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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 비명을 지른다.
심장은 조여 오는 것만 같고, 갈비뼈 주변 옆구리도 통증을 호소했다.
"헉, 헉, 헉-"
튀어나오는 호흡을 길게 뺄 여유는 없었다.
짧게 뱉고, 짧게 마셔야 그나마 버틸 만한 수준.
트레드밀 위를 뛰며 일어나는 신체 현상이었다.
벌써 1시간.
도진은 트레드밀에 표시된 시간을 보고는 육체를 쥐어짜 냈다.
한계의 한계까지 채찍질하는 마지막 스퍼트.
"하악……!"
더 이상 달렸다간 넘어질 것 같은 순간에야 도진은 트레드밀 사이드로 올라섰다.
으윽, 하고 신음을 흘린 도진은 트레드밀에서 내려와 주저앉았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보며 도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게임하자고 이러고 있는 게 나 말고 또 있을까?’
원래는 건강관리 개념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왠지 시간이 아까웠다.
이 시간에 게임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 것.
고민 끝에 도진이 찾은 해결책은 간단했다.
‘그래도 이 정도 쥐어짰으면 도움은 되겠지.’
게임할 때도 도움이 될 만큼 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가상현실에서 느끼는 운동 피로와 그로 인한 부작용들에 대한 참을성을 기르기 위한 트레이닝 개념으로 말이다.
탈진, 기절 등이 강제되는 시스템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플레이어가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가짜 한계점은 이런 식으로 고통에 익숙해지면 확장이 가능했다.
"마법사라서 서러워요, 서러워."
준비해 둔 이온 음료로 수분과 전해질을 채워 넣고 있으려니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난가?"
어차피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은 강도 아니면 천지현뿐이다.
경련하는 종아리 근육을 주물러 진정시킨 도진은 트레이닝 룸에서 나갔다.
"또 운동했어?"
막 들어온 천지현이 도진을 보며 반가운 얼굴을 한다.
"그냥 잠깐."
"적당히 해, 적당히. 도진이 넌 뭐만 하면 끝을 보려고 하더라?"
"적당히 하고 있는데?"
천지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 2주째 게임 플레이 전후로 미친 듯이 운동을 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감탄을 넘어 질릴 지경인 그녀였다.
천지현이 보기에, 뭐 하나에 꽂히면 과하게 열심히 하는 게 도진의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았다.
그럴수록 자신이 옆에서 잘 챙겨야겠다고 결심하며, 천지현은 들고 있는 봉투를 내밀어 보였다.
"점심 먹고 게임 시작할 거지?"
"어… 일단 씻고."
"준비해 둘게."
씻고 나온 도진은 천지현과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탄두리 치킨과 커리.
근처에 새로 오픈한 가게가 있다며 노래를 부르던 천지현이 줄까지 서서 사 온 음식이었다.
"이번에도 반응 진짜 좋더라."
닭다리 살을 발라 먹으며 천지현이 신난 어조로 말했다.
"그때 거? 올라간 지 얼마나 됐지?"
"어제 올라갔잖아."
둘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제국 아카데미 실습 참사 사건’ 영상이었다.
닭다리 살을 입에 쏙 집어넣은 천지현은 태블릿을 재빨리 조작해 도진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각 커뮤니티와 유튜브 댓글 등 영상에 대한 반응을 요약 정리한 화면.
-다른 건 모르겠고. 마지막에 죽기 직전에 5성 마법 배우는 건 너무 뻔한 전개 아님? 김 작가, 소설 이딴 식으로 쓸 거야?
└ㅋㅋㅋ 소설 아니고 현실이죠?
-5성 마법 최소 레벨 요구치가 100이잖아. 그럼 딱 저 순간에 레벨 100 찍은 거야? ㅋㅋ
-난 딱 저 순간인 거보다 마법사가 레벨 100을 찍은 거 자체가 신기한데.
-요즘 레벨 100 넘기는 유저 계속 나오고는 있다지만 마법사는 처음 아님?
-마법사 레벨링이 워낙에 지랄 맞으니까. 인구수가 적은 편인 것도 문제고.
