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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정령용의 변태 과정이 완료된 것도 그때였다.
[‘정령용의 잔해’가 오염으로 인해 폭주합니다!]
어느새 검게 물든 빛에서 날개 두 장이 튀어나와 펼쳐진다.
콰직.
하지만 날개는 펼쳐지자마자 형편없이 찢어졌다. 낙하한 종유석 중 하나가 사정없이 날개를 관통한 것이다.
-키이이이이!
고통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괴성은 곧 커다란 종유석이 지상과 충돌하며 내는 굉음에 묻혔다.
“꺄아아악! 처, 천장이 무너지잖아요!”
테레사가 비명을 지른다. 그녀 말대로 천장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많은 종유석이 제멋대로 낙하하고 있었다.
“알아서 피해요!”
“이걸 다 어떻게- 꺄아악! 소소야!”
호들갑에 돌아본 도진이 혀를 찼다. 회피도 방어도 제대로 못 하고 소소가 빛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파티원의 죽음. 도진은 가슴이 미어졌다.
“힐이랑 버프는 돌리고 죽어야지……!”
하늘도 도진의 마음씨에 감격했는지 그의 머리 위로 정확하게 뾰족한 낙하물이 떨어졌다.
콰직.
그러나 도진은 얄미울 정도로 조금만 움직여 그것을 피했다. 동시에 시선은 적의 상태를 확인한다.
‘오염 어쩌고 하더니. 겉모습만 봐서는 정령이란 단어를 납득하기 힘든 수준까지 망가졌네.’
어설픈 부활을 마친 잔해의 모습은 차라리 정령보다는 언데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유예된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육체가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다.
그럼에도 잔해는 그런 상태로, 수많은 종유석에 얻어맞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들고 있었다.
그냥 두면 분명 저곳에서 탈출하여 날뛸 게 뻔할 거란 생각에 도진이 소리쳤다.
“그냥 두기엔 불안하니까 딜 좀 보태야겠어요. 떨어지는 거 피하면서 딜 넣어요!”
이에 테레사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농담해요? 지금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 저길 붙어서… 어윽!”
항변하던 테레사가 종유석에 스쳐 맞고는 굴러간다.
그녀가 내는 이상한 비명에 도진은 기대를 접었다.
“파티원이 못 하면 나 혼자라도 해야지.”
이때부터 도진의 독주가 시작됐다.
떨어지는 종유석을 피하기 위해 위를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어차피 덩치 큰 종유석은 낙하할 때 내는 소리부터가 크다.
응축된 마석 덩어리나 다름없어 일렁임이 시야를 침범하기도 하고.
그 정도 정보만 있어도 직격으로 맞는 참사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화염구》
쏘고. 한 걸음.
콰앙.
죽음이 스쳐간다.
《전기 충격》
쏘고. 뒤로 한 걸음.
콰앙.
코앞에 종유석 덩어리가 꽂혔다. 픽- 하고 파편이 뺨을 스치며 생채기를 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다시 도진의 마법회로가 빛나고, 마법이 연속해서 발동됐다.
퉁퉁퉁 하고 텀이 없는 공격이 비척대는 보스를 두들겼다.
원래라면 이 던전의 보스는 유저의 공격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
보스를 공격하는 건 어디까지나 특수 스킬을 충전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도진의 공격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보스 몬스터에게 착실히 딜을 쌓아 넣었다.
천장을 무너뜨려 넣는 딜이 98이라면, 아슬아슬 남게 될 몫 2를 도진이 해결했다.
그 결과.
파칭!
부활한 지 얼마 안 된 정령용의 육신은 찬란한 빛으로 깨져 나갔다.
[보스 몬스터 ‘정령용의 잔해’에게 더 이상 형상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의 피해를 누적시켰습니다!]
따끈따끈한 히든 던전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이 클리어되는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한 도진은 미련 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현기증 나네.”
생명력도 마나도 아슬아슬하다. 포션을 마시고 휴식을 취할 틈조차 마땅치 않은 전투였으니 당연한 일.
그래도 이겨 냈다. 결국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고, 던전은 클리어됐다.
이제 고생의 대가를 받을 시간이었다.
* * *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 클리어]
[<정령용의 구원자> 업적 달성]
[업적 보상: 보너스 포인트 +5]
[퍼스트 클리어 보너스로 획득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퍼펙트 클리어 보너스로 획득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보너스가 넉넉히 붙은 보상이 쏟아졌다.
경험치도 그렇고, 전리품 또한.
[정령 정수]
등급: S
사용 제한: 레벨 65
정령의 기운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보석.
먼저, 도진이 노리던 「정령 정수」가 전리품 사이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아주 간절히 바라던 것인 만큼 다른 것보다 훨씬 더 도진의 시선을 잡아당겨야 정상인 물품.
하지만 지금 도진이 보고 있는 건 정령 정수가 아니었다.
‘저건 뭐야?’
그의 눈이 고정된 건 오색찬란한 보석 덩어리였다.
완벽한 구체 모양을 한 사람 머리보다 조금 더 큰 보석.
도진의 본능이 속삭였다.
‘더럽게 비싼 거다.’
저건 도진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 드롭 테이블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렇다는 건 곧 히든 던전, 최초 발견, 최초 공략, 거기다 히든 보스까지 완벽하게 처치하는 완전 공략까지. 총 사박자가 갖춰졌을 때 나오는 특별한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았다.
도진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종류별로 꺼내서 입에 털어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치고 지친 몸뚱이는 후들거리며 더 쉬라고 시위를 했지만, 도진은 단호히 육체의 요청을 묵살했다.
“우욱.”
덕분에 걷다가 헛구역질까지 하는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도진은 악착같이 걸어서 전리품을 확인했다.
[정령 정수]
어. 내가 노리던 거. 그런데 이게 문제가 아니지.
