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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를 장식할 장소로 도진이 고른 곳은 강철 봉우리 드워프들이 식수로 쓰고 있는, 온천수가 모이는 커다란 호수였다.
‘록켈은 자기 걸 뺏기는 걸 아주 싫어했었지.’
부하든 지역이든 재물이든, 놈은 소유욕과 지배욕이 아주 강했다.
이곳 강철 봉우리 드워프의 터전인 지하 동공을 자신의 왕국쯤으로 여기고 있을 놈에게 있어 침입자가 발생한 거 자체가 참기 힘든 일일 터.
‘그런 상황에 침입자 놈들이 왕국 우물에 독을 풀고 다닌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겠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 전에 무조건 막으려 들 거다.
록켈은 자기가 구역을 과감히 포기할 정도로 욕심이 없는 놈이 아니다.
‘우선순위를 생각할 때 여긴 제일 먼저 지켜야 할 곳이니까 무조건 온다.’
확신을 가지고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록켈과 부하들이 나타났다.
‘급하긴 했나 보군. 직접 행차하신 걸 보니.’
인원은 13명.
마을을 감시할 최소 인원을 제외하고는 다 짜낸 숫자일 거다.
‘그럼 채굴장 쪽은 포기한 건가? 그쪽으로도 인원을 갈라서 보내길 바랐는데.’
적 전력이 더 잘게 쪼개졌으면 좋았겠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여기서 록켈까지 싹 다 정리하면 남는 건 잔챙이 몇 놈밖에 없을 테니.
도진은 고지대에서 얌전히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록켈과 놈의 부하들은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며 호수 쪽으로 접근했다.
“적엔 마법사가 포함돼 있다고 하니까 절대 방심하지 마라. 어디서 마법이 날아올지 모르니까 눈깔 똑바로 뜨고 경계하라고!”
이리저리 사나운 눈을 돌려대며 소리치는 록켈.
몸을 숨긴 도진은 생각했다.
‘산개를 잘해 놔서 한 방에 큰 피해를 주긴 어렵겠는데.’
적도 바보는 아닌지 마법사를 상대로 해야 할 기본적 대처는 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초의 기습이 주는 이득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록켈한테 타격을 입히면서 다른 놈들까지 하나나 둘 정도 휘말려 주면 내 입장에선 베스트인데…….’
결국 선택지는 좁기는 해도 범위 공격이 가능하면서 화력도 뛰어난 「화염포탄」이었다.
하나, 둘, 셋.
적이 적절한 위치에 도달하길 기다렸다 완벽한 타이밍을 노린 마법 공격.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공격이기에 이보다 깔끔할 수는 없는 기습이었다.
“적이다!”
한데 록켈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도진이 몸을 숨기고 있던 바위에서 튀어 나간 순간 이미 록켈은 도진을 발견했고.
퉁, 하고 완성된 화염포탄이 발사될 때는 번개처럼 단검을 투척하고 있었다.
퍼어엉.
록켈이 투척한 단검은 화염포탄을 중간에 요격해 공중에서 터지게끔 만들었다.
‘저거 완전 미친 새끼 아냐!’
도진으로서는 극찬을 보낼 수밖에 없는 기예였다.
기껏해야 레벨 100대 초반을 벗어나지 않을 퀘스트에 엮인 놈이 저런 무위라니.
‘나사가 빠졌든 어쨌든 네임드 빌런은 네임드 빌런이란 건가.’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뭣들 하고 있어! 저 새끼 죽여!”
록켈의 고함에 다른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핑.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화살이 바위 모서리를 깎아 냈다.
몸을 숨기는 게 조금만 늦었으면 뚫리는 건 도진의 몸뚱아리였을 거다.
“못 나오게 속사로 제압 사격해! 나머지는 날 따라온다!”
록켈이 오르막을 미친 듯이 달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놈들도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록켈을 따라오고 있고.
퍽. 퍼퍼퍽.
