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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11화 (11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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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멘티스 프레데터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행운은 없었다.

전투가 발생시킨 진동이 근처에 있는 놈들을 끌어들인 탓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갈수록 굴로 찾아드는 숫자가 늘어갔다.

‘지금 쳐들어온 놈들을 빨리 정리 못 하면 안 돼.’

자연히 도진의 마음도 급해졌다.

어설픈 애들을 데리고 하는 전투다.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멘티스 프레데터의 숫자가 늘면 그만큼 혼란이 가중되고, 피해가 발생할 여지가 많아진다.

《대지의 창》

일단 입구라도 좁게 만들고 보자.

그런 마음으로, 도진은 「대지의 창」을 연속으로 시전했다.

진입하는 사마귀 놈들에게 피해를 누적시키는 한편 좁은 굴 입구를 더욱 좁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발각되지 않았을 때는 강렬한 진동에 놈들이 단체로 몰려들까 봐 시도 못 한 일.

하지만 이젠 그런 걸 신경 쓸 이유도, 여유도 없는 상황이 됐다.

"아아악!"

여유는 무슨.

숨 쉴 틈도 없다.

비명을 지른 건 정강이가 반쯤 잘린 학생이었다.

바닥을 기는 학생에게 멘티스 프레데터의 낫이 낙하했다.

‘젠장!’

재빠르게 대처하려는 순간이었다.

파악.

도진보다 한발 먼저 멘티스 프레데터의 더듬이를 「바람 화살」이 때렸다.

"뭘 멍하니 있어! 안전한 데로 끌어내지 않고!"

뒤쪽에서 들리는 앙칼진 목소리.

돌아보니 제니아 본드레이였다.

중독돼서 골골대던 그녀가 일어난 것도 모자라 마법으로 학생을 구한 것이었다.

"너……."

물으려는 도진에게 제니아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도 몰라. 계속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더니 이젠 움직일 만해."

그러면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목걸이를 소중히 움켜쥔다.

"아마 이것 덕분인 거 같은데……."

그걸 본 도진은 납득했다.

‘하긴 공작가씩이나 되는 곳에서 외동딸이 가문 밖으로 나가는데 그냥 보냈을 리가 없지.’

독에 저항하는 힘을 가진 목걸이가 해독 포션과 힘을 합쳐서 제니아를 회복시킨 모양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가용 전력이 늘어난 건 고무적이었다.

"무리는 하지 마라. 독이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면 다시 상태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걱정은 고맙지만, 아무리 봐도 무리를 해야 할 거 같은 상황인데?"

맞는 말이야.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도진은 잠시 쉬고 있던 마법회로를 다시 채찍질했다.

학생들 전체와 아네모네를 포함해도 화력의 8할 이상이 자신에게 몰려 있는 상황.

다른 이들은 거들 뿐이고, 120레벨을 넘기는 몬스터에게 결정타를 날려야 하는 건 결국 도진의 몫이었다.

‘마나가 버텨 줘야 할 텐데.’

지난한 전투였다.

‘마법회로가 과부하되겠어.’

갈수록 마법사로서의 체력이 하나하나 지쳐 간다.

‘마나 포션 회복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이대론 포션 중독도 금방이겠어.’

나아지는 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죽이는 몬스터의 숫자가 늘수록 모든 지표가 나빠지고만 있다.

도진이 이 정도이니, 다른 마법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으으……."

털썩.

힘없는 신음을 흘린 학생 하나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땅바닥에 처박혔다.

비단 쓰러진 학생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학생이 한계에 봉착한 게 보인다.

마법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떠 있고, 전신으로 떨림을 호소하고 있었다.

도진처럼 「마나지체」 같은 특성의 비호를 받는 것도 아닌 입장에서 쉬지 않고 마법을 써 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도진을 제외하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상태인 건 기껏해야 독을 극복하고 합류한 제니아 본드레이 정도.

‘이러다간 진짜 다 죽겠어.’

전위를 맡은 학생들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가장 선전을 하고 있는 휴이마저 처음과 달리 지쳐서 움직임이 현저히 굼떠진 게 티가 났다.

‘멘티스 프레데터가 굴로 오는 주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고, 한 번에 몰려오는 숫자도 계속 늘고 있다.’

이젠 기본적으로 두셋씩 무리 지어 굴로 들어오는 상황이니 언제 그 숫자가 확 늘어날지 모른다.

‘여기서는 버틸 만큼 버텼어. 더 이상은 무리다.’

처음 균열 생성 메시지를 본 지도 꽤 지났다.

이쯤 되면 균열이 안정되고 던전 생성이 완료되기까지 그리 멀리 않았을 터.

‘하지만 그 시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몬스터 숫자가 그만큼 늘고, 더 많은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겠지.’

