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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보스 ‘태고의 인류’가 쓰러졌습니다.]
[월드 보스 레이드 이벤트가 현 시점부로 종료됩니다.]
[지상에 떨어진 조각에 담긴 멸망의 힘이 소멸되기 시작합니다.]
최종 보스의 죽음을 기점으로 월드 메시지가 출력됐다.
마지막 전장에서 전투를 치른 사람들은 메시지를 보고서 함성을 질렀다.
남은 힘이 한 줌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걸 모두 토해 낼 기세로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그럴 힘조차 남지 않은 사람은 주저앉아 죽은 보스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봤다.
도진의 눈에 담긴 그 장면은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시바아아아알!
-인간은 승리한아아아아!
-이게 게임이고! 이게 보스전이고! 어?
-저 인원으로 절대 못 잡는다고 도배했던 새끼 어디 갔냐? ㅋㅋ
-미터기 뜯어 보면 우리 방장이 딜 지분 절반 이상일 거 같다.
-진짜 미쳤어. 딜 뿜는 기계임. ㄷㄷ
-마법사 고점 또 갱신됐네.
-저점 탈출 못 하는 마법사 일동 대오열 중 ㅋㅋ
직접 전장에 함께했던 건 아니어도 간접적으로나마 보스 킬 순간을 지켜본 사람들은 차오르는 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인 도진이 최초의 월드 보스 레이드의 주역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리만족과 자부심을 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열기는 쉬이 식지 않아서, 도진이 방송을 끈 뒤에도 도진의 팬들은 채팅창에 남아서 뒷풀이를 이어 갔다.
* * *
방송은 종료됐지만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이벤트 최종 목표인 월드 보스 태고의 인류는 쓰러졌지만, 남은 게 있었다.
[월드 보스 레이드 보상 정산을 시작합니다.]
모든 레이드의 최종 페이즈.
바로 보상 정산 페이즈다.
[당신의 월드 보스 퇴치 기여도는 압도적입니다.]
기여도 1위는 당연히 도진이었다.
[이벤트 보상에 기여도 점수가 반영됩니다.]
보상 정산 화면이 세 번이나 번쩍였다.
기본 보상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음을 암시하는 빛이었다.
[최고 기여도 특전으로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무기)
2.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방어구)
3.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장신구)
다른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선택지가 도진에게는 주어졌다.
[최고 기여도 특전으로 ‘랜덤 특성 포인트’가 ‘의문의 특성 포인트’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의문의 특성 포인트’를 1포인트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 보상도 업그레이드가 됐다.
통상적으로는 얻지 못하는 특별한 특성을 얻을 수 있는 포인트였다.
보상이 다 들어온 것을 확인한 도진은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알아서들 하겠지…….’
이제 됐다.
아직 소멸되지 않고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
그 정도는 좀 알아서 해라.
난 이제 곧 죽어도 쉴 테니까.
자체적으로 파업을 선언한 도진은 방송에 이어 게임도 종료했다.
더불어 의식까지도.
* * *
월드 보스가 잡히고서 며칠이 흘렀다.
휴식기에 접어든 도진과 달리 바로 다음 날에도 방송을 켰던 테레사는 오늘도 출근 도장을 찍었다.
-방장님 입장하십니다. 모두 머리를 조아려 주십시오.
-킹 메이커 테레사 님 드십니다.
-중~ 전~ 마마~ 납시오~!
월드 보스 레이드를 기점으로 테레사의 주가는 매우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도진 앞을 가로막고 장렬히 산화했던 모습이 큰 임팩트를 남겼던 것.
덕분에 테레사 방송에서는 요즘 방장을 추앙하는 게 하나의 밈이 되어 있었다.
“에헴.”
그리고 테레사는 그걸 대놓고 즐기고 있었고.
헛기침을 하며 등장한 테레사는 도도한 눈빛을 하며 말했다.
“자, 그럼 복습 좀 하고 갈게요.”
-모두 착석하세요.
-경건한 마음으로 보겠습니다.
테레사가 영상을 재생했다.
마지막 전투 때 본인 시점 영상이었다.
「지금!」
도진의 외침에 반응해서 보스의 공격에 몸을 던지는 짧은 영상.
그러나 이 짧은 영상이 지닌 위력은 굉장했다.
-와…….
-다시 봐도 개쩐다.
-솔직히 이건 goat 인정이다.
다시 봐도 멋지다며 올라오는 칭찬에 테레사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ㅋㅋㅋ 방장 또 기고만장해서 입꼬리 움직이는 거 봐.
-며칠은 더 봐주자 ㅋㅋ. 솔직히 이벤트 기간 동안 몸 사린다고 욕먹은 거 생각하면 며칠은 더 놔둬도 되잖아.
-맞아. 어설픈 탱커가 왜 1파티에 있냐고 욕 엄청 먹었지.
테레사는 서러웠던 시간을 떠올렸다.
능력도 안 되면서 위험하면 몸부터 사리는 폐급 탱커라며 욕을 먹던 시간.
하지만 테레사는 꾹 참고 버텼다.
도진을 믿고 버티면 언젠가 이런 때가 올 거라 굳게 믿고서.
‘고진감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냐.’
쓰디쓴 시간을 견디면 달달한 때가 오는 법.
시청자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 테레사는 현재 ‘킹메이커’, ‘고기 방패녀’, ‘자살 탱커’ 등으로 불리며 영광의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리얼 개쩔었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테레사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오늘은 진짜 까는 거지? 약속했잖아.
그 채팅을 본 테레사의 어깨가 움찔했다.
