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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25화 (12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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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게 적절한 휴식을 섞어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고장 나는 물건이다.

한동안 빡세게 굴렀으니, 체력 회복을 위해 짧고 굵게 제대로 쉬기로 했다.

‘월드 이벤트 시작할 때쯤이면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으니까 이때 관리 좀 제대로 해 둬야지.’

3월로 넘어가면 다음 월드 이벤트인 월드 보스 레이드의 시기가 된다.

시기는 3월이지만, 그때가 가까워지면 어차피 심장 두근대서라도 못 쉰다.

아직 마음에 여유가 남아 있는 지금 충전을 해 놔야 했다.

‘그나저나 시살라한테는 언제 찾아가야 하나.’

넉넉히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면 되겠지? 그럼 그때까지만 쉬자.

잘 먹고, 푹 자고, 운동으로 축난 몸도 채워 넣고, 게임은 좀 많이 줄이고.

도진은 휴식 계획을 세워서 충실하게 이행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이때쯤 도진은 극도의 심심함을 느꼈다.

게임을 적당히 하니까 시간이 확 남는데, 그 시간에 할 게 딱히 없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금단증상이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고 남는 시간을 다 게임으로 녹여 버리면 그건 쉬는 게 아니게 되고.

매일매일 주어지는 8시간가량의 잉여 시간을 어떤 곳에 쓸지 고민하던 도진은 천지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사람들이 마법사 팁을 기다린다고 그랬었지?”

쉬는 김에 이거나 처리해 볼까?

문득 든 생각이지만, 도진은 바로 추진에 들어갔다.

“누나, 그때 말했던 거.”

“뭐 말하는 거야?”

“마법사 팁.”

도진이 쓸데없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걸 아는 천지현은 기대에 찬 눈이 됐다.

“그건 왜?”

“하려고. 근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네.”

“걱정 마. 너만 하겠다고 하면 바로 할 수 있을걸? 콘텐츠팀에서 기획은 다 짜 놨을 테니까.”

“그래? 그럼 사흘 안에 끝내자.”

“바로 연락해 볼게.”

천지현은 바로 회사에 연락을 했고, 콘텐츠팀과 마케팅팀은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 * *

도진은 가볍게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올라간 영상은 전부 기본적으로 게임 플레이 영상이었어요. 한 번 인터뷰를 하면서 실시간 소통을 한 적은 있지만, 도진 채널에서 한 건 아니었고.”

“맞아요. 간단한 팁을 주는 콘텐츠라 해도 이번 건 직간접적으로 팬이랑 소통하는 첫 번째 콘텐츠가 되는 거예요.”

콘텐츠 팀장과 마케팅 팀장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입장에선 아주 제대로 공략 영상을 뽑아내고 싶긴 한데… 천지현 씨 말로는 그냥 간단히 해치우고 싶어 하는 눈치라고 해서…….”

“그럼 간단하게 가야죠. 괜히 헤비하게 하려다가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그 부분은 콘텐츠 팀장님이 욕심 좀 내려놓으세요.”

“하긴. 하겠다고 한 게 어딘가 싶긴 하네요. 그럼 마법사 유저들 질문을 모아서 도진 씨가 답변을 하는 Q&A 영상 쪽으로 가닥을 잡죠. 이건 도진 씨 본인은 길어야 3시간만 촬영하면 되니까.”

콘텐츠 팀장 오영식의 말을 들은 마케팅팀을 맡고 있는 김영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참에… 다른 방송인이랑 콜라보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니지, 콜라보는 너무 거창하고 그냥 합방 정도. 많이들 하잖아요. 장인 초대석 같은 거.”

“거기까지 가 버리면 간단히 끝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다른 방송인이랑 같이하는 걸 도진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문제고.”

“아는 사람이랑 하는 합방이라고 하면 도진 씨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않을까요?”

오영식 얼굴에 느낌표가 떴다.

