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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87화 (8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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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우-

“또냐.”

숲이 우는 듯한 소리에 도진은 고개를 들었다.

빼곡한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밤하늘의 별.

이 시간이 되면 숲은 꼭 이렇게 구슬피 울곤 했다.

“이 소리가 숲의 구조가 바뀌는 소리일 줄이야.”

처음 <영원을 노래하는 숲>에 들어오고 며칠을 헤매면서 도진은 이 소리가 그냥 바람이 나무 사이를 달리며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수꾼의 말로는 숲이 이 소리를 내며 울고 나면 숲의 구조가 완전히 바뀐다고 했다.

‘이 소리 때문에 이 숲이 영원을 노래하는 숲이라고 불리는 걸지도 모르겠군.’

을씨년스럽게도, 구슬프게도 들리는 숲의 노래를 들으며 도진은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도진이 피운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결국 오늘도 허탕인가.”

혼자서 숲을 헤맨 게 사흘. 파수꾼과 함께 헤맨 게 또 이틀.

도합 닷새 동안 아무런 수확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장장 13시간의 수색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모닥불을 지핀 직후고.

“우울해서 안 되겠어. 오늘은 좀 제대로 된 걸 먹어야지.”

지금까지는 귀찮아서 대충 열량만 때려 박았으나 오늘까지 말라비틀어진 육포를 씹으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

해서, 도진은 좀 귀찮더라도 간단한 요리라도 해 먹을 요량으로 인벤토리에서 이런저런 재료를 꺼냈다.

그렇게 결정된 오늘의 메뉴는 물, 우유, 치즈, 육포, 감자를 넣고 소금과 향신료로 맛을 낸 잡탕 스튜였다.

스튜가 서서히 끓어오르는 사이 도진은 깜깜한 숲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엔 멀리까지 갔나 보네.”

바라본 방향은 파수꾼이 수색을 하겠다며 사라진 방향이었다.

파수꾼은 동행한 이래 도진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숲을 뒤지고 다녔다.

그래도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생각하기 무섭게 저 멀리서 희끄무레한 그림자 같은 게 빠르게 접근하는 게 보였다.

마치 은빛 늑대가 숲을 달리는 듯한 실루엣.

파수꾼이다.

“왔어?”

도진의 인사를 겸하는 질문에 파수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슬슬 너는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잖아. 오늘도 위험은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쉬어. 불침번은 내가 서 줄 테니.”

쉬지 않고 수색 작업을 하던 파수꾼이 이맘때 돌아오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필수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하는 도진이 잠든 동안 번을 서 주기 위해서 오는 것이었다.

인게임 아바타의 피로 회복을 위해서 일정량의 수면 시간 확보가 필요한 도진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나야 편히 잘 수 있으니 좋지만, 너한테는 조금 미안하네.”

도진의 말에 파수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미안하지? 난 어차피 잠을 잘 필요도 없고, 지치지도 않아. 하지만 넌 아니잖아. 효율적인 측면에서 내가 망을 보고, 너는 확실히 쉬어서 체력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효율만 따지면 그렇지. 그런데 또 사람 마음이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일방적으로 신세를 지는 입장이 되면 약간이나마 마음의 부채가 생기는 게 당연한 일.

하물며 상대가 죽은 채로 숲을 떠돌던 불쌍한 인물이다 보니…….

‘그렇다고 대놓고 동정하는 티를 낼 수도 없고.’

나오려는 한숨을 삼킨 도진은 그냥 말없이 펄펄 끓기 시작한 스튜를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그걸 퍼먹는데…….

“…….”

파수꾼의 시선이 매우 따가웠다.

동물원 원숭이가 이런 기분일까?

파수꾼은 음식을 먹는 모습을 엄청 신기한 거 쳐다보듯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 얼굴도 아니고 나무껍질로 만든 음침한 가면을 쓰고 저러니까 매우 신경이 쓰였다.

“왜 그렇게 쳐다봐?”

부담스런 시선에 도진이 묻자 파수꾼은 흠칫 놀랐다.

