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도진의 지시에 따라 테레사가 방어 태세를 갖추고 전진했다.
말을 듣고 보니 강철 기사 조각상이 매우 수상하게 느껴져, 테레사는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단순히 경계하는 수준이 아니라, 언제든 어디서든 공격이 날아들면 바로 반응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런데 키가 조각상들이 창을 뻗으면 충분히 닿을 거리까지 다가가도 두 기사 조각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냥 조각상 같은데…….’
테레사는 키가 10미터는 될 거 같은 조각상을 올려다봤다.
지금도 저 멀리, 자신들 눈높이를 기준으로 전방만 주시하고 있-
“헉!”
전방에 고정되어 있던 조각상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눈만 굴려 발밑을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듯이.
동시에 시간차 없이 조각상이 창을 휘둘렀다.
준비동작도 없이 서로 간의 거리를 최단으로 쪼개는 공격.
테레사는 순간적으로 호흡을 참으며 전신을 단단하게 굳혔다.
쿠웅.
유물 방패의 힘은 대단했다.
들어오는 충격을 흡수 및 분산하는 기능 덕에 창격의 충격은 무형의 힘이 되어 테레사 주변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철덩이 기사 둘이 서로 미친 듯이 창질을 해 대는 통에 충격 흡수고 나발이고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야, 이……! 좀 그만……! 컥, 콜록, 콜록!”
타임을 외치는 테레사의 목소리는 통하지 않았다.
[히든 던전 <신의 모루>의 ‘쌍둥이 문지기’가 깨어났습니다.]
뒤늦게 뜨는 메시지에 테레사가 속으로 욕을 했다.
경고를 해 줘야지 공격부터 하고 통보를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런 그녀의 억울함을 도진이 대신 풀어 줬다.
커다란 불덩이가 최초 공격을 시작한 강철 기사의 면상에 꽂혔다.
‘우리 파티엔 개쩌는 마법사가 있단 말이야!’
맛이 어떠냐!
테레사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눈빛으로 쏘아냈다.
화르륵.
그 순간 도진의 마법에 얻어맞고 경직됐던 강철 기사의 색이 미묘하게 붉게 변하고, 창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
그리고 화염 묻은 창격이 시작됐다.
“이런 게 어딨어! 어어? 너, 어디 가!”
그 와중에 다른 놈이 자신을 때리다가 뒤쪽으로 눈을 돌리는 모습에 테레사는 황급히 어그로를 끌기 위해 스킬을 난사했다.
“이젠 도와줘야 하지 않나요……?”
테레사가 고군분투하는 걸 본 탄토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애초에 앞으로 나가려던 그였으나 도진이 붙잡는 바람에 지금 가시방석 위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만요. 어차피 크게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데 조금만 더 지켜보죠. 어차피 탄토 씨랑 상성도 많이 안 좋아 보이고. 소소 누나, 레사 누나 피 괜찮죠?”
소소가 도진을 물끄러미 봤다.
그러다 시선을 다시 테레사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어. 좀 빠지긴 하는데 살려 놓는 데 문제는 없는 수준이야.”
그리 말하며 소소는 테레사가 꺅꺅 비명을 지르며 방패를 이리저리 돌리는 걸 감상했다.
새벽부터 자신을 깨운 원수가 지르는 비명이 참 듣기 좋았다.
‘저런 식으로 마법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네?’
도진은 붉게 달아오른 강철 기사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신의 모루> 공략에 실패했던 그 파티에는 마법사는 물론이고 속성을 활용하는 클래스가 전무했었다.
강철 기사가 마법을 흡수하고, 흡수한 마법의 속성에 따라 능력에 변화가 생기는 기믹을 갖고 있는 건 도진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럼 여러 속성으로 공격하면 그걸 다 흡수하는 건가?’
유물 방패빨이긴 해도 어쨌든 튼튼한 탱커가 있으니 참 편하다.
이렇게 마음껏 분석하고 실험해 볼 여유가 생기니 말이다.
도진은 이번에는 얼음 마법을 써 봤다.
붉게 달아올랐던 강철 기사가 어떻게 될지 살피기 위해서.