-‘마법사’라는 페널티로는 ‘도진’을 막을 수 없었던 거지. 사실상 저건 따로 놓고 봐야 하는 아웃라이어임.
천지현 개인이 모은 스크랩 자료는 포커스가 온통 ‘도진’에 맞춰져 있었다.
‘레벨 100이라.’
레벨링 자체만 놓고 보면 진짜 목숨 걸고 하는 놈들이 있기에 100레벨을 넘긴 게 도진만은 아니었으나 ‘마법사’로서는 최초이기에 유저들은 도진이 사용한 5성 마법 「화염포탄」에 관심을 보였다.
‘뭐, 조회수는 잘 나와서 좋네.’
다만 그러한 관심이 도진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다.
현재 그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의 성장이었다.
‘이번엔 운이 많이 좋았어. 딱 100레벨을 넘은 덕에 S급 아이템 보상 레벨도 100으로 맞춰졌으니.’
덕분에 현재 도진의 장비창에는 보상으로 얻은 100레벨 S급 장비가 슬롯 하나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 100레벨도 넘겼고, 모험가 등급도 올려놨으니 다음에 뭘 할지 정해야겠지?’
도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히든 피스 중 맛난 게 뭘까 고민했다.
맛도 맛이지만, 어떤 순서로 먹어야 가장 몸에 좋을지도 고려해야 한다.
뭐부터 먹을까?
하여간 알고 있는 게 많아도 문제였다.
* * *
제국 동부에는 ‘버려진 땅’이란 곳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인간에게 버려져, 아인종을 비롯한 몬스터들의 터전이 된 땅이다.
도진은 다음 목적지를 그곳으로 정했다.
워낙 광활한 데다 애써 몬스터를 토벌해 봐야 땅 자체가 쓸모가 없어 말 그대로 버려져 버린 땅.
그곳에 들어서고도 도진은 한참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돌과 마른 풀, 가끔 보이는 아주 작은 숲 정도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 풍경은 장장 하루 넘게 이어졌다.
【흥.】
밤이 깊어 모닥불을 피운 도진은 아네모네를 소환했다.
그녀는 아직 삐져 있는 상태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소환 해제한 게 아주 많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쓰게 웃으며, 도진은 그녀의 등을 쓸었다.
이럴 땐 추억팔이를 하는 게 제일이다.
"이러고 있으니까 숲에서 같이 돌아다닐 때가 생각나네."
도진은 별로 가득 찬 하늘을 보며 말했다.
【…….】
그러자 아네모네는 모닥불을 지그시 응시하며 바닥에 턱을 괬다.
"그땐 숲이었는데, 이젠 이렇게 탁 트인 곳이네."
아네모네가 지평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사방이 탁 트여 어딜 보아도 지평선만 보인다.
하늘도 트여 있긴 매한가지다.
갇힌 것만 같던 숲과는 전혀 다른 풍경.
"앞으로도 같이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야."
도진이 덧붙이는 말에 아네모네는 화가 풀렸다.
【…….】
하지만 바로 티를 내는 건 창피해서, 아네모네는 슬쩍 눈을 감고 모른 척했다.
그래 봐야 도진은 이미 알아챘지만 말이다.
‘이런 게 힐링이지.’
바람 소리, 모닥불 타닥이는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
저 멀리, 지평선 쪽에 웬 광원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마법회로를 활성화한다.
《망원(望遠)》
멀리 보기 위한 마법.
어둠이야 마안 덕에 장애가 되지 않았고,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도 없었다.
그리하여 도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런 미친!’
약 10마리의 오크와 그 오크들이 타고 있는 10마리의 늑대였다.
‘모닥불 빛을 보고 오는 건가!’
뻥 뚫린 해방감과 쓸데없이 흘러넘치는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 멍청한 짓을 해 버리고 말았다.
‘몬스터가 보이기 시작하면 얌전히 숨어 다니려고 했는데!’
그 몬스터가 먼저 발견하고는 까마득히 먼 곳에서부터 달려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직 거리가 상당하지만, 오크 중에서도 기동력이 발군인 게 울프 라이더 놈들이다.