살벌한 소리를 내며 박히는 화살과 볼트, 투척용 단검 때문에 근거리 딜러 놈들이 달려드는 걸 요격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숫자를 하나도 못 줄인 건 아쉽지만, 다음 작전에 맡기는 수밖에.’
도진은 뒤도 안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을 다 오른 록켈이 눈을 뒤집어 가며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 새끼 튄다! 다 올라와!”
미친 듯이 도진을 추격하는 록켈.
‘다리도 짧은 게 더럽게 빠르네!’
쭉쭉 줄어드는 거리감에 도진은 뒤돌아서며 1성 마법을 연사했다.
“이딴 게 통할 거 같냐!”
록켈은 바람 화살과 얼음 화살을 아무렇지 않게 도끼와 주먹으로 쳐 냈다.
다만 그의 부하는 달랐다.
“컥!”
얼음에 무릎이 뚫려 고꾸라지는 록켈의 부하.
도진이 소리쳤다.
“네 졸병들한테는 통하는 모양인데!”
록켈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부스터라도 쓴 건가.
속도도 더 빨라진다.
휙.
놈이 던진 단검이 도진의 옆구리에 박혔다.
“큭!”
훅 하고 줄어드는 생명력.
저 새끼 공격력이 장난이 아니다.
도끼질에 제대로 맞으면 두 방 버티기도 힘들 거 같았다.
“아네모네!”
더 이상 어그로를 몸으로 끌긴 무리라 판단한 도진은 아네모네를 소환했다.
그리고 바로 아네모네의 등에 달라붙었다.
“달려!”
아무리 빨라 봐야 드워프에 인간이다.
마법사보다 빠른 게 자랑이냐?
이쪽은 늑대형 정령이다.
“쫓아! 여기서 저놈을 놓치면 피해가 커진다! 마법사는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돼!”
록켈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100레벨을 넘긴 전사의 육체가 잠재력을 폭발시킨 질주.
그럼에도 거리는 줄어들기는커녕 벌어지기만 했다.
한데 그때 매달려 있던 도진이 위태롭게 흔들리더니 늑대의 속도가 줄어들었고, 심지어 늑대가 사라졌다.
‘소환수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다친 건가!’
그렇게 판단한 록켈은 더욱 열심히 발을 놀렸다.
가증스런 마법사 놈이 비척대며 도주를 이어 가지만, 이 거리에 저 속도.
얼마 안 가 놈의 면상을 구겨 줄 수 있다.
록켈의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상처 입은 사냥감 연기를 너무 실감나게 한 도진을 쫓느라.
쿠르릉.
자신들이 아주 위험한 곳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늦어 버린 것이다.
‘무슨 소리……?’
머리 위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리에 눈동자만 위로 올려다보는 록켈.
그리고 직후 그의 고개가 부러질 기세로 위로 들렸다.
위쪽에 수십 명의 드워프들이 있었던 것이다.
콰콰쾅.
그뿐 아니라 폭발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람 머리통보다 큰 돌덩이 수십, 아니 수백 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해!”
록켈은 목이 갈라져라 소리쳤다. 비단 그가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이미 그의 부하들은 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방해꾼이 있을 뿐.
《점화》
도주하던 도진이 어느새 뒤돌아서 마법을 시전했다.
목적은 이미 넉넉하게 뿌려 둔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
정확히 록켈과 부하들이 딛고 서 있는 지점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였다.
“부, 불이다!”
“으아악!”
“이 정도 불에 안 뒤져! 빨리 물러나든 앞으로 치고 나가든 하란 말이다!”
혼란은 가중됐고,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떨어지고 구른 돌덩이가 어느새 도착했다.
퍽, 퍼퍼퍽.
사람과 돌덩이가 충돌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울렸다.
튼튼한 놈들이라 한두 번의 충돌로 죽을 만큼 다치진 않았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중심을 잃거나 넘어지는 사람은 연속으로 돌덩이에 짓이겨지는 신세가 됐다.
“이런 개 같은!”
