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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24화 (12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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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설정상 고유한 마력장, 즉 마법 저항을 지닌 존재에게 염동력을 행사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는 시전자 본인에게도 적용되는지라 염동력을 활용한 육체 강화는 통상적으로 ‘겉’에 두르는 정도가 한계였다.

그래서 도진은 ‘염동체술’이란 이름을 보자마자 몸 주변에 염동력을 두르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동시에 그 정도로 고유 마법 체계니 뭐니 하는 거 자체가 머저리 같은 짓이 아닌가 하는 무시도 따라붙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실버문의 염동체술은 달랐다.

‘염동력으로 직접 육체를 강화하겠다고?’

처음엔 이게 무슨 미친 소린가 했다.

본인 육체의 마법 저항을 뚫을 정도의 「염동」을 쓰는데 소모되는 마나도 문제고.

그딴 고출력 염동력으로 본인의 마법 저항을 뚫어 가며 몸뚱이에 걸었다간 살짝만 삐끗해도 사지가 이리저리 꺾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실버문이 집필한 책에는 이에 대한 해결책도 적혀 있었다.

「타인이 아닌 본인의 경우 고유한 마력 파장을 파악해 마력장과 충돌시키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적정한 수준의 염동력만으로 육체를 직접 강화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실시간으로 미세하게 변화하는 마력 파장을 계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과정을 술식으로 만들어 각인으로 새기는 방법으로 이를 극복했다.」

복잡한 연산 과정을 전부 ‘마법’으로 만든 뒤 그걸 다시 한번 각인으로 가공한 것이다.

‘거기다 각인 효과에 염동 계통 출력 및 효율 증가까지 달아 놨네.’

이 정도면 ‘염동력’에 한해서는 거의 대마법사 수준으로 갈고닦고 연마한 연구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속독으로 개요를 살핀 도진은 실버문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실버문은 곧바로 기고만장한 얼굴이 됐다.

“역시 알아볼 줄 알았어. 이게 얼마나 대단한 마법적 진보인지 바로 깨닫지 못할 실력이면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었을 테니까.”

재수 없긴 하지만, 반박할 말은 없었다.

이건 이론상 「근력 강화」나 「신속화」처럼 사용 후 부작용이 동반되는 마법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적힌 대로만 된다면 상당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겠어. 안정성 부분은 검증해 봐야겠지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안정성 부분에서도 아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마법회로에 직접 손대는 게 아닌 각인을 새기는 것이니, 수틀리면 각인을 제거하면 될 일이다.

도진은 「고유 마법 체계 - 염동체술 편」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실버문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로써 나의 예술이 다시 빛을 뿌리게 되겠군.”

깊게 감격한 눈과 목소리에 도진은 생각했다.

‘…진짜 마법사란 새끼들은 죄다 미친 새끼밖에 없는 건가?’

후우. 나는 저런 마법사가 되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한 도진은 실버문에게 말했다.

“나한테 더 줄 게 남은 게 아니면 이만 가야겠는데.”

그러면서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당장 이 정체불명의 공간을 해제하고 현실로 돌려보내 달라는 제스처였다.

그 모습에 실버문이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

도진은 그를 미친놈 보듯 했으나 실버문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서 웃었다.

그러다가 웃음을 멈춘 그가 말했다.

“이것도 운명인가. 하필이면 여기에 도달한 자가 나와 이렇게나 닮아 있다니.”

“뭐? 이 미친놈이 뭐라-”

는 거야, 하고 뱉으려던 항의가 중간에 끊겼다.

공간이 투둑, 투둑 하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너지는 공간 속에서 실버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착 가라앉은 미소로 도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다시 돌아온 금고엔 원래는 없었던 마법진이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음각된 글자.

「그대들에게 약속한 잔금은 안전한 지름길로 지불하겠소.」

‘공간이동 마법진이군.’

마법진을 보자마자 정체를 알아챈 도진은 강철 봉우리 드워프에게 사실을 알렸다.

검증 결과 공간이동 마법진은 강철 봉우리 드워프가 잃어버린 유일한 통로 반대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150년이 넘게 지나서 지불된 실버문의 잔금에 드워프들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기뻐했다.

도진도 기쁘긴 마찬가지였다.

‘또 설산에서 구를 생각에 솔직히 암담했는데 다행이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도진은 마글로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뭐냐? 이 시간에.”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묻던 마글로는 도진의 분위기를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뭐야? 설마 너… 벌써 가려는 건 아니지?”

도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거든요.”

“안 돼! 적어도 내일 열릴 잔치는 참석해야지! 우릴 염치도 모르는 그런 드워프로 만들 셈이냐?”

“전 그런 떠들썩한 거 안 좋아해요.”

“그래도 이 자식아……. 이렇게 갑자기 가 버리겠다는 놈이 어디 있어?”

마글로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도진의 팔을 붙잡았다.

꽉 하고 전해지는 그의 악력엔 절절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록켈 그놈 때문에 만들어 둔 주괴가 잔뜩이야. 실버문 그 자식 덕에 주괴를 가져다 파는 것도 문제가 없게 됐고. 그 돈으로 마을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잘됐네요.”

“다 네 덕이지.”

“부정하진 않을게요.”

도진의 농담에 마글로가 피식 웃었다.

그러다 다시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마을에서 생산한 걸 납품하는 역할을 내가 맡기로 했어.”

150년 가까이 인간 사이에서 쌓은 경험과 도진을 데리고 돌아와 마을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맡게 된 역할이었다.

“규모야 커지겠지만, 장소는 계속 내 대장간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그러니까 언제든 놀러 와. 나나 우리 마을의 도움이 필요해도 오고. 너는 무슨 의뢰를 하든 무조건 무료다. 알겠지?”

