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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장소는 드리스겐 인근에 위치한 산으로, 오직 아카데미 학생의 실전 경험 함양을 위한 실습장으로 관리되는 곳이었다.
등산로를 떠올리게 하는 실습장 입구 앞에 도착하자 퀭한 눈을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가슴에 달린 은빛 휘장이 그가 아카데미 강사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 주목. 이번 실습을 담당하게 된 데이브다. 원활한 실습 진행을 위해 사전에 숙지해야 할 사항을 전파하겠다.”
데이브의 무미건조한 말이 이어진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오늘 실습은 검술학부 10명, 마법학부 10명, 총 20명이 참가한다. 실습은 2인 1조로 진행되며, 조 편성 방법은 뽑기다. 한번 정해진 조는 절대 변경 불가.”
한번 말을 끊은 데이브가 손을 뻗어 실습장 입구를 가리켰다.
“이미 지난 2주 동안 총 8회의 실습이 이곳에서 진행된 만큼 특기할 만한 안전상의 문제는 없다고 봐도 좋다. 다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학생 개인이 호위를 대동하는 건 자율적 판단에 맡긴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 발생하는 감점은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수행원과 뒤섞여 구경하던 도진은 데이브의 말에 반색했다.
‘이거 진짜 날로 먹겠는데?’
말은 대동하고 싶으면 데리고 들어가라고 했지만, 명예에 죽고 명예에 사는 게 귀족이다.
여기서 호위를 대동하고 싶다고 말하면 동네방네 ‘전 겁쟁입니다!’ 하고 외치는 꼴.
‘제국 귀족이 그럴 리가 없지.’
생각해 보면 리히트 백작가에서 자신을 고용한 것도 정말 자식 걱정을 해서 그런 게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백작가 핏줄이 수행원도 없이 돌아다니면 소위 말해 ‘가오’가 살지를 않으니 잠시 땜빵을 해 놓은 개념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여기서 얌전히 병풍 노릇 하면서 시간만 죽이면 끝나겠구나.’
도진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저…….”
빌 리히트가 소심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뭐냐, 빌.”
데이브의 무심한 눈빛에 움찔한 빌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 호위를 대동하고 싶습니다.”
“…진심이냐?”
데이브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 리히트, 다시 한번 묻겠다. 진심이냐?”
“…예.”
한숨을 내쉰 데이브는 “그래.” 하고 더 이상 빌을 쳐다보지 않았다.
‘저 새끼가……!’
빌의 선택에 한숨이 나오는 건 데이브만이 아니었다.
편히 쉴 기대를 하고 있던 도진도 졸지에 산을 타게 된 사태가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도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빌 리히트 말고 다른 사람은 없나?”
또 겁쟁이 할 사람? 하고 묻는 데이브의 말에 학생들이 키득키득 비웃음을 보낸다.
빌은 더욱 초라하게 몸을 움츠렸다.
“그럼 감점은 빌 리히트가 속한 조만 하면 되겠군.”
데이브의 말에 마법학부 학생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데이브 강사님, 지금 말씀은 감점이 빌 리히트 개인이 아니라 그와 함께 조가 짜이는 학생까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어느 학생의 질문에 데이브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으로 보이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난 이 넓은 실습장 전체를 살필 능력이 없다. 그러니 학생이 아닌 인원이 포함된 조를 감점할 수밖에 없지.”
마법학부 학생 전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빌에게 쏟아지던 비웃음이 순식간에 적대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에 비례해 빌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갔다.
“데, 데이브 강사님, 호위 대동은 취소하겠습니다. 전 다른 학생에게 피해가 가는 줄 모르고-”
“그만.”
데이브가 빌의 말을 끊었다.
“자신이 한 선택과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날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마라, 빌 리히트.”
살벌한 데이브의 분위기에 빌은 물론 다른 학생까지 조용해졌다.
“부당합니다.”
한 명 빼고.
‘역시 뮤이 본드레이 따님이구만.’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도진은 감탄했다.
이 상황에 누가 또 나섰나 했더니 제니아 본드레이였다.
그녀는 당당하다 못해 반항적인 눈빛으로 말했다.
“무작위로 구성된 조원이 겁쟁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네 옆에 있는 아군이 쓸모 있고 용감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짐이 될 수도, 발목을 잡을 수도, 배신을 할 수도 있는 게 아군이다.”
데이브의 말에 제니아가 입을 다물었다.
실전을 중시하는 제국 아카데미의 교육철학에 비춰 볼 때 데이브의 말은 전부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제니아가 진압되는 걸 마지막으로 조 추첨이 시작됐다.
1조부터 10조까지, 검술학부 학생들이 먼저 번호표를 뽑았다.
빌이 뽑은 숫자는 6.
다음 순서로 마법학부 학생들의 뽑기가 시작됐다.
그들 전부가 ‘6번만 피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0, 5, 2, 1, 4, 7, 9, 3, 8.
그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9명이 뽑는 동안 6번은 등장하지 않았다.
문제는.
“…….”
마지막 뽑기의 주인공이 제니아 본드레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어차피 정해져 있으니 뽑을 필요도 없겠지. 자, 준비해라. 1조부터 10조까지 1분 간격으로 실습장으로 진입한다.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지급된 신호탄을 발사하도록.”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사냥한 몬스터의 마릿수와 등급이 점수에 반영되니, 모두들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데이브의 말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제니아는 조용히, 그러나 아주 살벌하게 빌을 노려보았다.
