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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44화 (14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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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가 된 상태에서도 도진 공격대와 신라 공격대는 모든 힘을 정면에 집중했다.

발밑에 떨어진 부스러기 같은 힘마저 주워서 전력을 투사한 끝에 몬스터의 장벽에 작은 틈을 만들 수 있었다.

“밀어붙여!”

가장 앞서 있던 탱커는 자신들이 힘겹게 벌린 틈이 다시 닫히지 않게끔 검과 방패를 앞세워 밀고 들어갔다.

몬스터들은 앞으로 튀어나온 인간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순간적으로 집중된 공격은 그에게 감당 못할 대미지를 가했다.

자신의 생명력은 물론이고 힐러의 힐량으로도 감당 못할 딜이 순식간에 꽂히자 탱커는 비명을 지르며 산화했다.

그러나 그 희생이 헛되진 않았다.

탱커 하나가 앞으로 돌출하며 어그로를 끈 덕에 공격대 전체에게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고, 이는 곧 공간 창출로 이어졌다.

작은 틈이었던 것을, 무시 못 할 균열로 만들기에 충분한 기회였다.

“닫히기 전에 통과해!”

기회만 도리고 있던 도진이 외쳤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최대한 전력을 보존한 20명.

아니, 로터스를 제외한 19명이 도진의 외침에 반응했다.

자신이 지키던 자리를 이탈해 도진에게 향한다.

같은 타이밍에 신라 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따라와!”

바리를 포함한 다섯이 장벽을 넘을 장벽에 생긴 균열로 달렸다.

총 24명의 인원이 돌파를 감행했다.

두 공격대도 그들의 돌파를 필사적으로 지원했다.

그럼에도 24명이 온전히 장벽을 넘진 못했다.

발이 느린 힐러 한 명이 눈먼 공격에 맞아 바닥을 굴렀고, 그런 힐러를 살려 보려 잠시 발을 멈춘 탱커가 그대로 낙오한 것.

가뜩이나 최종 결전을 위해 가려 뽑았던 멤버 중 한 명이었던 로터스가 리타이어한 데 이어 탱커와 힐러가 한 명씩 더 빠지다니.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은 도진을 포함한 모두에게 없었다.

인간의 신장으로는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몬스터들이 몸뚱이로 세웠던 장벽 뒤에는 그만큼 압도적인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멸망의 조각을 중심으로 뭉친 검붉은 슬라임과 같은 질감의 물질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어미의 자궁 속에 있는 태아를 그대로 바깥으로 끄집어 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걸 본 도진은 생각했다.

‘저건 또 뭐야?’

자신이 알고 있는 이번 월드 보스의 모습과 공통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도진이 기억하는, 자신이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흘러갔던 첫 번째 월드 보스의 이름은 ‘태고의 짐승’.

이름 그대로 그것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짐승의 모습이 뒤섞인, 아득한 옛날 이 땅을 거닐던 멸종한 짐승들의 교집합.

그런데 저건 누가 봐도 저건 인간의 태아를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변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든 월드 보스가 생성되기 전에 여기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도진은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일방적으로 저놈을 때릴 수 있는 이 한순간을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이 시간을 단 1초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화염포탄》

첫 오프닝 딜은 완전히 충전된 파멸 룬의 힘으로 강화한 「화염포탄」이었다.

덩치가 큰 적에겐 크게 폭발하는 마법의 효율이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도진은 쉬지 않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약간의 캐스팅만 감수하면 가장 높은 DPS를 뽑아낼 수 있는 3성 공격 마법을 속성별로 난사한다.

그런 도진의 모습은 공격 신호를 대신했다.

월드 보스의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에 잠시 주춤했던 다른 사람들은, 조우와 동시에 전력을 다해 극딜을 꽂아 넣는 도진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공격!”

바리가 활을 들어 올리며 외쳤고, 탄토는 재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때.

우우웅.

대기와 마나가 진감했다.

그걸 가장 민감하게 느낀 건 도진이었다.

아니, 「적야」를 지닌 도진은 느끼는 게 아니라 보고 있었다.

