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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36화 (13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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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본격적인 퀘스트 수행을 위해 도시 안으로 잠입했다.

사실 들어오는 과정은 잠입이라 부르기 민망하긴 했다.

성벽 이곳저곳이 완전히 뻥뻥 뚫려 있어서, 그냥 몰래 걸어 들어오면 됐던 것.

다만 안으로 들어온 후에는 확실히 장르가 잠입 액션 쪽으로 바뀌었다.

‘이건 뭐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 같은 느낌인데.’

성벽 안 쪽의 도시는 죽지 못한 자들로 가득했다.

이미 오래전에 영혼이 깨져 이성을 상실한 그들의 행동양상은 딱 좀비 영화 속의 그것이었다.

천천히 배회하다가 주인공만 발견하면 발광을 하며 단체로 달려드는 그거 말이다.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몸을 숨기며 이리저리 뛰다 보니 도진은 뒷목이 뻣뻣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언제 도시 끝에서 끝을 왔다 갔다 해?’

현재 목적은 도시 곳곳에 우뚝 솟은 첨탑 여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마법진을 활성화하는 것.

표면적으로는 죄인을 수용하던 수용소였지만, 실상은 산 제물을 보관하는 창고 겸 의식을 위한 제단이었다는데… 육망성을 그리게끔 배치된 탑들을 서로서로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쪽 대로를 쭉 가로질러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

멀리 떨어진 첫 번째 탑을 보며 거리를 가늠하는 도진 옆으로 매튜가 나타났다.

유령인 그는 지금 길잡이와 정찰병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대로라고?”

한껏 낮춘 목소리로 되물은 도진은 매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기 위해 골목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어둑한 골목길과는 전혀 상반된, 말 그대로 뻥 뚫린 대로가 보였다. 죽다 만 자들 수백 명이 천천히 걷고 있는 모습은 덤이었다.

“…….”

도진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저 무리에 걸리면 비단 저것들만 몰려들고 끝날 각이 아니었다.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수백을 피해 도망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몰려들 거고…….

‘그러다 보면 진짜 좀비 영화 한 편 찍는 거지.’

도진은 매튜를 보며 물었다.

“따른 길은 없어?”

【있지. 문제는 어느 길을 고르든 필연적으로 큰길이나 광장을 지나쳐야 한다는 거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 매튜.

‘건물들이라도 멀쩡하면 지붕 위로라도 이동을 하겠지만, 멀쩡한 건물보다 무너진 게 더 많으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도진 눈에 건너편 길가에 있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건물에 붙어 있는 계단이 아니라, 마치 지하철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계단이었다.

“저건 어디로 통하는 계단이야?”

도진의 물음에 매튜가 휙 하고 날아갔다 돌아오더니 대답했다.

【됐다, 됐어! 수로처럼 생긴 통로야!】

매튜가 호들갑을 떨며 돌아왔다.

‘역시. 저렇게 생긴 게 웬만하면 다 그런 쪽이지.’

대충 예상하고 있던 도진은 바로 계단 쪽으로 달렸다.

“…….”

그런데 입구가 커다란 철문으로 막혀 있고, 쇠사슬과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아, 맞다. 미안. 유령으로 너무 오래 살았더니 까먹었네.】

도진은 한숨을 쉬며 마법을 썼다.

부식될 대로 부식된 자물쇠는 「점화」에 이은 「바람 칼날」로 손쉽게 부술 수 있었다.

녹슨 문은 여는 것도 일이었다.

「염동강화」가 아니었으면 힘으로 열지도 못했을 정도.

겨우겨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짝 마른 수로와 새까만 통로가 나타났다.

도진은 열었던 문을 다시금 닫은 뒤 어둠에 제약받지 않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이네.’

혹시나 쥐와 바퀴벌레 등 보기만 해도 소름 돋는 놈들이 생체 좀비 버전으로 강화돼서 나타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제물 의식 때 전부 죽은 거겠지.’