죽을죄를 지은 죄인처럼 벌벌 떠는 빌을 멀리서 바라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그러게 왜 내 휴식을 방해해?’
에휴.
도진은 주섬주섬 겁쟁이 도련님 보모 노릇을 준비했다.
* * *
6조의 실습은 시작부터 화기애애했다.
제니아가 화가 잔뜩 나서는 단독행동을 선언한 것이다.
“겁쟁이 사생아 주제에 어딜 따라 와? 역겨우니까 내 눈에 안 띄는 곳에 처박혀 있어.”
심지어 그녀는 비탈에서 빌의 가슴팍을 시원하게 걷어차고는 이 말을 했다.
도진은 멀어져 가는 싸가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기 앞까지 굴러온 소년을 일으켰다.
“괜찮아요?”
“…네.”
흙먼지와 썩은 나뭇잎이 묻은 처량한 꼴로 대답하는 빌의 모습은 정말 없어 보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니아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묻자 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열심히 해 봐야죠. 저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면 안 되잖아요.”
한마디로 열심히 몬스터를 사냥해서 감점된 점수를 최대한 만회하겠다는 소리였다.
‘덕분에 난 산을 타야 하고 말이지.’
한숨을 삼킨 도진은 빌을 따라 걸었다.
이동하는 동안 빌은 열심히 무언가를 했다.
바닥을 살피고, 혹시나 몬스터 발자국이나 배설물이 보이나 찾는 모습.
아카데미에서 배운 몬스터의 흔적을 추적하는 방법을 떠올려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와줄까요?”
따라만 다니기 심심해서 물어보는 도진.
“아뇨. 이것도 성적에 반영되는 시험이나 마찬가진데 부정행위를 저지를 순 없죠.”
그러나 빌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겁 많고 유약하지만 심성은 착한 거 같았다.
‘마냥 착한 게 장점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성격 글러먹은 것보단 낫지.’
‘글러 먹은 성격’하니 자동으로 제니아 본드레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뮤이 본드레이도 안됐네. 하나뿐인 자식이 그 모양이라니. 아니지. 이런 경우엔 그냥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가슴 한쪽은 간질이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거라도 빼먹었나?’
뭔지 모를 찜찜함에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 보려는데.
“어!”
빌의 탄성이 도진의 사고가 이어지는 걸 막았다.
뭔 일인가 하고 보니 발자국을 발견한 거 같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 * *
결론적으로, 빌은 몬스터를 발견하지 못했다.
해가 질 때까지 산을 헤맸으나 몬스터 그림자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정도면 그냥 몬스터를 피해 다닌 수준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냐?’
건조 식량으로 배를 채우며 도진은 빌의 불운에 감탄했다.
여긴 그냥 산이 아니다.
아카데미에서 몬스터 개체 수를 관리하는 실습장이지.
웬만큼 돌아다니면 적당한 몬스터가 눈에 띄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저 소년은 눈에 불을 켜고 흔적을 추적하네 마네 했음에도 한 마리도 몬스터를 보지 못했다.
‘내일은 그냥 내가 슬쩍 한 마리라도 찾아 줘야 하나.’
세상 시무룩한 얼굴로 모닥불만 쳐다보는 빌이 안쓰러워서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꺄아아-”
누군가의 비명이 들린 것은.
빌이 겁먹는 눈으로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반사적으로 검병을 잡고 벌벌 떠는 게 눈에 들어온다.
착한 심성은 당장 달려가려고 하는데, 겁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도진은 아니었다.
‘이런 소리 듣고 그냥 자면 꿈자리만 뒤숭숭해지지.’
비명이 들리기 무섭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도진은 빌을 보며 말했다.
“여기 얌전히 계세요. 괜히 돌아다니면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저, 저도 같이-”
“아네모네.”
가긴 뭘 가. 너 같은 건 짐밖에 안 돼.
빌의 말을 무시한 도진은 아네모네를 소환했다.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늑대를 본 빌이 히이익 하고 못난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바로 움직였다.
“아네모네, 부탁할게!”
빌을 아네모네에게 떠넘기면서 말이다.
【…….】
아네모네는 빌을 마뜩찮은 눈으로 바라봤다.
“히이익!”
빌은 더욱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은 아네모네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시끄러워. 물어 버린다?】
빌은 기도했다. 제발 모험가님이 빨리 돌아왔으면 하고.
늑대가 말을 한다는 사실에 놀랄 정신은,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 * *
‘이 시간에 몬스터를 찾아다니니까 사달이 나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며 도진은 혀를 찼다.
어둠은 사람의 편이 아니다.
「적야」가 있는 자신이니까 산길을 이렇게 편하게 주파하는 거지.
평범한 인간은 그냥 어두운 산 자체가 재앙 덩어리라 볼 수 있었다.
‘몬스터 때문에 비명을 지른 거라 해도 죽진 않았겠지.’
빌에게 들은 바 이번 실습에 참가한 학생은 2학년이라 했다.
겨우 2학년 상대로 강한 몬스터를 풀어 뒀을 리는 없으니 최악의 경우에도 부상을 입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냥 비탈에서 구르면서 비명을 지른 걸 수도 있고-’
하는 생각을 하며 달리는데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피다.’
노골적인 혈향.
그것도 적은 피가 아닌 아주 대량의 피가 고였을 때 나는 짙은 피 냄새였다.
‘젠장.’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낀 도진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
머리가 뜯겨 나간 시체 두 구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