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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던 도진은 천지현이 꺼낸 말에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뭐?”
“도진이 너한테 무슨 지도 아이템을 후원해 준 분이 있대. 음, 여기. 네가 받겠다고 하면 모험가 길드 통해서 보낸다고 했으니까 확인해 봐.”
천지현이 건넨 스마트폰에는 지도 아이템을 찍은 스크린샷이 있었다.
‘그 지도잖아.’
찍혀 있는 건 지도 아이템 설명창과 지도가 표시하고 있는 위치.
감정된 지도의 등급은 히든이었으나 이외에는 무엇도 담긴 정보가 없었다.
애초에 지도가 제작될 때 위치만 표시한 듯이 말이다.
이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높은 가치를 지닌 지도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생겨 먹었으니.
중요한 건 가리키고 있는 위치였다.
중앙 대륙 동부의 망망대해 한복판.
도진이 찾으려 했던 지도, 아니 히든 던전이 있는 위치였다.
‘<신의 모루>가 발견된 곳이잖아.’
히든 던전 <신의 모루>는 완벽하게 숨겨져 있는 던전이다.
위치 표기뿐 아니라 열쇠 역할을 하는 지도가 없으면 발견 자체를 할 수 없다.
던전이 결계에 의해 철저히 숨겨져 있는 데다 주변에 강력한 해상 몬스터가 수호자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지도 구매자가 자신이 공략을 실패한 후에 위치를 공개했었는데, 사람들이 몰려갔다가 죄다 익사체가 되어 버렸었다.
싸게 팔려 나간 히든 던전 지도에서 굴러간 스노우볼이 결국 물귀신만 잔뜩 양산해 낸 <신의 모루> 사건은 꽤 유명한 사건이다.
‘왜 이게 나한테 와?’
이게 자신이 찾아보려다 포기한 그 지도인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한테 가야 할 지도가 다른 데도 아닌 자신에게 온 걸까.
‘내가 이것저것 바꿨으니 미래가 바뀌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이렇게까지 공교로우면 좀 무서울 정돈데.’
말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보는 도진을 보고 천지현이 물었다.
“왜 그래, 도진아? 뭐 문제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이거, 누가 준 건지 알 수 있어?”
“어… 나도 물어보긴 했는데 완전히 익명으로 온 거 같아. 회사 직원한테 지도 전달할 때도 모험가 길드를 통해서 익명으로 보냈다고 하더라고. 메일에도 ‘S’라는 닉네임 말고는 정보가 전혀 없고. 순수하게 이름 없는 팬으로 남고 싶다고 했대.”
수상함이 과한데.
그래. 백번 양보해서 히든 등급 지도를 주는 팬이 있을 수 있다고 치자.
한데 그게 하필이면 자신이 찾아보려 했던 <신의 모루>의 지도라니.
‘우연이라기엔 너무 공교롭고, 필연이라기엔 과대망상 환자라도 될 거 같은 기분이고…….’
거기다 이건 LOST 인게임 루트를 통해 흘러 들어온 것도 아니고 현실의 팬이라는 사람이 보낸 거라 더 생각이 복잡했다.
회귀라는 더 큰 기적을 겪은 입장에서 이런 우연, 별거 아니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또 회귀한 뒤로 열심히 미래를 바꿔 댄지라…….
‘아, 모르겠다. 답을 낼 수가 있는 문제여야 답을 내지.’
회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뇌가 익도록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도진은 무언가 자연히 밝혀질 때까지 이것도 우연 같지 않은 우연으로 덮어 두기로 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여기서 해야 할 선택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우연이면 당연히 굴러 들어온 히든 던전 지도를 감사히 꿀꺽하면 된다.
반대로 만약 이게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보낸 거라면 더더욱 가야 했다.
‘회귀로 얻은 이 인생을 성해공주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하나의 퀘스트라고 생각하면…….’
뭔가 해야 하는 일이 있겠지.
심플하게 생각하면 회귀를 반복하던 성해공주가 바라던 미래를 대신 만드는 거.
‘이래서 내가 이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지도 한 장에서 뻗어 나가는 생각의 가지가 이렇게 복잡해지는 걸 봐.
생각이 많아지면 피곤해지고, 그러면 자연히 인생 퀄리티가 떨어지는 법이다.
“할게.”
도진은 천지현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어… 그런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방금 전까지 심각했던 도진의 표정이 신경 쓰여 묻는 천지현.
도진은 그런 그녀에게 평소와 같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무슨 일은. 그냥 어떤 던전일까 싶어서 생각 좀 한 거야.”
이에 천지현이 안도했다.
“휴우, 엄청 심각한 눈이라 걱정했잖아. 무슨 던전이면 어때. 도진이 네가 나서면 간단하게 뚝딱일 텐데.”
“그 정도는 아닌데.”
“겸손하시긴.”
천지현이 도진을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뭐야? 저 50대 부장님들이나 지을 거 같은 웃음은.
도진이 떨떠름한 얼굴이 되자 천지현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그럼 바로 너한테 보내 놓으라고 할게?”
“어.”
도진은 먹던 걸 마저 먹어 치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돌고 돌아 <신의 모루> 공략 기회가 생겼으니,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했다.
* * *
공략 준비에 앞서 가장 먼저 설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솔플을 할 것이냐, 파티플을 할 것이냐.
‘가능만 하면 솔로 플레이가 깔끔하기도 하고 마음도 편하지만…….’
문제는 <신의 모루>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는 거다.
던전 초입에서 공략에 실패했고, 열쇠인 지도도 소실되어서 던전 자체가 심연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탓에 정보가 풀릴 일이 없었던 것.