황제가 일으킨 의식은 인간이 생(生)보다 사(死)에 가까울 정도로 망가질 때까지 진행됐다고 했다.

그건 곧 이미 그 순간에는 인간보다 육체적으로나 영혼적으로 단단하지 못한 다른 생물들은 이미 전멸한 상태였다는 뜻이 된다.

‘어쨌든 조용해서 좋네. 바짝 말라서 악취도 없고.’

매튜는 지하 통로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제국이랑 싸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이런 것도 조사하고 그랬을 거 아냐.”

도진의 물음에 매튜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했다.

【내가? 왜? 그냥 힘으로 뚫으면 되는걸.】

“…그래.”

하긴 무려 ‘죽음’을 베어 버린 괴물이 뭔 잠입이냐.

생각해 보면 이 도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매튜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생명과 영혼을 착취해 힘을 불린 마왕 황제를 이긴 장본인이니 비루하게 지하를 통해 잠입할 이유 따위 없었겠지.

납득한 도진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매튜가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뭐? 위에 뭐 있어?】

“너 벽 통과할 수 있잖아. 위아래로 왕복하면서 길 안내나 하라고.”

전직 먼치킨 용사면 뭐 하나.

지금은 한낱 유령인데.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써먹기 참 좋은 유령이라는 점이다.

【너 천재냐?】

힘이 너무 세서 머리 쓸 일은 별로 없었을 전직 용사는 도진의 아무것도 아닌 발상에 감탄하며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천장에 정강이 어림만 남은 상태로 도진에게 물었다.

【나 지금 머리는 위쪽에 있거든? 아래서 나 보여?】

말하며 발을 오리처럼 휘젓는 매튜.

“어어, 보인다.”

도진은 그에게 대답을 돌려줬다.

【이렇게 알려주면 되겠다. 난 위쪽에서 움직이고, 넌 아래서 나 보면서 쫓아오고. 어때?】

“천천히 움직이라고.”

도진과 매튜는 서로 호흡을 맞추며 이동했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도시를 누비는 데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지상에서 움직이는 선택을 했다면, 정말 몇 날 며칠을 추격전을 벌여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그래도 지하를 통해 이동한 덕에 1시간이 좀 안 되어 첫 번째 탑이 있는 곳 근처에 도착했다.

지하 통로와 위쪽의 길이 겹치지 않는 곳이 많아 돌고 돌아서 와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을 크게 절약한 셈이다.

【도착했어. 이제 첨탑 아래쪽에 있는 제단에 제물을 바치면 돼. 첨탑의 마법진이 활성화될 때까지 말이야.】

살아 있는 제물이 제단 위에서 죽는 것으로, 제물의 생명과 영혼이 제단에 흡수되는 구조.

산 것이 죽는 그 순간에 터져 나오는 강렬함과 신선함이 제물의 조건이라고, 매튜가 덧붙였다.

지상으로 올라와, 제단이 있는 첨탑 지하로 향한 도진은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제 복장을 한 괴물들을 마주쳤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 골치 아프네.”

산 제물을 관리하고, 그들을 제단에 올려 처형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사제 괴물들은 던전 입구를 가로막은 몬스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저 안쪽에 있을 제단 위에서 이것들을 죽이면 된다는 말이지?”

【정확해. 반드시 살아 있는 상태에서 그 위에서 죽여야 효과가 있으니까 참고하고.】

그러면 지금은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네.

도진은 자신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사제 괴물들을 보며, 전신에 「염동강화」를 걸었다.

‘간다!’

속으로 기합을 외치며 사제 괴물들을 향해 돌진하는 도진.

괴물들도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도진은 그것들 틈을 비집고 달렸다.

염동력으로 강화된 육체는 사제 괴물들보다 더 빠른 달음질을 가능케 했다.

‘멈추는 순간 좆 된다.’

한번 시작한 이상 중간에는 멈출 수 없는 추격전이 시작됐다.

“길!”

달리면서 외치자 매튜가 앞서 날아갔다.

