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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근거리에서의 육박전이 길게 이어지는 전투는 마법사로서 쉽게 경험하기 힘든 것이다.
적이 가까이 접근했다는 건 이미 불리한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고, 마법사 입장에선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다시 거리를 확보하든, 적을 빠르게 무력화시키든.
그게 안 된다면 전투는 마법사의 패배로 귀결될 확률이 높기에, 어떤 경우에든 길게 이어지는 육박전은 마법사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쉴 틈 없이 몰려드는 스켈레톤과 좀비를 상대로 근접전, 그것도 난타전을 벌일 일은 도진에게도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상당히 재미있었다.
마법으로 팰 때랑 주먹으로 직접 팰 때 느껴지는 감각이 완전히 달랐다.
전투의 속도감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로서 싸울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빠른 템포.
도진은 정신없이 몬스터들과 뒤섞여 싸웠다.
-칵!
벌써 세 바퀴째 돌고 있는 <카포네의 시체 처리장>의 주민 중 하나가 도진에게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퍽.
도진은 짧게 치는 잽으로 놈의 주둥이를 먼저 뭉갰다.
그다음 스탭을 밟아 살짝 물러나며 원투.
퍼벅 하고 연속으로 얻어맞은 좀비는 휘청거리며 다른 놈들의 걸림돌이 됐다.
바닥에 쓰러진 동족을 마구잡이로 밟고 치워 내며 도진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다른 놈들.
도진은 가벼운 스탭으로 치고 빠지며 놈들을 너무나 가볍게 요리했다.
‘염동력 방출하는 타이밍만 잘 맞추면 주먹 한 방에 웬만한 1성 마법 정도까지 위력이 나오는 거 같은데.’
그러면서 「염동강화술식」 각인과 그것과 연동하여 발동되는 「염동체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단순히 전신에 「염동강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러면 마나가 엄청나게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 탓에 <카포네의 시체 처리장> 첫 바퀴 때는 중간도 못 가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보스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했던 마나 포션은 총 5병.
하지만 두 번째 바퀴 때는 마나 포션 2병으로 보스 몬스터인 카포네까지 처치할 수 있었다.
‘강화를 걸었다 푸는 데 마나 로스가 거의 없고 딜레이도 없다.’
타격하는 순간, 회피를 위해 기동하는 순간, 피격당하는 순간에만 강화를 거는 방식으로 마나를 아낀 것.
각인과 연동되어 자동으로 발동하는 것 같지만, 실버문의 고유 마법 체계 「염동체술」은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엄청난 성능 차이를 보였다.
아니, 자동으로 발동하는 건 「염동강화술식」이라는 각인이고, 각인의 고삐를 쥐어 제어하고 효율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염동체술」인 느낌.
‘좋아. 점점 더 익숙해진다.’
점차 도진이 「염동체술」을 다루는 테크닉에 익숙해지면서, 던전 공략 속도는 처음과 차원이 다르게 빨라졌다.
타격이 적에게 꽂히는 찰나의 순간 강화에 사용되고 있는 염동력 일부를 타격 지점에 집중하여 위력을 끌어올리니 3~4번을 쳐야 할 걸 1~2번이면 눕힐 수 있게 됐다.
퍼엉- 퍼엉- 퍼엉-
한 점에 집중된 염동력이 터지며 내는 소리가 시원시원했다.
리듬 게임 하는 기분으로 신나게 스탭 밟고 두들기고 하다 보니 어느새 또 보스룸 앞이었다.
“후아.”
흐르는 땀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 낸 도진은 잔여 마나를 확인했다.
마나 포션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아직 1/3가량의 마나가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보스도 충분히 요리할 수 있겠네.’
목표치였던 ‘마나 포션 없이 던전 클리어’는 이미 이룬 거나 다름없는 셈.
도진은 마나 포션을 마셨다.
어차피 목표는 달성한 셈이니, 마지막으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테스트해 볼 건 다 해 보고 마무리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르르르…….
보스룸에 들어서자 익숙한 실루엣이 도진을 반겼다.
