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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오브젝트 ‘실패한 영웅의 검’을 손에 넣었습니다!]
[히든 오브젝트를 획득해 특수 버프 ‘실패한 용사의 의지’와 ‘죽음을 되돌려 줄 자’가 발동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능력치 상승이 찾아왔다.
버프 유지 시간은 겨우 10초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엄청난 재생력을 지닌 르메인을 단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공격력이 생겼다.
《불기둥》
도진은 자신의 발아래 불기둥을 깔았다.
아무리 본인의 마법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쓰면 피해를 입는 건 필연.
‘죽지만 않으면 돼!’
그러나 자신을 옭아맨 살덩이를 단번에 불사르기 위해서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높은 마법 방어력도 있고, 잠깐 켰다 끈 정도로는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겨우 그걸로도 생명력이 주르륵 줄어든다.
그래도 떨쳐낼 건 다 떨쳐냈다.
도진은 마법을 장전하며 돌진했다.
《화염포탄》
그러고는 캐스팅을 끝내자마자 전방을 향해 발사했다.
열과 폭압으로 자신을 가로막기 위해 움직이는 살덩이들을 일제히 날려 버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 공백이었다.
르메인과 도진 사이에 놓인 공간에 순간적인 공백이 생겼다.
펑.
도진은 도약과 동시에 등 쪽에 염동력을 분출했다.
그렇게 실린 가속도를 그대로 실어.
퍼억.
르메인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자세를 제어할 겨를도 없고, 무식한 염동방출로 속도를 높였기에 공격은 말 그대로 형편없었다.
참격보단 차라리 충돌에 가까운 꼴사나운 일격.
그래도 목적을 달성하기엔 충분했다.
툭 하고 르메인의 목이 떨어졌다.
특별한 연출도 없었다.
살아 있던 르메인이 죽고, 그걸 감지한 황궁 전체에 걸쳐 그려진 일곱 번째 마법진이 발동됐다.
지금까지 활성화했던 제단의 마법진이 그래 왔듯 발생한 죽음을 감지하고는 신선한 죽음이 토해 내는 양분을 게걸스레 삼켰다.
덧없이 흡수되어 사라지는 르메인과 살덩이를 바라보는 도진.
그 옆으로 나타난 매튜는 슬픔마저 잃어버린 듯 메마른 얼굴로 르메인의 때늦은 죽음을 지켜봤다.
【…이런 거야.】
도진은 매튜를 바라봤다.
시스템이 ‘실패한 용사’라 부른 인물을.
그는 르메인의 죽음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실패한 건 이런 거다. 실패한 용사가 만든 세계의 최후란… 이렇게도 보잘것없어. 장엄한 최후?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지. 그런데 이런 최후도 있는 거야.】
매튜가 무릎을 꿇었다.
【잘 봐둬. 흔치 않은 기회다. 이렇게 대차게 실패한 자의 말로를 보고, 반면교사 삼을 기회가 흔할 리가 있겠어?】
“…그 말대로네. 뭔가 거창한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더니. 허망할 정도로 조용해.”
도진의 솔직한 감상에 매튜가 큭큭대며 웃었다.
【이제 서서히 이 세계는 죽어갈 거야. 여기선 안 보이지만, 제도 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마법진이 모든 생명을 빨아들일 테니.】
“당신은 어떻게 되는데?”
【이렇게 되지.】
매튜는 자신의 심장어림에 손을 집어넣었다.
당연히 유령인 그에게 심장은 없다.
대신 그가 꺼낸 건 본인의 정수였다.
【거래를 했다고 했지? 대금으로 지불하기로 한 건 나다. 대차게 말아먹긴 했어도 워낙 저지른 사고가 크다 보니 내 가치가 썩 나쁘진 않나 봐. 날 갈아서 보상을 만드는 데 쓴다더라.】
“…젠장. 끝까지 사람 입맛 씁쓸하게 만드네.”
【너무 마음 쓸 거 없어. 나한텐 이게 최선의 해피엔딩이다. 완전히 멸망한 세계를 떠도는 유령 신세보다는 이게 나아.】
그건 안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빴다.
