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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시 00분이 되자마자 퀘스트를 시작한 건 도진만이 아니었다.
월드 보스 레이드 사전 준비 퀘스트 진입 메시지는 그 순간 게임에 접속하고 있던 유저는 물론이고, 00시 00분 이후 접속하는 모든 유저에게 공평하게 노출됐다.
퀘스트에 대한 기대로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많은 유저들이 메시지가 뜨자마자 퀘스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현재.
[제목: 똥똥똥똥똥!]
[이 자식들은 정도라는 걸 모르는 건가? 사람이 깰 수 있는 수준으로 난이도를 조절해야지. 퀘스트 시작과 동시에 덤프트럭으로 사람을 쳐 버리면 어쩌잔 거냐?]
-얘 왜 이렇게 똥 타령 하는 거야?
└너 번역 설정 직역으로 돼 있는 거 아님? 일본 애들 욕이 가끔 그렇게 번역됨.
-너도 당했구나?
-시발 ㅋㅋ 나도 유령 따라갔다가 뭐가 쿵쾅쿵쾅하더니 바로 창 맞고 비명횡사함.
LOST 커뮤니티는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도전의 탑 때는 그래도 저층은 할 만했음. 그래서 레벨 낮은 사람도 달달하게 보상 챙길 수 있었고. 그런데 이번엔 전체 유저가 전부 시작부터 탈락당하는 수준의 난이도임. 이건 명백한 난이도 조절 실패라고 본다.
-이게 본편 아니잖아? 그냥 어렵게 내고 깨는 사람한테만 보너스 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납득은 감.
-나도 별 불만 없다. 죽자마자 반사적으로 욕했는데 그래도 참여만 해도 보상 달달하게 주더라. 나 레벨 56인데 레벨 2나 올랐음.
난이도에 대해 분석하는 사람도 있고 본편이 아니니 기다려 보자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 참여만 해도 보상이 달달하니 아무래도 좋다는 사람도 있고.
-야야야야야, 잡혔다, 잡혔어!
그러다 어느 순간.
커뮤니티 게시판 전체가 들썩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속보, 속보! 브라킨 잡힘.
-뭐? 그걸 누가 잡아?
-탄토라고 방송하는 애가 잡았음 ㅋㅋ
-그게 누군데?
-일본인 스트리머. 예전부터 실력파로 유명한 도적임.
-뭐야? 그럼 최초킬이 일본이란 거야? 한국 놈들 뭐 하는데! 뭐가 됐든 일본한테는 지면 안 된다고!
-최초 아님 ㅋㅋ 방금 스피어 길드에서도 브라킨 킬 인증 올렸어.
속속들이 브라킨 킬 인증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어렵다고 지랄방광 하는 건 실력 없는 애들이고 진짜들은 결국 잡아내는구나.
-와… 이번 건 진짜 절대 못 잡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뭐 하는 새끼들이지……?
-근데 왜 이번에는 저번처럼 공개적으로 방송하는 길드가 별로 없지? 스피어도 독자적으로 공략하겠다고 하고 킬 인증만 했잖아.
-저번에 존나 크게 데였잖아 ㅋㅋ 도전의 탑 공략 느리다고 그 쌍욕을 먹었는데 대형 길드들이 방송하면서 정보 공유하고 싶겠어?
이후로도 브라킨 킬 인증은 계속 이어졌다.
어마어마한 유저를 보유한 게임답게 LOST에는 피지컬 괴물들이 잔뜩 있었던 것이다.
-그럼 진은? 채널에 킬 인증 올라왔음?
브라킨이 잡을 수 있는 몬스터라는 걸 몸소 증명하는 산증인들이 등장하자 자연히 도진의 이름도 튀어나왔다.
도진이 언제나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 줬던 만큼 ‘이번에도……?’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하지만 기대하는 사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번만큼은 도진이어도 안 될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이번엔 힘들다고 본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잖아. 뭔 짓을 해도 마법사한테 브라킨은 진짜 어쩔 수가 없는 몬스터잖아.
