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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70화 (7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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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겜잇슈 진행 MC 유정현입니다!”

유정현은 본인 입으로 와아아- 소리를 내며 손뼉을 쳤다.

프로답게 입과 눈에는 밝은 웃음이 가득했고, 텐션 또한 적당히 높았다.

평소라면 그녀의 이런 모습에 실시간 스트리밍 시청자들도 긍정적으로 호응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우우, 이상한 여자 치우고 트루갓메이지나 불러오라고!

-시간은 황금, 시간은 황금! 넌 지금 지구와 로스타니아의 총 500억 명쯤 되는 도진 채널 구독자들의 시간을 낭비시키고 있다!

-삐빅, 삐빅. 여기는 저승, 여기는 저승. 도진 님 등장 때까지 숨 참다가 질식사한 사망자들 대거 넘어오고 있다, 오버.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의 분위기는 전혀 유정현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눈나, 예뻐요!’ 같은 주접 채팅이나 올라왔겠지만, 지금 채팅창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래도 유정현은 프로였다. 입꼬리가 살짝 경직되긴 했어도 평정을 되찾고 해야 할 말을 이어 갔다.

“겜잇슈 촬영 현장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여 드리기 시작한 이래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는 거 같네요. 근데 그 뜨거운 반응이 저를 향한 건 절대 아닌 거 같습니다. 네. 그럼 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계시는 게스트분을 모셔 볼까요?”

유정현이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최근 게임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의 주인공. 정말, 정말 어렵게 인터뷰 자리에 모시게 된 ‘그 마법사’님을 모셔 보겠습니다!”

유정현의 외침에 맞춰 정면의 스탭들이 부산스레 움직였다.

[“게스트 입장.”]

세트 뒤쪽도 마찬가지.

도진 옆에 딱 붙어 있던 여자의 무전기가 울렸다.

“지금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내에 따라 세트 안으로 들어가는 도진.

자리에 앉아 있던 유정현이 일어나 도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도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고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의 등장에 채팅창은 일시적인 마비가 일어날 정도로 폭주했다.

-제에에에엔장! 배신자다, 배신자! 어째서 게임 속 모습이랑 같은 거냐고!

-솔직히 현실은 게임 폐인일 줄 알았는데! 우린 동지일 줄 알았는데!

-와… 저 정도면 아바타 외형 보정 하나도 안 한 수준 아님?

-아니, 그냥 실물이 훨씬 나은데? 게임에선 그냥 날것 그대로였다면 여긴 코디 붙고 그래서 그런지 ㄹㅇ 귀티가 좔좔 흐르네.

많은 사람들이 도진의 실물에 관심을 보였다.

가상현실이 현실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지만, 결국 아바타 뒤에 있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건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일.

그런 면에서 도진의 외형은 장점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그 마법사님.”

유정현이 지금까지도 도진에게 따라붙고 있는 별명을 언급했다.

도진은 쓰게 웃으며 준비한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마법사 클래스로 LOST를 즐기고 있는 도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정현이 고개를 젓는다. 그게 아니라는 듯이.

“지나치게 간단한 자기소개네요.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언급하기에는 민망하실 수도 있으니, MC인 제가 대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베르칸 1인 레이드의 주인공.

신대륙과 신종족의 발견자.

70레벨대 던전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 격파의 주역.

약력을 읊는 소개를 시작으로, 작고 사소한 스몰 토크가 이어졌다.

적당히 묻고, 적당히 답하는 시간이 몇 분 흘러가고, 드디어 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베르칸 레이드도 그렇고, 신대륙과 신종족이 관련된 퀘스트나 신대륙도 그렇고. 일반적인 유저는 한번 구경하기도 힘든 걸 연속해서 해결하셨잖아요. 혹시 이럴 수 있었던 비결 같은 게 있을까요?”

“음… 딱히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아요. 기회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노력이나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너무 식상한 대답인가요? 그렇다고 운빨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거 같고.”

“노력, 능력, 행운. 원론적인 단어들이네요. 원론적인 만큼 마음에 새기고 살면 참 좋은 말이지만, 겜잇슈 시청자님들께서 원하는 답변은 아닐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한 유정현은 소매를 걷어붙이는 시늉을 했다.