참기 힘든 씁쓸함에 도진이 침묵하자 매튜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네 덕에 이렇게나마 엔딩을 장식할 수 있었어.】
가장 끔찍한 소설은 배드 엔딩도 새드 엔딩도 아닌, 결말지어지지 않은 소설이다.
용사 매튜의 이야기는 최악의 결말을 코앞에 두고 멈춰 버린 소설과 같았다.
차라리 다 읽고 끝내고 싶은데, 끝을 보여 주지도 않아서 같은 페이지를 강제로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
매튜는 자신이 강제로 읽어야 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대신 펼쳐 준 도진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젠 편히 쉬어.”
매튜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정수를 파괴했다.
‘날 써서 뭘 만들겠단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써먹어라. 그리고… 넌 실패하지 마라.’
스르륵- 하고 무너지며 매튜가 사라졌다.
정말 허망한 마지막이었다.
[죽음 잃은 자들에게 안식을 선물했습니다.]
[<죽음을 돌려준 자> 업적 달성]
[멸망이 유예된 세계에 멸망을 집행하였습니다.]
[<운명의 수복자> 업적 달성]
[두 업적 보상은 퀘스트 보상에 가산됩니다.]
세계가 멸망을 향해 걷기 시작하자 여러 달성 메시지가 떴다.
[퀘스트 완료!]
[어설프게 뒤틀린 운명을 원래대로 돌려놓았습니다.]
[한 세계의 멸망에 관련된 사건에 개입했습니다.]
[퀘스트 보상 ‘신화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주변에 새하얗게 물들었다.
익숙한 장소다.
전개도 뻔하고.
도진은 허공을 노려봤다.
빨리 나오라는 의미로.
빛이 쭈뼛거리며 나타난다.
“…미안.”
도진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보여서 빛은 나타나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그런 빛에게 도진은 한숨을 섞어 말했다.
“나… 아니, 우리한테 동기부여라도 하고 싶었던 건가?”
이번 퀘스트는 진행 내내 노골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퀘스트 속 매튜의 세계는 이미 최악의 형태로 끝장난 상태였다.
완전한 멸망이 차라리 존엄을 되찾는 방법일 정도로.
그걸 위해 플레이어는 용사의 동료였던 자들의 비참한 몰골을 봐 가며 그들을 죽여야 한다.
퀘스트는 지속적으로 세계의 멸망을 막지 못한 자들의 비참함을 보여 줬다.
그들의 실패가 부른 세계의 말로 또한 함께.
심지어 마지막마저 시원한 맛은 하나 없이, 밋밋하고 시시한 최후를 목도하는 걸로 끝이 났다.
이 정도까지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걸 캐치 못 할 도진이 아니었다.
“멸망을 막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고, 그러니 열심히 분발해서 다가올 멸망에 대비하고 막아 내라고. 굳이 불쌍한 녀석들 배우로 내세워서 연극 한 편 보여 준 거잖아?”
“그런 의도가 없었다곤 안 할게. 다만 그 덕에 구원 받은 자도 있어. 그리고 너희도 다가올 시련을 이겨 내는 데 도움이 될 힘을 얻게 됐지.”
안다. 기분이 나쁘고 뒷맛이 쓸 뿐이지 결과만 놓고 보면 이게 최선이라는 걸.
자극적인 빈곤 포르노가 욕을 먹지만, 그것이 실제로 아프리카 극빈국의 아사자 수를 유의미하게 줄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기분은 나쁜데 비난하기는 또 애매하고.’
뭔가 찜찜함만 남는 거 같은데, 이걸 의도한 퀘스트였다면 참 제대로 먹힌 셈이었다.
생각을 이어 가 봐야 끝이 없을 주제였다.
“마무리하자. 그게 낫겠어.”
도진을 관찰하던 빛은 보상 정산을 시작했다.
태도와 표정만 봐도 자신들이 의도한 목표는 이루었다.
여기서 붙이는 모든 말은 사족이 될 터였다.
[‘신화의 파편’은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형태의 힘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자신들의 예상대로 이번에도 ‘최초’가 된 도진에게 빛이 물었다.
