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72화 (7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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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재개됐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고 계신 분들 죄송해요. 컨디션 난조라니. 프로 방송인답지 못했죠?”

평소 털털한 이미지로 통하는 유정현 아나운서는 자연스럽게 라이브 스트리밍 시청자 민심을 달랬다.

그래도 다행히 시청자 대부분은 그녀를 이해해 줬다.

-ㅋㅋㅋ 어지러울 만해~

-이 정도로 미쳐 날뛰는 게스트 상대하려니까 힘들겠지.

-내가 저 MC였으면 위장에 구멍 났을 듯 ㅋㅋㅋ

-이건 산재 인정해 줘야 한다 ㄹㅇ루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채팅에 유정현은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다음 멘트를 이어 나갔다.

“잠시 촬영이 중단된 동안 도진 씨가 요청했던 자료를 저희가 준비를 해 봤어요. 이름하야 ‘XX위키 논란 탭 알아보기’ 코너입니다!”

그리고 슬픔의 눈물도 흘렸다. 텐션 올려 말을 하면서도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유정현이었다.

-……?

-……?

-이렇게 급발진을 한다고?

-게스트만 미친 게 아니었어?

황당한 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막가는 걸 미덕으로 아는 인방도 아니고, 그래도 명색이 정식 방송국 아닌가.

일반인을 상대로 이런 매운맛 코너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일반인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며 뭇매를 맞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또 이게 그 일반인 게스트가 해 달라고 해서 그러는 거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존나 재밌네?

-인방보다 더 인스턴트 맛이 나는 공중파 방송……. 이거 흥미롭네요.

왁자지껄 떠드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며 유정현은 해탈한 심정으로 말했다.

“나도 이제 몰라. 알아서 편집으로 수습하겠지, 뭐.”

-누나, 목소리, 목소리! ㅋㅋ

-마음의 소리를 내뱉어 버렸어!

“피디님 허락은 이미 받았습니다. 사고만 안 치면 알아서 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제 마음대로 하겠다, 이 말이에요!”

이미 많은 걸 놓아 버리고, 그저 편집의 힘만을 신봉하게 된 유정현의 폭주를 본 채팅창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자, 도진 씨. 그럼 바로 급조된 코너로 들어가 볼까요?”

새롭게 생겼으며,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이번 한 번을 끝으로 폐지될 코너의 진행은 간단했다.

MC 유정현이 도진에게 논란 탭을 읽고, 이에 대해 도진이 답변하는 심플한 방식.

“올라오는 영상을 보다 보면 의도적으로 정보가 삭제된 거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정보를 독점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습니다.”

자, 적당히 해명해 주세요. 유정현이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사실입니다.”

“……!”

그러나 도진의 입에선 또 상상도 못 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유정현의 눈이 개구리처럼 커다랗게 뜨였으나 도진은 아랑곳 않고 자기 할 말을 했다.

“전 애초에 정보 전달이나 공략 같은 걸 공유하기 위해서 영상을 올리는 게 아니거든요. 솔직히 그렇잖아요? 사소한 정보 하나로 내 거가 될지 모를 히든 피스가 남한테 갈지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다 영상에 남기겠어요.”

“어… 음, 그렇긴 하죠.”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건 도진도 알고, 유정현도 알고, 다 안다.

다만 그런 이기적인 면모를 숨기고 살 뿐.

하지만 도진은 아니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당연한 이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가진 정보를 나누는 사람이 대단한 거지, 그걸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눌 수 있는 부분은 나눠도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나중에 여유가 되면 이런저런 공략 영상 제작하는 것도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여지를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근데 저건 진짜 억지 논란 아니냐? 솔직히 누가 히든 피스 관련된 정보를 다 오픈해?

-그래도 도진 채널은 너무 노골적으로 숨기긴 하잖아. 예를 들면 카린 납치했던 사제 정체가 뭔지 짐작도 못 하게 다 편집된 거라든지.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유튜버들은 원래 정보 노출 극도로 꺼려 함. 서로 뭐 하나 뺏기면 바로 전세 역전이니까.

