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08화 (10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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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해독 포션을 제니아에게 먹였다.

“으윽……!”

순식간에 고열이 올라 갈증이 심한지 제니아는 입으로 들어오는 액체가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받아 마셨다.

그러나 안색이 좀 나아지거나 상태가 호전되진 않았다.

해독 포션의 레벨과 등급 그리고 제니아 본인의 레벨과 스탯 전부가 독을 이겨 내기엔 부족한 탓이다.

‘지금 상황에선 독을 억제하는 게 한계야.’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입술은 검게 물들어 가는 제니아.

그래도 해독 포션으로 잠깐 독의 작용이 억제된 덕인지 혼미해 보이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독이야?”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이다. 그것도 아주 골치 아픈.”

“…….”

제니아의 눈에 두려움이 더욱 짙어졌다.

멘티스 프레데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로 코앞에 다가온 죽음이 주는 두려움.

제니아의 몸이 떨리는 건 비단 중독 때문만은 아니리라.

도진은 그런 그녀 앞에 가진 모든 해독 포션을 늘어놓았다.

“완벽히 해독할 수는 없어도 독의 진행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을 거야.”

그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른다.

몇 시간 넘게 버틸 수도 있고, 1시간도 되지 않아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이 악물고 버텨. 운이 좋으면 구조대가 오는 게 먼저일 수도 있으니까.”

아홉 병의 해독 포션을 보며 제니아는 생각했다.

‘이젠 여기서 혼자 버텨야 하는 거네.’

하긴.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도망치셔야지.

그런 게 돌아다니는 숲에서 탈출하는데 부상자까지?

귀족의 명예도 모르는 자들에게 그런 숭고함을 기대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

순간 사마귀 세 마리에게 뜯어 먹히고 있던 처참한 시체 두 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독한 두려움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선다.

그때였다.

도진이 몸을 일으키더니, 빌 리히트에게 이렇게 말한 건.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잘 지키고 있어. 멘티스 프레데터는 진동만 조심하면 되지만, 다른 놈도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쥐 죽은 듯이 숨어 있고.”

그 말을 들은 제니아가 당혹스런 눈으로 도진을 봤다.

“도망치지 않는 거야? 여기로 다시 오겠다고?”

“방금 그건 균열에서 나온 거야.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균열. 그 단어 하나로 제니아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했다.

하지만 도진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균열? 그럼 여기 숨어서 조용히 구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잖아.’

그런데 왜 밖에 나가겠다는 거야?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나가지 않는 게 좋을걸. 날 따라온 건 하나였지만, 내가 본 건 세 마리였어. 더 많을 수도 있고. 아니, 더 많겠지. 그러니까-”

“다른 애들도 구해야지.”

“……!”

제니아는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부끄러움이라는 이름의 망치였다.

자신은 두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공포에 매몰되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자기 생존과 죽음에 대한 생각만 했을 뿐 다른 생각은 못 했고.

‘추해.’

안하무인으로 살아왔던 공작 영애는 난생처음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제 할 일을 했다.

“출혈 부위 압박은… 네가 해라. 중독돼서 제대로 막고 있지도 못할 테니까.”

“제, 제가요?”

“그럼? 과다출혈로 죽는 거 구경하게?”

“아, 아뇨!”

과격한 표현에 기겁한 빌이 제니아의 출혈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제니아는 그런 빌을 보고 말했다.

“짜증 나…….”

“…죄송합니다.”

“너 말고!”

나 말야. 너 같은 반푼이도 나보단 낫다니.

제니아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카데미 러브 코메디물이야, 뭐야.’

귀엽게들 놀고 있네.

그런 둘을 보며 픽 웃음을 흘린 도진은 굴을 빠져나왔다.

어둠이 그를 반긴다.

“가자, 아네모네.”

이제 다시 긴장할 때였다.

* * *

“도망쳐 메르!”

퍼억.

쓰러진 소년의 등에 낫이 꽂혔다.

그 모습에 소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거 같았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구, 구해야 돼……!’

생각하기 무섭게, 메르의 친구 모아크의 목이 찢어졌다.

죽었다.

어릴 때부터 같이 뛰어놀았던 친구가.

그 순간 메르는 이성을 놓았다.

“으아아!”

역치를 넘어선 두려움에 미친 건지, 아니면 소꿉친구의 죽음이 주는 분노가 두려움을 마비시킨 건지.

메르는 사마귀를 닮은 몬스터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해서-

“아아아악!”

악을 쓰며 검을 횡으로 그었다.

카칵-!

그러나 그녀의 공격은 멘티스 프레데터에게 치명상을 주지 못했다.

