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06화 (10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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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만들었을 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싸우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봐야겠네.’

도진은 시체의 상태와 현장에 남은 흔적부터 살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가리 찢겨 있는 시체.

그러나 처참한 시체를 제외하면 주변 어디에도 제대로 싸우면서 생긴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무엇보다, 한쪽에 널브러진 검술학부 학생의 검은 검집에 그대로 납검된 상태였다.

‘…추측은 나중에 하고, 일단 신호탄부터 쏘자.’

이 두 사람을 습격한 게 무엇이든, 실습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을 학생 전체가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아카데미에서 풀어 놓은 실습용 몬스터일 리는 없고. 자연적으로 필드 엘리트나 보스가 생성된 건가.’

운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일정 수치 이상의 마나가 응집되지 않게끔 아카데미에서 관리도 하고 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막으려 들어 봐야 자연적 현상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이 두 명은 그런 자연재해에 희생된 거고.

‘강한 몬스터가 태어난 건 아래 쪽에서도 인지했겠지만, 혹시 모르니.’

죽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었을 신호탄을 찾아보려고 할 때였다.

오싹한 기운이 도진의 전신을 두드렸다.

적이 아니다.

‘이건……!’

도진은 하늘을 보았다.

선명하게 빛나는, 음울한 별이 보였다.

멸망성 라베스.

“젠장-”

필드에서 엘리트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가 생성된 게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건 차라리 운이 좋은 거였다.

아래쪽에 있는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면 희생자를 더 늘리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해당 지역에 멸망성 라베스의 빛이 강하게 쏟아집니다.]

[해당 지역에 재앙 균열 던전 생성이 시작됩니다.]

이건 아니었다.

단 두 명의 희생자만으로 끝나기엔 너무 심각한 재앙이었다.

* * *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보고하라니까!”

실습 현장 책임자인 제국 아카데미 검술학부 강사 데이브는 날카로운 고함을 내질렀다.

이에 아카데미 소속 마법사 몇이 헐레벌떡 그에게 달려왔다.

갑자기 생성되어 실습장을 감싼 막을 살피던 마법사들이었다.

“시, 실습장 안쪽에 균열이 생긴 거 같습니다!”

“너희만 아는 말 말고 내가 알아듣게 설명해!”

데이브가 윽박을 지르자 다른 마법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균열은 라베스의 힘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곳에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현상의 중앙에 균열이 생기고, 균열이 방출하는 힘에 의해 일정 범위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는데, 저 막이 그 현상 같습니다.”

“같습니다? 같습니다라고 했나. 지금 이 상황에 그따위 추측성-”

“멸망성 라베스로 인한 균열 현상은 제대로 규명된 사실이 거의 없습니다. 마법학회에서도 연구는 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요.”

데이브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말꼬리를 잡아서 화풀이를 할 때가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저 막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는 건가?”

“현재는 불가능합니다. 균열이 생긴 직후부터 균열이 안정되기까지 저 안으로 진입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아예 불가능은 아니란 뜻이잖나.”

“…아주 높은 수준의 마법사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을 쓸 수 있는 존재라면 강제로 진입하는 게 가능은 할 겁니다. 다만…….”

“다만?”

“그럴 경우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야 할 균열이 힘의 균형을 잃고 터져 버릴 위험이 높다는 게, 현시점 마법학회가 내놓은 결론입니다.”

데이브가 암울한 눈으로 자신들이 있는 곳과 학생들이 있는 곳을 나누고 있는 검은 막을 바라봤다.

“아카데미에는?”

“이미 알렸습니다. 동원 가능한 마법학부 교수님을 파악해 바로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제길…….”

그거 말곤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냐?

데이브는 자신의 무력함에 질려 주먹을 쥐었다.

평민의 몸으로 3급 모험가가 됐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카데미 강사까지 하고 있음에도 세계를 상대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카데미 측 구조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당신은……?”

