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13화 (11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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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대마법사다.

사라지는 그 순간 남긴 마법이 몇 개인지.

다수의 광원체가 추가로 뜨고, 균열 던전이 완성되기도 전에 보스 몬스터를 죽여 버렸다.

아니, 그 이전에 균열 안정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결계를 깨고, 그로 인해 발생해야 할 부작용을 없는 걸로 만들어 버린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걸어 내려오지 않아도 돼서 좋긴 한데 좀 말을 해 주면 어디 덧나나……?’

도진을 산 밑으로 이동까지 시켜 줬다.

엘토마기아 휘장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검푸른 막이 휙 튀어나오더니 텔레포트를 시켜 버린 것이다.

"상공에 광원체 다수! 시온 경께서 마킹을 해 주신 거 같습니다!"

"구조대 진입, 진입!"

"잠깐만요! 부상자가 있을 게 뻔한데 당신들끼리 가서 뭐 해요? 우리도 갑니다!"

텔레포트 된 도진이었으나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카데미, 모험가 길드, 신전 등 여기저기서 동원된 구조대가 바쁘게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온 님께선 어디 계신 거지!?"

"아니, 시온 님께서 오셨는데 왜 우리가 못 봐! 당신들, 탑주님께선 언제 오셨던 겐가!"

한쪽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제국 마탑에서 나온 마법사들도 보였다.

지금 막 도착했는지 ‘시온’이란 단어를 듣고 발작을 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역시 마법사는 미친놈들이야.’

마법사 혐오 스택을 1 추가한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적당한 곳에 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이제 좀 쉬자……."

이쯤 했으면 구조는 저쪽에 맡겨도 되겠지.

도진은 가만히 앉아서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걸 지켜봤다.

그러고 있으려니 굴에 있던 학생들이 구조되어 내려오는 게 보였다.

신전에서 나온 사제들이 들러붙어 경상자를 치료하고, 중상자는 급히 후송된다.

‘잘 버텼다.’

팔이 잘리고, 허벅지 동맥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고도 꿋꿋이 버틴 소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있을 때였다.

"다시 올라가! 아직, 아직 그 자식이 저기 있다고!"

구조되어 내려온 학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다시 독이 퍼져서인지 정신을 잃은 채 실려서 내려온 제니아가 치료를 받고 깨어나자마자 난리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독이 완전히 중화되지 않았습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다급히 그녀를 말리는 사제와 본드레이 가문의 가신들.

제니아의 호위기사인 안나는 거의 애원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 제가,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절대 용서 못 해……! 자기 멋대로 나한테 목숨값을 얹으려고 들어? 이딴 개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드냐고!"

소란을 피우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전 딱히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니 수색을 돕겠습니다."

휴이도 다시 산으로 올라가려고 들었고.

"저, 저도 올라가고 싶습니다!"

답지 않게 빌도 돕겠다고 나섰다.

아카데미 관계자는 이미 수색 작업은 진행 중이니 맡겨 달라며 만류했으나.

"한 명이라도 더 돕는 편이 빠르지 않습니까!"

그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런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저 상황의 지분 8할 정도는 자신에게 있는 거 같은데…….

‘이거 어떻게 나서야 하지?’

그래도 구한 학생은 다 살아서 내려왔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기절해 있던 싸가지가 벌떡 일어나 급발진한 걸 시작으로 멋대로 신파극이 시작돼 버렸다.

멀쩡히 살아서 텔포 타고 편하게 내려온 입장에선 나설 타이밍이 애매해지다 못해 나서기가 뻘쭘해진 상황.

"난 그 자식 이름도 모른다고오오오!"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른 싸가지가 결국 눈물까지 보였다.

‘…진짜 튀고 싶네.’

도진은 암담함에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도 나서야지.

저대로 뒀다간 더 난리가 날 기세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앞을 봤는데…….

"……!"

학생 하나가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움찔대더니.

"저, 저기!"

기어코 경악이 그대로 실린 외침을 터뜨렸다.

자연히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도진 쪽으로 몰렸다.

‘피곤하다…….’

곧 터질 상황을 예견한 도진은 작은 한숨을 쉬며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절망에서 피어난 가능성> 업적 달성]

[업적 보상: 보너스 포인트 + 5]

[당신은 커다란 역경 속에서 믿기지 않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퀘스트 진행 중 당신이 이룬 성과가 퀘스트 보상에 반영됩니다.]