민소매를 입고 있는 주제에 웬 소매 걷는 시늉인가 싶었지만, 또 예쁜 여자가 하니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MC 유정현이 책임지고 시청자님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답변을 끌어낼 테니까요. 준비되셨나요, 도진 씨?”

잠시 다른 데 팔려 갔던 도진의 정신을 열정 넘치는 유정현의 목소리가 불러왔다.

“아, 네.”

“저만 믿으세요. 추상적인 답변이 나올 수 없게끔 딱 포커스를 맞춘 질문을 드릴 테니까요.”

“눈빛이 약간 무서운데요.”

“후후, 긴장하셔야 해요. 그럼 질문 들어갑니다. 먼저… 신대륙 관련된 히든 퀘스트 이야기부터 해 보도록 하죠.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스케일의 히든 퀘스트를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에 대해 저희가 들을 수 있을까요?”

순서를 놓고 보면 하베르칸이 나와야 하는데 굵직한 사건에 대해 묻는 첫 질문으로 신대륙 이야기가 나왔다.

‘껄끄러운 질문은 뒤쪽에 몰아서 하겠다는 거겠지.’

부정적 이슈랑 묶인 건 그렇고 그런 질문을 할 때 한꺼번에 엮으려는 빌드업 냄새가 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작가든 피디든 이 판을 짠 놈 펜촉 끝에서 놀아나는 꼴이 될 터.

그게 누가 됐든 타인이 짠 판 위에서 놀아나는 건 질색이었기에 도진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부유대륙 이야기보다는 하베르칸 이야기부터 할까요? 순서도 그게 맞는 거 같고, 제가 얘기하는 것도 그쪽이 편할 거 같네요.”

유정현의 눈가가 약간 떨렸다.

이번 인터뷰는 이상할 정도로 민감한 질문이 많은 인터뷰였다.

그리고 하베르칸은 그것들과 얽힌 주제였다.

황우영 피디는 사전에 합의가 되었다고 했지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인터뷰 직전에 도착하지만 않았어도 미리 게스트 대기실에 가서 말이라도 맞췄을 텐데.

아무리 이 인터뷰가 중요하다지만, 고정적으로 잡혀 있는 방송 일정을 다 젖혀 둘 순 없는 일이라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휴식 시간에라도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는데 게스트가 급발진을 하며 치고 들어오다니.

‘이렇게 훅 들어오는 게 어디 있어……!’

속으로는 당황스러웠지만, 유정현은 애써 미소 지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물론이죠. 편하신 이야기부터 하시면 됩니다.”

하베르칸 레이드랑 얽힌 게 스틸 이슈였지? 하베르칸 얘기를 한다고 해서 본인이 직접 스틸 이슈를 꺼내진 않을 테니까 이따가 슬쩍… 머릿속으로 인터뷰 흐름을 조정하는 유정현이었으나.

“감사합니다. 하베르칸은 비하인드도 비하인드지만 유혈 길드 걸 스틸한 게 아니냐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도진이 바로 이니시를 박아 버렸으니.

콜록, 콜록. 당황한 유정현은 사레가 들어 밭은기침을 토했다.

도진은 자기 앞에 놓인 생수병을 따 유정현에게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유정현이 물을 마시며 기침을 가라앉히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도진은 하고픈 말을 이어 갔다.

“엄밀히 따지자면 스틸이 맞죠. 전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스틸’이라는 먹잇감이 던져지자마자 시동을 걸던 채팅창은 순식간에 들끓기 시작했다.

-스틸 논란은 초기에 진압됐잖아? 그 소리 하던 놈들 다 숙청됐을 텐데 이걸 본인 입으로 굳이 끌어올린다고?

-아, 솔직히 스틸 맞잖아 ㅋㅋㅋ 유혈 애들 이미지가 워낙 조진 놈들이라 꼬시다고 킥킥대느라 무시하고 넘어간 거지.

-그때 법사 게시판 중심으로 성역화 오지게 돼서 반대 여론 다 탄압하던 거 솔직히 존나 역겹긴 했어.

-이제 본인 입으로 스틸범 시인했으니 진퀴벌레 새끼들 아가리 해야겠지? 빠가 까가 만든다는 걸 알아야겠지?

