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39화 (139/271)

139

최악의 수문장 브라킨은 수많은 유저를 퀘스트 시작과 동시에 도륙해 버렸다.

그렇게 리타이어한 유저들은 강제로 관전자 포지션에 서게 됐다.

-탄토는 아직도 살아 있네. 은신이 좋긴 좋구나.

-탱커들 딜 보정 세게 받았는데? 오히려 딜러보다 더 쉽겠다.

-법사는 사람도 아니냐! 아무리 솔플 강제라 어쩔 수 없다지만, 힐러한테 힐 스킬로 딜 넣게 해 주면 법사는 뭐 굴러다니는 쓰레기냐?

└지랄 ㄴ. 어차피 힐 스킬 공격용으로 쓰게 보정해 줬다고 해도 법사만큼 딜 절대 안 나온다.

사전 준비 퀘스트 이틀 차.

수많은 유저가 도전하고 분석한 끝에 제대로 된 브라킨 공략법이 나왔다.

-도시 밖에서 싸우면 안 됨. 다시 끌고 들어가서 좁은 골목길로 뛰어다니면 이 새끼가 추적하면서 다 때려 부수는데, 그러다 지치면 잠깐 움직임이 멈춤. 그때가 극딜 타이밍임.

잡진 못해도 생존 시간은 늘려 보겠다며 뛰어다닌 모 스트리머의 노력에 의해 발견된 공략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덕분에 브라킨을 뚫고 다음 단계에 진입하는 유저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일 뿐. 그 숫자가 결코 많지는 않았다.

-어떻게 계속하다 보면 누군가는 깨겠네. 내가 볼 때 탱커 쪽에서 나올 거 같다. 안정성이 넘사임.

-난 탄토가 최초클 할 거 같은. 브라킨 공략 나오기 전에 최초로 통과한 사람이기도 하고.

-근데 지금 브라킨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죽는 거 같지 않냐? 잠수함 패치로 너프한 거 아님?

-그냥 공략법을 찾아서 그런 거 아닐까?

아주 공략이 불가능한 난이도가 아니란 게 밝혀지자 사람들은 슬슬 누가 최초 공략자가 될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대중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공지사항에도 최초 공략자는 더 큰 보상을 받는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실력에 자부심 좀 있는 사람, 유명세로 먹고사는 방송인, 더욱 크게 세를 불리고 싶은 길드 등이 승부욕을 불태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형 길드들 입꾹닫 하고 겜하는 꼬라지 좀 봐라 ㅋㅋ. 지들은 다른 방송 보고 컨닝 오지게 하면서 정보 안 푸는 거 역겹네.

-지금 인방 하는 애들도 하나둘 겜 끄고 있음. 말은 피곤해서라고는 하는데 그냥 눈치 싸움 작한 거지 뭐.

-솔직히 이해는 감. 생각해 봐라. 브라킨도 통곡의 절벽이네, 악마의 사생아네 하면서 울부짖었는데 공략 나오니까 쉬워지잖아. 급하게 가다가 엎어지느니 다른 사람 뒤져 가면서 풀리는 정보 수집해서 후발주자 하는 게 낫지.

-그럼 결국 최초 공략 타이틀은 못 얻잖아?

-어차피 최종 보스 처음 만난다고 최초로 잡는 거 아니잖아. 오히려 적당히 정보 풀렸을 때 후진입하는 사람이 유리하지.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선발대가 눈치를 보며 공략을 멈추자 여론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진짜 낭만 다 뒤졌네. 최초니 뭐니 하는 거 다 낭만 아님? 이렇게 눈치 보고 컨닝하고 해서 1등 먹으면 뭐 하냐.

-그래도 1등 하면 좋긴 하지 ㅋㅋ 그리고 1등을 못 하더라도 나중에 정보 싹 다 풀리고 공략 나온 다음에 하면 진도는 더 뽑을 거고 그럼 보상도 더 먹잖아.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 얼마나 빨아 먹느냐에 따라 향후 성장 기댓값이 아예 달라지니까 이해는 된다. 그래도 낭만 다 뒤졌다는 말엔 동의한다.

모두가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낭만을 찾고 있을 때.

