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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마글로의 향수병을 자극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부족 사람들도 아저씨 걱정 되게 많이 하고 있을 텐데."
"그렇겠지……?"
"몬스터 서식지가 가로막고 있어서 못 간다는 것도 변명인 거 다 알아요. 가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잖아요. 몬스터 문제면 모험가를 고용했으면 됐을 텐데."
향수병이라도 자극받은 걸까.
마글로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냐… 대장간이 적자가 날 때가 많아서 대출을 아직 다 못 갚았거든……."
"…도대체 대장간 운영을 어떻게 한 거예요?"
"어쩔 수가 없었어. 대장간 장비나 기구도 분기별로 최신형으로 바꿔야 하고, 식칼 하나를 만들어도 최고급 철을 재료로 써야 최소한의 품질 유지가 되다 보니까……."
알겠다. 이 아저씨가 왜 망했는지.
사업하면 안 되는 인간, 아니 드워프가 사업을 했으니 망할 수밖에.
원래 이런 장인 타입은 돈 못 번다. 까먹으면 까먹었지.
"가슴 아픈 얘긴 그만하고. 아저씨, 이런 식으로 굴면 죽을 때까지 고향에 못 가요. 얘기 나왔을 때, 가고 싶은 마음 딱 들었을 때, 기회가 생겼을 때. 눈 딱 감고 가자, 마음먹어야 고향 땅 밟아 보죠. 7급 모험가가 공짜로 도와주겠다고 하는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요?"
"……."
술잔을 꽉 쥐고 고민하던 마글로가 글썽이는 눈으로 소리쳤다.
"너 이 자식, 엄청나게 좋은 녀석이구나!"
[퀘스트]
낭만이 있는 보물찾기
등급: 히든
[실버문의 옛 인연을 만났다.
그와 함께 실버문이 남긴 흔적을 찾아보자.]
목표: 실버문이 준비한 보물찾기 즐기기
보상: 실버문의 유산
도진이 길잡이를 얻는 순간이었다.
* * *
귀향을 결정하자마자 마글로는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한참.
마글로는 자기 몸보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다.
"그게 다 뭐예요?"
"뭐긴. 그동안 교향 생각 날 때마다 조금씩 준비한 선물이지. 가면서 필요한 물품도 조금 챙겼고."
"좀 들어 줄게요."
말하며, 인벤토리를 개방하는 도진.
"이래서 마법사 녀석들은 낭만이 없다니까. 이 무게감이 귀향이 주는 설렘의 무게야. 모험도 마찬가지지. 어깨에 딱 중량감이 느껴져야 이제 모험 시작이구나, 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니까?"
하지만 마글로는 껄껄거리며 거절했다.
많이 망설이더니 막상 귀향을 결정하고부터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도진은 그를 데리고 마법 열차 역으로 향했다.
"잠은 열차에서 자도록 하죠."
늦은 시간.
티그렉 산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은 도진은 휴식을 위해 바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마글로는 복잡한 눈으로 창밖을 보며 밤을 지새웠다.
* * *
티그렉 산은 높고 험준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마글로의 고향 마을로 향하는데 티그렉 산을 넘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강철 봉우리 부족 마을로 가는 길은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어. 대충 3시간쯤 걸릴 거다."
험한 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낮은 능선을 타고 걸었다.
그리 높지 않은 높이라지만, 3시간쯤 산과 씨름을 하니 만년설이 쌓인 높이에 도달했다.
‘마법사치고’ 좋은 체력은 그쯤에서 고갈됐다.
"아직 멀었어요?"
헉헉거리는 숨으로 묻는 도진.
마글로가 땀을 닦으며 길을 살핀다.
만년설과 땀이라니. 이미 이 두 단어가 공존하는 게 심각한 문제다.
"좀만 더 걸으면 될 거 같은데? 눈이 쌓여서 예전이랑 길이 달라지긴 했는데, 그래도 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감이라. 정말 불안한 단언데.