[퀘스트 보상 정산이 시작됩니다…….]

거기까지 읽었을 때.

"……!"

제니아가 도진을 발견했다.

그녀는 멧돼지처럼 달렸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야, 잠-"

도진이 제지해 볼 새도 없이 빠르게 거리를 좁힌 제니아, 그리고 학생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미친!’

가장 앞서 달려온 제니아는 무려 주먹질을 했으나 도진은 재빨리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마법사의 주먹질은 피했어도 검사의 육탄 돌격을 피하는 건 힘들었다.

"형!"

도진은 싸가지의 주먹질도 싫지만, 사내자식의 포옹도 비슷한 수준으로 싫었다.

‘피하긴 늦었고.’

그럼 막지, 뭐.

《암석 방패》

5성 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도진의 마법은 한층 더 빠르고 정교하게 완성됐다.

"켁!"

그 덕에 두 팔 벌려 달려들던 휴이는 갑자기 나타난 벽에 몸통 박치기를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사이 감정 과잉 상태에 빠진 학생들과 거리를 벌린 도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반가운 거 알겠고, 기쁜 거 알겠으니까 진정 좀 해."

구르릉.

마법을 해체하자 암석 방패가 사라지고, 울먹이는 학생들 얼굴이 다시 보였다.

"잘 버텼다, 무서웠을 텐데."

도진의 말은 결국 학생들을 울렸다.

산속에서 느꼈던 공포감, 도진이 사라졌을 때의 불안감,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살아남은 지금 밀려드는 안도감.

많은 감정이 학생들 사이에 소용돌이쳤다.

휴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귀족이고, 재능이 넘치는 아카데미 학생들이지만, 결국은 애들이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진은 빌을 지목하며 말했다.

"네가 설명 좀 해라."

"…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도진은 손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다들 궁금해하잖아. 난 피곤하니까 네가 좀 해."

도진이 가리킨 곳에는 지금 상황을 이해 못 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 * *

산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도진이 무엇을 했는지 학생들이 증언했다.

덕분에 도진은 사제 한 명에게 치료받으면서 동시에 무수한 악수 요청을 받게 됐다.

"아카데미 마법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에릭 켄드라라고 하네. 우리 학생들을 구해 주었다고 들었어. 이거 참,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아카데미에서도 보상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도 꼭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일세."

구조 작업에 동원된 교수진은 물론이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본드레이 가문의 가신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기사로서 진심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제 목숨은 이미 제 것이 아닌지라 드릴 수 없으나, 어떤 것이든 도진 님의 요청이라면 있는 힘껏 도울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본드레이 가문 대표로 제니아 본드레이의 호위기사 안나.

"모험가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모험가 길드에서 파견 나오신 모험가님이라고……."

모험가 길드 관계자까지.

그나마 엘토마기아 쪽이 시온 타령을 하느라 이쪽에 관심을 끄지 않았다면 숨 돌릴 틈도 없었을 뻔했다.

‘나랑 시온이랑 만났다는 사실을 알면 더럽게 귀찮게 굴겠지?’

모른 척하자.

난 이 여유가 소중해.

"외상만 치료됐을 뿐, 아직 안정이 필요한 환자입니다."

도진이 눈을 감고 힐링이 주는 따뜻함에 집중하려는 찰나 사제의 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사람이 찾아와 한마디씩 하고 가는 걸 보다 보다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래, 난 환자라고. 줄 거 있어도 나중에 와. 그때 받을 테니까.

"죄, 죄송해요."

근데 사과하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어?"

도진은 눈을 떴다.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시살라?"

시살라 오멘이었다.

* * *

대충 치료를 마친 뒤 갖게 된 짤막한 대화 시간.

시살라는 복잡한 눈으로 도진을 보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언제 어떤 식으로 재회하게 될지 많이도 상상했던 시살라였다.

그런데 그 상상 속에 이런 건 없었다.

‘균열 현장에서 아카데미 학생을 구했다고?’

생존 학생의 열띤 증언을 옆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시살라는 도진을 괴물로 규정했다.