-내가 법사라 안다. 브라킨 그 X새끼는 마법사 킬러다. 뫼비우스는 마법사를 버렸다. 시발 캐스팅 한 번 땡겨 보려다 반갈죽 당하는 게 게임이냐?
-이게 다 도진 그 새끼 때문임. 마법사는 누가 봐도 개병신 버러지 직업인데 혼자서 피지컬, 뇌지컬 정점 찍고 도전의 탑 때 무쌍해 버리니까 시작부터 메이지 킬러를 배치한 거 아냐.
누가 봐도 브라킨은 대놓고 메이지 킬러 포지션인 적이었다.
도진이라 해도 이 정도까지 이 악물고 마법사를 저격하는 듯한 상성을 극복할 수 있을 리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몇몇 마법사 방송인은 이런 공약을 걸기까지 했다.
「마법사 유저 중에 한 명이라도 그 개 같은 몬스터 잡는 사람 나오면 팬티만 입고 뉴욕 한복판에서 춤출게요. 절대, 절대 못 깹니다.」
「이건 직업 차별이 아니에요. 인종차별 수준입니다. 뫼비우스는 뻐킹 레이시스트라고요. 마법, 아니 캐스터한테도 인권이 있다 이 말입니다. 트럭, 보내겠습니다.」
「진? 개소리하지 마. 그 사람 실력 대단하고, 같은 마법사 유저로서 리스펙 하긴 해. 근데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좋아, 진이든 누구든 날 도륙 낸 그 불합리한 새끼를 마법사로 잡는다? 내 1년치 수익을 전부 줄게. 현상금을 건다고. 얼마냐고? 대충 세금 빼면 150만 달러 정도 될 거야.」
모르면 용감하다고.
크고 작은 규모의 방송인들은 공수표를 남발했다.
한겨울에 뉴욕 한복판을 알몸으로 질주하네, 춤을 추네 하고.
20억에 가까운 금액을 도네이션으로 쏘겠다는 공약을 걸고.
그렇게 바깥이 한창 불타오르고 있을 때, 이미 한참 전에 브라킨을 처치한 도진은 용사의 과거를 마주하고 있었다.
* * *
「내가 살해를 청부할 대상은 죽다 만 이 세계. 이곳에 남아 있는 반만 죽은 생명 전체다.」
선을 넘어도 한참은 넘어 버린 스케일에, 도진은 전직 용사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요구했다.
다 죽어가는 거라고 해도 세계를 죽여 달라니.
이런 얼토당토않은 목표일수록 전후 사정과 자초지종을 확실히 파악하지 않으면 사달이 크게 나는 법이다.
시간 아깝다고 스킵만 누르는 게 답이 아닌 것이다.
도진의 요구는 정당했고, 매튜는 정당한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그렇게 옛날이야기가 시작됐다.
【죽지 않는 것을 넘어 신이 되고자 했던 황제는 제국 곳곳에 마법진을 설치했다. 제국 전체의 생명을 쥐어짜 인간을 초월해 다른 무언가가 되려는 목적으로. 하지만 지식의 출처가 문제였다. 황제가 지식을 거래한 대상이 악마였던 거지.】
이 세계의 마왕은 황제였다.
불사를 넘어 불멸을 꿈꾼 황제는 온갖 사악한 힘을 동원해 마왕으로 거듭났고, 결국 악마에게 지식을 사서 제국 전체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용사로 선택된 나는 동료들과 필사적으로 마법진이 발동해 의식이 시작되는 걸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 저주받을 의식이 시작됐다.】
예정된 대로만 흘러가도 제국에 사는 인구 대부분이 소멸할 대재앙은 불행하게도 그 규모를 키웠다.
악마가 건넨 지식에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도 그리고 황제를 저지하려 한 우리도, 의식은 제국을 갈아 황제의 힘을 키우는 용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지. 제국이란 거대한 마법진은 훨씬 끔찍한 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트리거에 불과했다.】
한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를 제물로 바쳐 발동된 것은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생명과 영혼을 착취하는 거대한 마법이었다.