‘이것도 도전 기회가 딱 한 번뿐인 셈이니까… 역시 안전하게 가야 하나.’
그래야겠지.
사실 이러려고 키워 놓은 거기도 해.
노예를.
‘탱커랑 힐러는 됐고.’
어설픈 탱커에서 유물 방패로 인해 퓨어 탱커 이상의 탱킹력을 갖게 된 테레사.
유물은 없어도 재벌집 외동딸 고유특성 금력(金力)으로 무장한 S급 힐러 소소.
거기다 이젠 LOST계에선 고유명사쯤이 되어 버린 도진.
이 3인으로 이미 튼튼한 앞라인에다 강력한 딜 라인까지 완성되는 셈이지만, 도진은 이번 공략에 안정성을 조금 더 가미하고 싶었다.
‘탄토한테 물어봐야겠네.’
도진은 탄토를 용병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이쪽은 본인 의사를 물어봐야 하긴 하겠지만, 거절할 거 같진 않았다.
‘탄토까지 포함하면 4인 파티에 유물 보유자만 3명. 유물 숫자는 4개.’
이런 라인업이면 소규모 어벤져스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파티다.
도진은 내친김에 바로 탄토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 * *
자고 있던 탄토는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떴다.
“……?”
무슨 소리지?
아, 스마트폰이구나.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던 탄토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도진 님?’
메시지 발신자가 도진이라는 걸 알게 된 탄토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도진: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히든 던전 하나를 찾아서요. 난이도가 꽤 될 거 같아서 실력 좋은 파티원을 모으려고 하는데, 탄토 님이 생각나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용병 뛰실 생각 없으신가 해서요. 자세한 내용은…….]
히든 던전을 공략할 거다.
괜찮은 파티원 모으고 있다.
용병 뛸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
던전 공략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 지급한다.
대신 던전 주요 보상에 대한 우선권은 내가 갖겠다.
깔끔하고 간단한 내용의 메시지였다.
무미건조하기까지 한 메시지지만, 도진의 진짜 팬 중 한 명인 탄토는 메시지가 온 거 자체가 좋았다.
‘열심히 게임하길 잘했어……!’
탄토는 바로 도진에게 보낼 답장을 썼다.
[탄토: 물론이죠. 무급이어도 좋아요. 월드 보스 레이드 때 신세 진 걸 생각하면 무급인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것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아차. 너무 들떠 버렸다.
자신이 폭주하고 있음을 깨달은 탄토는 주변을 둘러봤다.
새하얀 벽지로 둘러싸인, 있는 거라고는 캡슐과 침구뿐인 삭막하기 그지없는 좁은 공간이 안정감을 주었다.
톡. 톡. 톡. 톡.
천천히 적은 글자를 지운 탄토는 다시 적은 답장을 전송했다.
[탄토: 하겠습니다.]
그래. 이게 탄토다.
내가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세계에 만든 나.
누구와도 섞여 살지 못했던 내가 아니라…….
[도진: 일정 정해지는 대로 알려 드릴게요. 혹시 일정이 안 맞으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으니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나중에 뵙죠.]
침잠하는 탄토를 도진의 메시지가 끌어 올렸다.
잠시 메시지를 바라보던 탄토는 조용히 캡슐로 향했다.
* * *
파티 구성은 끝났지만, 도진이 할 일은 끝이 아니었다.
가야 할 곳이 바다 위인지라 타고 갈 배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파티원을 구하는 것과 달리 배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뭐? 안개 해역으로 가고 싶다고? 자네 혹시 자살이 취미인가? 자네 취미 생활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네만, 그렇다고 날 끌어들이는 건 사양이야. 난 손녀딸 재롱을 더 오래 보고 싶은 몸이거든.」
「아, 안 한다니까!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그것도 숨이 붙어 있을 때나 좋은 거지. 물고기 밥 신세가 되면 억만금이 무슨 소용이야? 얼마를 주든 난 그쪽은 얼씬도 하기 싫으니까 썩 꺼져! 칵, 퉤!」
같이 하자고 하니까 바로 오케이 한 파티원들과 달리 뱃사람들은 안개 해역이란 말을 듣자마자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반수 이상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냈고 말이다.
도진은 며칠 동안 항구도시를 헤매며 배를 수소문했으나 결국 배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이러다 어디서 얻어 걸리는 게 클리셰인데…….’
사연 많아 보이는 뱃사람, 도박 빚에 허덕이는 뱃사람, 안개 해역과 연이 깊은 뱃사람, 한이 맺힌… 등등 클리셰의 등판을 기대했으나 그런 건 없었다.
‘과묵한 바다 사나이 할아버지 찾아다니다간 몇 달이 지나도 출발도 못 하겠어.’
결국 배를 구하지 못해서 최초에 결정했던 일정을 미루게 된 도진은 방법 자체를 바꾸기로 했다.
“이 정도 배는 얼마면 사요?”
아예 배를 사기로 한 것이다.
도진은 4명이서 타기에 적당한 배를 구매했다.
“근처까지만 데려다줘요. 안개 해역이 보이는 곳까지만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그렇게까지 위험할 일도 없을 거 아니에요.”
물론 배만 산다고 다가 아니었다.
항해에 대한 지식도 스킬도 없이 바다로 나갔다가 머저리 4인방 표류기 찍을 일 있나.
해서, 도진은 안개 해역이 보이는 곳까지 자신들을 안내해 줄 길잡이 배도 구했다.
근처까지만 데려다주고 돌아가도 좋다고 하니, 하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돌아올 때인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배 타고 나와서 방향만 잘 잡으면 어디든 땅덩이가 나오지 않겠나.
‘정 안 되면 방송 켜서 SOS 신호 보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