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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의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F, E, D, C, B, A, S로 등급이 나뉜다.
그런데 LOST에는 이 기본 등급 시스템 밖에 존재하는 규격 외 등급도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유물 등급이었다.
가치에 따라 각기 다른 접두어가 붙기도 하지만, 어쨌든 유물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대박인 건 확정적이다.
말단 랭커라고는 해도 랭커였던 도진조차 유물 등급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만 봐도 유물이 얼마나 귀한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9층 공략을 완료하고, 9층 공략 영상이 제작되고, 채널에 올라가고, 바깥이 그로 인해 난리법석을 떨고 있음에도 도진의 정신이 오직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까기 무섭다.’
뭐가 나오든 대박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더 큰 대박은 있는 법.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데, 그 와중에도 도진은 더 욕심쟁이라서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를 열지 못하고 있었다.
‘무조건 좋은 거. 그게 아니면 법사한테 좋은 거.’
유물은 다 좋다.
자신의 클래스에 어울리지 않는 유물이라 해도, 아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무지성으로 쓰고 봐야 할 정도로.
하지만 역시나 클래스별로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물 장비를 끼는 게 가장 좋은 건 당연한 일.
도진은 기도했다.
제발 어떤 방향으로든 좋은 유물이 튀어나와 달라고.
오늘은 깐다. 까고야 만다.
도진은 오늘을 위해 지난 며칠 동안 정말 착하게 살았다.
천지현을 조기 퇴근시킨 건 물론이고, 회사에는 광고 촬영과 추가 콘텐츠 제작을 약속했다.
그 말을 들은 천지현은 기뻐하며 폴짝폴짝 뛰었고, 콘텐츠 팀장과 마케팅 팀장은 따로 전화까지 해서는 고맙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을 이렇게 기쁘게 했으면 복을 받아야지.
그게 당연한 이치고, 순리고, 법칙이고……. 아무튼 그래야 한다.
“간다.”
도진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자를 노려봤다.
표현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정말 그의 눈은 황금색으로 이글거렸다.
자기도 모르게 마법회로와 진리의 서 양쪽 다 활성화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 정도로 도진은 집중했고, 몰입한 상태였다.
[「유물 아이템 랜덤 상자」를 개봉하시겠습니까?]
시스템 메시지가 물었다.
도진은 눈을 딱 감고 개봉을 선택했다.
격조 높은 유물 상자께선 구질구질한 전조나 절차 없이 바로 결과를 출력했다.
[봉인된 유물 장비를 획득했습니다.]
실눈을 뜬 도진은 메시지를 먼저 봤다.
‘봉인된……?’
왠지 불길한 단어다.
도진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상자 안에는 다 타 버린 숯 같은 색깔의 장갑이 담겨 있었다.
도진은 장갑을 툭 건드려 봤다.
‘잠깐, 이거 그냥 장갑이 아니라 쇠잖아?’
다시 자세히 살피니 다 탄 숯 같은 비주얼 때문에 놓쳤던 특징이 눈에 띈다.
재질과 모양을 봤을 때 마법사용 무기인 ‘매직 건틀렛’처럼 보였다.
‘근데 왜 생긴 게 다 타 버린 숯으로 만든 거처럼 생겼어……?’
불안한 의문을 품으며 정보창을 띄워 보는 도진.
[봉인된 의문의 매직 건틀렛]
등급: 봉인 유물
착용 제한: 알 수 없음/봉인 해제
[봉인되어 본래의 힘이 완전히 억눌린 매직 건틀렛.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
도진은 말을 잃었다.
생긴 것만 깡통이 아니라 그냥 깡통이 나왔다.
“이게…….”
유물……?
그래, 유물은 유물이다.
알지, 알아.
봉인 아이템이 있는 거 잘 알지.
그런데 왜 하필 내가 깐 상자에서 이딴 게 나오는데?
이 순간 도진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억울함 그 자체였다.
“이게 뭐야!”
도진은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봉인된 유물도 유물은 유물.
쓸 수는 있다.
그 유물과 동급의 무언가로 빌어먹을 봉인을 풀면 말이다.
그런데 유물 장비 하나조차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데, 유물에 걸린 봉인을 풀 수단을 구하는 게 쉬울 리가 있겠는가?
유물급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아이템은 말 그대로 유물을 하나 더 얻는 수준의 입수 난이도를 지녔다.
“이건 뭐 내가 아는 아이템도 아니고…….”
도진은 건틀렛을 자세히 살폈으나 생전 처음 보는 외형이었다.
누군가가 발견해서 사용하고, 그래서 알려진 유물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 자신이 처음 본다는 건 누구도 얻은 적이 없거나…….
‘딱 봐도 마법사용이니까. 얻은 사람 클래스가 물공 쪽이었으면 굳이 봉인 해제해 가면서 쓸 필요는 없었을 테니… 그냥 분해해 버렸을 확률도 있겠네.’
유물은 획득과 동시에 귀속된다.
자신의 클래스로는 아예 쓸 수 없는 물건이어도 팔아넘길 수가 없다는 소리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어쨌든 매직 건틀렛이 뜬 건 다행스러운 일이긴 했다.
