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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26화 (12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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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눈을 한 테레사가 아무 말도 못 하자 도진은 그녀를 보며 다시 말했다.

“예전부터 게임 같이했고, 가끔 안부도 주고받는 친구 사이라서,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같이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말라는 뜻으로 해 주는 말이었다.

도진은 다시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혼자서 질문 읽고 혼자서 답변하고 하는 거보다 차라리 편한 친구랑 대화하듯이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제 시작할 테니까 우리 서로 좋은 말만 하는 거예요.”

도진이 테레사를 보며 말했다.

“누나, 시작해요.”

“아, 넵.”

얼어 있던 테레사가 조금 약간이나마 풀어진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신을 배려해 준다는 게 느껴져서 그녀는 조금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마법사 꿀팁 공유 방송 MC를 맡은 테레사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큰 소리로, 고개까지 꾸벅 숙이며 인사한 테레사는 도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상 말을 시작하니 다시 긴장이 되는지 목 돌아가는 게 꼭 목각인형 같았다.

“아, 안녕하세요, 도진 님! 오늘 이렇게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긴장을 더 풀어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해서, 도진은 인사에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누나가 엄청 긴장한 거 같으니까 예전 얘기나 하면서 긴장 좀 푸는 게 낫겠네요.”

“…예전 얘기요?”

도진이 장난기 가득 담긴 웃음을 지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요.”

“……?”

“그때 술집 테이블에 앉았는데 누나가 저한테 와서-”

“아아악!”

이제야 무슨 얘기인지 깨달은 테레사는 들고 있던 대본 쪼가리를 내팽개치며 도진에게 달려들어 양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임?

-뭔데 저래?

-여기서 끊는 게 어딨어!

-술집에서 뭐? 뭐 했는데?

-헌팅한 거 아님? 같이 술 한잔하자고.

-너 테레사 방송 안 보는 애구나? 쟤 찐따라 그런 짓 절대 못 함 ㅋㅋ

-그럼 뭔데? 뭘 했길래 저렇게 발작을 하는 거야 ㅋㅋㅋ

도진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테레사에게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입을 다물겠단 뜻이었다.

“진짜죠?”

의심 가득한 눈으로 속삭이듯 묻는 테레사.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입가에서 테레사의 손이 떨어진 도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음, 일단 이 에피소드는 봉인해 둘게요. 그런데 너무들 궁금해하는 데 동전 얘기까지만…….”

“아아아아아아! 질문 시작할게요!”

도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테레사가 다시 끼어들었다.

이 인간 이럴 줄 알았지!

원망과 물기가 묻은 눈으로 도진을 노려보며, 테레사는 바로 Q&A로 돌입했다.

“자! 첫 번째 질문은 엄청 많은 분들이 남겨 주신 질문인데요. 도진 님이 마법사를 클래스로 고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동전까지만…….”

“쓰읍!”

테레사가 도끼눈을 뜬 걸 본 도진이 하하핫 하고 크게 웃었다.

“웃지 말고, 놀리지 마!”

아하하… 하고 웃을 거 다 웃은 도진은 호흡을 정돈한 뒤 말했다.

“음, 일단 누나 긴장은 대충 풀린 거 같으니까 질문에 답하자면… 그냥 익숙해서요. 하던 거라서 했어요.”

거짓말 아니고 진짜다. 전생에 마법사여서 마법사를 고른 거니까.

“어… 다른 게임에서도 마법사를 하셨나 보네요? LOST 말고 다른 가상현실 게임을 해 본 적 있으신가요?”

“아뇨. 가상현실은 LOST가 처음이에요. 미성년자였어서.”

“엑! 그렇게 어렸어요? 난 나보다 오빤 줄 알았는데!”

“방금 누나라고 했잖아요.”

“그냥 헛소리하는 줄 알았죠.”

