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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84화 (8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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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탑 10층 개방 이후 LOST는 축제 분위기였다.

경험치 및 드롭률 상승에 더해 능력치 증가까지 시켜주는 벨라의 축복 버프가 전 월드에 뿌려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예로부터 권태로운 게이머에게 가장 절실한 건 이벤트요, 그보다 더 달콤한 건 이벤트에 딸려오는 콩고물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도전의 탑’은 잡음은 있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유저 전체에게 보상이며 사후 서비스까지 완벽한 이벤트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진은 그 축제를 가장 열심히, 완벽하게 즐기는 중이었다.

“마약이 따로 없구나.”

사냥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바위에 걸터앉은 도진은 습관적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오른 레벨과 탄탄하게 다져 놓은 능력치가 눈에 들어오자 쌓였던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도진

레벨: 81

클래스: 진리의 서

근력: 37

민첩: 41

체력: 202

지능: 402

스킬: ( 1 ) [열기]

특성: ( 3 ) [열기]

레벨 81.

도전의 탑 10층까지 쭉 뚫으면서 빨아먹은 경험치에 더해, 경험치 버프를 등에 업고 사냥을 한 결과다.

상태창을 보고 있으려니, 도진은 말 못 할 뿌듯함이 밀려왔다.

‘전생엔 진짜 개차반이었는데…….’

누가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상태창이긴 했다.

레벨은 81인 주제에 스킬은 달랑 1개요, 그나마 많이 있는 특성도 겨우 3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걸 뜯어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딱 하나 있는 스킬은 「진리의 서」.

마법계의 슈퍼컴퓨터쯤 되는 만능 스킬로, 이 스킬 하나에 온갖 마법이 저장되어 있는 말 그대로 일당백 스킬이었다.

특성 쪽도 내실이 아주 튼튼하다.

이것저것 있던 마나 관련 특성 「마나 적성」, 「마나 하트」, 「마나 친화력」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마나지체」.

몸뚱이가 마나로 되어 있다는 심플한 이름처럼 마나와 관련된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효자 특성이다.

그리고 다음은 애꾸였다가 이번에 양쪽 눈에 다 적용된 「적야」.

저쪽 북쪽에 떠다니는 동네에서 대장 노릇 하는 어르신께서 만들어 주신 마안이다.

다음은 「뛰어난 재생력」이 진화해서 가뜩이나 마법사치고 튼튼한 도진을 더 바퀴벌레에 가깝게 만들고 있는 「뛰어난 생명력」.

회복에만 영향을 미쳤던 이전 특성과 달리 진화한 특성은 피통을 늘려 주면서 회복 능력도 더 높게 올려줬다.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마나.

생명.

특수능력.

세 가지를 깔끔하게 챙기는 실속 넘치는 특성 구성이었다.

여기에 튼실하고 탄탄한 기본 능력치가 받쳐 주니 상태창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밖에.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비대해진 능력치를 양질의 특성이 극대화한다 할 수 있었다.

‘원래 장점은 쌓이면 쌓일수록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

톱니바퀴 하나는 겨우 1의 힘을 내지만, 두 개의 톱니바퀴는 3의 힘을 낸다.

세 개는 5가 될 수도, 10이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시너지 효과의 묘미였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화염구》

“뀌이익-!”

몬스터가 눈에 띄면 그대로 원 샷 원 킬.

“2성 마법으로 원 킬 뽕맛 보는 것도 이벤트 기간 끝나면 끝이겠지? 그건 좀 아쉽긴 하네.”

후-

도진은 서부 영화 주인공처럼 손가락 끝에 바람을 불었다.

왠지 이런 퍼포먼스를 해야 할 거 같은 위력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마약 같은 뽕맛이었다.

도진이 혼자서 그러고 있을 때였다.

“이쪽에서 뭐 터지는 소리 난 거 같지 않아요?”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철컥철컥하는 발소리 뒤로 몇몇 발소리가 섞여서 다가온다.

파티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접근하는 모양.

“후우. 어째 오래 조용하다 싶었다.”

도진은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름 고렙 사냥터라 해도 LOST 유저 숫자가 숫자다.

경험치 좋고 상대하기 편한 몬스터가 있는 사냥터엔 사냥하는 파티가 심심찮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도진은 사람 발소리,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신세였다.

‘연예인들이 신경 쇠약에 걸리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구나.’

다른 유저랑 마주친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다만 단기간에 워낙 유명해진 터라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면 필연적으로 소란이 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혹시… 그분 아니세요?」

「헉! 어떡해, 어떡해! 진짜 그 마법산가 봐!」

「사인 좀요! 아, 아니다. 스샷 좀 찍게 잠깐만 옆에 설게요!」

「덕분에 보너스 경험치 너무 달아요! 항상 응원할게요!」

「혼자이신 거 같은데 괜찮으시면 저희랑 파티하실래요?」

빨리 마법사 유저들 레벨이 올라야 그 사람들이랑 섞여서 편히 게임할 텐데.

‘도전의 탑으로 한창 뜨거워진 때라 그렇겠지. 잠잠해지면 괜찮을 거야.’

…정 안 되면 가면이라도 쓰고 다녀야지, 뭐.

도진은 다가오는 발소리의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도전의 탑 이벤트도 무난하게 끝이 났다.

그동안 도진의 레벨도 무난하게 올라 85를 찍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월드 이벤트 기간이 끝나면서 각종 버프가 종료됐다.

능력치 버프가 없어지니 더 이상 2성 마법 원 샷 원 킬을 낼 수가 없었다.

이젠 3성 마법을 써야 했는데, 이게 미묘하지만 확연히 캐스팅 속도 차이가 나서 사냥 속도가 떨어졌다.

