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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에 영상이 올라가기 15분 전.
도진은 미리 LOST에 접속했다.
접속한 도진이 나타난 곳은, 땅이 갈라진 틈 깊숙한 곳에 튀어나온 암석 위였다.
위쪽에선 절대 찾지 못할 깊이까지 내려왔기에 적의 추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비밀 아지트였다.
벽 사이의 간격이 3미터 정도 되지만, 몸길이가 덩치 큰 호랑이에 비견되는 아네모네는 앞발과 뒷발로 양쪽 벽을 지지대 삼아 오르내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싸울 때도 그렇고 이런 부분도 그렇고 아네모네가 없었으면 벌써 게임 오버 됐겠지.’
도진은 고개를 들었다.
틈새로 들어오는 달빛을 가는 실처럼 보인다.
그것을 보며 도진은 마법사용 연초를 태웠다.
이어 전투를 위한 칼로리를 보충한 뒤 상태창을 열어 몸 상태를 체크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완전 로그아웃을 했다면 로그아웃 시점 그대로 상태가 고정되어 쌓인 피로가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은신처를 찾아 수면 상태로 아바타를 방치하고 로그아웃을 한 덕에 모든 지표는 완벽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이런 게 지구력 싸움이지. 길게 이어지는 전장에선 길게 버티는 놈이 이기거든.’
온갖 싸움을, 온갖 환경과 상황과 장소에서 치렀던 경험은 전투만이 아니라 이런 부차적인 부분에서도 빛을 발했다.
‘영상 업로드까지 대충 10분 정도 남은 건가? 이제 슬슬 나도 움직여야겠네.’
도진의 입매가 위험한 각도로 휘었다.
‘그럼 약속을 지키러 가 볼까.’
오늘 하루, 유혈 길드와 낭인 길드는 아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게 될 예정이었다.
* * *
도진이 어두운 시간을 골라 접속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어둠을 꿰뚫는 「적야」를 가진 입장에서 밤은 도진에게 아주 유리한 무대이기 때문.
하물며 다누미네 계곡은 낮에도 그늘진 곳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
달이 뜬 시간은 지상에 충분한 어둠을 제공했다.
“아네모네, 부탁해.”
【오늘도 나쁜 놈들이 어딨는지 찾으면 되는 거지?】
열심히 양쪽 벽을 짚고 절벽을 타고 오른 아네모네는 힘든 기색도 없이 바로 바람을 삼켰다.
늑대답게 냄새로 적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아네모네의 이런 능력은 도진이 적의 눈을 피할 때도 유용했지만, 적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 습격을 준비할 때는 더욱 유용했다.
【저쪽으로 가자. 짐승 냄새랑 인간 냄새가 섞인 걸 보니까 적들도 냄새를 추적하려는 거 같아.】
그러나 적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며칠 동안 아네모네란 존재에게 된통 당하더니, 비슷한 방법으로 맞불을 놓기로 한 모양.
“테이머를 섞었나? 그럼 들키지 않으려면 풍하(風上)를 점해야겠네.”
바람이 시작되는 방향에 서 있으면 냄새는 바람을 타고 풍하(風下)로 이동한다.
상과 하를 나누는 기준점은 당연히 적이고.
즉, 적보다 풍하에 위치하면 적이 냄새를 추적하기가 힘들어진다.
바람의 도움 없이도 냄새를 추적할 수 있는 아네모네면 모를까 100레벨도 못 넘긴 테이머나 사냥꾼이 길들인 짐승 따위로는 바람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우리 뒤를 노리는 놈들부터 처리하고 시작하자.”
【응! 타!】
아네모네는 기동 타격전에도 특화되어 있었다.
「기승」이 없다지만, 등에 어떻게든 매달려만 있으면 빠른 이동은 가능했다.
자신의 등에 찰싹 달라붙은 도진을 확인한 아네모네가 움직였다.
인간이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계곡을 주파하는 아네모네.
바람의 방향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적이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챌 수 없게끔 접근한다.
마치 가젤 무리를 향해 접근하는 암사자처럼.
“보인다.”
아네모네가 속도를 줄였다.
온 힘을 다해 매달려 있던 도진이 내릴 여유를 주는 배려였다.
충분히 속도가 줄어들자 도진은 훌쩍 아네모네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적의 시선을 잠깐만 끌어 줘.”
【반대편으로 갈게.】
아네모네가 달린다.
일부러 적에게 냄새가 흘러가게끔 바람의 위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늑대 정령이 되면서 각인된 사냥꾼의 본능이 그녀를 움직이고 있었다.
“컹! 컹! 컹!”
아네모네의 냄새를 맡은 테이머의 펫이 짖어 대기 시작했고, 적 진영은 소란스러워졌다.
5인으로 이루어진 파티원의 주의가 순간적으로 아네모네가 있는 방향으로 몰렸다.
“잠깐! 저쪽 방향 말고 다른 방향도 경계해야-”
그중 누군가가 다급히 말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한 템포, 아니 반 템포라 해도 잃어버린 템포는 전장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섬광창》
정확한 조준만 전제된다면, 필살에 가까운 위력을 발하는 마법이 스타트를 끊었다.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활 든 놈이 고꾸라진다.
그와 동시에 개가 발광을 하며 아네모네가 있는 방향으로 달린다.
주인 잃은 펫이 보이는 광란.
‘방금 그놈이 개 주인이었나?’
테이머가 활을 쓰는 건지, 아니면 정통적인 궁수(아처)가 아니라 헌터나 레인저 같은 클래스였는지.