“도구와 능력. 어느 쪽이 좋아?”
갑작스레 주어진 선택지에 도진은 잠시 고민했다.
‘도구면 아이템일 거고, 능력은 말 그대로 캐릭터에 추가되는 스킬이나 특성이겠지.’
도진은 빛에게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해 봤으나 빛은 선택지를 준 것만으로도 무리를 하는 거라며 곤란해했다.
‘어쩌지…….’
고민하던 도진은 선택지를 골랐다.
“능력. 능력으로 하겠어.”
유물급 장비, 고가치 비약 등이 아니면 ‘도구’는 말 그대로 잠깐 유용하게 써먹는 용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는 ‘능력’은 당장의 효과는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내 힘’으로 남을 것이었다.
‘반대쪽 뚜껑을 열어 볼 수 없으니 전부 예측에 불과하지만, 웬만하면 이런 법칙이 통용되니까.’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었으나 한번 고른 이상 뒤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도진은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지에 집중했다.
“능력… 역시 너는 이쪽을 고르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듯 위아래로 움직이는 빛.
그 위로 홀로그램 창이 덧씌워졌다.
[‘신화의 파편’이 소모되며 특성 「멸망의 집행자」가 생성되었습니다.]
[멸망의 집행자]
[30초에 걸쳐, 입힌 피해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지속 피해를 추가로 입히며, 적의 모든 재생 및 치유 효과를 30퍼센트만큼 억제합니다.]
[적의 불사 속성을 무시합니다.]
주르륵 뜬 설명을 본 도진은 경악했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특성이었다.
사실상 특성 하나로 유물 장비 하나를 더 입는 수준의 능력이 생긴 수준.
30초에 걸쳐 들어간다고는 해도, 모든 마법의 공격력이 15퍼센트 상승한 것도 모자라 치유력 감소 디버프까지 따라붙게 됐다.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능력이 이 정도 수준이면 도구 쪽은 도대체 성능이 어떻다는 거야?”
도진이 무심코 뱉은 혼잣말.
아까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던 빛이 이번에는 대답을 했다.
“한 번쯤 기적이란 걸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이 만들어졌겠지.”
선택하기 전에 조언하는 건 안 되지만, 이미 선택의 결과가 나온 다음이라 상관없다는 듯이.
기억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는 말에도 도진은 아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일회용 기적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한번 쓰면 사라질 기적보단 역시 사기 특성 쪽이 훨씬 낫다.
보상 정산을 마쳐서일까.
빛이 깜빡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공간도 왠지 모르게 물결치는 거 같고.
“이번에는 여기까지인가 보네.”
역시나 빛이 작별 인사를 하려 했다.
그런 빛에게 도진이 먼저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
“굳이 억지로 동기부여하려고 할 거 없다고. 이미 소중한 게 망가졌을 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거든.”
인생도 박살 나 봤고, 도피처로 삼았던 로스타니아가 부서져 가는 꼴도 봤다.
그건 한마디로 매우 뭐 같은 경험이었다.
“다시는 망가지게 두지 않을 테니 걱정 마.”
빛이 조금 더 따뜻하게 반짝였다.
마치 희미하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다음에 또 볼 수 있길 바랄게. 그럴 수-】
있다면.
마지막 말은 공간의 붕괴와 함께 잘려 나갔다.
도진은 처음 퀘스트를 시작할 때와 같은 과정을 거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호언장담을 했으니… 그만큼 확실히 해야겠지.’
월드 보스 레이드의 예고편 격인 사전 퀘스트는 마무리했으나 아직 본편이 남았다.
전생에는 최초의 월드 보스를 두고 서로 먼저 잡겠다고 길드 단위로 난리를 치다 피해를 키웠었다.
월드 보스쯤 되면 난이도 때문에라도 최소한의 협력은 필요하다는 걸 학습하기 전이었기에 저지른 실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내가 구심점이 돼서 서로 협력하게 만들면 된다.’
도진은 월드 보스 레이드를 위한 판을 짜기 위해 로그아웃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