생각보다 피통이 커서 계속 몰려드는 놈들이랑 소모전을 벌이기 시작하면 피곤해질 거 같으니.”
파티는 빠르게 이동했다.
조심조심 이동하기엔 던전이 너무 넓었다.
‘쉴 수 있는 안전지대부터 찾아야겠어.’
도진이 볼 때 <신의 모루>는 시작과 동시에 달리기 시작해서 바로 끝을 볼 수 있는 던전이 아닌 듯했다.
이만한 크기의 던전이면 다 둘러보는 데만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도진은 차근차근 던전을 공략할 생각으로 쉴 곳부터 찾았다.
그러다 구석진 곳에 움푹 들어간 공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쉬죠.”
휴식을 선언한 도진은 바로 인벤토리에서 필기구를 꺼냈다.
던전이 얼마나 클지 모르니 지금부터 지도를 그려 나갈 생각으로.
아직 지도 제작 스킬을 따로 배우진 않았지만, 던전 구조가 복잡하지 않아서 약식 지도를 그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기…….”
그런데 그때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탄토가 뭔가를 내밀었다.
“전 제작 스킬이 있어서요. 그리시려는 거 같아서.”
지도였다.
그러고 보니 도적 계열은 패스파인더 역할을 하기도 하는 직업군.
전생부터 혼자서 이것저것 다 하던 버릇이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이런 데서 또 혼자 놀던 버릇이 나오는구나.’
누가 그려 주는 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어야지.
아웃사이더로 살던 시절의 잔재를 마주한 도진은 쓰게 웃으며 지도를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인걸요.”
말과 달리 꽤 뿌듯한 눈으로 대답한 탄토는 다시 구석으로 갔다.
도진이 그리려던 약식 지도와 달리 정식 스킬로 제작된 지도는 지도 창으로 띄워 파티 공유도 가능했다.
지도 문제는 해결됐고. 이제 천천히 던전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밝혀 가면서 공략해 나가면 되겠다.
【이 근처에 있을 거다.】
【컹! 컹!】
【이쪽인 거 같은데?】
그때 멀리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니 유령 거인들이 유령 사냥개를 데리고 수색을 벌이는 게 보였다.
‘개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크긴 하네.’
주인들 덩치가 덩치인 만큼 반투명한 유령 사냥개의 크기도 엄청나게 컸다.
체고만 해도 3미터는 되는 게 작은 코끼리 정도는 된다.
살벌함은 그 이상이고.
유령 주제에 냄새를 맡았는지 저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
‘기습을 하고 싶은데.’
쉽게 가려면 기습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거리가 멀었다.
가까워지면 냄새로 들킬 테고.
잠시 머리를 굴린 도진은 탄토에게 말했다.
“은신으로 반대쪽으로 넘어가서 기다리다 신호하면 어그로 좀 끌어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냄새로 찾으려 들면 그것보다 더 확실한 걸로 눈길을 끌면 된다.
탄토를 반대편으로 보낸 도진은 숨죽이고 기다렸다.
유령 거인과 킁킁대는 번견을 앞세워 다가온다.
그러다 개의 코끝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틀어졌을 때.
[지금!]
도진이 탄토에게 메시지로 신호를 보냈다.
펑!
그러자 탄토가 있는 곳에서 연막이 터졌다.
【아악!】
거의 동시에 유령 거인 한 놈이 비명까지 지른다.
연막을 터뜨리면서 탄토가 공격까지 감행한 듯했다.
【이쪽이다!】
【빌어먹을 벌레 같은 게!】
유령들의 어그로가 연막 쪽으로 확 쏠렸다.
그 탓에 놈들은 도진을 상대로는 완전히 등을 보인 꼴이 됐다.
도진 입장에서는 맛있는 밥상이 차려진 셈이었다.
《섬광창》
한 놈의 뒤통수에 광점이 찍히는 걸 시작으로 도진의 마법 세례가 유령 무리를 난자했다.
이번에도 무난하게 전멸시킬 수 있겠네.
적을 수세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패면서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도진이 적의 목적을 몰랐기에 한 생각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침입자는 여기 있습니다!】
놈들은 침입자를 죽이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아니, 죽일 수 있으면 죽이는 게 목표였겠지만, 그게 안 되면 위치라도 알리는 게 놈들의 역할이었다.
‘주변에 있는 놈들이 싹 다 몰려오겠어!’
피하고 싶었던 소모전을 하게 될 거 같은 느낌에 도진은 빨리 위치를 벗어나려 했다.