뚱뚱한 중년 남성이 웅크리고 앉아 구석에서 무언가를 먹는 모습.
‘이건 볼 때마다 연출이 역해.’
이 던전이 몬스터 패는 맛이 일품이긴 한데, 유일한 흠이 저놈이다.
보스 몬스터 ‘카포네’의 생리적 역겨움은 참아 주기 힘든 수준이었다.
-구웨엑……!
구석에서 뭘 먹던 카포네가 보스룸에 들어온 플레이어를 향해 돌아섰다.
열심히 뜯어 먹고 있던 건 좀비의 허벅다리였다.
카포네 밑에 왜소한 좀비가 사지 중 오른팔만 남은 몰골로 꿈틀댄다.
-구웨엑……!
“에이씨, 더럽게.”
도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좀비 새끼라도 썩은 좀비를 뜯어먹고 있으니 멀쩡할 리가 있나.
카포네는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 일종의 거식증 걸린 초고도 비만 좀비 새끼였다.
“머, 먹을 거다……!”
소화되다 만 좀비 살점을 토해 내며 침을 질질 흘리는 카포네.
도진은 저런 걸 주먹질로 두 번이나 잡았고, 이젠 세 번째 잡으려고 하는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먹을 거!”
카포네의 포효와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뚱뚱한 외형과 달리 카포네는 의외로 재빠른 놈이었다.
육중한 덩치로 바닥을 박차자 바닥이 콰직 하고 부서졌다.
그러한 각력으로 추진된 돌진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부웅-!
놈의 무기는 뜯어먹던 좀비 다리였다.
발목 부분을 그립 삼아 거꾸로 잡고 휘두르는 좀비 다리는 돌진 속도가 더해져 무시무시한 기세로 도진을 노렸다.
평소 같았다면 이런 공격은 미리 대비하고 있다가 타이밍을 맞춰 옆으로 구르는 방법으로 피했었다.
하지만 도진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뒤로 뛰어 피했다.
후웅- 하고 코앞을 스치는 카포네의 공격.
도진은 카포네가 자세를 바로잡기 전에 다시 앞으로 파고들었다.
「염동체술」을 활용했기에 가능한 급격한 체중이동과 회피 기동이다.
예전 같았다면 불가능했을 회피 직후의 공격 전환을 이제는 훨씬 더 빠르고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퍼벅.
카포네의 복부에 원투가 꽂혔다.
카포네도 지지 않겠다는 듯 도진을 끌어안으려 했다.
파앙.
도진은 왼쪽 다리의 각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순간 가속력이 거의 도적 계열에 버금갈 만한 속도로 카포네의 사이드를 점한 도진은 그대로 라이트 훅을 갈겼다.
퍼엉.
타격 순간 우완(右腕) 강화를 한계까지 끌어올려 염동력을 방출하는 테크닉이 더해져 카포네가 휘청하고 경직에 걸렸다.
‘좋아. 이 정도면 실전에서도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겠어.’
염동 방출 타이밍이 몸에 익었다는 걸 확인한 도진은 미련 없이 거리를 벌렸다.
어차피 근접전 능력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꺼낼 카드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주먹질은 부수적인 거고 결국 나한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염동체술」을 활용한 기동력이다.’
《화염구》
도진의 마법에 얻어맞은 카포네는 썩은 피와 토사물 타는 냄새를 풍기며 다시 돌진했다.
하지만 도진에게 닿지 못한다.
좁은 공간은 마법사에게 분명히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도진은 귀신같이 「염동체술」을 활용하며 놈을 따돌렸다.
염동력을 분출하며 발생하는 반발력을 마치 부스터처럼 활용하는 도진의 급격한 방향 전환은 언뜻 보기에 관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링 위의 아웃복서처럼 적당한 마법을 몇 방 더 꽂아 넣은 도진은 한두 방이면 카포네의 숨통이 끊어질 지점에서 공격을 멈추었다.
“자, 그럼 마지막 것만 실험하고 너랑도 이별이다.”