“미, 미안.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무심코. 이런 식으로 쳐다보는 게 실례라는 걸 잊고 있었다. 따뜻한 음식을 먹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만.”

당황하여 횡설수설하는 파수꾼을 보며 도진은 그릇을 내려놨다.

자기가 뚫어져라 상대방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음식 먹는 걸 구경했다니.

짠한 것도 정도가 있지.

도진은 몇 숟갈 삼킨 음식이 명치쯤에 턱 걸린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도 먹을래?”

도저히 혼자서 먹기가 불편했던 도진은 그릇 하나를 더 꺼내서 스튜를 듬뿍 담았다.

그러자 파수꾼이 눈을 끔뻑끔뻑 하며 말했다.

“난 죽었는데?”

이에 도진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스튜가 담긴 그릇을 강제로 파수꾼에게 쥐여 줬다.

그리고 숟가락도 하나 딱 쥐여 주고서야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 도진은 스튜를 한 숟갈 떠먹으며 말했다.

“궁금해서 쳐다본 거 아냐? 그럼 그냥 먹어 보면 되지. 어차피 죽고 나서 음식 먹어 본 적 없을 거 아냐. 어떤 느낌인지 실험하는 셈치고 먹어 봐. 이젠 배탈 날 일도 없잖아?”

“배탈 날 일이 없다…….”

파수꾼은 중얼거리며 따뜻한 스튜 그릇을 꼬옥 쥐었다.

“그렇긴 하지…….”

시체가 배탈이 날 리 없으니까. 혓바닥 끝에 턱 걸리는 말을 흩어 버린 파수꾼은 조심스럽게 스튜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턱.

그러나 가면을 생각지 못한 게 변수였다.

눈구멍만 있는 나무껍질 가면을 쓴 채로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

파수꾼은 도진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곧 결심을 굳히고는 가면을 벗었다.

드러난 얼굴은 끔찍했다.

두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가 상처투성이였다.

고운 턱 골격만이 파수꾼이 생전 소녀였음을 증명하고 있을 따름.

파수꾼은 다시 도진을 곁눈질했다.

그러나 도진은 자신의 스튜를 먹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파수꾼은 다시금 스튜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좌우로 커다란 흉터가 새겨진 입 안으로 스튜를 넣었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따뜻해.’

약간의 온기는 느껴졌다.

‘음식을 씹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둔탁하게나마 식감도 느껴졌다.

육포가 갈라져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잘 익은 감자가 포슬포슬 갈라지고 부서지는 게 느껴진다.

스튜에 불어서 부들부들해진 빵조각을 혀로 눌러 보니 약간 이상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리고 꿀꺽- 하고 입안에 있는 걸 삼키자.

‘가슴이 따뜻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스튜가 가슴 부근을 약간이나마 따뜻하게 달궈 줬다.

파수꾼은 양이 아주 조금 줄어든 스튜를 멍하니 바라봤다.

무섭다. 이 스튜가 양이 줄어든다는 게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이 느낌, 이 감각을 더 느끼고 싶었다.

“어때?”

자기 몫을 떠먹으며 묻는 도진.

여전히 그의 시선은 파수꾼을 향하지 않고 있었다.

파수꾼은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너무 맛있어.”

그래, 이건 맛있는 거다. 느껴지는 거라고는 둔탁한 식감에 아주 약간의 온기일지언정.

파수꾼은 도진이 건넨 스튜가 살아 있을 적에 먹은 음식들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그래? 다행이네.”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어. 넉넉하게 있으니까.

마치 같이 식사하는 평범한 친구에게 권하듯 자연스레 말하는 도진을, 파수꾼은 꽤 오래 바라봤다.

“넌 내가 거북하거나 무섭거나 이상하지 않아? 난 그…….”

죽은 사람이잖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파수꾼은 당황했다.

이런 걸 물어서 어쩌려고?

뒤늦게 말을 흐린 파수꾼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려 했다.

“딱히.”