흑역사 공개 위기를 겪고 긴장이 완전히 풀린 테레사는 정말 편하게 도진과 잡담까지 나누며 대화를 이어 갔다.

-나도 솔직히 진이 저 여자한테 누나라고 해서 놀라긴 했어.

-생각보다 진짜 어리네…….

-근데 잘 보면 얼굴이 어린 얼굴이긴 해. 그냥 분위기 때문에 어리게 보이질 않는 거지.

-LOST가 처음 해 보는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근데 왤케 잘하는 건데.

시청자들도 부쩍 편안해진 방송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 질문 드릴게요. 도진 님이 생각하는 마법사 클래스의 장단점은 어떤 게 있나요?”

질문을 들은 도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게 좀 복합적이라서 설명하자면 길어질 거 같은데요.”

“자세하게 답변해 주시면 보고 계시는 분들은 더 좋아하실걸요.”

“정말요?”

카메라를 향해 묻는 도진.

채팅창은 그렇다고 난리가 났다.

“그럼 기본적인 틀 안에서만 답변할게요. 먼저 장점은 압도적인 공격력을 지니고 있는 거죠. 플레이어의 기량이 받쳐 주고, 장비 세팅을 포함한 전체적인 스펙이 갖춰진 상태로 뿜어내는 화력은 전 클래스 중에서 아마 순위권에 들 거예요.”

“그냥 듣기만 했는데도 조건이 엄청나게 붙는다는 느낌이네요.”

“마법사가 원래 그래요.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까다로운데, 그 조건을 충족시키면 엄청 세거든요. 특히 일방적으로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만 있으면 마법사만큼 사기 직업이 없어요.”

“그럼 단점은요?”

도진이 손을 내밀더니, 손바닥을 뒤집었다.

“방금 말한 거 뒤집으면 그게 단점이에요. 공격력은 압도적이지만, 방어 능력은 그만큼 떨어지고, 장비부터 스킬 숙련도, 스탯……. 뭐 하나라도 부족하면 나사 빠진 클래스가 되거든요. 여기서 플레이어 기량까지 부족하면 그냥 박살 나는 거죠.”

“지금 들어보니까 보편적인 마법사에 대한 평가랑 똑같네요.”

“일방적으로 적을 팰 때는 세도 수세에 몰리면 성능이 끝없이 바닥을 치는 직업이니까요. 마법사가.”

도진의 답변에 채팅창이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저 말은 그냥 템 세팅 기깔나게 하고 스킬 숙련도 존나 올린 다음에 신의 컨트롤로 조지면 사기 직업이다, 이거잖아.

-마법사 여러분! 저희에게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돈, 시간, 실력만 꼬라박으면 우리도 사기 직업이 될 수 있어요!

-돈이랑 시간은 이미 갈아 넣었는데 개똥캐릭이면요?

-그건 아직 ‘실력’이 탑재되지 않아서입니다. 다음 생을 노리세요.

이런 채팅 분위기를 본 테레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원론적으로 장단점을 다룬 모양인데요? ‘잘하면 세다’는 건 다른 클래스도 다 적용되는 부분이긴 하죠.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준비한 질문으로 도진 님한테서 ‘잘하는 법’을 뽑아내 볼게요!”

이젠 시청자와 소통도 하면서 진행을 하는 테레사였다.

장단점에 이어서 이런저런 플레이 팁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진리의 서」로 인해 보통의 마법사와 많이 다른 입장인 도진이지만, 그래도 원론적인 팁을 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짜 재능은 못 이기는구나. 아예 게임을 보는 시야 자체가 다르네.

-듣고 보면 당연하게 느껴져도 이걸 처음 생각해서 실행한 게 대단한 거임.

-올라온 플레이 영상 다 챙겨보면서도 그냥 ‘와, 개쩐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진짜 디테일하게 계산하면서 게임하는구나.