“아! 이번에 그분이 데려온?”

“네.”

“확실히… 같이 파티 사냥도 했었고, 도진 씨가 우리 회사랑 계약한 것도 그분이 연결해 줬다는 얘기가 도는 걸 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도진 씨가 편하게 질문 받고 답변하고, 팁 좀 풀어주는 정도만 해 줘도 합방하는 입장에선 방송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할 기회가 될 거 아니에요. 우리 입장에선 우리 회사 소속 크리에이터가 크는 거니까 좋고요.”

오영식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듯이.

* * *

팀장 둘이 언급한 합방 상대는 테레사였다.

‘그분’은 김향기 회장의 외동딸인 김소소이고.

테레사가 졸지에 라엘 엔터테인먼트 소속 크리에이터가 된 과정은 대략 이랬다.

「강희 언니한테 일 배울래.」

일단 소소는 주강희 밑으로 들어갔다.

그런 뒤.

「언니, 나 매니저 시켜 줘.」

주강희에게 매니저를 시켜 달라고 졸랐다.

「무슨 속셈인지 몰라도 사고 치면 바로… 알지?」

「응, 고마워.」

주강희는 골치 아파 하면서도 소소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렇게 말단 매니저(회장님 외동딸) 직책을 손에 넣은 소소는 바로 계약서 한 장만 챙겨서 테레사의 집으로 향했다.

「사인해.」

다짜고짜 계약서를 들이밀며 사인을 요구하는 소소.

당연히 테레사는 거부했다.

「월세 전액 지원, 기본급 300만 원, 식비 전액 지원.」

이에 소소는 계약서에도 없는 특별 조항을 구두로 제시했다.

재벌이 제시하는 친구비였다.

「그런 건 계약서 맨 위에 적어야지!」

결국 테레사는 자본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 * *

회사 측의 제안을 들은 도진은 ‘합방’이란 단어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테레사’라는 이름에 놀란 눈을 했다.

“…한동안 연락 안 하는 동안 뭔일이 생긴 거야.”

생각난 김에 메신저로 테레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 봤다.

그녀가 라엘 엔터의 크리에이터가 된 대략적인 사정을 들은 도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궁금해서 테레사의 유튜브 채널도 검색해 봤다.

구독자 4만.

단기간에 모은 것치고는 꽤 많은 숫자였다.

‘나랑 파티 사냥한 걸로 어그로가 좀 끌렸나 보네.’

영상은 대부분 사냥 영상이었다.

정말 근성 하나는 끝내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꾸준하게 쌓여 있는 사냥 영상은 그녀가 얼마나 게임에 진심인지 증명하고 있었다.

‘근데 매니저가 왜 게임을 같이 하고 있어?’

무작위로 골라서 재생한 영상을 보며 도진은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망치질을 하는 테레사 옆에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죽은 듯 누워서 자고 있는 소소가 보인 것이다.

“열심히 하고 있네.”

최근 영상은 100레벨 사냥터에 진입한 걸 자랑하는 영상이었다.

순수하게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는 노가다식 사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건 진짜 대단하긴 했다.

‘합방이라…….’

이 합방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건 없었다.

사실상 라엘 엔터 소속 타 크리에이터를 밀어주는 용도로 이용되는 셈이다.

하지만 회사도 그런 걸 잘 알아서 저자세로 부탁하는 스탠스이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기도 해서.

“하지, 뭐.”

도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

* * *

도진과 테레사의 합방 준비는 빠르게 진행됐다.

먼저 도진 채널, 테레사 채널, 로트라넷 마법사 게시판 등에서 마법사 유저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뽑아냈다.

“저 이거 진짜 해야 돼요……?”

“약한 소리 하시면 안 돼요. 이런 기회 잡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리고 그걸 테레사에게 숙지시켰다. 콘텐츠팀에 끌려온 테레사는 졸지에 안 하던 공부를 억지로 하게 됐다.