-오히려 히든 피스 정보 공유하자고 하는 놈들이 역겨운 거지 ㅋㅋ 아마 그런 놈들일수록 뭐 하나 꿀 빨 거 찾으면 숨겨 두고 자기 혼자 핥으려고 혈안일걸?

-ㄹㅇㅋㅋ 평생 1원도 기부 안 한 새끼들 특: 억 단위로 기부하는 연예인한테 훈수 둠.

가식 없는 솔직함에 더해 공략 영상을 슬쩍 언급하는 당근까지 주어지자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특히 도진의 팬들은 대부분 사이다 마신 거 같다며 좋아했다.

이런 질의응답은 한동안 계속됐다.

[Q: <폐쇄된 철광석 광산> 던전에서 일본인 유저를 학살했다는 제보가 있다. 증거 영상도 있다는데?]

[A: 걔들이 먼저 시비 걸었다. 보스 잡고 나오는 길에 PK 시도하길래 그냥 쓸어 버렸다. 나도 증거 영상 있다.]

예전에 쓸어 버렸던 머저리 집단의 어설픈 언플은 순식간에 진압됐다.

[Q: 약팔이 영상을 올려서 수많은 뉴비들을 마법사라는 구렁텅이에 빠뜨렸다는 주장이 있다.]

[A: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마법사는 강한 직업이 맞다.]

[Q: 채팅창 반응이 살벌하다. 실시간으로 피해자들이 증언을 하는데 무시하는 건가?]

[A: …솔직히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은 거 같으니 나중에 마법사 팁을 좀 풀겠다.]

농담 따먹기인 줄 알았던 게 가장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마법사 팁을 준다고 하니 민심은 급격하게 치솟아 채팅창은 도진을 연호했다.

이후로도 논란이 하나하나 삭제됐다.

자잘하지만 방치해 두면 와전되고 부풀려졌을지 모를 문제들이 순식간에 정리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이 찾아왔다.

“이게 마지막인 거 같네요. 음, 인터넷 방송인 호구창식이 사기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데요……? 내용이… 이게 뭐죠?”

마지막 문단을 읽던 유정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기가 보고 있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의심하는 눈초리.

“원래는 4만 달러에 팔려던 물건을 쓸모가 전혀 없다는 듯이 거짓말을 하는 방식으로 1만 5천 달러라는 헐값에 가져가는 사기를 쳤다. 구매자인 도진이 가져간 S급 도끼는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 공략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확실하다… 는 게 호구창식의 주장이다, 라는데요?”

도진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다른 것도 애매하긴 했는데 이건 정말 해명하기도 민망하긴 하네요. 보통 이런 걸 사기라고 부르나요?”

“…음, 보통은 아니죠.”

도진이 옅게 한숨을 쉬었다.

“좀 창피하긴 한데, 그거 기분 나빠서 그랬던 거예요.”

“기분이 나빠서요?”

“네. 그 물건이 필요해서 파는 사람 방송에 갔거든요. 그냥 제값 주고 사려고 했어요. 그런데 뜬금없이 제 욕을 하잖아요. 그래서 기분 나빠서 가격 좀 깎았죠. 어차피 저 아니면 살 사람도 없는 물건이라 가격 깎는 건 어렵지도 않았거든요.”

유정현이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도진이 왜 웃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유정현은 놀리는 투로 말했다.

“아뇨, 이렇게 보니까 귀여운 면도 있으시구나 싶어서요.”

“…해명 끝입니다.”

떨떠름한 도진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도진의 팬을 중심으로 귀엽다는 채팅이 절반쯤 도배됐고, 나머지 절반은 호구창식의 찌질함을 욕하는 채팅으로 덮였다.

* * *

KGN 지하 주차장.

차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도진 인터뷰 라이브 스트리밍을 전부 지켜본 주강희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처음에는 올라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순간도 있었다.

줄타기 정도가 아니라 작두를 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도진이 위태롭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본인이 바란 일이니 믿어 보기로 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조금 거친 면이 있긴 했고, 촬영이 잠시 중단되는 사태까지 갔지만, 결과적으로 도진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모든 논란을 한꺼번에 해결해 버렸다.

