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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상태를 본 마글로는 다짜고짜 튀어나가려 했다.
“잠깐, 뭔가 이상하면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해야죠!”
뒤늦게라도 도진이 말리지 않았다면 바로 들이받았을 것이다.
“이거 놔!”
그러나 이미 흥분한 마글로는 도진을 뿌리치고 달리려 했다.
‘이건 말로 해 봐야 소용없겠네.’
이런 경우 말로는 말릴 수 없다는 걸 숱한 경험으로 알게 된 도진은 어쩔 수 없이 무력을 동원했다.
《전기 충격》
가볍게 마비만 시킬 정도로 조절한 「전기 충격」으로 근육을 일순간 마비시키고, 목덜미를 붙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억!”
그러나 한번 넘어뜨렸다고 얌전해질 리가 없으니, 머리를 식힐 때까지 제대로 제압을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아네모네.”
도진은 아네모네를 소환했다.
나타난 장소는 넘어진 드워프 아저씨 바로 위.
“어억!”
갑작스레 얹어진 무게감에 마글로가 괴로워했다.
“아네모네, 잘 누르고 있어. 괜히 날뛰면 상황 복잡해지니까.”
상황도 모르고 도진이 시키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아네모네.
마글로는 원망 가득한 눈으로 도진을 노려봤다.
“이, 이 자식이……!”
“저기 마을에 무장한 인간들 있는 거 안 보여요? 괜히 무작정 들이받았다가 아저씨까지 잡히면 상황만 더 꼬여요.”
“무장한 인간이라고?”
거봐.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냅다 달린 거잖아.
한숨을 쉬며 도진은 아네모네에게 손짓했다.
도진의 의지를 읽은 아네모네가 제압을 풀어 줬다.
“잘 봐요. 저기랑 저기 그리고 저기. 무장한 인간이 둘씩 총 여섯 명 있어요.”
마글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도진이 가리키는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마안을 가진 데다 「원시」를 발동 중인 도진에겐 또렷이 보이지만, 평범한 시력을 지닌 마글로가 보기엔 거리가 멀었던 탓.
그래도 드워프와 인간은 체형적으로 차이가 확연하기에 마글로도 곧 고향 마을 드워프 사이에 인간이 섞여 있는 걸 알아챘다.
“저놈들… 저 인간 놈들이 우리 마을을 저렇게 만든 거란 말이지?”
마글로의 두꺼운 손이 허리춤의 도끼자루를 움켜쥔다.
그런 그를, 다시 한번 도진이 말렸다.
“아저씨 마음은 알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돼요. 그게 마을 사람들 구하는 길이란 거, 아저씨도 알잖아요.”
“…….”
도진의 말에 마글로가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마글로를 말리느라 잠시 치워 뒀던 시스템 창을 다시 띄웠다.
[퀘스트 선택지 발생!]
낭만이 있는 보물찾기
[실버문의 유산을 찾던 중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어차피 실버문의 금고는 이 근처에 있지 않을까? 괜한 위험을 감수하느니 자력으로 실버문의 유산을 찾아보는 게 나을 거 같다.
▷마글로는 나의 친구! 친구의 고향이 위험에 빠진 걸 외면할 수는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면 돌파를 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낳지 않을까?
쓸데없는 거였네.
도진은 고민 없이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 * *
감시를 시작한 지 12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마을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감시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다.
마을은 점령한 집단이 전혀 경계랄 걸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긴 이런 곳에서 침입자 걱정을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
젠장. 가만히 엎드려만 있는 것도 고역이네.
하는 일이라고는 망원경으로 마을 동태를 살피는 게 전부다 보니 지겨움이 과하다.
‘그래도 이게 있어서 다행이지.’
마글로가 뒤늦게나마 선물 꾸러미에 망원경이 따라온 걸 떠올리지 못했다면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도진이 잠시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스트레칭을 할 때였다.
툭.
마글로가 도진의 어깨를 건드렸다.
돌아보니 치즈를 베이컨으로 감싼 주먹만 한 덩어리가 보였다.
“교대다. 먹고 좀 자 둬.”
진은 마글로가 건넨 치즈 베이컨 말이를 받아 들며 말했다.
“아저씨가 말한 광맥이 있는 게 저쪽 방향이죠?”
“어.”
“무장 인원 3명이 그쪽으로 가더니 좀 있다가 무장한 놈들 3명이 복귀하더라고요.”
“마을 쪽은?”
“2인 1조씩 3개조가 계속 유지되는 거 같아요. 8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는 거 같으니 중복되는 인원을 파악하면 총 몇 명이 로테이션을 도는 건지 알 수 있겠죠.”
“그래. 내가 신경 써서 확인할 테니 좀 쉬어.”
고개를 끄덕인 도진이 망원경을 넘기고 뒤로 물러나 휴식을 취하려 할 때였다.
“어?”
마글로가 놀라 펄쩍 뛰었다.
“무슨 일이에요?”
다시 마을이 보이는 위치까지 나간 도진이 「원시」를 사용했다.
그러자 보인 것은 마을 중앙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어느 드워프의 뒷모습이었다.
특이한 점은 드워프임에도 갑옷과 투구는 물론이고, 커다란 도끼 두 자루를 등에 메고 있다는 것이었다.
몇몇은 족쇄까지 차고 있는 다른 드워프와는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는 드워프예요?”
도진은 뒷모습만 봤지만, 마글로의 반응을 보아 그는 저 드워프의 얼굴을 보았고, 정체도 알고 있는 듯했다.