‘알 게 뭐야.’
그래, 알 게 뭐냐. 어차피 활 한 번 못 땡겨 보고 자빠졌는데.
“이 개새끼!”
도둑놈 둘에 쌍검충 하나, 거기다 저건 뭐야? 할버드 든 전사?
진짜 감탄이 나오는 조합이다.
아무리 힐러랑 탱커가 귀하다지만, 파티 조합이 어떻게 저렇게 근본 없을 수가 있지?
원거리 딜러 하나 잘랐더니, 이건 뭐… 그냥 과녁이 따로 없다.
《화염창》
“썰어!”
마법과 외침이 뒤섞였다.
퍼엉.
막 돌진하려던 전사가 폭발에 휩쓸린다.
도진은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추가타를 두 방이나 더 선물했다.
아군이 쓰러지거나 말거나 단검쟁이 둘과 쌍검충 하나가 날렵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달려왔다.
‘이런 움직임은 궁수도 따라잡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할래!’
맞다.
보통 평범한 마법사들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걸 맞추기 힘들어한다.
그런데 도진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화염구》
퉁, 퉁, 퉁.
빠르게 캐스팅된 화염구가 쌍검충을 노렸다.
하나는 피했다.
다음 것도 굴러서 어떻게든 피했다.
그런데 또 하나는?
굴러 도착한 지점에 친절히 배달된 화염구가 쌍검충 입에서 비명을 뽑아냈다.
“크아악!”
비명 지를 기운이 있으시네. 그럼 추가로 드려야지.
《화염구》
퉁, 퉁.
유탄 발사기가 유탄 뿜어내듯 불공을 쏘아 대는 도진.
충격으로 몸이 굳은 쌍검충을 마무리한다.
“잡았다, 이 시발놈!”
그사이 단검 든 강도 둘도 놀고 있진 않았다.
빠르게 거리를 좁힌 두 놈은 도진을 노리며 단검을 내뻗었다.
【어딜!】
그러나 놀고 있지 않았던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돌아온 아네모네가 측면에서 튀어나오며 도적 중 하나를 들이받으며 물어뜯었다.
“커억!”
갑작스런 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도적은 아네모네에게 물린 채로 바닥을 슬라이딩했다.
아스팔트도 아니고 울퉁불퉁 뾰쪽뾰족한 계곡 바닥에 안면이 갈린다.
“이익!”
남은 건 마지막 도적 한 놈.
놈은 도진에게 최대한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 정직한 경로로, 정직한 공격을 시도했다.
투박하지만 그래서 빨랐고, 그래서 마법으로 대처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에 도진은.
카드득.
“……!”
도적의 공격에 몸으로 대응했다.
건틀렛으로 적의 단검을 막아 낸 것이다.
매직 건틀렛은 이런 경우에 방어 용도로도 쓸 수 있게끔 만들어진 병기.
금속과 금속이 만나 불똥이 튀기며 거친 소음을 만들었다.
공격자의 공격 능력치와 도진의 방어 능력치가 수치화되어 시스템에게 평가받는다.
도진의 생명력이 팍 하고 줄었다.
그 양이 적진 않았다. 하지만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너!】
도진의 생명력이 줄어드는 걸 감지한 아네모네는 뒤에서 적의 목을 물어뜯으며 패대기쳤다.
“큭!”
콰득.
바닥에 처박히며 두부와 경추에 큰 충격을 입은 도적은 순간적으로 빙글빙글 도는 시야에 신음을 흘렸다.
다시 시야에 상이 제대로 맺히기까지는 2초에서 3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전투 속에서 그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었다.
콱.
그사이 손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얼음 화살」이 손바닥을 관통한 것이었다.
퍽.
가슴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아네모네가 거칠게 앞발로 후려치면서 생긴 고통이다.
“끄으으……!”
흉통이 눌리면서 뱉는 신음도 더 답답해졌다.
겨우 제정신이 돌아온 도적을 기다리고 있는 건 역전의 기회가 아닌 완전히 제압된 사진이었다.
도진은 완전히 제압된 적을 보며 장난스레 손을 흔들었다.
“오하요우? 이게 맞나?”
일부러 어설프게 발음하는 일본어.
노골적인 조롱에 도적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난 유혈 길드원이다. 쪽바리가 아니라고.”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도진은 허공에 손짓하며 말했다.
“사람들한테 인사나 해.”
“……?”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도적.
도진은 더욱 짙게 웃었다.
“너 지금 방송 타고 있거든.”
“그게 지금 무슨 개소리- 컥!”
몸을 들썩이려던 도적은 아네모네가 체중을 실어 콱- 하고 누르자 다시 얌전해졌다.
【엥?】
아니, 죽어 버렸다.
아네모네가 힘 조절을 잘못했을 수도 있고, 피가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을 수도 있고.
이유야 어쨌든 죽었다.
【…….】
눈치를 보는 아네모네.
도진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엄지 척도 해 주고.
그러고는 돌아서서 실시간으로 불어나는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유혈 길드랑 낭인 길드한테 일방적으로 쫓기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도진입니다.”
방금 전투를 시작부터 끝까지 본 시청자들은 물음표로 채팅창을 도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자기 할 말만 했다.
“이런 말이 있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그래서 꿈틀거려 보려고 방송 켰어요.”
아, 노파심에 당부 하나만 할게요.
“여기 어딘지 알아내서 오면 안 됩니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되게 재밌거든요? 노는 거 방해하면 바로 방송 끌 거예요.”
그러니까, 재밌고 편안한 관람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