결단을 내릴 때다.

"다들 물러나."

적을 소각하는 임무를 완수한 불기둥을 사그라뜨리며 도진이 말했다.

의아한 시선이 모여든다.

도진은 그들에게 말했다.

"다들 잘 버텼다. 이젠 숨소리도 내지 말고 숨어 있어."

그때 제니아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같이 버텨야지. 왜 우리끼리 버티라는 듯이 말하는 거야?

그녀가 생략한 의문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놈들은 진동에 이끌려서 계속 오는 거다. 여기서 싸우다 보면 결국 감당 못 할 만큼 몰려올 거고… 그럼 끝이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냐.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냄새조차 맡지 못하는 놈들이다. 다른 곳에서 진동이 느껴지면 그쪽으로 몰려들 거야."

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도진.

그런 도진 곁으로 아네모네가 말없이 선다.

도진은 아네모네의 등을 쓸며 말했다.

"미안. 계속 무리하게 만들어서."

【그런 말 하지 마. 난 숲을 나온 뒤로 매 순간 행복하고 뿌듯해. 무의미하게 숲을 떠돌던 때의 기억이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물며 숲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10대 중반과 후반에 걸친 소년, 소녀들의 모습은, 아네모네에게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도진이 하고 있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그들을 구하는 것. 이는 아네모네에게 있어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다.

"잠깐!"

도진과 아네모네가 바깥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제니아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녀뿐만 아니다.

빌 리히트도, 휴이도, 다른 사람들도 도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멋진 척하지 마. 네가 뭔데-"

제니아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말을 쏟아내려 했다.

빌 리히트는 울먹거리며 걸어오려 하고.

휴이는 자신도 나가겠다는 듯이 결연한 얼굴로 다가온다.

그들을 본 도진은 픽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괜찮아. 안 죽어."

남자들이 유언으로 남기는 말 1위를 차지하는 대사를 뱉은 도진은.

"가자!"

【응!】

아네모네의 등에 착 달라붙었다.

막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말로 쏟아내려던 제니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기 말을 듣지도 않고 무시하는 사람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소녀의 경악이었다.

"-야!"

하려던 말을 꿀꺽 삼키고, 뱉은 단어는 겨우 한 음절.

그나마도.

"…간 거야?"

도진은 그것도 듣지 않고 가 버렸다.

잠시 후 굴 근처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였다.

"흑……."

자신들을 위해 미끼가 되기로 한 사람이 만드는 소리이고 진동이란 걸 알아서일까.

여학생 하나가 작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짜증 나니까 울지 마. 저딴 새끼 때문에 울어 주지 말라고."

제니아는 그렇게 말하며 이를 악물었다.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절대 안 울어. 절대.’

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 * *

굴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굴 쪽으로 다가오던 멘티스 프레데터와 마주친 도진은 놈에게 화염구 한 방을 먹여 줬다.

딱 거기까지만 하고, 도진은 그대로 아네모네와 함께 도주했다.

"아네모네, 굴 주변에 있는 놈들을 끌고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돼!"

【응. 그러면서 포위당하지 않게 잘 도망 다니면 되는 거지?】

아네모네는 굳이 기척을 죽이지 않았다.

힘차게 땅을 구르며 달렸고, 이는 굴 주변 멘티스 프레데터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신호였다.

【생각보다 엄청 많은데…….】

미간을 좁히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네모네.

늑대의 본능과 감각을 총동원하여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유인하고, 놈들에게 둘러싸이지 않도록 달리고 달린다.

아네모네가 그렇게 달리는 동안 도진은 없는 여유를 쥐어짜 주기적으로 마법을 한 방씩 아무 데로나 날렸다.

《화염구》

빠르게 시전할 수 있고, 마나 소모가 비교적 적으며, 충분한 폭발로 큰 진동을 선사할 수 있는 「화염구」가 주된 메뉴였다.

‘이러면 더 멀리 있는 놈들도 이쪽 방향으로 몰리겠지.’

굴 쪽으로 가지 않게끔 더 큰 진동을 일으켜 계속해서 자신이 향하는 방향으로 사마귀들을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점점 도망칠 길이 적어지고 있어!】

그럴수록 많은 수의 사마귀가 몰려들고, 그만큼 도망칠 방향이 적어지는 건 필연이었다.

아네모네가 필사적으로 달리고 달려서 멘티스 프레데터의 포위망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저쪽은 냄새가 안 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아네모네는 벌레들의 체액 냄새가 안 나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한데.

【……!】

그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도진은 아네모네의 등에서 내리며 말했다.

"고마워, 아네모네. 덕분에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었어."

하지만……! 하고 아네모네가 울먹였다.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듯이.

그런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도진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도진의 손으로 다량의 마석 폭탄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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