그 와중에도 록켈은 날아오는 돌을 쳐 내고 막아 내며 길을 개척했다.
《섬광창》
그러나 도진은 록켈이 쉽게 위기를 극복하게 두지 않았다.
피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찍힌 광점이 터지며 록켈의 고개가 팍 하고 꺾였다.
“컥!”
두부에 가해진 공격에 찰나 동안 정신이 아득해진 록켈.
퍽.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를 깨워 준 건 면상에 처박힌 커다란 돌덩이였다.
“크윽!”
코피를 터뜨리며 비틀대는 록켈.
“이 개자식이!”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록켈이 도끼를 투척했다.
도진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도끼를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저 상태에서 이런 공격을 한다고?’
도진조차 경악할 만큼 빠르고 정확한 투척이었다.
푸확.
도진의 허벅지가 터졌다.
완벽하게 피했다고 생각했으나 마지막 순간 도끼 궤도가 부메랑처럼 틀어지며 허벅지를 스친 것이다.
“제기랄!”
회심의 일격이 도진의 숨통을 끊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록켈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래도 이걸로 저놈도 끝이다!’
록켈은 발목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 남은 단검이다.
신중하게 던져야 했다.
그런 생각이 록켈의 공격을 잠시 지연시켰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거센 불길도 문제였다.
“젠장!”
기합처럼 욕을 뱉으며 록켈이 단검을 던졌다.
맞는다.
무조건이다!
《영체화》
하지만 단검은 도진에게 닿지 않았다.
도진이 타이밍에 맞춰 장비 스킬을 쓴 것이었다.
록켈은 순간적으로 반투명해졌다 돌아온 도진과 눈이 마주쳤다.
“시발.”
도진의 손엔 푸른 전광이 들려 있었다.
한번 빼앗긴 기회와 타이밍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전장의 법칙이었다.
《뇌전의 창》
삶과 죽음을 가를 일격이 허공을 갈랐다.
* * *
「뇌전의 창」 한 방에 록켈이 그로기 상태에 빠지면서 전투는 허망할 정도로 간단히 끝이 났다.
가뜩이나 혼란에 빠졌던 록켈의 부하들은 레벨만 높게 잡힌 양아치 오합지졸이었고, 그런 놈들이 회복한 도진의 마법 세례를 견딜 리 만무했다.
마을 밖으로 나온 전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마을에 남은 잔당은 그야말로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놈들은 뻔한 인질극 시도마저 못 해 보고 포로가 되거나 시체가 됐다.
[퀘스트 완료!]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썩은 새싹을 완전히 제거하였습니다.]
[정해져 있는 운명을 뒤틀었습니다.]
[위대한 업적 <운명을 뒤튼 자>의 달성 조건 중 극히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업적 부분 달성 보상 및 운명 퀘스트 보상이 ‘낭만이 있는 보물찾기’ 퀘스트 보상에 합산됩니다.]
마을을 해방시킨 순간 운명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떴다.
경험치를 제외한 보상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퀘스트가 엮여 있다 보니 기존에 진행 중이던 퀘스트 보상과 합쳐진 모양이었다.
메시지를 보고 있을 때 흥분한 마글로가 달려왔다.
“끝났다, 끝났어! 방금 놈들로 록켈이 데려온 인간은 더 없대!”
“…마글로?”
그런데 그때.
나이 지긋한 여성 드워프가 인파를 뚫고 나왔다.
그러자 마글로가 석상처럼 굳었다.
눈치 빠른 도진은 재빨리 물러났다.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
“어, 엄마…….”
아니나 다를까. 마글로 입에서 도진이 생각한 그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럼 이다음은 눈물의 상봉 뭐 그런 건가? 하고 생각한 순간.
마글로의 얼굴 정중앙에 주먹이 꽂혔다.
뻐억- 하고 울리는 소리를 보아 진심 펀치였다.
“커흡!”
“도대체 어디서 뭐 하다가 이제야 기어들어 온 거야!”
어머니의 포효와 함께 구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