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도진이 완벽한 기습으로 적 하나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아네모네가 움직였다.
【크앙!】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도진과 동떨어진 위치에서 튀어나와 남은 두 놈의 시선을 돌린 것이다.
“느, 늑대?”
“딱 보면 몰라? 몬스터잖아!”
동료의 갑작스런 의문사에 반응할 새도 없이 닥친 새로운 위협은 범죄자 두 놈이 생각이란 걸 할 기회를 앗아갔다.
“이 빌어먹을 들개 새끼가 파키를!”
투척용 도끼를 꺼내 든 놈이 아네모네를 향해 도끼를 던지려고 한다.
《대지 속박》
하지만 투척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놈들의 신경이 아네모네 쪽으로 쏠린 사이 준비된 도진의 마법이 하반신을 속박한 것이다.
“어억?”
오래 지속되지 않을 속박이지만, 공격 타이밍을 한번 뺏는 걸로 충분했다.
빠르게 시전 가능한 공격 마법을 바로 먹여 주면 그만이니.
투척 도끼를 쓰는 놈이 1성 공격 마법을 종류별로 얻어맞고 있을 때 나머지 한 놈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익!”
옆에서 동료가 묶여서 얻어맞든 말든 일단 본인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드는 늑대를 향해 창을 내지르는 놈.
【흥!】
하지만 아네모네는 절묘하게 고개를 꺾어 창대를 물고는, 달리던 기세 그대로 밀어 버렸다.
쿠웅.
“커헉!”
육중한 정령 늑대와 충돌한 놈은 붕 떠서 바닥을 굴렀다.
그래도 바로 벌떡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으려는 시도를 하긴 했으나.
퍽.
아네모네의 앞발이 놈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게 먼저였다.
“어윽……!”
범죄자의 흔들리는 시야로 일렁이는 실루엣이 다가왔다.
“이놈들, 마법 저항력은 형편없는데 물리 공격 쪽은 그래도 좀 버티네? 머리는 나쁜데 몸은 튼튼한, 뭐 그런 건가.”
도진이었다.
“너… 너, 이 새끼 정체가 뭐-”
도진의 손이 범죄자의 얼굴을 덮었다.
“강도 조절은… 이쯤이면 죽진 않겠지.”
《방전》
“으그으으으으윽-!”
엑스트라의 의미 없는 대사를 들어줄 정도로 도진은 시간 낭비를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몸에 전기가 통하자 팔다리를 쭉 펴고 경련하는 놈을 보며 도진이 말했다.
“야, 네 친구는 벌써 기절했어. 너도 버티지 말고 빨리 기절해. 마나 아까워, 새끼야.”
영문도 모른 채 고통에 몸부림치던 놈은 결국 눈을 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 * *
“헉!”
고든은 눈을 뜨자마자 주변부터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다.
같이 있던 두 놈은 시체도 보이지 않았고, 늑대와 전기 고문을 하던 악마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일단 도망가야 돼.’
겁에 질린 고든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채굴장을 향해 달렸다.
일어난 위치가 마을에선 멀고, 채굴장에선 가까운 곳이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정한 방향이었다.
얼마 안 가 채굴장이 보였다.
“저, 적이야, 적! 늑대랑 웬 거뭇거뭇한 새끼가 있다고!”
고든은 달려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채굴장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나오더니, 인상을 팍 쓰며 마주 소리친다.
“뭐라는 거야, 병신 새끼야! 근데 왜 너 혼자야? 나머지 둘은? 설마 바지 벗고 흔들어 대느라 늦는 거라고 지껄일 거면 알아서 해라. 진짜 아랫도리에 달린 조막만 한 물건 잘라다 목구멍에 쑤셔 박아 줄 테니까!”
“병신들아, 진짜라고! 파키는 죽고 나도 뒤질 뻔했다고! 내 꼴 안 보이냐?”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채굴장을 지키고 있던 인원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고든의 꼴이 말 그대로 넝마에 가까웠던 것.