주변의 마나를 게걸스레 집어삼키며 소용돌이치는 현상이.

그 중심은 태아의 심장부. 멸망의 조각이 있는 곳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멸망의 조각이 박동을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

완성되지 않은 태아가 입을 벌려 절규한다.

[멸망의 조각이 의태를 서두릅니다.]

[월드 보스 ‘태고의 인류’가 깨어날 때를 앞당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 절규에 맞춰 주변에 있는 영양분이 태아에게 날아들었다.

여기서 영양분이라 함은 각종 몬스터의 형상으로 의태하고 있는 검붉은 슬라임을 뜻한다.

즉, 놈은 아군을 집어삼켜 가며 자신의 육신을 완성하려 하고 있었다.

“넋 놓고 있지 말고 딜해요! 탱커들 앞라인 잡고, 힐러들 치유 주문 장전하고! 엄폐물 없으니까 탱커 뒤에 딱 붙어서 엄폐물로 쓰는 거 잊지 말고!”

도진은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하며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도진이 미지의 적에게 누적 딜을 쌓는 데 열과 성을 다하는 사이, 주변 몬스터들을 액상 슬라임으로 변환해 잔뜩 흡수한 태아가 몸을 일으켰다.

-끼아아아아악!

검붉은 색깔의 갓난아기는 그로테스크 그 자체였다.

눈은 정면에만 6개가 달렸고, 뒤통수에도 6개, 양쪽 관자놀이에 각각 2개씩 달렸다.

총 16개의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주변을 살피며 입을 쫙 벌리는데, 흡사 대왕고래의 입처럼 생겨먹었다.

[월드 보스 ‘태고의 인류’가 되살아났습니다.]

[신화의 시대를 살아간 거인이 눈을 떴습니다.]

도진은 메시지가 아닌 아기에 집중했다.

보스가 생성되어 눈앞의 적을 인식하게 될 이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방향성 없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던 눈동자들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간 무리를 포착했다.

아기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모션만 보면 부모 앞에서 떼를 쓰기 위해 바닥을 내려치는 자세였으나 문제는 엄청난 마나가 아기의 손에 응집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도진은 난사하던 공격 마법을 거두고, 바로 탱커 뒤로 숨으며 외쳤다.

“탱커 뒤로 숨어!”

직후 아기가 손바닥으로 땅을 찍었다.

찍은 곳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발생하며 주변을 휩쓸었다.

‘태고의 짐승이 쓰던 충격파 업그레이드 버전인가.’

땅을 내려치는 식의 범위 공격은 태고의 짐승뿐만 아니라 대형 보스의 특징적인 패턴이다.

태고의 짐승도 비슷한 기술을 썼는데, 범위가 이렇게 넓지는 않았었다.

지금은 거리에 비례해 피해만 줄어들 뿐이지 공격이 미치는 범위 자체는 지평선까지 충격파가 이어지는 거 같았다.

‘그래도 탱커 뒤로만 숨으면 버틸 만은 해서 다행이네.’

거기다 멸망의 조각이 천천히 시간을 들일 틈을 주지 않고 들이닥친 덕에 월드 보스는 미완성 상태에서 깨어났다.

급히 다른 슬라임들을 흡수해 제작을 앞당겼다고는 해도 그 완성도에 있어 완벽할 수는 없을 터.

“탱커들 달라붙고! 큰 패턴 하나 지나갔으니 우리 차롑니다!”

승부를 보려면 지금이었다.

슬라임 몬스터들이 태고의 인류에게 먹힌 덕에 뒤쪽에 남아 있던 인원들이 일부나마 살아서 월드 보스 공격에 동참했다.

신화시대를 살았었다는 되살아난 거인족 아기를 죽이려 달려드는 인간의 모습은 곤충에 달라붙은 개미를 보는 것만 같았다.

탱커 여럿이 정면에서 손과 팔을 찔러 대며 어그로를 끌었고, 근거리 딜러들은 아기의 뒤편에서 공격을 먹였다.

그런데 아무리 칼로 베고 창으로 찔러도 아기는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시켰다. 뛰어난 재생력이 특징인 건 태고의 짐승과 같은 것 같았다.