【감히 내가 맡은 영역에 들어온 쥐새끼들이 누구냐!】
그런데 그보다 먼저 저 멀리 모퉁이에서부터 엄청난 마나의 일렁임이 나타났다.
전신에 기분 나쁜 장식물이 주렁주렁 달고 있는 여성체 거인이었다.
다른 놈들과 달리 여성체 거인은 유령이 아니었다.
[히든 던전 네임드 몬스터 ‘단죄의 무녀’가 등장했습니다!]
무녀? 마녀가 아니라?
저게 어딜 봐서 무녀냐.
유령 주제에 살은 뒤룩뒤룩 쪘고, 그로 인해 작은 눈은 살에 묻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걸 보아 호흡을 한다는 소리고, 언데드가 아니라는 얘긴데.
흘러내리는 살은 썩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축용 칼을 들고 다니는 무녀가 세상에 어디 있어.’
뚱땡이 무녀님께선 살벌하게 생긴 도축용 칼을 양손에 들고 계셨다.
【내 영역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용사 따윈 빌 생각도 마라!】
쾅쾅!
도살… 아니, 단죄의 무녀는 화가 잔뜩 났는지 양손에 든 날붙이를 거칠게 부딪치며 달려왔다.
‘어, 엄청 무섭게 생겼잖아……!’
강함과 별개로 외형이 워낙 끔찍해서 테레사는 겁이 날 정도였다.
“역겨워.”
소소의 감상은 좀 더 심플했다.
예쁜 걸 좋아하는 그녀는 뛰어오는 무녀를 보며 인상을 와락 구겼다.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느냐, 계집!】
달리면서도 용케 자기 욕하는 걸 들은 무녀가 소소를 노려봤다.
화들짝 놀란 탱커 테레사가 도발 스킬을 썼으나 통하질 않았다.
“미, 미친! 도발이 안 먹혀요!”
성난 아프리카 코뿔소처럼 달려오는 무녀.
【일어나라, 쓸모없는 것들! 저년을 갈갈이 찢어 버려!】
심지어 무녀는 도진이 이미 처리해 버린 유령들을 되살리기까지 했다.
‘네크로멘서인가!’
무녀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공격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던 도진은 갑작스런 사태에 깜짝 놀랐다.
네임드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부지불식간에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적들 모두가 탱커가 아닌 힐러 소소를 노리고 있었다. 어그로 관리가 안 되는 그런 놈인가?
‘돌겠네.’
여기서 힐러를 잃을 수는 없다.
도진은 소소의 손목을 잡아끌며 「초월」을 사용했다.
“이리 와요!”
순간 잠재력이 폭발하며 마법의 위력과 캐스팅 속도 등이 도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화염창》
평소보다 훨씬 더 큰 크기의 화염창이 달려드는 유령 거인 하나를 꿰뚫었다.
일격에 한 놈이 무력화된다.
「염동강화」로 순간 가속하여 생긴 빈틈이 사라지기 전에 소소를 끌고 포위망을 벗어났다.
꺄- 하고, 가속도에 놀란 소소가 뱉는 비명이 느리고 길게 흘러나왔다.
《얼음 방패》
옆에서 날아드는 도끼를 마법으로 막았다.
이어 놈의 머리통에 광점을 찍었다.
섬광과 함께 뒤로 꺾이는 유령 거인의 머리.
그런데 방금 죽인 놈도, 머리가 뒤로 꺾였던 놈도 다시 살아난다.
【그년을 이리 내놔!】
어느새 무녀도 가까워져 있었다.
도진은 미친 듯이 마법을 뿌렸다.
하나 무녀의 장식물에서 튀어나온 영체 덩어리들이 도진의 마법을 방어했다.
‘탄토는……!’
탄토도 쏟아져 나오는 유령에 둘러싸여 고전을 하고 있다.
그때.
자신을 지나쳐 도진과 소소를 공격하려는 무녀를 따라 달리던 테레사가 소리를 꽥 질렀다.
“뚱땡이! 돼지! 할머니!”
도발 스킬을 포함해 어떤 걸로도 어그로가 자신에게 오질 않으니 다급한 마음에 욕이라도 해 본 것이었다.
소소가 ‘역겨워’ 한마디 한 것에 흥분해 달려든 것에 착안해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지르고 본 건데.
【이, 이……! 너부터 갈아 마셔 줘야겠구나!】
무녀가 몸을 휙 돌리는 게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다른 유령들마저 휙 고개를 돌려 테레사를 향해 움직였다.
“어?”
테레사가 뱉은 모욕적 단어들의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