그것도 팬들 입장에서는 정면으로 부딪쳐서 깨부숴 버리는 것으로 비쳐졌을 테니, 카타르시스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확실히 착한 모범생 이미지는 아냐.’

오히려 괜히 그런 쪽으로 이미지를 잡으려고 했으면 맛이 덜 살았을 사람이긴 했다.

‘반항아… 야생 늑대 같은 이미지지.’

주강희의 손이 스크린을 터치했다.

재생 바가 뒤로 물러나며 어느 장면을 다시 불러왔다.

[“방금 질문에서 처음에는 방송이나 유튜브 등 일체의 활동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와중에 갑자기 유명해지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지는 상황이 얼떨떨했다고도 하셨고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 함께할 소속사로 고른 곳이 라엘 엔터테인먼트였어요. 굳이 신생 기획사를 파트너로 고른 이유가 뭔지가 정말 궁금해요.”]

[“다른 이유가 있을 게 있나요? 조건이 가장 좋아서죠. 금전적인 조건은 비슷한 곳이 있을지 몰라도 가장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 줄 곳은 라엘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정답이었고요.”]

[“본인의 선택에 만족하고 계신다는 거군요?”]

[“네. 일처리 깔끔하고, 제가 부탁하는 거 아니면 딱히 터치도 없고, 말 안 해도 필요한 거 알아서 챙겨 주고. 저한테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운 거 같습니다.”]

여기서 일시정지.

사전에 협의된 게 없는 질문.

도진이 사고 아닌 사고를 쳤는데 굳이 이런 질문을 자진해서 했을 리는 없으니.

‘아까 촬영 중단됐을 때 협의를 통해서 추가한 질문이라는 건데…….’

지금 라엘 엔터테인먼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런 쪽의 홍보였다.

조건 좋고, 일도 잘하는 회사니까 다들 와서 계약하세요! 하는.

도진은 그런 회사 차원의 가려운 곳을 완벽하게 긁어 준 거고.

“늑대 탈을 쓴 여우인가?”

늑대든 여우든 지금 이 순간 주강희는 도진이 미치도록 예뻐 보였다.

“네?”

그리고 옆에 앉아서 시종일관 뻣뻣하게 굳어 있는 천지현도 덩달아 예뻐 보였다.

매니저가 열심히 일하니까 크리에이터한테 회사 이미지가 좋게 박히고, 그게 이런 결과를 불러온 거 아니겠나.

“지금 쓰고 있는 차가 그냥 SUV였죠?”

“아, 넵.”

“불편하겠네요.”

“아닙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아뇨, 도진 씨가요.”

라엘 엔터를 넘어 그룹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주강희 실장 옆에 몇 시간째 앉아 있다 보니 정신이 멍해진 천지현은 하마터면 ‘도진이는 게임만 해서 차에 탈 일이 없는데요?’ 하고 말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말을 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생각지도 못한 보상을 받게 됐다.

“밴이 벤츠 쪽이 제일 좋던가요? 준비해 주세요.”

옆이 아닌 앞쪽을 향해 한 말이었다.

“네, 실장님.”

운전석에 앉아 있던 주강희의 비서는 대답과 동시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돌아가는 상황에 천지현은 약간 현기증이 나는 거 같았다.

어쨌든 나… 이제 출퇴근할 때 벤츠 타겠네.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 천지현이었다.

“아, 그리고 도진 씨한테 전해 주세요. 따로 선물을 꼭 하고 싶으니까 필요한 거 생각해 두라고요.”

말하는 중간에도 주강희의 스마트폰에는 쉴 새 없이 메시지가 꽂혔다.

벌써부터 도진 몸에 걸어 뒀던 라엘 그룹 제품들에 대한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보고였다.

정규 편성된 방송은 아직 나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게임 아이템 말고 현실에서 필요한 걸로.”

당부인지 명령인지 모를 말을 마지막으로, 주강희는 천지현을 주차장에 남겨 두고 바삐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 맞다! 도진이!”

그리고 천지현은 도진을 챙기기 위해 헐레벌떡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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