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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99화 (10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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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유저는 죽어도 잡템이나 물약을 같은 가치가 낮은 물건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다.

운이 좋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을 때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카오스 유저는 ‘확정적’으로 아이템을 잃으며, 잃어버리는 아이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확률이 ‘현저히’ 높아진다.

카오스 유저는 일반 유저에 비해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슬롯머신을 굴린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거다.

이런 이유로, 길드원 중 카오스 유저 비율이 꽤 높은 유혈, 낭인 길드는 유의미한 피해를 입는 중이었다.

“진짜 미친놈들인가?”

파티 하나 혹은 둘을 정리하면 마석이든 장비든 잃어버리면 속 아플 전리품이 도진 손에 들어왔다.

도진 입장에선 5명에서 10명 정도를 처치하면 뭐가 됐든 비싼 아이템이 확정 드롭되는 특급 드롭률 이벤트에 참여한 격이다.

그러니 그런 피해를 감수하며 길드원을 계곡에 갈아 넣는 두 길드가 광인 집단으로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한테 뺏긴 것만 따져도 3천만 원은 될 거 같은데… 이 새끼들 진짜 이성이란 걸 상실한 거야, 뭐야.”

치솟는 짜증에 도진이 제 머리를 헝클었다.

시스템 판정 정당방위로 PVP 잔뜩 하고 그 대가로 놈들 아이템을 갈취하는 건 좋다.

확실히 벌이는 짭짤했다.

그러나 지금 벌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진은 밀린 모험가 등급 퀘스트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다음 성장을 위한 스탭을 밟고 싶었다.

그런데 유혈과 낭인이랑 엮이면서 다누미네 계곡에 벌써 사흘이나 붙잡혀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또, 아무리 도진이라 해도 계속해서 축차 투입되는 적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매복, 습격, 유인, 함정 등. 일방적으로 화력 투사를 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

그마저도 습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적의 대처가 훌륭하면 쪽수에서 밀리는 싸움을 해야 했다.

매번 외줄타기를 하는 셈이니, 정신적으로도 매우 피곤했다.

마치 정규군에게 쫓기는 혁명군 간부가 돼서 게릴라전을 치르는 기분.

추적자 대부분이 70~80레벨이라는 점과 아네모네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도진은 진즉에 수많은 전투 중 한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했을 터였다.

“이 정도면 차라리 한 번 죽고 마을에서 부활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도진은 일부러 죽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그건 아마 죽이고 죽이다 포션을 다 써서 말라 죽는 경우의 수밖에 상정하지 않고 있었다.

포기는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적한테 강요하는 거지. 도진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었다.

‘그냥 하루나 이틀 정도 접속하지 말까?’

그것도 괜찮을 거 같다.

자신이 언제 로그아웃하고 언제 /접속한 지(접속할지)/ 저쪽은 알 수 없으니, 수색에 소모되는 체력과 심력 등을 신나게 갉아먹을 수 있을 테니.

이런저런 전략을 짜면서, 도진은 캡슐에서 일어섰다.

일단 밥심을 충전한 뒤에 더 생각을 해 봐야겠다.

“누나, 안녕.”

게임룸에서 나오자 보인 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천지현이었다.

그녀는 약간 놀란 눈으로 물었다.

“요즘 무슨 일이야? 도진이 네가 매일 로그아웃을 다 하고?”

“나도 좀 쉬어야지.”

“잘 생각했어. 내가 그랬지? 건강이 최고라고. 밥 먹을래?”

“응.”

“뭐로 줄까?”

뭐 있는데? 묻는 도진에게 천지현이 준비된 식단을 줄줄 읊었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샐러드였다.

참치 샐러드, 연어 샐러드, 닭가슴살 샐러드, 한우 스테이크 샐러드…….

평소 도진이 몸 관리한다고 먹는 게 거의 대부분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머저리들과 씨름하느라 스트레스를 있는 대로 받은 도진은, 오늘만큼은 건강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풀 말고 다른 거 먹고 싶은데, 다른 건 없어?”

“정말 무슨 일이래? 식단만 보면 모델 지망생처럼 먹더니.”

별일이네~ 하며 천지현은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러나 냉장고엔 과일과 음료뿐 식사거리가 없었다.

“배달 시켜 먹을까?”

도진의 제안에 천지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도진과 천지현은 마주 앉아 닭다리를 뜯게 됐다.