“본드레이 공작가의 기사 안나 비안테입니다.”

“아……!”

데이브는 안나의 말을 듣고서야 실습에 참가한 학생 중 뮤이 본드레이 공작의 외동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학생 전체의 안위만 생각하다 보니 그 중요한 사실마저 잊고 있었던 것.

“현재 아카데미에 현재 상황을 보고했고, 동원 가능한 마법학부 교수님을 파악해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카데미 강사이기에 학생은 학생으로 대할 수 있지만, 안나는 학생이 아닌 공작가의 기사 신분.

데이브는 깍듯하게 예를 갖춰 대답했다.

“마법학부 교수… 알겠습니다. 본드레이 공작가의 마법사단도 바로 움직인다고 했으니, 원활한 협력을 위해 아카데미 측에 전달해 주십시오. 분명히 말해 두겠습니다. 불필요한 잡음으로 구조에 차질이 생겨선 곤란합니다. 저 안에 그분의 딸이 있습니다.”

데이브는 순간 ‘다른 학생들도 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사람 목숨의 무게가 각기 다르다는 건 평민 출신인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살아만 있어라.’

한 명도 죽지 마라. 제발.

점점 투명도가 떨어지며 짙어지는 막을 보며 데이브는 간절히 기도했다.

* * *

갑작스런 균열 생성으로 바깥이 난리가 났다지만, 당장 균열 안에 갇힌 안쪽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균열’은 로스타니아를 비추는 두 별 중 멸망을 담당하는 라베스의 힘이 응집된 지역에 랜덤하게 발생하는 재앙이다.

나중에야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지만, 이런 장소, 이런 시기에 터질 줄은 도진도 상상을 못 했었다.

‘이걸 목격한 유저가 없었으니 소문도 안 난 거겠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이 지역 레벨대가 어떻게 되더라? 90 정도 되지.’

균열 던전은 발생 지역 난이도에 최소 30레벨이 더 붙는다.

‘낮아도 120. 그나마 이것도 최소한으로 잡았을 때 이야기란 거네.’

시발.

낮게 욕설을 뱉으며 도진은 달렸다.

아네모네와 빌을 두고 온 곳을 향해.

【진!】

도착하기 무섭게 아네모네가 밖으로 나와 진을 반긴다.

아네모네는 세계의 마나의 더욱 민감한 정령.

그렇기에 현재 사태가 심상찮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진, 지금 엄청 불길한 기운이-】

“알아. 지금 상황이 엄청 안 좋은 거 같은데… 일단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좀 해야겠어.”

도진은 아네모네를 데리고 원래 있던 굴로 들어갔다.

그러자 빌이 도진을 보고는 반색했다.

아네모네가 주기적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겁을 준 탓에 도진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바깥이 갑자기 더 어두워진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아니지, 그것보다 아까 비명은 어떻게 됐어요? 아무도 안 다친 거죠?”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겁먹은 티가 잔뜩 나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묻는 빌의 질문은 도진의 짜증 수치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잠깐 생각 중이니까 조용히 좀 해 봐요.”

균열이 생겼다.

리제니안. 즉, 유저는 들어올 수 있긴 하지만, 라베스에 저항할 힘이 없는 로스타니아의 존재는 생성 중인 균열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

‘이건 곧 산 아래에 모여 있는 인간들이 싹 다 쓸모없다는 소리고, 살아남는 것도 이 안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지.’

숨어 있을까? 가능성만 따지면 이쪽이 가장 높은 확률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숨어 있어도 살아남을 확률이 100퍼센트인 것도 아니고, 다른 죽음을 막을 수도 없겠지.’

‘죽음’을 떠올리자 스쳐 가는, 방금 보았던 처참한 시체 두 구.

그런 게 늘어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다 못해 좆 같았다.

어차피 자신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니 마음 편한 길을 고르는 게 나았다.

‘혼자 숨어 있는 건 패스.’