“열심히 해. 네가 커야 내 실적이 오르고, 그래야 내가 당당하게 놀 수 있으니까.”

소소도 한패였다. 테레사가 크게 성장을 해야 그녀의 전담 매니저라는 핑계로 놀 수 있는 까닭으로.

‘그래, 이건 기회야. 구독자 형님들께 강한 인상을 남기면 앞으로 내 인생도 달라질 수 있어.’

거기다 다름 아닌 도진과 하는 일이라서, 테레사는 더욱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준비했다.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나중에 한 번이라도 더 불러주지 않겠는가.

사실 테레사도 다른 사람과 합방을 하라고 했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 * *

합방 당일.

장소는 라엘 엔터에 있는 방송용 스튜디오였다.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콘텐츠 제작 및 실시간 방송이 가능하게끔 꾸며 놓은 장소였다.

“오랜만이네요.”

“어, 도진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딱 제시간에 맞춰 도착한 도진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테레사와 인사를 나눴다.

그녀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여전히 무표정한 소소와도 눈인사를 나누고.

“방송 시작 시간은 넉넉하게 잡아서 공지했으니까 편하실 때 시작해 주시면 됩니다. 채팅창 관리는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되고요.”

도진과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까지 이것저것을 챙기고 점검한 콘텐츠 팀장 오영식은 나가기 전 도진에게 말했다.

“도진 씨, 실시간 방송까지 하겠다고 해 줘서 고마워요.”

“뭘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항상 영상 끝내주게 뽑아 주시잖아요.”

도진의 말에 오영식이 머쓱하게 웃었다.

“도진 씨 영상은 만들 맛이 나요.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이번 팁 영상도 잘 부탁드려요.”

오영식이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밖으로 나갔다.

“나도 나가 있을게.”

소소도 나갔다.

테레사는 도진과 둘만 있게 된 게 어색한지 볼을 긁으며 말했다.

“어떻게 진행할 건지는 들으셨죠?”

“네. 레사 씨가 질문하면 제가 답변하고, 실시간 시청자 질문도 몇몇 개 추려서 답변하고, 필요하면 인게임으로 전환해서 좀 보여 주고… 그런데 이거까진 안 할 거 같네요. 귀찮잖아요.”

도진도 질문지를 미리 받긴 했다.

하지만 보진 않았다.

어차피 마법사 관련된 질문일 텐데 그럼 안 봐도 된다.

마법사에 관한 거라면 도진은 답변을 쏟아내는 자판기가 될 자신이 있었다.

“음…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그러죠.”

테레사가 정면을 보며 말했다.

“시, 시작할게요!”

실시간 방송 송출이 시작됐다.

-진짜 도진임?

-어, 진짜다!

-뭔데 진이 이런 듣보 채널에 출연한 거임?

-같은 소속사잖아. 소속사에서 하꼬 유튜버 밀어주려고 진을 써먹는 거지. 전에 같이 파티 사냥했던 거도 다 밑밥 깐 걸 테고.

-다 닥쳐! 드디어 진이 푸는 마법사 팁이 나오는 날인데. 어디 나오든 무슨 상관이야!

-맞는 말임. 우린 지금 북한 방송이라도 감지덕지하면서 볼 자신이 있다, 이 말이야.

몰려든 시청자들은 방송 시작과 동시에 도진이 다른 채널, 그것도 구독자가 현저히 떨어지는 채널에 출연한 것에 대한 의아함을 표현했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급이 안 맞는다면서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채팅도 적지 않았다.

직원에 의해 채팅창은 바로 정지됐으나 이미 채팅을 읽은 테레사는 잔뜩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걸 본 도진은 약간 인상을 쓰며 이렇게 말했다.

“레사 누나랑은 여기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친구였어요. 같은 회사라서 하는 게 아니라 친구라서 하는 거라고요. 그렇죠, 누나?”

갑자기 훅 들어오는 도진의 말에 테레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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