그러나 그보다 도진의 대답이 빨랐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게 숨을 쉬느냐 안 쉬느냐가 아니잖아? 중요한 건 내용물이지. 내가 볼 때 넌 좀 특이하긴 해도 나쁜 녀석은 아닌 거 같거든. 그럼 숨을 쉬냐 안 쉬냐는 딱히 중요할 게 없어.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말하면서 고개를 든 도진의 눈과 파수꾼의 눈이 만났다.

파수꾼은 생각했다.

얼굴을 보여서 부끄럽다고.

그런 그녀에게 도진이 말했다.

“가면 벗은 게 낫네. 보면서 계속 답답했거든.”

다른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파수꾼은 조용히 남은 스튜를 떠먹었다.

다 먹고 나서 눈치를 보는 그녀에게 도진은 새로운 스튜를 떠 줬다.

먹고 먹고 또 먹어서 스튜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파수꾼은 조용히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아직 도진과 파수꾼은 서로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도진.”

도진. 입안에서 이름을 굴려 본 파수꾼은 혼잣말처럼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내 이름은…….

그러나 속삭임은 완성되지 못했다.

“어……?”

내 이름이 뭐였지?

이름을 떠올리려 하자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거 같았다.

「-■■7■, 임무를-」

뒤죽박죽 뒤엉킨 기억이 부상했다.

그 안에서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거칠게 지워진 듯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왜 그래?”

갑자기 고개를 젖히고 괴로워하는 파수꾼의 모습에 놀란 도진이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파수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도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시체에서 되살아난 언데드의 기억이나 인격에 결손이 생기는 건 흔한 일이지.’

그러나 이런 지식이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을 위로할 때 도움이 되진 않았다.

잠깐 말을 고르던 도진은, 현실적인 위로를 건네기로 했다.

“괜찮아. 테그란이라면 네 이름을 알고 있을 테니까.”

이 말이 위로가 됐을지 도진은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파수꾼이 입을 꾹 다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도진은 내일을 위해 잠들었다.

파수꾼은 새까만 숲의 밤 속에서 잠든 도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 *

그날 이후 파수꾼은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았다.

멀리 탐색을 나가는 일도 조금 줄어들었다.

대신 도진 근처를 맴돌며 말을 붙이곤 했다.

주로 파수꾼이 궁금한 걸 묻고, 도진이 답하는 식이었다.

가끔 도진은 인벤토리에서 먹을 걸 꺼내서 건네곤 했다.

그럴 때마다 파수꾼은 넙죽 받아먹었다.

“난 따뜻한 음식이 좋은데.”

그러다 육포나 빵 같은 것보다는 뜨거운 음식이 좋다며 툴툴거리면, 도진은 한숨을 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따 밤에 끓여 줄게.”

그러면 파수꾼은 은근히 기대를 하며 밤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파수꾼은 테그란을 찾고 싶지 않아졌다.

도진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 했지만… 그건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진은 숲을 떠나겠지. 나는 이곳에 남아야 할 거고.’

테그란 님을 찾고, 알의 기운을 이용해 숲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린다 해도 죽은 자신이 살아날 일은 없을 것이다.

언데드인 자신은 도진을 따라갈 수 없다.

다시 혼자서 숲을 지켜야 하겠지.

파수꾼은 도진이 미웠다.

외로운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지독한 외로움을 알게 하다니.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고, 같이 걷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게 하다니.

‘…차라리 숲이 원래 모습을 되찾으면서 나도 함께 잠들 수 있으면 좋겠어.’

다시 혼자가 되느니, 차라리 안식을 원하게 만들다니.

그러나 미운 마음이 들다가도 옆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조금 더 오래, 같이 숲을 거닐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파수꾼은 바라게 됐다.

‘한 달… 아니, 일주일만 더.’

탐색이 조금 더 길어졌으면 하고.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자각한 날.

그녀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인 도진과 모닥불을 피워 놓고 따뜻한 식사를 하는 때에.

-그아아아아.

테그란 베그리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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