그들은 고든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파키가 뒤져? 제대로 설명해 봐. 이번 교대 인원이 너랑 파키랑 또 누구였지? 나머지 한 명은 어떻게 됐어?”
쏟아지는 질문에 고든은 세상이 빙빙 도는 거 같았다.
“제기랄… 토할 거 같아.”
“설명을 하라고!”
“얘기했잖아! 어떤 개자식이 우릴 공격했어! 그래서 파키는 대가리가 터졌고, 나는…….”
말하며, 고든은 답답함에 옷을 풀어해쳤다.
그런데 투두둑- 하고 뭔가가 떨어졌다.
“……?”
그것은 예쁘게 세공된 마석이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인위적인 충격이 고든의 등을 때렸다.
* * *
멀리서 고든 뒤를 쫓던 도진은 혀를 찼다.
‘채굴장에 있는 놈들을 다 휘말리게 하고 싶었는데.’
고든은 현재 등과 가슴에 마석 폭탄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더 극적일 때 터뜨리고 싶었던 도진이었으나 생각보다 일찍 발견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깨어나자마자 폭탄 조끼를 입은 처지란 걸 눈치채지 못하고 저기까지 달려가 준 게 어디인가.
도진은 마석 폭탄이 드러나자마자 「염동」으로 충격파를 만들어 쐈다.
멀리서 바닥에 떨어진 마석 폭탄을 멍청하게 바라보는 놈이 휘청 하고 움직인다.
곧이어 퍼엉, 콰앙 하는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좋아. 이걸로 채굴장에 세 놈 남았고.’
도진은 적당한 걸 싫어했다.
해서, 마석 폭탄도 넉넉하게 챙겨 줬다.
어차피 투자할 거 한 방에 끝내야지.
덕분에 깔끔하게 세 놈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정도 폭발에 견딘 건 의외지만, 그래 봐야 반 시체 신세면 소용없지.’
더 이상 숨어 있을 필요가 없어진 도진은 대놓고 채굴장을 향해 달렸다.
“으으윽……!”
“끄아아아악… 내, 내 팔이……!”
마석 폭탄 걸이로 쓴 놈은 바로 뒤졌고.
나머지 세 놈은 각자 잃어버린 신체 부위를 부여잡고 곡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전투 능력을 상실한 놈들은 알 바 아니고.
‘나와라.’
중요한 건 멀쩡한 나머지다.
채굴장 입구를 보며 달리고 있으려니 폭발음에 반응한 놈들이 헐레벌떡 나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야!”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동료들이 팔다리를 잃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당황하는 놈들.
도진은 그들 중 하나에게 「섬광창」을 날렸다.
제 가슴에 찍힌 광점을 ‘헉’ 하고 내려다보던 놈이 빛의 폭발과 함께 뒤로 날아간다.
“끄으으윽……!”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놈을 보며, 도진은 ‘이걸 맞고 살아?’ 하는 생각을 했으나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대신 반사적으로 무기를 뽑아 드는 놈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고 싶으면 무기 버려.”
말하는 도진 옆으로는 「빛」으로 만든 광구가 6개 떠 있었다.
공격력이라고는 전무한 조명에 불과한 빛.
하지만 그걸 아는 건 도진뿐이었다.
‘도,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방금 빛이 저거라고? 그런 게 6개 씩이나…….’
폭음에 나와 보니 동료가 팔다리가 잘려서 뒹굴고 있고.
순식간에 눈부신 섬광과 함께 멀쩡하던 놈 하나가 중상을 입고 날아가고.
공격한 당사자인 거 같은 놈 옆에 빛나는 구체가 6개나 둥둥 떠 있다?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꿀꺽.
침을 삼킨 멀쩡한 둘은 고민했다.
정말 무기를 내려놓아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볼지.
‘이게 통하네.’
블러핑으로 번 시간 동안 마법회로에 마법을 쌓은 도진은 말없이 주문을 발동했다.