‘이러면 이렇게 해야지.’

도진은 머리만 노리던 마법의 조준점을 바꿨다.

최대한 전신에 골고루 폭발형 마법을 난사한다.

도진이 쏜 폭발과 화염은 거인족 아기의 전신에 「멸망의 집행자」 효과를 적용시켰다.

도트 대미지와 더불어 모든 재생 및 치유 효과를 반감시키는 저주를 건 것이다.

사전 준비 퀘스트 공지에서 괜히 ‘월드 보스 레이드에서 사용할 특전’을 준다고 한 게 아니었다.

재생력을 테마로 한 보스를 상대함에 있어 재생력을 반감시키는 능력만큼이나 확실한 ‘특전’은 드물 테니 말이다.

“치유 방해하는 건 뭐든지 써 버려! 들어가는 딜이 재생되는 피보다 많으면 죽일 수 있다!”

여기 모인 사람은 일단 레벨만 따져도 상위권 고인물이었다.

뛰어난 재생력을 과시하는 보스를 보자마자 치유 방해라는 방법을 떠올리는 건 그들에게도 아주 기본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대표적으로 탄토는 이미 단검에 재생력을 감소시키는 독을 발라서 최대한 이곳저곳 찌르는 중이었다.

“내 화살이 꽂히는 곳을 집중 공격해요!”

바리는 화살에 저주를 담아 쐈다.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순간마다 소름 돋는 비명소리가 울리는 그녀의 공격은 「멸망의 집행자」 이상으로 아기의 재생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치고 박았을까.

아기가 다시 손을 치켜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두 손 모두였다.

그 모습에 이미 한번 패턴을 겪었던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탱커들은 주변에 있는 다른 탱커들과 합심해 인간 엄폐물을 자처했고, 딜러와 힐러들은 가까운 탱커를 찾아 그쪽으로 달렸다.

쿠웅!

아기의 손이 바닥을 내려치고, 충격파가 발생했다.

원형으로 퍼지는 두 개의 충격파가 급조된 인간 엄폐물을 후려친다.

불운하게도 탱커 뒤로 숨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트럭에 치인 것처럼 솟아올랐다가 바닥에 처박혀 죽었다.

“딜하면서도 계속 탱커 위치 확인해요! 정신 놓고 있다가 패턴 나올 때 못 피하면 그대로 골로 가니까!”

충격파에 휩쓸려 죽은 인원만큼 전투는 더 힘들어졌다.

딜은 딜대로 밀리고, 힐도 부족해졌다.

말 그대로 딜로 밀어야 하는 적이다 보니 사람 하나하나가 아쉬웠다.

그래도 딜이 밀리긴 밀리는 모양이다.

아기의 상처 재생이 갈수록 느려지고, 공격 패턴은 더욱 포악해지는 걸 보니.

유구한 게임 역사 속에서 보스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지랄 맞아지는 존재라는 걸 생각할 때 저놈의 생명력이 줄고 있는 건 확실했다.

[월드 보스 ‘태고의 인류’가 격분합니다.]

그걸 증명하듯 페이즈 전환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떴다.

동시에 놈의 16개의 눈이 데구륵 구르다 딱 하고 멈췄다.

각각 16명의 대상을 노려보며 멈춘 눈을 보며 도진과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이 찢어지게 외쳤다.

“피해!”

노려진 인원 중엔 도진도 있었다.

쓰던 마법을 끊고, 「염동강화」를 최대한 끌어올려 뒤로 뛰었다.

지이잉.

그 순간 고열의 레이저가 도진이 있던 자리를 수평으로 긋고 지나갔다.

미리 조준된 사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면, 피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빛의 속도를 자랑하는 공격이었다.

“으아아악!”

레이저 공격을 피하느라 보스 바로 앞으로 굴러 버린 신라 길드원 하나가 보스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보스는 그대로 그걸 입으로 가져가 씹어 버렸다.

그러면서 한쪽 손은 번쩍 들어 올린다.

충격파를 쓰려는 것이었다.

도진은 탱커를 찾아 달리며 생각했다.

‘하나만 해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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