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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또 홈런을 쳤다.
게다기 이번 건 영상이 무려 일곱 편으로 나누어져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업로드하는 중이다.
불난 집에 계속 기름을 붓는 꼴이어서 반응은 식을 줄 모르고 계속해서 뜨겁게 달궈지는 중이었다.
덕분에 오늘도 라엘 엔터에서는 주강희 실장과 마케팅팀 그리고 각 부서에서 차출된 이른바 도진 TF팀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커뮤니티 반응 전부 취합해서 보고서 올리라고 했던 거 어떻게 됐죠?”
“지금 작성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이슈가 되다 보니까 계속해서 추가적인 반응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와서요. 그걸 계속 모으다 보니까…….”
“그럼 계속해서 보고하세요. 긍정적인 반응은 전체적인 흐름 정도만 체크하고, 부정적인 건 하나하나 면밀히 검토하는 쪽으로 해 주세요.”
넵. 짧게 대답하는 한 직원과 바로 시선을 돌리는 주강희.
그녀의 시선이 닿은 다른 직원이 바짝 긴장한다.
“많이들 찾죠?”
주어가 생략된 물음.
그러나 주강희가 생략한 주어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직원이 약간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이제 쏟아지는 요청이나 제안들을 홀드해 놓는 것도 한계인 거 같습니다. 실장님, 아니 우리 라엘 엔터에서는 소속 크리에이터의 의견 존중 및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취하는 스탠스라지만, 상대측에서는 약간… 갑질이라고 느끼는 거 같기도 하고요.”
“확실히… 이젠 슬슬 한계이긴 하겠네요. 좀 잠잠해지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건 뭐…….”
주강희도 이렇게까지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도진을 회사로 끌어들인 이유 자체가 반짝하고 떠오른 그의 화제성을 이용하기 위함이 컸던 터라 빠르게 인터뷰 등 일정을 잡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때 딱 도진이 신대륙 대박을 쳤고, 그녀는 도진이 게임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게끔 서포트하는 쪽으로 방침을 틀었다.
‘그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면 확실한 리턴을 가져올 거 같은 믿음이 생겨서 그랬는데…….’
도진이 그녀의 믿음을 과하게 충족시켜 준 게 문제다. 적당한 시점에 적당히 조율했어야 하는데.
‘무슨 홈런을 이런 식으로 쳐? 좀 쉬어 가면서 쳐 주면 안 되나.’
적당히. 그래, 모든 일에는 적당히라는 게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그 인간, 적당히를 모른다.
‘그렇다고 살살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속으로 한 생각에 쓰게 웃은 주강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어디가 제일 극성이죠?”
묻자마자 온갖 곳이 다 튀어나왔다.
소속 연예인에 대한 방송 편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공하겠다는 공중파 방송국.
케이블 쪽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두 명 꽂아 넣을 자리를 약속한다고 했단다.
인터넷 방송 쪽은 더 심했다.
유튜버, 스트리머, BJ 등 방송하는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합방 및 콜라보 제의가 쏟아져 들어오는 건 당연지사.
심지어 도진을 따라서 소속사를 옮기겠다고 문의를 하는 방송인도 적지 않다는 게 직원의 설명이었다.
“들어온 제안들 깔끔히 정리해서 올려요. 우선순위는 회사보다는 크리에이터 개인에게 득이 되는 조건이 걸린 것들로 해서요. 각 제안별로 장점, 단점이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해야 됩니다. 저한테 쓰는 보고서가 아니라 크리에이터한테 쓰는 제안서라고 생각하고 작성하세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주강희는 빠르게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은 일곱 번째 영상, 그러니까 수중동굴 던전의 마지막 보스전 영상이 올라가는 날.
더 바빠질 예정이니, 빠르게 지금 닥친 것들을 처리해야 했다.
* * *
오전 11시.