《다중 화염탄》
고맙다. 아직 5성 마법은 쓰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빛」으로 띄운 광구가 사라지면서 대신 10개가 훌쩍 넘는 주먹만 한 화염탄이 생성됐다.
그걸 본 놈들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애원했다.
“죄, 죄송합니다! 무기 버릴게요, 아니 버렸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저도, 저도 버렸습니다!”
한 놈은 아예 무릎까지 꿇었다.
자신들이 무기를 버리지 않고 망설이니까 화가 나서 공격하려는 걸로 생각한 모양.
물론 도진은 적이 항복을 하든 말든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잘 짜인 각본과 연출에 놀아나 전투 의지를 상실한 자들에게 화염탄이 쇄도했다.
놈들은 겹치고 겹치는 폭발에 휘말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사, 살려 주…….”
도진은 마석 폭탄에 휘말린 놈들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좋아, 채굴장은 확보했고.’
도진은 조심스럽게 채굴장 안으로 들어가 봤다.
드워프들은 이미 입구 쪽을 불안한 기색으로 살피고 있었다.
폭음을 들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도진은 경계심 가득한 드워프들의 시선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도진은 쇠사슬에 묶인 채 조악한 곡괭이를 들고 있는 드워프에게 다가갔다.
절그렁 하는, 드워프들이 일제히 물러나는 소리가 채굴장에 울렸다.
도진은 나이 들어 보이는 드워프에게 물었다.
“혹시 마글로 로이드를 아시나요?”
경계심으로 가득하던 드워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 * *
마글로는 긴장한 눈으로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남자를 살폈다.
채굴장으로 향하던 놈들 중 하나는 처음에 죽고, 생포한 둘 중 하나는 도진이 가져가고, 이건 아네모네 몫으로 가져온 놈이었다.
“언제 일어나려나?”
【지금, 지금 눈꺼풀 꿈틀거리는데?】
“어어, 그럼 바로 시작하자!”
마글로는 부랴부랴 술병을 꺼냈다.
이미 술은 다 마셨고, 온천수를 채워 놓은 술병을 들고 온천수가 고여 있는 장소로 달려간다.
그런 뒤 기절했던 놈이 눈을 떴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고는 다시 기절한 척하는 걸 확인한 뒤.
“크큭, 여기 있는 물이란 물은 다 오염시켜서 몰살시켜 주지.”
국어책 읽는 듯 어색한 톤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술병에 담아 뒀던 온천수를 다시 온천에 붓는다.
그걸 본 아네모네가 천진난만하게 맞장구를 쳤다.
【제대로 독이 풀렸는지 확인해야 되지 않겠어?】
“걱정 말라고. 그걸 위해 저 녀석을 살려서 데려온 거니까.”
【뭐라고? 독을 먹이면 내 간식이 오염되잖아.】
대화가 진행될수록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진동했다.
심신미약 상태인 그에게 어색한 연기를 구분할 정신 따위 없었다.
“농담 마.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인 뒤에 마법 실험 재료로 쓴다고 두목님이 말씀하셨…….”
결국 견디다 못한 남자는 냅다 일어나 달렸다.
“으아아악!”
무기가 없어 기습은 할 수 없어도, 포박이 어설퍼서 바로 풀어낼 수 있었기에 도주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감쪽같이 속은 거 같지?”
【우리 연기가 그만큼 좋았던 거야.】
마글로와 아네모네는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저놈은 도진의 의도대로 의문의 적 세력이 물에 독을 풀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보고를 올릴 것이다.
“우리 할 일은 마쳤으니 도진이 쪽으로 가 보자.”
【응.】
둘은 도진과 합류하기 위해 채굴장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중간 지점에서 도진과 채굴장에서 노역 중이던 드워프들과 조우했다.
도진은 아네모네를 불러들이며 마글로에게 말했다.
“잘됐어요?”
“완벽해. 완전히 속은 거 같다.”
“그럼 이분들이랑 같이 다음 거 준비해 줘요. 작전대로.”
“걱정 마라.”
작전의 마지막 페이즈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