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88화 (89/271)

88

평소처럼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스튜가 끓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아아아아.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처절한 괴성이 들려온 것은.

“이건…….”

도진의 고개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숲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

저쪽도 이쪽을 감지하고 고속으로 접근하는 듯 괴성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파수꾼이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테그란 님마저 완전히 숲의 저주에 먹혀 버리신 건가…….”

파수꾼은 혹시라도 테그란이 자신처럼 이성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헛된 기대를 한 모양이지만, 도진은 아니었다.

테그란이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임을 알고 온 도진은 애초에 조우와 동시에 전투를 피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도진은 접근하는 테그란의 소리에 집중하며 마법회로를 활성화했다.

그에 반응하여 룬 건틀렛이 도진의 팔을 감싼다.

“싸우려고?”

그런 도진을 본 파수꾼이 떨리는 눈으로 물었다.

“곱게 대화할 수 없는 상태인 거 같으니 일단 제압부터 해야지.”

제압이 될지 퇴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망설이던 파수꾼은 곧 입술을 꾹 깨물고는 검을 쥐었다.

도진을 돕기로 한 것이다.

파악.

그때쯤 전방의 수풀이 폭발하듯 흩어지며 둥그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뼈와 살과 나무줄기가 뒤엉킨, 사족 보행을 하는 기괴한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

테그란 베그리프.

《섬광창》

이미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도진은 마법회로에 장전해 두었던 마법을 쏘았다.

번쩍. 번쩍. 번쩍.

세 번의 섬광이 일고, 세 발의 광점이 테그란의 몸통에 착탄했다.

그러나 상대는 던전의 보스 몬스터.

최대 출력으로 꽂아 넣은 공격 마법조차 테그란에게는 별로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터프하네……!’

마법을 날림과 동시에 몸을 날린 도진은 아슬아슬하게 테그란의 돌진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콰지직- 하고 뒤집히는,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보자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으으으……!”

분노에 찬 으르렁거림을 흘리며 길게 변형된 나무줄기 팔로 콱콱 바닥을 짚으며 방향을 선회하는 테그란.

적의가 흘러넘치는 붉은 눈이 도진에게 고정됐다.

그 순간.

퍼억.

테그란의 고개가 돌아갔다.

콰앙.

그뿐 아니라 붕 떠오른 테그란은 그대로 포탄처럼 날아가 나무에 충돌했다.

“테그란 님, 정신 차리십시오!”

전부 파수꾼의 주먹질 한 방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으윽……!”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던 테그란은 골이 흔들리는지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쿵 주저앉았다.

“…….”

보스 몬스터의 나약한 모습에 도진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빠르다고 생각은 했는데, 힘도 무식하게 세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테그란은 주변에 나무줄기를 박아 넣더니 기운을 흡수했다.

순식간에 충격을 회복한 테그란이 도약해 나무줄기를 뿜어냈다.

‘이건 아는 패턴이지.’

도진은 피할 건 피하면서 「암석 방패」를 만들어 안전지대를 만드는 방식으로 테그란의 범위 공격을 파훼했다.

그러면서 본능에 가까운 캐스팅으로 공중에 있는 테그란에게 「불화살」 2발을 쏘고, 도약한 놈이 착지할 지점에 「불기둥」을 깔아 두고, 추가로 「화염구」까지 깔끔하게 미리 쏴서 깔끔하게 명중시켰다.

자신의 캐스팅 속도와 적의 체공시간과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경로까지 완벽하게 계산에 넣은 완벽한 콤비네이션.

-그어어어!

약간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만 봐도 도진의 공격은 테그란의 생명력을 착실히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쾅.

“정신 차리십시오! 그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과오를 바로잡게 해 줄 자입니다!”

콤비네이션이고 뭐고 파수꾼의 주먹질 한 방이면 모든 게 초라해지는 것이었다.

테그란은 파수꾼에게 반항하기 위해 바닥에 나무줄기를 꽂아 넣고 특수 공격을 감행했다.

파바바박- 하고 바닥에서 나무줄기가 촉수처럼 솟아올라 파수꾼을 공격했다.

그러나 파수꾼은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그것들을 모두 잘라 냈다.

검격 한 번에 검풍, 아니 무언가 엄청난 힘이 휘몰아친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발톱이 공간을 할퀴고 지나가는 듯한 위력.

“테그란 님. 우리는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이성을 잃고 그런 모습으로 숲을 배회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말하며, 파수꾼은 도진을 응시했다.

잠시 흔들리던 눈빛은 곧 단호한 결의로 물들었다.

‘죄악을,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야 한다면, 그래야지.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은 파수꾼은 다시금 테그란을 후려쳤다.

쾅, 쾅, 쾅, 쾅.

살벌한 타격음이 숲을 진동시킨다.

도진은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뭐 내가 할 게 없네.’

사실상 완전 제압된 테그란을 보며 도진은 알을 꺼내 들었다.

혹시나 뭔가 반응이 오는지를 보기 위해서.