역시나 마글로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보다 먼저 마을을 떠났… 아니, 마을에서 추방된 자식이야. 술 먹다 시비가 붙은 세 명을 불구로 만들었거든.”
그 순간.
건물로 들어갔던 드워프가 밖으로 나왔다.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드워프.
‘어?’
그런데 낯이 익다.
턱에 난 커다란 흉터로 인해 이상한 모양으로 자란 수염.
보석 박힌 화려한 안대를 한 애꾸눈.
‘밀수꾼 록켈.’
무기, 마약, 노예 등 취급 안 하는 게 없는 악질 범죄자이자 미래에는 멸망교단에 협력하기까지 하는 네임드 개자식.
[퀘스트]
썩은 새싹의 냄새
등급: 운명
[역겨운 냄새가 나는 새싹이 땅 밑에 숨어 자라고 있습니다.
피어나면 안 될 새싹입니다.
피어날 일 없이 완전히 태워 주십시오.
로스타니아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목표: 썩은 새싹 완전 소멸
보상: 경험치, 골드, ???
록켈의 얼굴을 정확히 인지한 순간 퀘스트가 떴다.
있던 퀘스트가 갱신된 게 아니라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된 것이다.
그것도 ‘운명’으로.
‘이러면 실버문이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게 맞지.’
실버문의 유산을 쫓아 온 곳에서 네임드급 빌런으로 성장할 개자식을 만났다.
‘마을을 구하는 것도, 실버문의 유산을 찾는 것도 록켈의 죽음이 필수적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저놈이 살아서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미래에 큰 암덩이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기에 저놈을 죽여 없애는 게 별도의 운명 퀘스트로 주어진 것이겠지.
‘좀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겠어.’
록켈은 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무력형 빌런은 아니었다.
지금은 굵직한 악당으로 성장하기 전이니 상대적으로 더 약할 거고.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저놈이… 다른 인간들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온 모양이다.”
괴로움이 묻어나는 마글로의 목소리가 도진의 사색을 깼다.
그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변하는 건 없어요. 적 전력을 파악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 그것만 생각해요.”
“…그래, 그래야지.”
그래, 변하는 건 없었다.
도진과 마글로는 서로 교대해 가며 정보를 모았다.
적의 숫자와 무장 수준, 언제 교대를 하고, 어디어디에 인원이 배치되는가.
“확인된 적은 30명. 록켈을 제외한 전원이 인간. 채굴장에 상시 배치되는 인원은 6명.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마을에 상주한다고 보면 되겠네요.”
확인된 사항을 하나씩 입에 담는 도진.
마글로가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직접 눈으로 본 적만 30명이라는 건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단 소리잖아. 우린 2명뿐인데… 어떻게 하지?”
그런 그를 향해 도진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누군지 알아요?”
“……?”
“바로 방심한 적이에요. 방심한 적만큼 든든한 게 또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침입자가 있을 거란 상상도 못 하고 있는 저놈들은 다 우리 편인 셈이죠.”
“말이야 쉽지. 하지만 그게… 아니다. 네 말이 맞다. 어차피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겁부터 먹으면 안 되겠지.”
말을 마친 마글로가 도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매우 부담스런 눈빛으로.
“뭐예요? 부담스럽게.”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기에 물어보자 살짝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마글로가 툭 뱉었다.
“난 이제부터 널 형제로 생각할 거다. 그렇게 알아.”
그러기 무섭게 뜨는 관계 형성 메시지.
시작부터 호감도가 50이 박혔다.
중년 드워프 아저씨한테 점수를 과하게 딴 모양이다.
피식 웃으며 도진이 말했다.
“형제는 좀 양심 없는 거 아니에요? 나이 차이는 그렇다 치고 외모 차이가 얼만데.”
“시끄러워, 이 자식아! 사나이가 속에 있는 얘길 꺼냈는데 좀 진지하게 받아 봐라, 어?”
* * *
적이 이쪽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 상상 이상의 이점이다.
이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도진은 철저하게 작전을 짰고, 작전을 시행하기 위한 준비도 시간을 충분히 들여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준비는 완벽해요. 작전대로만 하면 무조건 우리가 이깁니다.”
이틀 동안 도진과 함께 작전을 준비한 마글로는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 녀석이랑 함께라면 가능해.’
도진이 짠 작전과 그의 지시대로 준비한 수많은 것들이 희망이 됐고 자신감이 된 것이었다.
마글로는 망원경에 눈을 대며 말했다.
“올 때가 됐는데.”
현재 도진과 마글로가 있는 곳은 마을과 채굴장 중간이었다.
마을과 채굴장의 거리는 도보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
감시감독 교대를 위해 일정 시간마다 오고 가는 적 3명이 필연적으로 고립되는 지점이다.
“온다.”
마글로의 말대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무장한 적 3명이 보였다.
강철 봉우리 마을에서도, 채굴장에서도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저지대에 접어든 3명은 자신들의 운명도 모르고 낄낄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 제기랄. 딱 다음에 내 차례였는데 교대 시간이라니.”
“그러게 제비뽑기를 잘했어야지. 아구로 그 새끼는 한번 시작하면 너무 오래 하잖아.”
“그 좆 같은 지루 새끼.”
“그런데 말이야. 우리 인원이 몇 명인데 여자가 겨우 다섯인 게 말이 돼?”
“불만 있으면 두목한테 말해 봐. 혹시 아냐? 암컷 드워프라도-”
음담패설은 중간에 끊어졌다.
저급한 언어를 뱉어야 할 남자의 머리가 푸른 섬광과 함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