카포네의 체력이 20퍼센트 이하로 남았을 때 나오는 발악 패턴.
“너, 너……! 먹이 주제에!”
희생자들을 살해할 때 썼던 진짜 무기를 꺼내 드는 폭주 모드가 발동되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휘두르던 좀비 다리를 도진에게 집어던진 카포네가 보스룸 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거기 있는 지저분하고 커다란 나무 상자를 부수며 커다란 돈까스 망치를 꺼내 들었다.
[<카포네의 시체 처리장> 보스 몬스터 카포네가 인육 다짐망치를 꺼내 들었습니다! 카포네의 공격력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도진은 회로에 마법을 장전하며 카포네를 바라봤다.
분노에 눈이 돌아간 카포네가 전에 없던 속도로 달려든다.
피해야 하지만, 도진은 피하지 않았다.
“죽어어어어!”
성대가 썩어 걸걸해진 목소리로 괴성을 지르며 휘두르는 망치는 레벨 차이를 감안해도 중상을 각오해야 할 공격이었다.
하나.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확신에 찬 도진은 카포네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서 마치 타격할 때처럼 반발력을 형성했다.
쾅-!
도진의 몸이 붕 뜬 채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커헉!”
온몸이 으스러지는 거 같은 충격에 도진의 시야가 잠깐 검게 물들었다.
상태이상으로서 강제된 순간적 블랙아웃.
‘저 미친 새끼! 생각보다 더 아프잖아!’
도진은 단 한 번의 공격에 날아간 절반의 생명력을 보고는 혀를 찼다.
이 정도면 그냥 맞았으면 중상이 아니라 빈사 상태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체력 스탯도 높고 레벨 차이도 나서 맞을 만할 줄 알았는데… 역시 나도 마법사는 마법사란 건가.’
그래도 피격 순간 체내의 염동력을 방출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걸 확인했으니 됐다.
체내에서 강화에 쓰이는 염동력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흩어져 버리지만 분출되는 찰나에 발생하는 힘을 활용하는 건 가능했다.
‘때릴 때나 부스터처럼 활용할 때 쓰는 요령이랑 비슷해서 어렵진 않네.’
그건 그렇고. 저 새끼나 마무리해야겠다.
도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카포네의 이마에 광점을 찍어 줬다.
광점은 확장했다 다시 한 점에 뭉쳐 폭발적 섬광을 일으켰다.
빛이 잦아들었을 때는 카포네의 머리가 섬광과 함께 증발하듯 사라져 있었다.
“가끔…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긴 해.”
도진은 전신을 울리는 통증과 근접전을 벌이며 뒤집어쓴 썩은 피와 토사물이 내는 냄새에 소위 말하는 현타가 몰려왔다.
* * *
새로이 얻은 능력을 분석, 체화한 도진은 휴식 없이 바로 다음 계획을 세웠다.
‘이제 진짜 월드 보스 레이드까지 얼마 안 남았어.’
1월의 중간 지점을 넘겼으니, 3월에 다가올 월드 보스 레이드 이벤트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이 조금 넘게 남은 셈이다.
‘그 전에 최대한 끌어올려 봐야지.’
다시 생각해도 대규모 이벤트를 앞두고 「염동체술」을 얻은 건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하지만 도진은 거기서 만족하고 안심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자신의 스펙은 끌어올릴 수 있는 한계치까지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 두 사람도 이번에 한입 할 수 있게 키워 놔야겠어.’
자신만의 전용 탱커로 만들 테라사와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귀한 몸 힐러 소소도 준비를 시켜야 했다.
그 두 사람도 이번 기회에 한몫 단단히 챙기게 해 줘야 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게 아닌가.
방치해 둬도 알아서 잘 크게 하려면 중요한 순간에 먹이를 잘 먹여야 하는 법이었다.
‘그럼 얼마나 탱커에 가까워졌는지 확인해 볼까?’
혹시라도 테레사가 아직 탱커답지 못하다면, 도진은 친히 그녀를 탱커답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