도진 입장에선 어려울 게 없는 질문에 답하고, 시청자 입장에선 미래에서 온 전직 랭커의 고품격 팁을 얻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마법사는 언제나 상황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어야 돼요. 남이 깐 판 위에서 노는 게 아니라 마법사 본인이 판 자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게 강제해야 고점을 뽑아낼 수 있어요.”

“돌고 돌아서 나온 결론은 결국 처음이랑 똑같네요. 그 어려운 걸 해내야 하는 게 마법사란 클래스가 가진 숙명이다. 이거요.”

“정확합니다.”

그렇게 한참 방송을 진행하던 중.

“그런데 계속 이러고 있으니까 뭔가 심심하네요. 귀찮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그냥 게임 들어가서 보여 주면서 할까요?”

도진이 인게임 전환을 제안했다.

“어, 정말요? 그럼 다들 좋아하실걸요.”

당연히 반응은 좋았다.

도진은 게임에 접속해서 이런저런 마법을 시연해 보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마법 스킬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따로 쿨타임이 없어요. 대신 마법사는 마법회로가 버티는 한계가 쿨타임이에요. 한마디로 쿨타임 없다고 마구잡이로 마법을 난사하다 마법회로 뻑나면 그 순간부터 스킬 전체가 잠긴다는 거죠. 이거 관리하는 게 진짜 중요해요.”

-마법회로 과부하 안 걸리게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쓰다 보면 감이 와요. 뻐근하다, 열감이 느껴진다, 이러면 살살 다루면 됩니다. 감으로 잘하면 돼요.”

다음으로.

“다양한 속성 다룰 수 있는 것도 마법사의 큰 장점이에요. 이게 속성 마법 서순에 따라서 마법회로에 걸리는 부하가 늘었다 줄었다 하기도 하니까 이것도 잘 외워 놔야 돼요.”

-마법사는 외울 게 왜 이렇게 많죠?

“마법사니까요. 아, 그리고 이거 진짜 꿀팁인데, 큰 도시마다 도서관 있거든요? 그런 데 가면 마법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마법 운용, 전장에서의 마법 등등 책이나 논문 흘러넘치니까 그거 보면서 공부하면 도움 많이 될 겁니다.”

-이젠 공부까지 하라는 건가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몸만 굴리면 되는 전사니 검사니 하는 야만적인 직업들도 나름대로 갈고닦을 게 있는데 머리 쓰는 직업인 마법사는 당연히 공부해야죠.”

도진의 교육 방송이 진행될수록 마법사들은 환호하면서 또한 절규했다.

나오는 팁 하나하나가 정말 유용한 것들이었지만, 하나하나 다 신경 쓰기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

하지만 거기까진 도진이 도움을 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적당히 풀어 줄 팁을 다 풀어 준 도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방송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같은 마법사를 플레이하는 유저분들에게 남길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테레사의 마무리 멘트에 도진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선택한 마법사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전 쉬러 갑니다.”

여전히 해맑은 웃음으로 손까지 흔들며 인사한 도진은 스스로 방송을 꺼 버렸다.

* * *

마지막 광역 도발을 감안해도 방송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테레사와 악수를 나누고, 직원들과도 서로서로 수고했다는 말을 나누며 훈훈한 마무리를 하면서 도진은 생각했다.

‘슬슬 고정 파티원을 고를 때가 되긴 했는데.’

도진은 기본적으로 솔로 플레이를 선호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솔로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계속 게임을 하다 보면 파티원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파티 플레이를 해 가면서까지 해결해야 하는 퀘스트나 이벤트면 기대 보상은 당연히 엄청나겠지.’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파티원을 구한다면 그런 보상을 남한테 퍼 주는 꼴이 된다.

그런데 그걸 고정적인 멤버에게 먹이면서 키우면?

‘성능 좋은 노… 아니, 인적 자원을 육성하는 개념이 되는 거지.’

평소에는 풀어 놓고 키우다가, 필요할 때는 불러서 써먹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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