그러자 퀘스트 창이 떠오르며 퀘스트 내용이 갱신됐다.

[퀘스트]

정령용이 남긴 것

등급: 히든

[테그란 베그리프는 현재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로 보인다.

그의 영혼을 속박하고 있는 숲의 저주에 물든 육신을 파괴해 보자.]

그것을 본 도진은 약간 당황했다.

‘정화하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 일단 죽이라고?’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어쨌든 운명의 실이 점지한 퀘스트 안내가 그러라고 하니 그러면 되겠지.

방침을 정한 도진은 그로기 상태에 빠진 테그란은 아직도 패고 있는 파수꾼에게 다가가 그녀를 말렸다.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계속해서 주먹질을 하던 파수꾼은 어깨에 도진의 손이 닿자마자 우뚝 멈췄다.

“…테그란 님이 돌아오질 않아. 어쩌지?”

나사가 빠진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하는 말.

그런 그녀를 보며 도진이 말했다.

“네 말대로 알이 품고 있는 기운으로 정화가 될까 싶어서 꺼내 봤는데 그것도 안 되는 거 같고…….”

다짜고짜 ‘일단 죽여야 됨’ 할 수도 없는 일.

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한 개연을 부여하는 건 매끄러운 퀘스트 진행을 위한 테크닉이었다.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이런 모습으로 두는 것보다는 이 사람한테도 이게 나을 테니.”

말하며, 도진은 마법을 준비했다.

“죽이려고?”

약간 놀라 묻는 파수꾼.

“다른 방법이 없잖아. 이런 상태인 걸 풀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파수꾼은 도진의 소매를 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테그란을 바라본다.

사람의 형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을.

도진의 말대로, 테그란 님도 저런 모습을 하고 저런 상태로 살아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니, 살아 있는 것도 아니지.

이윽고 파수꾼은 도진의 소매를 놓았다.

저벅저벅. 두 걸음 물러난 파수꾼은 고개를 숙이며 이마에 주먹을 가져다 대었다.

호크세스의 경례였다.

도진은 말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회로를 가득 채울 만큼 마나를 퍼부은 마법이 연속으로 테그란을 강타했다.

이미 파수꾼의 공격으로 생명력의 대부분을 소진한 테그란은 얼마 안 가 최후를 맞이했다.

보스 몬스터 처치 메시지가 이글거리는 불기둥이 만드는 아지랑이에 겹쳐 보였다.

그 순간 알이 깜빡깜빡 희미한 빛을 냈다.

그것에 반응하듯 붕괴한 테그란의 잔해 사이에서도 빛이 일어나더니, 곧 한 사람의 형상을 이루었다.

[퀘스트]

정령용이 남긴 것

등급: 히든

[해방된 테그란 베그리프의 영혼이 나타났다.

오랜 저주의 영향으로 자아를 잃은 반쪽짜리 영혼이지만, 그럼에도 기록된 정보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대화를 통해 영혼에 저장된 기억을 이끌어내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고, 숲의 비밀을 파헤치자.]

무얼 해야 할지 알려 주는 퀘스트 안내는 아주 편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유령 같은, 아니 유령 그 자체인 테그란을 보며 도진은 첫 질문을 고심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 끝에 바라본 건 눈을 동그랗게 뜬 파수꾼이었다.

도진은 파수꾼을 가리키며 테그란의 영혼에게 물었다.

“이자의 이름을 알고 있나?”

“내… 이름…….”

테그란의 영혼이 초점 없는 눈으로 파수꾼을 바라봤다.

정말 자아라고는 없는, 기계가 정보를 입력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정식 명칭. 병렬형 정령 구속체 782번.】

대답을 들은 도진의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

뭔가 잘못된 듯한 안 좋은 예감.

“내가 물은 건 이름이다.”

다른 대답을 하라고.

거의 반사적으로 신경질적인 말을 뱉었으나.

【신록 누아 사냥 원정대 소속, 병렬형 정령 구속체 782번. 정령에 대한 완전 지배를 위해 계획된 정령 구속 계획을 위해 키워진 실험체. 생존율 3할 이하의 실험을 모두 견딘 실험체들 사이에서도 가장 뛰어난 정령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

“그만.”

도진은 테그란의 말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기억과 정보만을 뱉는 상태인 테그란은 계속해서 고장 난 자판기처럼 저장된 기억을 토해 냈다.

【정령 구속체는 다수의 인간을 병렬 회로로 연결해 강력한 정령을 구속하면서 발생하는 부하를 나눠서 지게 만드는 것으로, 782번은 가장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아 구속 술식의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고도의 전투 훈련을 병행한 육성 과정에서 왕실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심는 세뇌 작업을 병행하였으며…….】

도진은 파수꾼을 밀어냈다.

“듣지 마.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들리지 않는 곳에서 기다려.”

파수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욱 강한 힘으로 밀어 보았으나 파수꾼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테그란의 희뿌연 영혼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파수꾼의 발치엔 쏟아진 스튜가 식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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