회귀한 뒤로 처음 먹는 치킨.

이런 게 행복인가 싶은 기름에 튀긴 닭이 주는 행복감에 도진은 잠시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응? 얘네들은 또 왜 이런대?”

그런데 그때 한 손으로는 닭다리를,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던 천지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안 좋은 거라도 본 모양.

“무슨 일인데?”

도진은 별생각 없이 물었다.

“아니, 그때 너한테 당한 애들 있잖아. 하베르칸 레이드 때. 로트라넷에 갑자기 걔네들 얘기가 올라와서.”

“뭐?”

하베르칸 때 자신에게 당한 놈들은 유혈이다.

지금 자신과 숨 막히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놈들도 그놈들이고.

한데 하필이면 지금 로트라넷에 걔들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닭다리를 내려놓은 도진은 천지현이 보는 화면을 보기 위해 일어나서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정확히 무슨 얘긴데?”

“유혈 길드가 초보자 사냥터 하나를 통제하고 있나 봐. 엄청 욕 먹고 있어.”

도진은 글을 확인했다.

[제목: 초보 사냥터 통제 실화냐? ㅋㅋ]

[유혈 이 뷰웅신 새끼들은 어디까지 추해지려는 거냐?

복잡한 거 싫어서 친구들이랑 사람 적은 사냥터 찾다가 다누미네 계곡 상류 쪽 갔는데 웬 고렙들이 진 치고 못 들어가게 막더라.

그런데 익숙한 얼굴 있어서 유심히 봤더니 유혈 길드장이었음 ㅋㅋ]

-진짜? 거기 뭐 히든 피스 발견된 거 아님? 히든 던전이나.

└그렇겠지 ㅋㅋ 유혈 애들 원래 그런 거 뺏기 전문이잖아.

└근데 최초 발견한 게 유혈이면 뺏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논리면 초보자 사냥터 점거하고 못 들어가게 막아도 된다는 거임?

-지금 못 들어가게 막은 게 문제가 아님. 며칠 전에 올라왔다가 묻힌 글 있었는데 걔는 거기서 사냥하다가 고렙한테 PK 당했다고 했음. 정황 봐서는 유혈 애들이 그런 거 같은데 진짜 병신 새끼들이네.

-거기서 PK 당한 거 나다 ㅅㅂ. 여친이랑 평화롭게 슬라임 때려잡고 있는데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더니 다짜고짜 활 스킬 퍼부어서 그대로 겜 오버당했음.

└호오, 그래서 여친이 있으시겠다?

└이건 유혈이 잘한 거 같은데?

-하… 고렙들끼리 던전이나 사냥터 때문에 싸우는 거야 그렇다 치는데 저렙존에서 지랄하는 건 선 넘었지. 비매너 길드다, 비매너 길드다 할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진짜 상상 이상으로 쓰레기 길드였네.

도진은 다른 글도 살폈다.

유혈과 다누미네 계곡을 키워드로 검색하자 많은 글이 떴다.

다누미네 계곡은 비인기 사냥터다.

그러나 아예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은 또 아니었다.

거길 통제하고, 이미 안에 있던 유저는 죽여서 내쫓았으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혈 길드가 거하게 욕을 얻어먹는 현장을 확인한 도진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누나.”

“응?”

어휴, 평화롭게 게임 좀 하지. 중얼거리며 새로운 닭다리를 집어 들던 천지현이 도진을 봤다.

“……?”

천지현은 도진의 웃음에서 느껴지는 사악함과 장난기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에게, 도진이 말했다.

“내가 잘라 주는 영상 좀 회사에 전달해 줘.”

천지현이 들고 있던 닭다리를 탁 내려놓았다.

도진 입에서 ‘영상’이란 단어가 나왔다는 건 곧 대박이란 뜻과 일맥상통했다.

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당장 보낼게.”

“그리고.”

응? 말만 해. 약간 흥분한 천지현에게 도진은 또 하나의 폭탄을 투하했다.

“회사에 말해서 실시간 방송 세팅 좀 해 줄 수 있어?”

“……!”

천지현의 눈이 더 커질 수 없는 크기까지 커졌다.

“시, 실시간 방송? 너 게임하면서 정보 유출될까 봐 영상 올릴 때도 엄청 신경 쓰잖아. 플레이 화면 실시간으로 보여 줘도 괜찮겠어?”

