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12화 (11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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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의 감각에 기댈 것도 없었다.

마나를 보는 눈에 희뿌옇게 일렁이는 운무가 보인다.

다량의 몬스터가 몰려들며 마나 농도가 올라가 생기는 현상이었다.

‘음… 이건 나도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는데.’

적어도 수십은 되는 멘티스 프레데터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떠오를 리가 없긴 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어야 해결책이 나오지. 불가능한 일엔 그런 게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 법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내 처음을 내주는 자리가 되겠군.’

처음을 내준다니. 뱉고 보니 어감이 매우 이상했다.

정정한다. 회귀 후 첫 번째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이고, 때인 거 같다.

‘이번 인생에서 겪는 첫 번째 죽음으로 썩 나쁘진 않네.’

다가오는 죽음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도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거 같지만, 그렇다고 곱게 갈 생각 따위 눈곱만큼도 없었다.

멘티스 프레데터들이 더듬이를 지팡이 삼아 다가온다.

툭툭 걸리는 돌멩이를 신경질적으로 옆으로 치워 내면서 말이다.

그런데… 돌멩이가 좀 많지 않아?

소리 없이 물으며 도진은 「염동」을 썼다.

그저 멘티스 프레데터 무리 발밑에 놓인 돌멩이 중 하나를 들어, 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는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불러온 결과는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쾅-!

짧은 폭음이 울림과 동시에.

콰콰콰-!

수많은 폭음이 겹치며 이어졌다.

그것은 하나로 합쳐져 고막을 유린하는 굉음이 됐다.

도진이 미리 깔아 놓은 마석 폭탄이 최초의 폭발을 시작으로 유폭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돈이 녹는구나, 녹아.’

수십 개의 마석 폭탄.

그것도 싸구려가 아닌 현재 유저 레벨에 구할 수 있는 것 중 상등품이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도진이 사용하는 1성 마법과 비슷한 수준이기에 가성비가 박살 난 물건이지만.

그건 하나씩 터뜨릴 때의 이야기.

수십 개를 동시에 터뜨리면 위력 문제는 해결된다.

다만 수천만 원이 함께 터지긴 한다.

"돈은 벌어서 이렇게 쓰는 거지!"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속 시원하면 그걸로 됐지!

자신을 고생시킨 벌레들이 커다란 폭발에 휩쓸려 박살 나는 걸 본 도진은 신이 나서 소리쳤다.

"들어와 봐, 이 벌레 새끼들아! 나만 죽냐? 너희도 싹 다 뒤지는 거야!"

광기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도진이 마석 폭탄을 전방에 흩뿌렸다.

동족이 코앞에서 대폭발에 휩쓸려 죽었음에도 멘티스 프레데터들은 꾸역꾸역 몰려왔다.

도진은 다시금 놈들에게 떼죽음을 선사했다.

‘이번이 마지막이군.’

그러면서 다시 마석 폭탄을 뿌렸다.

가진 마석 폭탄은 이걸로 마지막이다.

‘마지막 발악으로는… 둘 정도가 한계이려나.’

생각하며, 도진은 연초를 태웠다.

이거 하나 피울 시간이 없어서 지금 피우는 게 첫 번째였다.

알게 모르게 과열됐던 마나와 회로가 진정되는 게 느껴진다.

자연히 마음도 차분해졌다.

‘아네모네는 불러들여야지.’

곁에 선 아네모네는 소환을 해제했다.

【진, 이게 무슨 짓이야!】

깜짝 놀란 그녀의 항의가 바로 들어온다.

여기서 괜히 ‘너까지 고생할 필요는 없어’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난리가 날 거다.

아마 삐져서 며칠 말을 붙여도 대답도 안 할지 모른다.

‘그런데 또 소환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마나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의기소침해질 텐데.’

쯧. 그것보단 차라리 화난 거 달래는 게 낫다.

"이래야 내 마음이 편해."

【그런 게 어딨어!】

"여기."

【진!】

유치한 말싸움은 폭음에 묻혔다.

충분한 거리를 뒀음에도 폭발로 인한 파편이 도진의 볼에 상처를 입혔다.