[최초 공개 15분 전]

[(스포)용사 매튜 퀘스트 공략 영상 풀버전]

도진 채널에 최초 공개 예약 업로드로 영상이 걸렸다.

-뭐야? 웬 공략 영상? 이벤트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브라킨 공략 올린 거 아님? ㅋㅋ 사이버 렉카들 잘하는 짓 있잖아. 이미 다 퍼진 정보 짜깁기해서 조회 수 빨아 먹는 거.

-누구냐? 우리 도진한테 최초 공개 같은 금단의 기술 가르쳐 준 새끼.

-깬 거 아냐? 진은 자기가 깬 거 아니면 영상 자체를 올리질 않잖아.

└말이 되냐 ㅋㅋ 법사로 이걸 어케 깸. 그냥 자기가 죽은 지점까지 정리해서 올리는 거겠지.

-다 닥쳐! 우리 법게의 유일신이자 마법사계의 유일한 희망 도진 님이라면 깼을 수도 있다!

└악성 도빠마저 ‘수도 있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 ㄷㄷ

로트라넷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원래도 투기장 같던 각 게시판은 순식간에 화재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달아올랐다.

15분은 금방 흘러갔고, 공략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은 도진이 용사 매튜의 유령과 함께 퀘스트를 진행하는 장면을 담백하게 담고 있었다.

자잘한 부분은 과감히 쳐내고, 오직 도진이 퀘스트 클리어를 위해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영상이었다.

영상의 마지막은, 최종 보스 르메인의 목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거지! 이게 낭만이지!

-진짜 미쳤다. 최초클 노린다는 놈들이 다 서로서로 누가 먼저 죽나 눈치 게임 하고 있는데 혼자서 독고다이로 클리어 해 버리네.

-공략이고 정보고 필요 없다는 듯이 00시 00분에 바로 시작해서 다이렉트로 조져 버렸네…….

-얘들아, 근데 저 새끼 저거 마법사 맞냐? 뭔 움직임이 저렇게 빨라? 뭔데 달리는데 저딴 속도가 나오는데.

-아니, 시발 ㅋㅋ 방법이야 둘째치고, 어떻게 저딴 반사 신경이 나오는 거지? 공격을 맞아 주질 않네.

-그것보다 왜 저게 됨? 저렇게 움직이면서 캐스팅을 하네? 심지어 5성 마법 캐스팅을 조금씩 끊어 가면서 완성하는 식으로 쓴다고……?

공략 영상의 형태를 띠고 발표된 도진의 최초 공략 소식에 사람들은 감탄하고,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특히 언제나 그렇듯 마법사 유저들은 도진의 마법사 플레이에 더 관심을 뒀으나 이젠 감탄이나 경악을 넘어 해탈한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이젠 뭐 그러려니 한다……. 똥컨 주제에 마법사 고른 내 잘못이지, 뭐. 요즘 시골 구석에서 얼음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장사 잘되더라. 너희도 그냥 마법 가지고 돈이나 벌어.

-ㅋㅋㅋ 나도 진 영상 보다가 현타 와서 요즘 그냥 마법공방에 취직했어. NPC 사장님한테 월급 받아 가면서 마법물품 제작 숙련도 올리고 있는데 이것도 나름 재밌는 거 같아.

평소보다 훨씬 더 빠른 타이밍에, 적극적으로 폭탄을 던진 탓인지 도진은 어마어마한 어그로를 먹게 됐다.

그리고 이것은 도진이 노린 바였다.

‘최초클 소식이 퍼졌으니, 최초클을 노리던 사람 모두가 날 주목하고 있겠지.’

자신에 대한 주목도가 확 치솟고 있는 순간을 노려 도진은 채널에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도진입니다.

이번 월드 보스 레이드를 대비해 대규모 공격대를 구성하여 협력할 분들을 모집할까 생각 중입니다.

저처럼 혼자 게임을 하는 분들과 모여서 조금 더 재미있게 이벤트를 즐기면서, 동시에 월드 보스 레이드로 발생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밑밥을 뿌리자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원 자격 조건이 따로 있나요!?

-105레벨 힐러 무임노동 가능합니다. 제발 데려가 주세요!