도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캬오옥!"
비탈 아래서 얼룩덜룩한 짐승이 튀어나왔다.
"어억!"
놀란 마글로는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도진은 바로 적에게 반응했다.
《얼음 화살》
주변 환경이 만년설이 유지될 만큼 추운 곳에서 쓰기 적당한 마법은 정해져 있다.
평소보다도 훨씬 빠르게 완성된 「얼음 화살」은 도약한 짐승을 늦지 않게 요격했다.
"켕!"
습격에 실패한 적은 하얀 표범이었다.
평범한 표범이 아니라 몬스터화가 된 놈이라 그런지 얼음 화살에 맞고도 바로 일어나 빠르게 달려든다.
《얼음 방패》
도진은 빠르게 장벽을 세워 적의 공격 타이밍을 뺏고.
「전기 충격」에서 이어지는 「얼음창」 콤보를 먹였다.
잠시 마비시키고, 그렇게 번 시간에 좀 더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하는 마법사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
"캬웅……."
백표범의 숨이 끊어졌다.
그 시체를 보던 마글로가 도진에게 말했다.
"너 대단하구나!"
뭘 이 정도로.
티그렉 산이라고 해 봐야 이 구간 레벨은 도진 레벨과 비슷한 수준.
이런 데서는 위기란 걸 겪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 걱정은 할 거 없다고 했잖아요. 지금 몬스터보다 이 산 자체가 저한테는 더 문제예요."
진짜로.
걷는 게 더 힘들어.
"걱정할 거 없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을로 통하는 굴이거든."
"그거 다행이네요."
하나도 다행이 아니었다.
산을 고향으로 둔 자의 ‘조금’은 무려 2시간이었다.
* * *
사기를 당한 마음으로 도착한 굴.
"여기가 몬스터 서식지가 됐단 말이죠?"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마글로.
‘마나 농도가 훨씬 높네.’
확실히 마나를 보는 눈에 보이는 것도 그렇고, 마법사로서 느끼는 감각도 그렇고.
강철 봉우리 드워프가 통로로 사용했었다는 굴은 마나 농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이러면 몬스터가 계속 생성돼서 길로 쓸 수 없게 되는 게 당연했다.
‘이 정도면 그냥 굴이 아니라 던전이 됐다고 봐야 될 정도이니.’
그래도 속전속결로 지나가면 문제될 건 없을 거다.
여차하면 아네모네까지 소환해서 뚫어 버리면 그만.
"일단 가죠."
"잠깐만. 횃불 좀 붙일게. 네 것도 하나 만들어 줄까?"
"전 됐어요."
"그래?"
도진은 횃불을 챙긴 마글로와 함께 굴로 들어갔다.
천장까지 높이가 10미터는 될 거 같은 커다란 굴은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웅웅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얼마나 가야 하죠?"
"꽤 걸어야 돼. 이 봉우리를 관통하는 굴이거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고 있을 때였다.
도진의 눈에 이상한 구멍이 보였다.
지름 0.5미터쯤 되는 구멍이었다.
‘저게 뭐…….’
지? 하고 의문문을 완성하기도 전에.
파아앗- 하고 구멍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런 미친!’
깜짝 놀란 도진은 뒤로 굴러 갑자기 나타난 적의 공격을 피했다.
‘자이언트 웜!’
뭔 구멍인가 했더니 자이언트 웜이 뚫어 놓은 구멍이었다.
몸 길이가 2미터에서 3미터까지 자라는 몬스터다.
"모, 몬스터다!"
횃불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호들갑을 떠는 마글로.
도진은 그를 무시하고 마법부터 준비했다.
《바람 칼날》
다시 튀어나올 때를 노려야 된다.
팟.
굴로 들어갔던 자이언트 웜이 튀어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도진은 놈의 머리를 바로 마법으로 잘라 버렸다.