뜨거운 열감과 함께 볼에서 피가 흐른다.

-쉬이……!

긁히는 듯한 벌레의 울음소리.

마지막 폭발은 마석 숫자가 적어서인지 완전히 죽지 않은 놈 몇몇이 보였다.

그 뒤로는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멀쩡한 놈들도 몇 마리.

도진은 부상 입은 놈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이젠 마나 아낄 것도 없어. 죽기 전에 다 털고 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쏜 마법이 빈사 상태에 빠진 놈 하나에게 꽂힌 순간이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업 메시지가 뜬 건.

‘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도진의 레벨은 99.

아니, 였다.

그럼 1레벨이 오른 지금은……? 100이다.

레벨 100은, 5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최소 기준을 충족하는 지점이었다.

-쉬이이이-!

분노한 사마귀들이 떼로 도진을 향해 달려든다.

‘이렇게 되면……!’

더 화끈하게 죽일 여지가 생겼다.

도진의 인벤토리가 책 하나를 뱉었다.

그것을 낚아챈 도진은 확인도 않고 바로 사용했다.

[새로운 마법 「화염포탄」이 기록되었습니다.]

마법 스킬북에 담긴 5성 범위 공격 마법 「화염포탄」이 진리의 서에 기록되었다.

‘아직 안 늦었다!’

펼쳐진 진리의 서가 새로이 기록된 마법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하나 이제 막 100레벨이 된 도진은 5성 마법사로서는 첫걸음을 내딛는 거나 마찬가지.

기존에 썼던, 해석률이 높은 마법을 쓸 때와 시전 속도가 같을 수 없었다.

5성 마법. 그것도 광역 마법이 완성되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죽어도, 이건 쏘고 죽는다!’

도진의 손끝에서 화염 에너지가 응축되고 있는 사이 저돌적으로 접근한 멘티스 프레데터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푸- 욱-!

가장 앞선 놈이 내민 낫이 도진의 어깨를 찢어발겼다.

주르륵 하고 HP가 사라진다.

이대로 1초, 아니 0.몇 초 단위만 지나도 몸통이 갈라지며 생명력 수치는 0에 수렴하게 될 터였다.

"꺼져!"

하지만 찰나의 틈을 두고 마법이 완성됐다.

《화염포탄》

엄청난 압력에 의해 응축과 응집을 거듭해 만들어진 진홍색 구체가 발사됐다.

발사되며 방출되는 압력만으로 퍼엉! 하는 소리가 울렸다.

도진을 공격하던 멘티스 프레데터의 복부에 박힌 「화염포탄」은 바로 폭발하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 저항에 폭발하기엔 너무나 강력한 압력으로 뭉쳐 있기 때문이었다.

-쉭?

멘티스 프레데터들은 압축된 화염 구체와 함께 뒤로 쭉 밀려 날아갔다.

그리고 폭발했다.

고압력 열폭발은 멘티스 프레데터 다섯을 동시에 산산조각 냈다.

평범한 5성 마법이면 모를까.

룬 건틀렛을 낀 도진의 100퍼센트 크리티컬 「화염포탄」은 레벨 차이가 벌어져 있다 해도 맵기 자체가 다른 맛이었다.

"으윽……! 마나 소모 장난 아니네."

도진도 멀쩡하진 않았다.

이미 꽤 마법을 남발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5성 마법을 배우고 썼더니 훅 줄어든 마나로 현기증이 일었다.

99레벨과 100레벨이 한 차원 다른 경지이듯 4성과 5성도 한 차원,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차이가 나는 경계였다.

"지금 상태면… 무리하면 2발까진 쏠 수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쉬이이…….

평범하지 않은, 훨씬 더 낮고 굵은 사마귀의 울음이 들렸다.

저 멀리서부터 수풀이 더 크게 흔들린다.

"이런."

엘리트였다.

그것도 암컷이 아닌 전투에 특화된 수컷 개체로.

덩치가 족히 3~4배는 커다란 놈은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낫을 들어 올렸다.

‘저런 거에 맞으면 썰린다고 봐야 되는 거야, 뭉개지는 거라고 봐야 되는 거야.’