티 내지 말고 무시하고 넘어가자.
꿋꿋하게 모른 척하는 테레사였으나 시청자들은 아니었다.
-맞아, 깐다며!
-언제까지 들고만 있을 건데!
그들이 말하는 건 테레사가 보상으로 받은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였다.
기여도 상위 10명만 받을 수 있었던 유물 아이템을 테레사도 받은 것.
도진의 마지막 일격이 성공할 수 있게끔 육탄으로 막은 게 기여도를 크게 끌어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LOST에서 ‘희생’은 점수를 후하게 쳐 주는 행위인데, 이번에는 아주 극적인 순간에 가장 가치 있는 형태로 이루어진 희생이었던 게 컸다.
도진의 안배에 충실히 따른 덕에 얻은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를 테레사는 열과 성을 다해서 시청자들에게 자랑했었다.
그러나 정작 개봉을 아직도 안 한 상태였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 테레사는 쫄려서 열 수가 없었다.
“깠다가 망하면 어떻게 해요! 저번에 특성 뽑았다가 망하니까 다들 엄청 놀렸으면서! 당신들 다 나 망하면 웃고 떠들면서 축제 즐기려고 하는 거지!”
테레사는 완강히 개봉을 거부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미루고 미루는 테레사의 행동에 단단히 뿔이 난 시청자들은 거액의 미션 금액을 걸며 압박했다.
결국 자본주의에 패배한 테레사는 유물 상자를 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분하다.
-줫 같네.
-이게 아닌데…….
시청자들은 절망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대형 망치나 도끼 유물을 부여잡고 우는 탱커 지망생 테레사를 보고 싶었는데.
“방패다!”
하필이면 유물 상자에서 방패가 튀어나온 것.
그것도 방패로 막은 공격의 일부를 흡수, 충전하여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엄청난 옵션을 지닌 방패가.
반투명한 푸른 수정 방패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테레사를 보며 시청자들은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났다.
‘도진은 이번에 뭘 얻었을까? 이미 괴물인 상태인데, 얼마나 더 강해질까?
* * *
보상을 까 보지 못한 건 테레사만이 아니었다.
도진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직 보상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어구로 해야 돼, 장신구로 해야 돼.’
테레사와 다른 점이라면 이쪽은 선택장애까지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완전 랜덤이 아니라 장비 종류를 선택해 받을 수 있으니, 고민이 더 깊을 수밖에 없었다.
무기는 이미 있으니 배제한다 치더라도 방어구와 장신구 중 어떤 걸 받아야 할지.
도진은 밥을 먹을 때도, 운동을 할 때도, 게임을 할 때도, 심지어 잠들기 전은 물론 꿈속에서도 유물 선택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했다.
“후우, 그래. 장신구 쪽으로 가자.”
며칠에 걸친 고민 끝에 도진은 겨우 보류해 두었던 보상 수령을 완료했다.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장신구)’를 획득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지점은 넘어갔고, 이제 진짜 도박의 시간이다.
도진은 바로 유물 상자를 열었다.
며칠 동안 너무 고민한 탓인지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쓸 수만 있으면 됐어.’
최대한 마음을 비우며 나온 아이템을 확인했다.
[유물 등급 장비 「최후결전」을 획득했습니다.]
나온 것은 검푸른 보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였다.
처음 보는 이름에 처음 보는 외관.
도진은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최후결전]
[등급: 유물]
[착용제한: 없음]
[고대에 만들어진 결전 병기의 심장이다.]
[모든 능력치 + 136]
[고유 발동스킬: 「초월」]
[초월]
[잠시 동안 한계를 넘어선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한 번 해방된 초월의 힘은 사용자의 힘을 전부 불태울 때까지 타오른다.]
옵션을 확인한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다행이네.”
이미 가지고 있는 룬 건틀렛처럼 항시 적용되는 사기 옵션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쓸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다행스런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붙은 ‘모든 능력치’도 레벨이 오름에 따라 함께 올라갈 테니 그 부분도 나쁘지 않았다.
마법사에게 부족한 근력과 민첩을 목걸이 하나로 완벽하게 챙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부러 챙기기에는 계륵처럼 느껴지는 근력과 민첩도 일단 높아지면 쓸모가 상당한 스탯이었다.
「염동체술」과 궁합도 좋을 테고.
‘「초월」도 리스크가 높은 만큼 썼을 때 성능은 보장되겠지.’
설명만 봐서는 쓰는 즉시 완전히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타오르는 상태가 되는 거 같은데, 평상시엔 활용하기 어려운 게 아쉽긴 해도 이런 비장의 수단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남은 건 특성 쪽인데.
‘의문의 특성 포인트라. 이건 나도 처음 보는 거라 뭐가 나올지 기대되네.’
도진은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특성 포인트를 사용했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 만큼 따로 선택지가 주어지진 않았다.
허공에 뜬 홀로그램 창에 빈 칸이 생기고, 그 안에 빛의 문자열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그러한 현상 끝에 도진이 얻게 될 특성의 이름이 조합되어 나타났다.
[운명이 당신을 이끕니다.]
[특성 「시간 여행자」를 얻었습니다.]
[시간 여행자]
[하루 단 한 번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상태로 돌아간다. 단, 되돌릴 수 있는 건 오직 본인의 시간뿐이다.]
유물은 평타는 쳤다고 생각했다.
완전 쪽박이 가능한 영역에서 평타를 쳤으니 대박이라고 봐도 됐다.
‘시발.’
그런데 이쪽은 평타니 대박이니 하는 말이 의미 없는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