‘얼마 전까지 1성 마법사였다고요, 당신.’

어이가 없어서 진짜.

이래서야 평범한 재능 가진 사람 서러워서 살겠어?

시살라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축하해요."

도진이 그녀의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뭘… 아."

지금 상황에 웬 축하인가 했더니.

시살라는 머쓱한 얼굴로 흑색 케이프에 달린 녹색 견장을 쓰다듬었다.

황색위를 벗어나 녹색위에 오르며 받은 견장이었다.

"대단하네요. 저번에 볼 때는 황색위였는데 벌써 녹색위라니."

시살라가 쓰게 웃는다.

"덕분에요. 도진 말대로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니 보이는 게 달라지더라고요."

황색위에서 녹색위. 4성에서 5성. 객관적으로 대단한 성취가 맞다.

‘맞는데…….’

도진의 성장을 보니 그간 자신이 이룬 성취가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시살라였다.

‘아니,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길게 갖지 못할 만남이다.

자신은 이제 균열 조사 작업에 동원될 몸이니.

"도진도 대단하네요. 저번에 볼 때랑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꽤 열심히 살았거든요."

"과하게 열심히 산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도진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살라는 한 차례 깊게 숨을 마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아’ 하고 말문을 열었다.

"맞다. 도진이 쓴 편지를 들고 온 아이가 있었어요, 디아나라고."

도진의 눈이 커졌다.

"디아나가요?"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재회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하게 되는 날이 될 모양이었다.

* * *

"아무래도 가 봐야겠네요."

엘토마기아 측이 뭔가 시작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시살라는 아쉬운 얼굴로 작별을 고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겠죠?"

"당연하죠."

그럼.

도진과 시살라는 일전에 헤어질 때처럼 악수를 나눴다.

엘토마기아 마법사들에게 돌아가는 시살라를 눈에 담으며, 도진은 그녀가 알려 준 디아나의 근황에 대해 생각했다.

‘디아나도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니…….’

입학 시즌도 아닌데 아카데미 입학.

웬 웹소설 제목 같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도진이 써 준 추천장이라 쓰고 편지라 읽어야 할 물건을 들고 엘토마기아를 찾아간 디아나(가출 소녀)는 시살라의 도움으로 검술 도장에 다닐 수 있게 됐단다.

이후 엄청난 재능빨로 소문을 타게 됐고, 이를 접한 아카데미 교수 눈에 띄어 특별 전형으로 입학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출이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린 도진은 학생들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저쪽도 처치가 거의 끝나 가는 거 같았다.

아니, 끝난 게 확실했다.

쿵쿵거리며 제니아 본드레이가 걸어오는 걸 보니.

아까는 멧돼지 같았는데 지금은 코끼리 같았다.

"너!"

"왜."

"그냥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따위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넘어가지만, 난 나중에라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으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꼭, 무조건 날 찾아오든지 본드레이로 찾아오든지 해. 알겠어!?"

일방적으로 꽥꽥 소리를 지른 제니아 본드레이는 휙 하고 몸을 돌려 다시 쿵쿵거리며 멀어졌다.

[관계 형성!]

[본드레이 공작 가문의 영애 제니아 본드레이가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제니아 본드레이의 호감도가 44포인트 상승하여 44가 되었습니다.]

뭐야, 저거.

고마우니까 꼭 보답하게 해 달란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제니아를 시작으로, 치료를 마친 학생들이 차례대로 도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고맙지?"

"물론이죠!"

"아카데미에 디아나라고 있을 거야. 잘 챙겨라. 알겠지?"

"어… 네!"

도진은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정 청탁을 넣었다.

[퀘스트 보상 정산 완료!]

그러고 있으려니 메시지가 떴다.

경험치와 골드.

[‘S급 랜덤 아이템 상자’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S급 랜덤 아이템 상자가 들어왔다.

이번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보상이었다.

운명 등급 퀘스트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얻은 게 꽤 많은 퀘스트였다.

‘퀘스트 보상도 보상이지만,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여기저기 내 이름으로 빚 하나를 달아 둔 게 제일 크지.’

도진은 기지개를 켰다.

"7급 달기 더럽게 힘드네, 진짜."

잊지 말자. 이 퀘스트, 시작은 7급 모험가 승급 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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