자신의 사인은 절단사일까 압사일까를 고민하며, 도진이 소용도 없을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쨍그랑.

무언가가 깨졌다.

물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그리고.

"열어만 주고 그냥 가려 하였더니."

낯선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꽤 반가운 얼굴이 보여 잠시 들렀다."

검푸른 머리가 풍성하게 나부낀다.

엘토마기아를 상징하는 흑색 케이프.

따로 자신의 색(色)을 나타내는 장식은 없었다.

왜냐하면, 저 흑색 케이프 자체가 그녀의 색을 상징하는 색이니까.

"반갑구나,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왔던 이세계의 아이야."

제국 마탑 엘토마기아의 흑색위 시온 그레이스였다.

"당신이 어떻게……?"

"그럴 일이 있다. 나름대로 빚을 청산하기 위해 나들이를 나온 셈이랄까."

그러면서 어느 방향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다행히 부채는 탕감한 모양이군. 탑을 벗어나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였는데 이미 죽어 있으면 체면치레도 못 했을 텐데."

딱.

시온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염동력에 묶여 있던 엘리트 멘티스 프레데터가 순식간에 야구공 크기로 압축되더니, 팟- 하고 빛으로 흩어졌다.

"우리가 본 지가 얼마나 됐지? 꽤 흐른 모양이구나. 벌써 그만큼 성장한 걸 보아하니."

황금색 눈으로 도진을 스캔한 시온은 기억을 뒤적였다.

차원의 경계에서 시간을 보내면 이게 문제다.

날짜 감각이 뒤틀리는 거.

그래도 도진의 성장을 감안할 때 최소한 3년은 지난 게 아닐까 하며, 기억을 정렬하고 흐른 시간을 계산한 시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1년이 채 안 되었구나. 리제니안은 꽤나 성장을 빨리하는 모양이구나."

음음. 스스로 납득하는 시온 그레이스.

그녀를 보며, 아까부터 침묵하고 있던 도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진리의 서를 갖고 나온 걸 모르는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지. 그럼 묵인해 주고 있다는 소린데…….’

진실은 시온의 기억이 조작되어 그 부분이 사라진 것이지만, 도진으로선 알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

시온이 진리의 서 서리를 묵인 혹은 인정해 주고 있다고 여긴 도진은 눈치를 살피는 걸 멈추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일단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얼. 오히려 내가 너에게 고마워하는 게 맞지. 빚을 탕감하는 데 도움을 준 게 아니냐. 저 아이들, 네가 지키고 있었지?"

가리키는 방향은 학생들이 숨어 있는 굴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곳에 남아 있는 마법의 흔적만 봐도 네가 무얼 했는지 보이는구나. 수고했다."

시온의 말에 긴장이 탁 풀린 도진은 털썩 주저앉았다.

"애들은 무사한가요?"

혹시 사마귀 놈들이 가진 않았을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걱정 마라. 훌쩍이고는 있어도 다들 살아 있으니."

시온이 손을 저었다.

그러자 저 멀리 빛이 일어났다.

아마도 굴이 있는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모양이었다.

"이런. 분신체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갈수록 여러모로 팍팍해지는구나."

그리 말하는 시온의 손은 반투명하게 옅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온 건 본체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도진을 보며 말했다.

"네 얼굴을 보니 참으로 기뻤던 순간이 떠올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그래도 헤어지기 전에 보답은 하나 해야겠지."

나도 출장을 나온 마당에 큰 걸 주긴 그렇고.

"받아라."

휙 하고 무언가가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그걸 낚아챈 도진이 물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갖거라. 마법사로 살아가는 데 퍽 도움이 될 물건일 테니."

시온 그레이스, 아니 그녀의 분신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니 당혹감이 상당했다.

"…이거 이럴 땐 뭐라고 해야 돼?"

인사는 좀 하고 사라져야 덜 뻘쭘하지.

"하여간 마법사란 것들은."

하나같이 괴짜들밖에 없다.

투덜대며 손을 펴 보는 도진.

뭘 줬나 봤더니.

"이건… 엘토마기아 증표잖아?"

제국 마탑 엘토마기아에 소속된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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