추가 경험치 버프도 없어져서 마리당 경험치도 줄어들었고.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 시간당 수급하는 경험치와 재화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됐다.

‘일반 사냥으로 이 정도 했으면 됐으니, 이제 던전 뺑뺑이로 넘어가야겠다.’

같은 방식의 사냥만 해서는 속도도 속도지만 재미도 반감되는 법.

도진은 솔로 플레이로도 빠르게 클리어 가능한 인던을 골라 돌아다니며 인던 뺑뺑이를 시작했다.

“인던 뺑뺑이는 이런 맛이지!”

도진의 인스턴스 던전 공략은 속도감이 넘쳤다.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무섭게 마법이 그 자리를 휩쓸고 지나가고.

[첫 번째 네임드…….]

어느 던전이든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메시지가 다 출력되기도 전에 폭발적인 딜이 몰아쳤다.

네임드 몬스터 입장에선 등장과 동시에 그로기에 빠져 철퍽 엎어졌다가 그대로 삶을 마감하는 억울한 상황이 펼쳐졌다.

던전 몬스터들 입장에서도 도진을 공격할 수만 있으면, 한 번이라도 공세를 잡을 수만 있으면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진은 자신의 압도적인 공격 능력을 십분 발휘해 적에게 공격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번개 고블린의 보금자리가 털렸고, 불타는 슬라임 서식지가 박살 났고, 거대 지네가 새끼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던 동굴이 소탕됐다.

“빌드 최적화만 잘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마나 포션 한 병이면 되겠는데?”

마법사로서 고일 대로 고여 버린 도진은 몇 걸음 걷고, 어디서 무슨 마법을 얼마나 쓰면 되는지까지 외워 가며 던전을 돌았다.

아마 인던을 지키는, 도진이 재입장할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몬스터에게 자아란 게 있었다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었다.

제발 이제 좀 다른 데로 꺼져 달라고.

“크으-! 역시 히든 던전 아니고 최초 공략이 아니어도 뺑뺑이 돌다 보면 나오긴 한다니까. 그래도 100바퀴도 안 돌고 S급 아이템을 먹다니 운이 좋네.”

그러나 도진은 던전을 돌고 또 돌며 불쌍한 던전 주인들을 괴롭혔다.

괴롭힘이 끝난 건, 한참이 지나고 도진이 자신이 목표한 레벨을 달성한 뒤였다.

“역시 인던이 재밌긴 하네. 클리어 시간 단축하는 맛도 있어서 지겹지도 않고.”

추가적으로 다른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던전 몬스터 입장에서도 마음에 들었는지는, 도진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럼 가 볼까.”

목표 레벨을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달린 도진이었으나 휴식은 아직이었다.

이 레벨을 달성하려고 한 건 어디까지나 해야 할 일이 있어서였으니.

휴식은 그 일을 끝낸 뒤에나 생각해 볼 문제였다.

* * *

중앙대륙 남부에는 아주 넓은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수해(樹海)라고도 불리는 남부의 수림은 제국 영토보다도 클 정도였다.

<영원을 노래하는 숲>은 그 수해로 진입하기 직전, 남부 수림 지대와 제국의 국경 사이에 있는 경계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영원을 노래하는 숲>의 다른 이름은 녹색 미궁.

숲으로 들어가서 반대쪽으로 나갈 수가 없는 특징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엄청나게 넓은 면적에 비해 전체 몬스터 숫자가 워낙 적어 몬스터 구경하기도 힘든 이상한 필드형 던전.

게다가 굳이 꾸역꾸역 몬스터를 찾아서 사냥해도 딱히 돌아오는 리턴이 크지도 않아 언제나 비주류 취급을 받았던 곳이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좋아하는 나도 한 번도 안 와 봤을 정도니 말 다 했지.’

아마 운명의 실인지 뭔지가 가 보라고 안 했으면 이번 인생에도 올 일이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도진은 숲으로 들어갔다.

어느 지점을 경계로 어떠한 막을 지나는 감각과 함께 공기가 살짝 변했다. 곧이어 던전 입장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가 보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진짜 막막하구만.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보스 몬스터를 찾냐.’

까마득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을 보며 도진은 말 그대로 막막함을 느꼈다.

퀘스트 안내엔 테그란 베그리프를 찾으라고 적혀 있지만, 말이 쉽지.

더럽게 넓은 이 숲에서 보스 몬스터를 찾을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여기까지 왔으니 끝을 보는 수밖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나약한 생각을 몰아낸 도진은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미궁이나 다름없는 숲이니, 계속해서 걸으며 발품 파는 식으로 수색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관건은 수색하는 경로랑 정처 없이 떠도는 보스 몬스터의 이동 경로가 겹치느냐 마느냐.

운이 좋으면 짧은 시간에 테그란 베그리프를 마주치겠지만, 운이 없으면 계속 엇갈리며 하염없이 세월을 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 운이 나쁘면 보스가 아니라 그 이상한 파수꾼한테 걸리는 수도 있겠고.’

걸림돌은 또 있었다.

의문의 몬스터, 숲의 파수꾼.

몬스터 주제에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한 몬스터.

대신 놈은 마주친 인간을 강제로 숲 밖으로 쫓아낸다고 들었다.

이 던전에 있으면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놈이 제압만 해서 입구에 고이 모셔다 던져 놓는다고.

기껏 수색을 하고 있는데 숲 깊숙한 곳에서 파수꾼한테 걸려서 쫓겨나면 시간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그래서 도진은 기도했다.

이런저런 운이 다 따라 줘서 제발 보스 몬스터를 무난히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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