이대로 있다간 순식간에 싸움판이 벌어질 터였다.
‘망원경에 뿔피리까지. 정찰대 놈들이다.’
게다가 저놈들을 상대하다 보면 더 많은 오크 무리가 들이닥칠 가능성도 다분한 상황.
오크 놈들이랑 푸닥거리를 하려고 온 것도 아니기에 도진은 주저 없이 도주를 선택했다.
【…타.】
애써 퉁명스러움을 가장하며 등을 내주는 아네모네.
도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네모네의 등에 탔다.
【이번에만 봐 주는 거야.】
아네모네가 어둠을 가르며 달렸다.
【어디로 갈까?】
"일단 저놈들한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자."
어차피 들킨 이상 놈들은 주변을 계속 수색할 거다.
지금 이 순간부터 숨바꼭질이 시작된다고 봐야겠지.
‘아네모네가 있는 한 기동력에서 밀릴 일은 거의 없어. 오크 놈들이 추적을 하든 말든 찾아야 할 것만 찾으면 된다.’
아네모네는 한참을 달렸다.
결국 쫓아오던 오크 라이더들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속도에서 밀린 것이다.
"크게 돌아서 확실히 멀어지는 게 좋겠어."
그러고도 도진과 아네모네는 한참을 이동해서 아예 다른 지점에 도달해서야 멈췄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해가 뜨면 이동하자."
모닥불은 피우지 않았다.
아네모네를 불러들이고, 혼자서 적당한 바위 아래 틈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하려니 참을 수 없는 처량함이 몰려온다.
방금 전 힐링 어쩌고 했던 게 억울해지는 도진이었다.
* * *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크 라이더들과 지평선 꼬리잡기를 한 지 이틀 차에 접어든 날.
도진은 찾아 헤매던 곳을 발견했다.
도대체 언제 지어져서 언제 부서졌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폐허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저 오크 새끼들은 왜 하필이면 저기서 저러고 있어?’
멀리서 엎드린 채 폐허를 살핀 도진이 혀를 찼다.
폐허에 살벌하게 생긴 오크 놈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가 레벨 100을 넘길 놈들이 수십.
버려진 땅 전체로 놓고 보면 최약체라고 해도 지금 시점에 만만한 놈들이 절대 아니었다.
‘저러고 있으면 몰래 우물 안으로 다이빙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겠는데…….’
도진의 목표는 폐허 중심에 있는 우물이었다.
전설적인 트레져헌터 ‘실버문’의 유산이 숨겨져 있는 히든 던전으로 통하는 입구이기 때문.
차라리 좀 더 레벨을 올린 다음에 올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도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털 수 있는 곳 중에 여기가 제일 성장 기댓값이 높아. 여기서 포기하면 손해가 크다.’
서순이 꼬이면 성장 계획도 같이 꼬인다.
‘이 정도 난관에 쫄아서 포기할 거 같으면 게임 접고 말지.’
후퇴는 선택지에서 지웠다.
그럼 남는 건 오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 것뿐.
도진은 먼저 적의 전력부터 정확히 파악했다.
‘눈에 보이는 건 정확히 43마리.’
정면 승부를 벌이기엔 부담이 되는 숫자였다.
전부 근접 몬스터면 모르겠지만, 투창을 쓰는 놈, 슬링을 쓰는 놈, 활을 든 놈 등 다양한 원거리 몬스터가 섞여 있는 게 문제였다.
‘고지대라도 있으면 위쪽에서 일방적으로 쏴 대기라도 하겠지만…….’
고민이 깊어지려는 찰나.
‘잠깐. 저건 잘만 하면 써먹을 수 있겠는데?
오크가 아닌 다른 게 눈에 띄었다.
바로 ‘적’이 아닌 ‘환경’.
여기저기 퍼질러져서 널브러져 있는 게으른 오크 놈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는 ‘폐허’ 말이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기둥, 벽, 건물 잔해 등을 보고 있으려니 너무 위험해 보인다.
그런 위험천만함이, 도진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