【직진! 직진하면 제단이다! 나무문 하나 있으니까 알아서 열고!】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열심히 제치며 달리다 보니 매튜가 말한 문이 보였다.

높이 3미터쯤 되어 보이는 나무문이었는데 이미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바짝 말라서 내구성은 형편없어 보였다.

마법을 쓸 것도 없다. 도진은 팔을 뻗으며 외쳤다.

“아네모네!”

도진의 팔에서 아네모네의 상체를 내민 아네모네가 앞발을 휘둘렀다.

콰직.

커다란 충격을 받은 나무문이 요란한 소리와 대량의 먼지를 발생시키며 부서졌다.

그 순간 문을 통과한 도진에게 커다란 대검이 날아들었다.

욕을 할 겨를도 없이 도진은 염동력을 방출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체내 염동력을 역추진 부스터처럼 쓸 수 없었다면 꼼짝없이 머리에 직격당했을 공격.

“이런 것도 미리 경고해 줘야 할 거 아냐!”

【정신없어서 먼저 들어가 보는 걸 깜빡했어!】

도진은 다시 달려드는 기사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제단을 확인했다.

‘저거구나.’

정면으로 보이는 폭 3미터 정도 되는 계단.

그 끝에 커다란 원형 구조물이 보였다.

미형적인 건 모르겠고, 구조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든다.

‘제단만 선점하면 되겠네.’

적이 접근하기 힘은 고지대.

그것도 고지대로 오르는 길이 좁은 계단뿐인 지형이라니.

이건 마법사에겐 꿈의 무대 같은 전장이었다.

도진은 재빨리 달렸다.

다른 놈들보다 월등히 덩치가 크고 움직임도 빠른 기사 괴물이 따라붙었지만, 무시했다.

파앙, 파앙, 파앙.

연속으로 염동력을 방출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이이익!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제단 위쪽에 있던 사제 괴물들이 달려들었지만.

《돌풍》

도진은 그것들을 돌풍을 일으켜 아래로 떨어뜨렸다.

제단 주변으로 해자처럼 파여 있는 구멍 아래로 뚝뚝 떨어진 놈들은 퍼석 하는 소리를 내며 낙사했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제단 위를 점령한 도진은 바로 뒤돌아서서 마법을 준비했다.

《대지의 창》

먼저 가장 골치 아플 게 확실한 기사 괴물이 계단을 오르는 걸 막은 뒤.

《화염창》

연속으로 마법을 날려 기사 괴물을 처리했다.

일반 몬스터치고는 끈질겼지만, 도진의 압도적 화력은 약간 끈질긴 정도로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제물만 바치면 되는 건가.”

제단 아래로 바글바글 모여드는 사람이었던 것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계단을 오르려 했다.

그러다 저들끼리 밀고 밀리며 제단 주변 낭떠러지나 다름없는 해자 아래로 추락했다.

계단을 가득 채운 적들이 밀려드는 모습에, 도진은 약간 뒤로 물러나서 마법을 장전했다.

펼쳐진 황금빛 책자가 황금의 마력을 발산한다.

《불기둥》

적들이 충분히 올라오길 기다렸다가 도진은 제단 입구에 불기둥을 깔았다.

죽음을 잃은 자들은 불기둥을 보고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진은 그들에게 죽음을 되찾아 줄 수 있는 존재였다.

불기둥에 들어선 괴물들은 순식간에 근육이 쪼그라들어 힘을 잃고 바닥을 뒹굴며 죽음을 맞이했다.

-끄아아악!

괴물처럼 변했으나 고통에 젖어 내지르는 비명은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시체는 빠르게 늘어갔다.

《회오리바람》

늘어난 시체가 거슬릴 때쯤 도진은 강렬한 바람으로 그것들을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런 뒤 다시 입구를 마법으로 틀어막았다.

첨탐을 지키던 괴물 전부가 제단의 제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마법사에게 이런 식의 전투는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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