“아무한테나 공수표 남발하는 거 보니까 또 사업 망하겠는데요.”

마글로가 인상을 쓰며 도진의 팔뚝을 후려쳤다.

“이 자식아, 아무나라니. 내가 말했지? 넌 내 형제나 다름없다고.”

“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네요.”

도진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마글로는 도진의 손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두터운 손으로 맞잡았다.

“몸조심해라.”

“아저씨도요.”

도진은 다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돌아온 도진은 가장 먼저 시살라에게 각인 제작에 쓸 마법 염료 재료를 보냈다.

「각인 새기는 데 쓸 염료가 필요해요. 적당한 때에 찾으러 갈 테니 보낸 재료로 잘 만들어 줘요. -도진」

돈 주고 살 수 있는 건 구할 수 있는 한 최고급으로 샀고, 메인 재료는 돈 주고도 못 구할 청성초.

마법 염료를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시살라에게 상당한 경험을 쌓게 할 수 있고, 이는 곧 그녀의 빠른 성장으로 이어질 터.

어차피 써야 할 재료로 현재도 쓸모 있고, 앞으로는 더 쓸모 있어질 NPC의 성장까지 도모하는 매우 효율적 소모라 할 수 있었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 3시간을 확보하는 게 꿈인 엘토마기아의 어느 불쌍한 마법사는 눈물을 흘렸지만, 도진은 알지 못하는 흐느낌이었다.

그런 뒤.

‘이제 좀 쉬자!’

도진은 현실로 돌아갔다.

솔직히 말해 이번 퀘스트는 전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중간중간 짬짬이 로그아웃을 하긴 했지만, 그건 정말 잠깐에 불과했다.

“…당분간은 진짜 제대로 좀 쉬어야지.”

캡슐에서 일어나는데 현기증이라니.

시간은 밤 11시 52분.

늦은 시간이었다.

도진은 아무 생각 없이 거실로 나갔다.

그런데 그때.

아무도 없어야 할 집에 인기척이 있었다.

매니저 휴게실이란 명목으로 천지현이 차지한 방 쪽이다.

“도진이?”

아니나 다를까 천지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더니 활짝 웃는다.

“드디어 나왔구나!”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퇴근하기 귀찮아서 그냥 여기서 자는 건가?

도진은 피곤함에 대꾸도 제대로 못 했다.

“잠깐만.”

잠옷 차림으로 도도도 달려 냉장고로 간 천지현이 꺼낸 것은 케이크였다.

피곤해도 이건 물어야겠다.

“웬 케이크야?”

“무슨 소리야? 오늘 네 생일이잖아! 혹시 오늘은 나오나 싶어서 퇴근 안 하고 여기서 기다리다 자려고 한 거야.”

“…아, 오늘 7일이야?”

1월 7일.

어느새 해가 바뀌고도 일주일이 지난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때도 게임만 하느라 휙 지나 버렸는데 생일은 챙겨야지.”

케이크 포장을 벗기고 초를 꽂으며 하는 말.

도진은 그런 천지현을 보며 생각했다.

‘제대로 살고 있네.’

탁탁. 의자를 두드리는 천지현.

도진은 조용히 식탁 앞에 앉았다.

촛불에 불을 붙인 천지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불러 주는 생일 축하 노래는 도진 입장에서 정말 살인적인 민망함이었다.

짝짝짝짝짝, 박수를 치며 눈으로 신호를 주는 천지현.

도진은 얌전히 촛불을 껐다.

이 시간까지, 그것도 당사자가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생일을 챙겨 주겠다고 기다린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얌전히 구는 게 맞다.

도진이 촛불을 끄자 천지현은 케이크를 잘랐다.

근데 잠깐.

“누나, 왜 안쪽이 초록색이야?”

겉은 초코렛 코팅인데 안은 초록……?

“민트 초코니까. 어차피 도진이 너는 한 조각 먹고 말 텐데, 그럼 나머지는 내가 먹어야 하잖아.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맛으로 샀어.”

당당히 대답한 천지현은 냉장고에서 조각 케이크를 꺼내 도진 앞에 내려놓았다.

“네 건 이거.”

“…나 좀 감동이 죽으려고 하는데.”

천지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 감동 다시 살려 줄게. 여기 선물.”

“선물?”

돈은 충분히 벌고 있는데 선물이라고 하니까 왠지 모를 기대가 피어난다.

도진은 포장이 과하게 훼손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선물을 개봉했다.

스마트폰이었다.

“뭐가 제일 적당할까 엄청 고민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도진이 네가 가진 거 중에 스마트폰이 제일 오래된 거더라고.”

돈이 넉넉해지면서 PC, 캡슐, 집……. 모든 게 바뀌었으나 스마트폰만은 아니었다.

없던 시절 쓰던 보급형 스마트폰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딱히 바꾸지 않아서 불편한 건 없었지만,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서 선물을 고른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민트 초코 케이크를 포크로 잘라 먹으며 웃는 천지현에게 도진이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어?”

“음… 딱히 별일이라고 할 거까진 없는데. 콘텐츠 쪽에서 노래 부르는 건 있어.”

“뭔데?”

“마법사 관련 팁, 공략 건은 어떻게 할 거냐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친저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너 예전에 인터뷰 할 때 뉴비 마법사들 너 때문에 피해자 됐다고 하니까 팁 풀어 준다고 했었잖아. 사람들 계속 기다린다고, 그거 언제 할 거냐고 그러는 거야.”

그걸 여태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도진은 이해 못 하겠다는 눈을 했고, 천지현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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