-하… 레벨업 열심히 해 둘걸. 86레벨로는 힘들겠죠……? ㅠ

-어차피 저레벨은 배제될 그들만의 리그겠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형이 싹 쓸어먹어 줘!

댓글 반응만 격한 게 아니었다.

도진이 글을 올리고 얼마 안 있어 라엘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유무선 통신 수단에 불이 났다.

문의 전화와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이 정도로 난리가 난 사안이니, 돈 냄새 나는 움직임도 당연히 일어났다.

[“도진 씨,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예요! 대박이에요, 대박! 지금 광고랑 협찬 문의가 얼마나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지 알아요?”]

말 그대로 밀물처럼 밀려 들어오는 광고, 협찬 문의에 마케팅 팀장은 기쁨의 비명을 내질렀다.

* * *

대규모 공격대라 표현하긴 했지만 도진이 구상 중인 건 유연한 동맹에 가까웠다.

좀 더 직설적으로 풀자면, 월드 보스 레이드 기간 동안 서로 견제하거나 훼방을 놓지 않는 수준의 관계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몬스터 진영은 일치단결해서 싸우는데 인간 진영은 서로 보상 더 먹겠다고 견제하고 싸우면 그거만큼 노답이 또 없거든.’

도진은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고, 그렇게 키운 덩치를 기반으로 집단 간의 협력 관계를 만들기로 했다.

처음부터 ‘몬스터 진영 vs 인류 진영’으로 구도가 잡히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인원 채우는 거야 레벨 순으로 자르면 되고. 중요한 건 월드 보스 타격대인데. 이건 좀 신중하게 골라야지.”

도진은 회사 직원들이 열심히 작업해 추려 준 자료를 바탕으로 월드 보스 공략의 핵심이 될 인원을 추렸다.

“레벨 필터 먹이고, 다음으로 사전 퀘스트 공략자로 조건을 두면…….”

조건을 하나씩 설정할수록 화면에 뜨는 인원이 확확 줄었다.

“탄토… 얘는 이때부터 날아다녔네.”

역시 레벨과 실력을 최상위권으로 두고 보니 아는 이름이 몇몇 보였다.

순수 도적 네임드로 유명했던 탄토.

랭킹이 오르락내리락하긴 했지만, 최고 한 자릿수는 찍었던 유저다.

“의외네. 얘도 혼자 노는 거 좋아하던 애였는데 이런 걸 다 신청했어?”

탄토 정도면 충분하지.

“튼튼한 탱커는 없나?”

아쉽게도 사전 퀘스트를 클리어한 탱커는 개인 신청자 목록에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실력 좋은 탱커는 웬만하면 대형 길드 소속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아직 테레사가 탱커로서 많이 부족한 시점이라는 게 다시 생각해도 아쉽다.

“이번에 확 성장시켜야겠어.”

어쩔 수 없지. 지원자 중에 고레벨 탱커랑 힐러를 묶어서 방어 특화 파티를 따로 만들자.

도진은 활용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월드 보스를 효율적으로 몰아세워 처치할 수 있는 공격대를 짜 나갔다.

하나하나 완성형 파티를 짠다기보다 각각의 파티에 특화된 역할을 할당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원딜 파티 하나만 더 만들고 나머지는 싹 다 다른 데로 돌려야지.”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천지현이다.

“어, 누나.”

[“도진아, 네가 여기저기 연합하자고 요청 보낸 거 있잖아. 답장 오기 시작했거든. 일단 신라 길드가 제일 먼저 참여 의사를 밝혔어.”]

“신라? 괜찮네.”

현재 활동 중인 길드 대부분이 여러 사건으로 해체되지만, 신라는 미래에 더욱 강력한 대형 길드로 발돋움할 길드다.

이런 기회에 인연을 터서 나쁠 게 없는 상대였다.

[“아, 잠깐만 또 연락 왔다는데?]

하나둘 월드 보스 레이드 연합에 참여하겠다는 길드들이 늘어 갔다.

‘이쪽 덩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어차피 반강제적으로 다 같이 협력하는 수밖에 없어진다. 그러면 아군 트롤링으로 피해가 확산되는 건 최대한 막을 수 있어.’

재앙을 맞이하기 위한 도진의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