다수인 팬에 눌려 떠오르지 못했던, 잘나가는 사람만 보면 물어뜯기 바쁜 안티들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모니터링 중이던 황우영 피디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놀라 자리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저 새끼 저거 뭐야? 갑자기 왜 지 혼자 급발진해?”

라이브 스트리밍을 곁들인 방송 촬영은 신경 쓸 게 많다.

특히 라이브 스트리밍 시청자를 컨트롤하는 건 그중에서도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긍정적인 주제에서 부정적인 주제로, 훈훈한 분위기에서 논쟁의 여지가 생길 지점으로 나아갈 때는 그에 맞는 빌드업이 필수였다.

초반과 중반은 훈훈하게 가고, 마지막쯤 이런 논란도 있던데요, 하고 슬쩍 찌르면서 마무리해서 논란을 부추기려던 게 황우영의 계획이었다.

불만 지피고 튀어 버리면 알아서들 논란도 만들고 화제도 만들고 해 줄 테니, 이어지는 겜잇슈 정규 방송은 물론이고 유튜브에 올라갈 추가 영상들 조회 수까지 뻥튀기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방송 초반부에 이딴 식으로 질러 버리면 처음부터 뒤쪽 분량까지 싹 다 분위기 조지잖아!’

앞에 90%가 재밌고 무난하고 유익하고 훈훈한 내용이면, 뒤에 10%쯤은 분위기가 살짝 흐려져도 된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방송은 이미지 싸움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국장도 ‘MSG 잘 쳤네!’ 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줄 거다.

하지만 시작부터 논란에 불부터 지피면 인터뷰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변하게 될 터.

요즘 ‘논란’이란 단어가 필요 이상으로 묻어 버리면 화제성이고 뭐고 일단 기피하는 게 광고업계 흐름이었다.

[“정현 씨, 일단 지금은 분위기 좋게 풀어 봐요. 후반이면 몰라도 인터뷰 시작부터 이러면 답 없어져요!”]

인이어를 통해 피디의 지시를 들은 유정현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나보고 어쩌라고!’

이미 총자루는 도진에게 넘어간 상황.

게스트가 이어서 할 말을 기다리며 예쁜 미소를 짓고 있는 유정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나마 가능한 거라고는 게스트의 혓바닥에 브레이크란 게 달려 있길 기도하는 것뿐.

“상황만 놓고 보면 유혈 길드가 치던 걸 이어받은 게 맞으니까 스틸이라는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유혈 길드가 아니었으면 제가 하베르칸을 잡지 못했을 거란 말이 나오는 건 인정하기가 힘드네요.”

미친. 촬영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탭들 머리가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적당한 수준의 어그로를 끌어 볼 생각이던 황우영 피디마저 진짜 미친놈의 등장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인터뷰는 시작됐고, 생방송은 아니지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송출되는 중이다.

온몸을 뒤틀며 자제하라는 사인을 보내 보고는 있지만, 브레이크 고장 난 게스트가 눈길도 안 주는데 어쩌겠나.

결국 총대를 멜 사람은 또 유정현이었다. 그녀의 인이어가 애처롭게 울었고, 다시 유정현의 입이 열렸다.

“…그러니까 도진 씨 말씀은 스틸 행위에 대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굳이 유혈 길드가 없었다고 해도 하베르칸을 혼자 잡는 건 무리가 없었을 거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유정현의 요약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하베르칸을 혼자 잡는 건 저한테 있어서 별로 문제 될 게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베르칸 토벌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덕분에 하베르칸 공략법은 물론이고 공략할 수단도 다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하베르칸 토벌 히든 퀘스트.

지금까지 어디서도 언급된 적 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유정현에게 있어 이건 사태를 수습할 카드나 다름없었기에 바로 반응을 보였다.

“잠시만요. 지금 하베르칸 토벌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고 계셨다고 말씀하신 거 맞죠? 이 얘긴 처음 듣는 거 같은데요? 자세히 좀 듣고 싶어요.”

도진은 그런 유정현에게 옅게 웃어 보인 후 약간의 각색을 가미한 각본을 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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