발군의 공격력을 지닌 도진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후우, 이제부턴 구멍이 있는지 잘 살피면서 가야겠어.’
거기다 아네모네도 소환해야겠다.
아네모네의 뛰어난 감각은 기습을 노리는 몬스터를 상대함에 있어 최고의 능력이니.
"아네……."
그렇게 생각하며, 잠들어 있는 아네모네를 깨우기 위해 이름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도진은 천장에 있는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거리가 좀 되지만, 지름이 적어도 4~5미터는 되어 보이는 구멍이었다.
그걸 발견한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구그긍.
이어서 발생한 작은 진동.
그리고 커다란 구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마나의 빛.
"도망쳐요!"
도진은 마글로의 뒷덜미를 강하게 끌었다.
뛰는 방향은 들어온 입구 쪽.
"어어, 왜 그래!?"
"그냥 뛰어요, 살고 싶으면!"
두 사람이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뒤쪽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쿵.
자이언트 웜과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몬스터 ‘그레이트 웜’이 바닥에 몸통을 부딪치며 낸 소리였다.
바닥에 충돌한 놈은 잠시 멈칫하더니, 달리고 있는 도진과 마글로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마글로는 비명을 지르고, 도진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다행히 빠르게 눈치챈 덕에 따라잡기히 전에 굴은 벗어났다.
하지만 안전이 확보된 건 아니었다.
빠르게 주변을 스캔한 도진은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쪽으로!"
"야, 그쪽은… 에이, 모르겠다!"
경사도가 스키장 상급자 코스보다도 훨씬 더 가파른 비탈이었다.
구르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굴러떨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살 길은 이것뿐이었다.
‘그레이트 웜은 기본이 200은 넘는 놈이라고!’
저런 걸 이런 데서 마주친 거 자체가 사고다, 사고.
도진은 새하얀 눈으로 덮인 비탈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으아어아에엑!"
도진은 그나마 깔끔하게 굴렀지만, 커다란 배낭을 맨 마글로는 그야말로 다이내믹하게 회전하며 비탈을 내려갔다.
* * *
한참을 구르다 멈춘 도진과 마글로는 서로를 보았다.
꼴이 말이 아니다.
저 배낭은 도대체 어떻게 안 터지고 버틴 걸까.
"…그냥 돌아가자. 너한테 미안해서 더는 안 되겠다."
털썩. 겨우 몸을 일으켜 바닥에 주저앉으며 마글로가 말했다.
포기하자고.
"아뇨. 여기까지 와서 지렁이 새끼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도진은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방금 못 봤어? 그런 괴물이 있는데 어떻게 지나가려고 그래?"
몸을 일으킨 도진이 눈을 털어 내며 말했다.
"다른 길은 없어요?"
"없어. 굴을 지나야 돼. 그게 아니면 산 정상까지 가서 능선을 타고 반대편으로 가서 돌아서 내려가야 하는데… 그 길은 설인이 살아서 다닐 수가 없어."
그레이트 웜 레벨 200 이상.
티그렉 산의 설인은 레벨 120부터 시작.
후자는 충분히 가능하다.
"가죠."
"내 말 못 들었어? 설인이 나온다니까. 설인뿐만이 아냐. 아이스 트롤도 가끔 나오고… 게다가 몬스터만 문제인 것도 아니라고."
마글로는 설산의 위험성을 나열했다.
위험한 지형, 동사하기 딱 좋은 온도, 거기다 사나흘은 꼬박 걸릴 거리까지.
도진은 마글로에게 물었다.
"돌아가겠다면 말리지 않을게요. 하지만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무서워서 도망치겠다면, 도진은 더 이상 강요할 생각까진 없었다.
위험도가 올라가는 만큼 마글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니.
강철 봉우리 부족 마을을 찾는 건 좀 고생스럽더라도 혼자 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가겠다고 하면 같이 가 주려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았다.
"일어나요."
도진은 마글로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