까드득.
그러자 순식간에 놈의 속성이 변했다.
언제 열기를 내뿜었냐는 듯 차갑게 식어 버린 쇳덩이 기사의 창끝에 지독한 냉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어억?”
앞머리가 곱슬곱슬 타들어 가는 열기에 비명을 지르던 테레사가 이제는 코와 귀가 얼어 터질 거 같은 냉기에 비명을 질렀다.
“구경만 하지 말고 이거 좀 어떻게- 흡!”
흡수 및 속성 변환 과정에서 잠깐 동안 경직이 있긴 하지만, 피해를 입는 거처럼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딜로 밀어 버리려고 마법을 막 퍼부었다가는 뭔가 문제가 생길 거 같은 느낌인데…….’
이상할 정도로 얌전하게 탱커만을 공격하는 두 강철 기사의 공격 패턴.
가끔 뒤쪽으로 눈길을 주긴 하지만, 거의 예의상 어그로가 튀는 느낌이지 테레사가 관리를 잘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어서 자신들에게 강력한 공격을 집중해 달라고 얘기를 하는 듯한 모습.
‘이런 놈들일수록 기믹 파악을 제대로 하고 접근해야 된다. 잘못 건드리면 순식간에 전멸할 수도 있어.’
도진은 처음 강철 기사에게 마법을 날린 순간부터 일어난 일을 세세하게 떠올렸다.
‘마법에 적중당하고 변신하는 데 대략 2초에서 3초. 5성 마법이든 1성 마법이든 경직되는 시간은 똑같았다. 마법의 위력에 상관없이 속성이 입력되면 바로 변신을 하는 구조란 거다.’
그럼 같은 속성을 계속해서 때려 박으면?
도진은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그러나 얼음 속성을 갖게 된 강철 기사는 같은 속성 공격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뿜는 냉기가 더 강해지는 거처럼 보였다.
“피 빠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거 같아.”
역시. 바로 힐러한테서 피드백이 들어왔다.
‘그러면… 이쪽은 어떨까?’
도진은 「점화」로 강철 기사의 속성 변환 기믹을 발동했다.
그러자 지독한 냉기를 내뿜던 놈이 순식간에 냉기를 잃고 열기를 품기 시작했다.
‘이때 이렇게 하면-’
점화를 맞고 아파서 경직에 걸린 건 아닐 테고.
그럼 변신하는 중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빈틈일 테니, 그 순간을 노리면 어떻게 될까?
도진은 순식간에 달아오른 쇠처럼 붉어지는 놈을 향해 「냉기 폭발」을 선물했다.
퍼퍼펑- 하고 연쇄적으로 터지는 차가운 폭발에 달아오르던 강철 기사가 과부하된 기계처럼 삐그덕댔다.
그러다가 쿠웅 하는 충격음을 내뿜더니,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기본 상태로 돌아왔다.
-지이잉.
잠시 고개를 떨궜던 놈이 붉게 물든 눈으로 도진을 노려봤다.
“이거구나?”
도진이 씨익 웃었다.
강철 기사가 도진을 향해 달렸다.
자신의 비밀을 파헤친 인간을 처치하려는 듯이.
“야, 네 상대는 나라고!”
화들짝 놀란 테레사가 도발을 쓰며 놈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완전히 어그로가 끌리진 않았으나 놈의 시선이 한 번은 테레사를 향했다.
“한 놈만 제대로 붙잡고 있어요, 누나!”
그런 테레사에게 도진은 다른 놈이나 신경 써 달라 말했다.
“탄토 씨도 봤죠?”
도진은 더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탄토 정도면 이미 다 파악했을 테니.
“틈만 만들어 주시면 알아서 해 보겠습니다.”
스륵- 하고 탄토가 흐릿해졌다.
도진은 지금까지 참았던 마법을 마음껏 사용했다.
‘타이밍만 맞춰서 꽂으면 된다 이거지.’
얼음, 바로 이어서 불, 불, 불.
불에 이어서 얼음, 얼음, 얼음.
시늉만 하는 마법으로 속성을 바르고, 변환을 유도한 뒤 강력한 반대 속성 마법을 연속으로 꽂는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에 아주 빠르게 해내지 못하면 큰 경직을 만들 수 없었다.