평소라면 게임 속 세상에서 무엇이든 하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의 도진은 이례적이게도 이 시간에 현실에 있었고, 더 이례적이게도 매니저인 천지현 이외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정에 업로드된 영상 조회 수가 2,800만. 11시간 만에 이 정도면 농담 좀 섞어서 케이팝 아이돌 뮤비급이라고 해도 될 수준이에요. 어때요? 이 정도로 인기인이 된 소감이?”]
태블릿 화면 너머에 있는 상대는 주강희 기획실장.
약간 장난스럽게 묻는 말에 도진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놀리는 건가요?”
[“설마요. 도진 씨가 지금 라엘 엔터에 얼마나 이득을 챙겨 주고 있는데요. 제 입장에선 도진 씨 눈치를 보면 봤지, 놀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정말로요.”]
그런 의미에서… 말을 길게 끄는 주강희. 그에 맞춰 도진 뒤에 서 있던 그의 매니저 천지현이 잽싸게 무언가를 도진 앞에 샥 하고 밀어 넣고는 다시 물러난다.
뭔가 싶어 보니, 계약서였다.
[“새로 작성한 계약서예요. 모든 내용은 기존과 동일하고, 수익 쪽만 조금 건드렸어요. 광고나 굿즈 판매 같은 회사랑 같이 진행하는 일 외에 유튜브 채널을 비롯한 도진 씨 개인 활동 수익은 회사에서는 터치하지 않을 겁니다.”]
기존 9대1이던 비율이 일부분에서나마 10대0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유튜브 채널 관리부터 영상 제작 등 전반적인 업무를 전부 처리해 주면서 그쪽 수익을 전혀 나누지 않는 우리 같은 회사 흔치 않을걸요?”]
“이런 식으로 장사해도 되나요? 저한테 돈 꽤 들어가잖아요.”
[“라엘 그룹이 한 해에 홍보 마케팅에 얼마나 쓸 거 같아요? 도진 씨 덕분에 여기저기 라엘 엔터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만 따져도 5년은 더 자원봉사 해도 남는 장사니까 걱정 말아요.”]
“꼭 재계약할 때 기간을 넉넉하게 잡자는 말처럼 들리네요.”
[“그런 계산도 깔려 있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인정한 주강희가 다시 한번 눈짓했다.
착착. 천지현이 다시 한번 도진 앞에 무언가를 놓고 물러난다.
“이건 또 뭐예요?”
[“라엘 엔터, 아니 도진 씨한테 들어온 제안들을 정리한 거예요.”]
도진이 그것을 들어 올리는 걸 본 주강희가 덧붙였다.
[“슬슬 도진 씨 대외활동에 대한 방향을 정할 때가 된 거 같아서요.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도진 씨가 이런 거 귀찮다고 하면 다 쳐낼 거니까. 그냥 이런 요청이 들어왔을 때 회사 차원에서 어떻게 답변을 할지 정하기 위해서 의논하려는 거예요.”]
첫 장을 넘기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리스트가 보였다.
어디서 들어온 제안인지, 이 활동을 하면 어떤 부분이 좋을지 등의 주석이 달려 있다.
정리한 게 누군지 몰라도 꽤 고생했겠구나 싶은 내용과 분량이었다.
대충 자료를 휙휙 넘기던 도진이 멈칫했다.
-특별 활동비: 2,500만 원
이 항목 때문이었다.
출연료는 따로 적혀 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궁금해진 도진은 직접 물어봤다.
“이건 뭐예요? 특별 활동비?”
[“도진 씨가 그 제안을 수락하고, 시간을 내서 그 활동을 소화하면 우리 회사에서 지급하는 일종의 보너스?”]
도진이 말을 잃었다.
아무리 자기가 유명해지고, 덩달아서 회사도 유명해지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는 걸 감안해도 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귀찮은 거 관리해 주고, 영업 이리저리 뛰어 주는 대신에 발생하는 수익 나눠 먹는 게 이쪽 업계 돌아가는 방식 아니었나?