그럼 다음은 가장 간단한 방법.

열리고 있는 균열을 닫아 버리는 거다.

중심부에 있는 핵을 부숴 버리면 되는 아주 심플한 방법이긴 한데…….

‘문제는 거기에 보스도 있을 거란 거지.’

현재 도진의 레벨 99.

99레벨과 100레벨은 겨우 1레벨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힘의 간극만 따지면 한차례 격이 달라지는 구간이다.

그런데 최소한 120을 넘길 보스 몬스터에게 단독으로 도전한다? 사망 확률이 100퍼센트에 수렴할 멍청한 짓이었다.

‘어쩔 수 없지. 완전히 던전화가 끝날 때까지는 생성되는 몬스터가 적으니까 최대한 전투는 피하면서.’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이었다.

얻을 수 있는 것, 잃을 수도 있는 것.

이런 건 지금 생각하지 말자.

“저기…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을까요? 혹시 비명 소리를 지른 학생을 찾지 못한 거면 지금이라도 같이 나가서-”

결연한 눈으로 다짐을 한 도진에게 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도진의 짜증지수가 임계점을 넘어 버렸다.

콱 하고 빌의 멱살을 틀어쥔 도진이 말했다.

“방금 들렸던 비명 소리는 학생 두 명이 죽는 순간에 지른 비명이야.”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기 있는 몬스터는 다 약한 몬스터인데……! 2학년 수준이면 안전한 실습이 가능하다고 분명히…….”

계속 빌빌대는 빌의 모습에, 도진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빌도 나름 검술을 수련하는 몸.

유약한 성격과 달리 몸에 배인 수련은 진짜였다.

고개를 팍 꺾으며 도진의 팔을 위로 올려 치는 빌.

“이게 무슨 짓-”

그러나 상대는 도진이었다.

제법 괜찮은 움직임에 눈썹이 꿈틀댔지만, 그뿐.

《전기 충격》

내질렀던 손끝에서 스파크가 튀며 빌이 경련한다.

적당히 조절했지만, 무방비하게 맞은 입장에선 꽤나 아플 공격이었다.

“으으윽……!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정신 차려. 지금 주변 전체가 던전화가 진행 중이다.”

“더, 던전화라고요?”

“그래.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갈 준비해.”

“여기서 나간다고요?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음, 넌 숨어 있고 싶으면 숨어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어차피 애들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지도 않고.”

도진의 말에 빌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다른 애들을 구하러 가겠다는 건가요?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빌의 질문에 도진이 픽 웃었다.

“난 리제니안이야. 괜히 꿈자리 뒤숭숭해지느니 애들 구하다 한 번쯤 죽는 게 나아.”

필기 성적이 바닥을 기는 빌은 도진이 하는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건 알 수 있었다.

지금 도진의 모습이, 자신이 어릴 때 꿈꾸었던 모험가의 모습이란 것을 말이다.

자신이 귀족의 사생아란 것도 모른 채 평범한 시골 소년으로 살며 꿈꾸었던 그 모험가.

“저, 저도 갈래요.”

빌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말했다.

그런 모습에 도진은 잠시 고민했다.

‘도움은 안 되는 건 확정이고, 방해가 될 가능성도 높긴 한데… 두고 갔는데 숨어 있다 몬스터 마주치면 무조건 죽겠지.’

에휴. 데려가야지 별수 있나.

고개를 끄덕이며 도진은 생각했다.

‘7급 모험가 승급이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거야?’

9급 때는 혈왕이 자기 길드에다 옆 동네 섬나라 길드 애들까지 끌어들여서 훼방을 놓더니.

이젠 저 하늘의 별님께서도 지랄을 하신다.

액운도 이 정도면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진짜 더럽게 억울했다.

이런 도진의 억울함을 세상이 알아준 걸까.

[퀘스트]

새로운 퀘스트 생성을 알리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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