중요한 건.
[정령용이 남긴 알]
등급: -
죽은 정령용의 육체와 기운이 응집된 알.
커다란 보석처럼 보인 건 알이었다.
‘알이면… 부화도 하는 건가?’
도진의 심장이 콩닥댔다.
정말 이게 부화까지 하는 알이라면, 정말 대박이기 때문.
하지만 곧 도진의 표정에 실망감이 어렸다.
‘죽었네.’
마안으로 살핀 알이 품고 있는 마나가 멈춰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일렁임은 있지만, 이건 마석만 돼도 갖는 기본적인 흐름.
안에 정말 정령이든 뭐든 생명 비슷한 거라도 들어 있다면 마나는 박동하듯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뭐 비싸긴 더럽게 비싸겠네. 이 정도면 진짜 용종 정도는 잡아야 얻을 수 있는 마석이랑 동급이니까.”
도진은 빠르게 아쉬움을 털어 냈다. 아니, 아쉬움이라 표현하기에도 살짝 민망하다.
얼마나 오래전에 죽었는지 가늠도 안 되는 상태여서 이 정도지.
생전의 정령용은 진짜 초월적 존재였을 것이다.
정령계에서나 용계에서나 1티어는 확실히 해 먹었을 거란 뜻.
‘이런 놈이 남긴 알에다 그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정도면…….’
도진이 겪은 전생의 끝자락 정도에도 구경하기 힘든 아이템.
그런 게 지금 시점에 나올 리가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곱게 챙겨는 둬야겠다.
도진이 얻은 걸 인벤토리에 잘 정리해 넣은 때였다.
[<호수 밑의 비밀> 퀘스트 완료]
[지상에서 일어난 정령 사태의 원인은 정령용의 육체가 소멸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기운 때문이었다.
그것을 해결했으니, 더 이상 호수 주변에서 난폭한 정령이 끝없이 태어나는 일은 없어질 거 같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10,0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연계 퀘스트 시작 아이템 「정령용이 남긴 알」이 확인되었습니다.]
[연계 퀘스트 발생]
정령용이 남긴 것
등급: 히든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나, 육신마저 소멸의 과정에 접어드는 순간에 잠시 이루어졌던 부활은 품고 있던 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던 터라 정령용이 남긴 알은 부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면 알을 잘 보관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퀘스트 내용을 읽은 도진은 말을 잃었다.
‘이 새끼들이…….’
보스 몬스터를 잡은 죄밖에 없는데 졸지에 죽은 상태에서도 알, 그러니까 새끼를 태어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어미를 죽인 개새끼가 된 것이다.
‘뭐… 알았다고 해서 안 죽일 건 아니었지만.’
사정이 딱한 거야 딱한 거고. 오염되고 폭주까지 한 보스 몬스터를 살려 두고 대신 죽음을 택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도 찜찜한 건 조금 있어서 도진은 정령용의 잔해가 사라진 지점을 보며 눈을 감고 말했다.
“극락왕생해라. 네가 남긴 건 내가 최대한 잘 써 볼 테니 걱정 말고.”
얻은 경위야 어쨌든 죽은 알인 줄 알았던 게 히든 퀘스트 시작 아이템이었다.
가지고 있다가 운 좋게 퀘스트를 깰 수만 있으면 또 다른 잭팟을 터뜨릴 수 있겠지.
‘보통 이런 단서가 부족한 히든 퀘스트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지만.’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선 도진이 멈칫했다.
테레사가 처연한 자세와 얼굴로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소가 죽었어…….”
망연히 중얼거리는 테레사에게 다가가며 도진은 생각했다.
‘현실이랑 똑같이 보이는 곳에서 친구나 지인이 죽는 장면은 충분히 충격적인 장면이지. 가상현실을 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일수록 더 그렇고.’
현실과 다르지 않은 환경을 구현한 가상현실 시대는 생각보다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다.
본인의 죽음, 친구의 죽음, 하다못해 NPC의 죽음에도 충격을 받고 PTSD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몰입이 과한 부류는 감각 동기화율과 상관없이 환상통을 겪는 경우도 있고, 그 통증을 현실에서도 느끼는 경우도 있고.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긴 해.’
과몰입으로 인한 부작용이란 부작용은 다 겪은 입장이기에 도진은 그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정신 차려요. 소소 씨는 그냥 게임 오버 된 겁니다. 여긴 가상현실이라고요. 걱정되면 그냥 로그아웃해서 현실에서 챙겨요. 괜히 친구 죽는 장면만 계속 떠올리면 그거 문제 생깁니다.”
그건 바로 가상현실과 현실을 분리하는 말을 해 주는 것.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데 위로를 받은 테레사의 반응이 이상했다.
“소소가 죽었어요. 이번에는 얼마나 징징댈지. 충격받았다고 드러누울 거예요. 너무 잘 아는 거죠.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 징징은 또 뭐고 협상은 또 뭐……?
도진의 뇌가 테레사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레사는 바닥을 쿵쿵 치며 후회를 토해 냈다.
“크윽……!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는데. 전에는 부산에 끌려갔었다고요. 가증스럽게 눈물도 안 나오면서 우는 척까지 하고. 눈물은 왜 안 나냐고 물었더니 안구 건조증 드립이나 치고. 근데 결국 끌려갔다고요.”
이번에는 해외로 끌려갈지도 몰라!
절규하는 테레사를 보며 도진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 예.”
뭐, 그냥 멀쩡한 것도 아니고 과하게 멀쩡해 보이니 됐다.
지금 당장 전리품 나누고 뭐 하고 할 상황은 아닌 거 같고.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심각한 모양이니.
“여러모로 바빠 보이는데 그만 해산하는 걸로 하죠.”
도진은 이번 파티 사냥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