죽인 먹이에 정신이 팔려 파먹으려던 순간에 들어간 공격이었음에도 두껍고 딱딱한 팔에 걸려 검이 멈춰 버린 것.

-쉬이익!

그 대가는 컸다.

퍽.

둔중하고 거친 피륙음과 함께.

툭.

그녀의 팔뚝이 떨어졌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검을 수련하며 몸에 배인 본능적 회피 동작 덕에 목숨은 부지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아악!”

균형을 잃고 쓰러진 메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죽는 거야?

-쉬이이.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바람 새는 소리였다.

퍽. 쿠직.

“아아아아아악-!”

멘티스 프레데터의 낫 모양 앞발이 허벅지를 관통했다.

하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네 개의 앞발 중 집게 모양을 한 팔로 상처 부위를 헤집더니 우악스런 힘으로 벌리려 한다.

메르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머리에 번개가 수십 번 치는 듯한 통증.

차라리 빨리 다리를 떼어 갔으면.

빨리 찢어져서 내 다리가 아니게 됐으면.

그렇게 생각할 만큼 끔찍하게 아팠다.

‘…엄마, 아빠…….’

죽고 싶지 않아.

그 순간.

새하얀 섬광이 일었다.

피이이이-

정확히 멘티스 프레데터의 두 더듬이 연결부에 집중됐던 광점이 폭발했다.

-쉬이이이이익!

갑작스런 습격에 멘티스 프레데터가 고통을 호소한다.

50미터 거리에서 발생하는 진동까지 감지해 낼 수 있는 더듬이는 그만큼 엄청나게 예민한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그런 곳에 공격을 당했으니 발광을 하는 게 당연했다.

사방팔방으로 더듬이를 휘저으며 발광하는 멘티스 프레데터.

그런 놈에게 커다란 은빛 물체가 날아들었다.

아네모네였다.

【죽어!】

기척을 죽이고,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였다가 도진의 공격에 맞춰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아네모네는 멘티스 프레데터의 두부를 정확하게 앞발로 강타했다.

-쉬시시시시시시!

도진이 쏜 건 「섬광창」이었다.

물리적 충격은 거의 없다시피 한 공격.

그러나 아네모네의 앞발 펀치는 달랐다.

순수한 물리력의 행사였고, 이는 ‘진동’을 감지하는 멘티스 프레데터에게 더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갔다.

과도한 자극과 통증에 미쳐 버린 장님 사마귀는 네 개의 팔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아파 보이는 건 피하고!】

하지만 재빠른 몸놀림을 가진 아네모네는 어렵지 않게 놈의 공격을 이리저리 회피했다.

빠르고 강한 공격이라 해도 닿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여유를 주면 안 돼!”

어느새 다가온 도진의 외침.

【걱정 마!】

자신 있게 대답한 아네모네가 멘티스 프레데터의 공격을 휙 피하고 앞발을 휘휙 휘둘렀다.

그녀의 양발이 멘티스 프레데터의 퇴화된 두부를 정통으로 파박 하고 강타했다.

【헉.】

그러나 멘티스 프레데터로 만만치 않았다.

보지도, 듣지도, 맡지도 못하는 놈이 유일한 감각인 진동 감지기관인 더듬이가 마비됐음에도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팍 뛰어오른 것.

《돌풍》

하지만 아네모네는 혼자가 아니었다.

도진은 강력한 돌풍을 일으켜 공중에 뜬 사마귀의 공격을 방해했다.

《화염구》

이어서 같은 곳에 뜨거운 불을 꽂는다.

‘시간 끌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주변에 다른 놈이 있으면 많이 골치 아파져.’

도진은 속전속결을 위해 강력한 마법을 준비했다.

《불기둥》

범위를 제한하여, 출력을 높인 불기둥이 멘티스 프레데터를 삼켰다.

“못 나오게 해!”

【응!】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놈을 아네모네가 기술 좋게 머리통을, 아니 더듬이 연결부를 후려쳐 다시 집어넣는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놈은 불기둥 안에서 허우적대다 바닥에 쓰러졌다.

‘일반 몬스터 주제에 마법을 몇 방을 잡아먹는 거야?’

등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하는 생각.

하나 냉정히 생각하면 100렙도 못 찍은 주제에 120을 넘는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게 더 어이없는 게 맞긴 했다.

‘쓸데없는 생각 할 때가 아니지.’

식은땀 흘려 가며 살린 사람이 죽으면 그게 무슨 꼴이야.

도진은 급히 쓰러진 사람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쪽은 벌써 죽었나.’

작게 욕설을 흘린 도진은 희미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는 여자 쪽을 살폈다.

‘너무 많이 다쳤어. 이대로 두면 죽는다.’

쉽게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 도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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