‘그래… 어떻게 봉인 풀 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나중에 봉인 해제 주문서를 구하면 쓸 수는 있겠지.’
초고속으로 분노의 5단계를 스킵해서 납득 단계로 진입한 도진이었으나.
중간 단계를 건너뛴 부작용인지 억지로 가라앉혔던 분노가 명치 밑에서 팍 하고 치솟았다.
“아오!”
그냥 봉인 없는 게 나왔으면 됐잖아!
끓어오르는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도진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마법회로에 미친 듯이 마나를 퍼부어 지금 현재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 위력의 화염창을 만들어 허공에 쏜다.
콰아앙- 하고 요란한 폭음이 공터를 울렸다.
“젠장, 뜨거운 걸 썼더니 열만 더 받네.”
요즘 들어 불 속성 마법만 써 댔더니 습관적으로 불을 만들었다.
차라리 시원한 걸 쓸걸. 후회하며 손을 털 때였다.
[소유 아이템 「봉인된 의문의 매직 건틀렛」에 걸린 암호화 코드를 발견하였습니다.]
[코드 수집 및 해석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뜻밖의 메시지가 떴다.
그뿐만 아니었다.
언제 흘러나왔는지 모를 황금색 마력이 건틀렛을 탐구하듯 콕콕 찌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리의 서!’
도진은 바로 이유를 깨달았다.
이번에도 자신의 클래스이자 능력인 「진리의 서」가 개입한 것이리라.
“너밖에 없다!”
눈이 번쩍 뜨인 도진은 바로 해석 진행을 수락했다.
[봉인을 구성하고 있는 암호화 코드 분석을 실시합니다.]
[작업 중…….]
어느새 펼쳐진 진리의 서는 무한히 책장을 넘기며 쉴 새 없이 연산을 했다.
봉인된 건틀렛에서는 계속 스파크가 튀었다.
마치 자신의 비밀을 지키려는 건틀렛과 비밀을 파헤치려는 진리의 서가 서로 싸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꽤 오랜 시간 작업이 진행됐다.
도진은 숨 쉬는 것도 잊고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파지직-
건틀렛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연속적으로 일었다.
무한히 넘어갈 것만 같던 책장이 렉 걸린 컴퓨터 화면처럼 삐걱댄다.
[봉인 구성 요소 해석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뜬 메시지.
긴장한 채 상황을 지켜보던 도진은 맥이 탁 풀렸다.
지금껏 마법과 관련된 거라면 무엇이 되었든 치트키가 되어 주었던 진리의 서지만, 안 되는 건 역시나 있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내 레벨이 더 오르면 진리의 서가 가진 연산 능력도 더 올라가겠지. 그때가 되면 봉인을 풀 수 있을지도 몰라.’
애써 가슴 한편에 희망을 남겨 두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상자에 담겨 있는 건틀렛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완전 연소한 숯처럼 회색빛이었던 건틀렛의 겉 부분이 후드득 떨어지며 윤기 나는 금속 재질이 드러나는 게 아닌가.
도진은 반사적으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봉인된 룬 건틀렛]
등급: 유물
착용 제한: 없음
[표면에 룬이 세공된 건틀렛. 봉인이 일부 해제되며 룬의 힘이 조금 돌아왔다. 본래 가진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남은 봉인을 해제해야 한다.]
마법 공격력 +100
물리 방어력 +100
마법 방어력 +100
[활성화 룬]
-필살 룬
풀렸다. 풀려 있었다.
일부라고는 해도 봉인이 풀려 있고, 착용도 가능해졌다.
도진이 그걸 인지한 순간 렉 걸린 듯 멈춰 있던 진리의 서의 책장이 정리됐다.
[현재 연산 능력으로는 해석 불가능한 코드가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온 진리의 서가 미처 출력하지 못한 메시지를 뒤늦게 표시했다.
[수집한 암호화 코드의 해석을 위해 「진리의 서」 성능 향상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통해 연산 능력을 강화하십시오.]
[암호화 코드 일부가 해석되었습니다. 현재 해제 가능한 봉인을 해제합니다.]
[「봉인된 의문의 매직 건틀렛」이 진명에 보다 가까운 「봉인된 룬 건틀렛」으로 이름이 변경됩니다.]
버거운 작업 때문에 잠깐 블랙아웃이라도 겪은 걸까.
멀쩡해진 진리의 서는 자신이 한 일을 한 템포 늦게 보고했다.
“…….”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봉인의 일부가 풀리면서 생긴 새로운 옵션.
룬 활성화를 통해 새롭게 추가된 「필살 룬」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를 확인할 때였다.
100씩 붙은 마공, 물방, 마방은 유물치고는 한없이 별 볼 일 없는 수치다.
여기서 대박이 터지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쓸 가치가 없는 장비가 될 터.
꿀꺽- 하는 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창이 전환됐다.
[상세 보기]
[필살 룬]
착용자의 모든 공격은 치명타로 적중한다.
그걸 본 도진은 기쁨에 몸서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