[“솔직히 말할게요. 보다시피 도진 씨한테 들어오는 제안이 엄청 많아요. 그리고 그런 제안을 해 오는 곳 중에서 라엘 엔터한테 꽤 매력적인 대가를 제시하는 곳도 많고요. 그걸 차치해도 도진 씨가 여기저기 좋은 자리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업계에서 라엘 엔터의 평가가 올라갈 걸 감안하면… 욕심이 좀 나요.”]
“수익 분배 비율 조정한 것도 그렇고, 특별 활동비 같은 이상한 걸 끼워 넣은 것도 그렇고. 라엘 입장에서는 광고비로 쓰겠다, 이런 느낌이란 말이네요.”
[“그만큼 지금 도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이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기 싫다고 하면 포기하겠다는 거고요?”
네. 물론이죠. 주강희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도진 채널에 올라가는 영상마다 라엘 엔터테인먼트 로고를 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도진에게 들이는 시간, 돈, 노력 등이 아깝지 않았기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요?”]
도진이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묻는다.
“아뇨.”
이에 고개를 저으며 도진이 말했다.
“하나나 두 개 정도 골라서 할게요.”
주강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굳이 일 얘기를 이어 가진 않는다.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으니 무슨 일을 할지 고를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이다.
재촉하는 걸로 보이지 않게끔.
[“요즘 생활하는 건 어때요? 불편한 점은 없나요? 숙소라든지 다른 뭐라도요.”]
주강희는 자연스럽게 일상 이야기로 대화 방향을 틀었다.
이에 도진 뒤에 선 천지현이 긴장했다.
도진이 불편한 게 있다고 하면 그의 전속 매니저인 그녀의 잘못이 되기 때문이다.
“불편한 점이요?”
그렇게 되물은 도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천지현은 보았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화면 속 주강희의 시선을.
‘제발, 도진아. 불편한 거 없었잖아? 있었어도 없었잖아.’
마음속으로 손을 싹싹 빌며 기도를 올리는 천지현.
그런 그녀의 마음이 닿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요? 지현이 누나가 제가 생각 못 한 부분까지 다 챙겨 줘서요.”
천지현은 안도하며 도진을 찬양했다.
[“천지현 사원.”]
그런 그녀를 주강희가 불렀다. 입에는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네, 넵?”
하늘 같은 상사의 부름에 천지현이 바짝 얼어 대답한다.
[“방금 승진했어요. 지금부터 천지현 대리입니다. 앞으로도 담당 크리에이터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케어 부탁드려요.”]
“네, 네? 대, 대리요?”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하는 그녀였으나 주강희는 이미 시선을 돌린 뒤였다.
[“도진 씨, 오늘 긍정적인 답변 고마웠어요.”]
“별말씀을.”
[“추가적인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럼.”]
눈인사를 끝으로 주강희가 자리를 떴다.
화상 통화 종료하겠습니다- 하는 부하 직원의 말을 끝으로 화면도 검게 변했다.
주강희가 사라진 모니터를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사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네.’
굳이 이런 자리에서 불편한 점이 없었는지 물은 것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천지현의 승진을 언급한 것도 전부 어깨에 뽕을 잔뜩 넣어 주려는 퍼포먼스다.
“고마워, 도진아! 진짜 불편한 거 없냐고 너한테 물어보실 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근데 네가 그렇게 막 잘 말해 주고. 덕분에 승진? 나 진짜 꿈꾸는 거 아니지? 주임도 아니고 대리래, 대리!”
거의 매일 보는 사람이 네 덕분이라면서 폴짝폴짝 뛰는데 당연히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가지 않겠는가.
실제로 매일 자기 먹을 거 챙겨 주는 사람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니 도진도 기분이 좋았다.
다만.
“누나, 이제 그만 흔들어도 될 거 같은데.”
기쁨을 주체 못 하는 전속 매니저의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건 약간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