원래는 다수의 인원이 합을 맞춰야 파훼가 가능한 기믹이었으나.
도진은 혼자서 충분한 양의 속성 피해를, 아주 짧은 시간에 채워 넣어 강철 기사를 연속으로 경직시켰다.
겨우 한 걸음 내딛고 쿠웅- 하고 충격을 받으며 멈춰 서고, 다시 걸으려다 경직되고, 고개를 들다 고개를 숙이고.
그때마다 탄토는 귀신같이 나타나 안전하게 딜을 하고 빠졌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은신 딜뻥 세팅에 유물 손도끼가 더해진 탄토의 공격은 상성의 차이를 극복하고 강철 기사의 HP를 뭉텅뭉텅 삭제시켰다.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한데 정작 탄토 본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없는 거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탱커는 열심히 탱킹하고, 힐러는 힐하고, 도진 님은 딜각 만들고…….
그런데 자신은 남이 만들어 준 기회마다 단검질에 도끼질만 한 번씩 하면 끝이라니.
“이제 하나 남았네요. 레사 누나, 고생 많았어요. 처리할 테니까 기회 봐서 뒤로 빠져요.”
봐라. 딴생각하면서 날붙이 좀 휘둘렀더니 어느새 한 놈이 죽어 버렸다.
심지어 막타도 도진 님의 마법이 쳤다.
탄토는 의기소침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허무하게 누울 애들이 아닌데.’
탄토가 보기에 ‘쌍둥이 문지기’는 매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고생하려면 한없이 고생만 하다가 파티가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난이도 있는 놈인데…….
도진에게 기믹을 파악당하는 바람에 공격다운 공격 한번 못 해 보고 테이저건 맞은 범죄자인 양 경련만 하다가 바닥에 쓰러지는 신세가 됐다.
“후우, 그래도 다행이네요. 마법사랑 상성이 좋아서.”
마지막 놈을 쓰러뜨린 뒤 도진이 말했다.
“네? 이것들이 마법사랑 상성이 좋다고요……?”
탄토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마 어떤 마법사 유저를 데려다 놔도 욕부터 했을 게 뻔한 몬스터들이다.
마법을 흡수하고 해당 속성의 힘을 역으로 사용하는 몬스터가 마법사와 상성이 좋다니.
하지만 도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잖아요. 마법사 아니면 이렇게 꼼짝도 못 하게 만들진 못할 테니까. 직접 봤잖아요?”
“보긴 봤지만…….”
말을 흐리며 탄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경우는 상성이 좋다고 표현할 게 아니라 상성을 파괴한 게 아니냐고.
‘마법사들 중에 이분을 안 좋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좀 이해될 거 같기도 해…….’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도진을 마법사의 적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아마 이런 면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으아앙! 내 머리 다 탔잖아요!”
탄토가 마법사 유저들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있을 때 테레사가 울먹이며 걸어왔다.
열기와 냉기를 번갈아 가며 내뿜는 네임드 몬스터와 딱 붙어 있던 그녀는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열에 타들어 가다가 얼어서 부서진 앞머리는 들쭉날쭉하게 잘린 처피뱅 꼴이 돼서 가관 그 자체였다.
“크흠, 고생 많았어요, 누나.”
죽은 네임드의 사체를 살피다가 무심코 테레사를 본 도진은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집어넣었다.
탄토도 눈을 꾹 감고 인내했다. 가면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웃으면 티가 날 것이기에.
“풉.”
하지만 소소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풉’ 하고 한 음절을 뱉었다.
필사적으로 앞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양손으로 문지르던 테레사가 소소를 노려봤다.
“소소, 너 내가 새벽에 깨웠다고 그러는 거지.”
소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걸 대답하는 건 낭비니까.
“대충 쉬었으면 안쪽으로 들어가 보죠.”
도진이 분위기를 환기했다.
쌍둥이 문지기를 쓰러뜨리고 접근하자 철문이 개방되어 있었다.
아래쪽으로 뚫린 긴 통로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벌린 아가리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