“괜찮아. 특별한 일 없으면 이번 한 번만 하고 안 할 거거든. 이번엔 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천지현은 자신을 붙잡고 제발 뭐가 됐든 도진의 활동 영역을 넓히게 도와달라고 빌다시피 하던 마케팅 팀장이 떠올랐다.

「지현 씨, 도진 씨를 그렇게 두는 건 정말 엄청난 인력 낭비고 재능 낭비예요. 알죠? 물 들어올 때 노를 열심히 저어야 한다는 거. 도진 씨가 다른 유명 인터넷 방송인이랑 합방도 하고 여기저기 얼굴 비추면서 활동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니까 지현 씨가 옆에서 좀 설득해 주면 좋겠는데. 뭐가 됐든 좋아요. 시작이 어렵지 이어 가는 건 쉬우니까.」

「하지만 실장님이…….」

「알죠, 알죠. 도진 크리에이터님이 자유롭게 활동하게끔 간섭하지 말라는 실장님 지시. 그런데 옆에서 작은 조언 건네는 정도는 간섭은 아니잖아요?」

휴게실에서 커피 타려다가 붙잡혀서 카페까지 끌려가서 들었던 말.

천지현은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며 그 자리를 탈출했었다.

‘정작 도진이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지만.’

자신이 뭐라고 조언을 하고 설득을 하나.

도진이 하고 싶은 걸 편하게 할 수 있게끔 서포트하는 게 자신의 영역이었다.

이젠 도진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으니, 그걸 할 수 있게끔 도와주면 될 일.

“바로 알아볼게.”

천지현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 * *

도진은 이틀을 쉬었다.

실시간 방송 송출을 위한 세팅은 그날 바로 끝났지만, 업로드할 영상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VS 낭인]

영상이 완성되고, 바로 도진 채널에 업로드됐다.

규칙도, 예고도 없는 업로드였으나 도진 채널 구독자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알림을 듣고 몰려드는 구독자들.

그들이 퍼 나른 새 영상 소식을 듣고 몰려든 시청자들.

새로운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를 쭉쭉 올렸다.

이번 영상에는 도진이 낭인 길드원 3인과 마주쳤을 때의 상황이 담겨 있었다.

그걸 본 사람들은 여러 의미에서 당황했다.

-뭐임? 갑자기 PVP 영상이라고? 이 사람 PVE 전문 유저 아니었나?

-내가 뭘 본 거지 대체?

-3대1이면 3이 이겨야 하잖아. 왜 1이 일방적으로 두드리는 건데.

-야이씨, 스킬 분배가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지.

-감전으로 검사 무력화 - 무력화된 검사 방패로 쓰면서 암석 방패 캐스팅 - 한쪽 샷각 막아 두고 궁수 하나 제압 - 검사 다시 무력화 - 다른 궁수 공격 소환수로 방어 - 마법 캐스팅 시작 - 검사가 공격하려는 거 소환수로 제압 - 소환수 비켜서자마자 캐스팅해 둔 마법으로 궁수 격추 - 검사 마무리. 이게 단 6.7초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여러분.

-캬아아아아아- 진, 진, 진, 진! 누구야! 누가 우리 진 님 보고 PVE만 할 줄 아는 반쪽짜리라 그랬어!

-아니, 정령사도 아니면서 무슨 소환수 컨트롤이 저렇게 완벽해?

짧지만 강렬한 PVP 영상에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근데 서로 싸운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깔끔한 거 같은데. 조작 아님?

몇몇은 너무 완벽하게 짜인, 서로 합을 맞춘 듯하다며 조작을 의심하기도 했다.

-야야, 낭인이 뭐야? 영상 제목이 ‘VS 낭인’이던데.

└길드일걸?

-저긴 근데 어디임?

-개쩌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왜 싸운 거야? 그림만 보면 저 3명이 습격한 거 같긴 한데.

그러다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도진이 의도한 곳으로 흘러갔다.

-어? 저기 거기잖아. 다누미네 계곡 상류 쪽. 나 쪼렙 때 저기서 레벨업해서 아는 데임.

다누미네? 어디서 들어왔는데? 최근에…….

-유혈 애들이 통제한다고 지랄하는 동네잖아.

유혈? 도진? 어?

영상을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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