한순간에 빼앗기진 않았다. 하지만 느리게, 아주 느리게 제국은, 아니 황제는 모든 이의 생명과 영혼을 집어삼켰다.
【황제는 진짜 괴물이 됐지. 그래도 나와 동료들은 그 괴물을 쓰러뜨렸어. 문제는 너무 늦어 버렸다는 것이었지.】
비유하자면, 세계는 이미 과다출혈 상태였다.
당장 모든 걸 멈추는 데 성공한다 해도 세계 단위의 죽음은 막을 수 없는 상황.
【그때 내가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했어.】
세계를 포식하며 불사를 넘어 불멸에 가까워지고 있는 괴물을 쓰러뜨린 용사는 그 시점에 이미 자신도 초월자였다.
그런 그는 다 죽어가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황제가 소멸하며 남긴 힘을 자신이 취했다.
【이판사판이었지. 어차피 망할 거라면 뭐라도 해 보고 망하자, 하는 심정이었어.】
검을 쥔 용사로서 한계와 이치를 넘어 불사자를 베었다.
더 큰 힘을 얻어 단 한순간에 쏟아붓는다면 더한 것도 벨 수 있겠지.
【내 존재마저 내던지면서 휘두른 참격으로 나는 저주받을 마법진과 함께 이 세계에 존재하는 ‘죽음’을 베었다.】
그 순간 울려 퍼졌던 악마의 웃음을 매튜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절반 이상 깨져 버린 영혼을 가진 자들은 죽음을 잃고 점차 괴물이 되어 갔다.
강인한 생명력과 영혼을 지녀 그럴 일 없었던 용사의 동료들도, 미쳐 돌아가는 세계 속에서 본인도 미쳐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조금씩 그들도 다른 이들처럼 괴물이 되었다. 죽음을 반복하며 영혼이 깨져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남은 건 나 하나다. 자살할 몸뚱이가 남아 있질 않으니 강제로 제정신을 유지하게 된 거지. 뭐… 제정신이라고 보기엔 나도 많이 미쳐 버렸지만.】
옛이야기의 말미에 용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이 만든 건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고.
“…….”
【…….】
모든 이야기를 들은 도진과 아네모네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이런 상태가 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눈앞에 보이는 제국의 수도였을 도시의 낡은 정도만 봐도 이 정도 유적을 현실에서 찾으려면 기원전을 뒤져야 한다.
‘최소 수천 년의 시간을 자신의 과오로 망가진 세계를 보며 견뎌야 했다는 건가…….’
절로 숙연해지는 사연에 도진이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당신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어?”
어설픈 위로도 상황 봐 가며 하는 거다.
이럴 때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내가 하나하나 죽여 가면서 끝내란 건 아닐 거 아냐.”
최대한 처음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진의 말투에, 매튜가 하핫 하고 웃었다.
【설마. 내가 아무리 혼잣말로 버틴 세월이 천 년을 넘겼다고 해도 그 정도로 미치진 않았어. 다 방법이 있지. 흘러넘치는 시간 동안 공부를 참 열심히 했거든.】
매튜가 손을 뻗어 제국의 수도를 가리켰다.
【저걸 이용할 거야. 세계를 이렇게 만든 나의 공범인 저 마법진을.】
매튜의 계획, 그러니까 도진에겐 퀘스트 진행 과정의 개요는 이러했다.
【세계 멸망의 주범을 부활시켜서 이번에야말로 세계를 끝낼 거다. 말하자면 세계 단위의 안락사를 진행시키는 거지.】
이거 참… 스케일 한번 끝내주네.
“근데 그 부활이란 건 어떻게 시켜야 하는 건데?”
【마법진에 연료를 공급해야지. 걱정 마. 일곱 군데만 가면 되니까. 그중 몇 군데는 좀 골치 아픈 녀석들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뭐, 브라킨도 쓰러뜨렸잖아?】
가볍게 말하는 매튜를 보며 도진은 암담한 심정이 됐다.
‘결국 이런 놈을 최소한 몇 놈은 더 마주쳐야 한다는 소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