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66화 (6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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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르 호수 수중동굴 보스룸>

정령용의 육신은 거대했다.

아마 생전 멀쩡한 모습일 때였다면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강력한 존재였을 터.

그러나 지금은 죽은 지 오랜 세월이 흘러 오랜 세월을 견디던 사체마저 붕괴를 맞이하여 ‘잔해’라는 표현으로 표기되는 상태.

그럼에도 보스의 크기는 거대했고, 느껴지는 포스는 강대했다. 무슨 짓을 해도 현재 유저 수준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

“저게 보스라고……? 저걸 어떻게 잡아?”

테레사도 그렇게 생각하고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떻게든 잡을 수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저렇게 세 보여도 결국 이 던전 보스입니다. 여기서 사냥이 가능한 레벨이면 잡을 수 있게 디자인돼 있을 거예요.”

그런 그녀를 도진이 침착하게 독려했다.

‘이걸 처음 보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지. 순수한 스펙으로 찍어 누르는 게 거의 불가능한 보스가 이놈이니까.’

정령용의 잔해. 일반적으로 잔해라 불렸던 이 보스는 스펙으로 때려잡는 보스가 아니었다.

잔해는 특수 스킬과 특수 기믹으로 처치하는 보스였다.

“초반에는 최대한 사리면서 패턴부터 파악할 겁니다. 오더에 집중하고, 흥분하거나 겁먹지 마요. 침착하게만 대처하면 다 잡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 오더에 집중해요.”

갑니다. 도진은 신호와 함께 보스룸에 발을 집어넣었다.

우우우우웅.

잔해가 눈을 뜨며 마나로 뱉는 포효를 질렀다.

전투가 시작됐다.

* * *

잔해는 목을 제외한 다른 부위를 움직이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고정형 보스 몬스터의 전형이다.

그렇다고 몸을 사리는 게 쉬운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히이이익!’

지금 비명마저 속으로 내뱉으며 죽도록 뛰고 있는 테레사가 그 산증인이었다.

파파파파파팍!

달리는 그녀 뒤로 살벌한 얼음송곳이 연속해서 꽂혔다.

푸른색으로 물든 잔해의 눈동자에서 발사된 정령 마법이었다.

잔해의 눈동자가 데룩 구르더니 색이 바뀌었다. 붉은색이다.

“숙여!”

변화를 먼저 발견한 도진의 외침.

테레사는 시키는 대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와중에 갑자기 몸을 숙이는 바람에 그녀는 데굴데굴 구르다 얼굴로 바닥에 착지하는 명장면을 연출했다.

화아아악!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이글거리는 화염이 스쳤다.

“일어나!”

열기에 놀라 굳어 있는 테레사에게 도진이 소리쳤다.

깜짝 놀라 다시 뛰는 테레사.

도진은 그사이에 잔해를 공격했다.

순간적으로 잔해의 눈동자가 도진을 향하려 했다.

“도발!”

도진의 오더에 테레사가 달리면서 대답했다.

“없어요! 쿨이야, 쿨!”

탱커 쪽으로 육성한 게 아닌 테레사는 도발 능력도 순수 탱커형 전사보다 떨어졌다.

그래서 발생한 공백.

‘여기서 한번 써야겠군.’

도진은 잔해의 눈이 녹색으로 물드는 걸 보자마자 자신의 몫으로 있는 특수 스킬 「물 보호막」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반지름 3미터 정도 되는 물로 만들어진 돔이 도진을 감쌌다.

수십 발의 바람 칼날이 도진을 노렸으나 물 보호막이 공격을 원천차단 해 줬다.

“어그로 다시 가져갈게요!”

그사이 테레사는 직접 잔해에게 접근해서 망치질을 해 대며 어그로를 끌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잔해의 고개는 다시 전사인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테레사는 또 달렸다.

‘으아아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얌전히 탱커나 할걸!’

눈물 나는 후회를 하며 테레사가 몇 번의 패턴을 더 받아 냈다.

맞은 공격이 없음에도 사람이 너덜너덜해지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잔해의 눈이 색을 잃었다.

“지, 지금이 기회인가?”

테레사가 망치를 들어 올렸다.

나름 딜러로서의 본능이 꿈틀대는 모양.

그러나 이번에도 도진이 그녀를 말렸다.

“잠깐! 뭔가 이상합니다. 보스 쪽으로 마나가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말하며, 도진은 생각했다.

‘모르는 척 연기하기도 고단하네.’

다 아는 패턴을 실시간으로 대처하는 척하는 것도 나름 고역이었다.

물론 아주 조금.

약간이나마 긴장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피는 연기를 하며 도진은 속으로 시간을 셌다.

‘하나… 둘… 셋. 이쯤이다.’

타이밍에 맞춰 잔해 주변으로 오색찬란한 마나가 응집되는 것이 보였다.

누가 봐도 이대로 두면 싹 다 전멸시킬 겁니다, 하는 패턴.

그걸 보자마자 도진이 한 일은 파티장 권한으로 던전 특수 스킬을 쓰는 거였다.

《봉인 종유석》

스킬 발동과 동시에 잔해의 몸통 부근에 커다란 종유석 모양의 마나 덩어리가 생성되어 놈을 찔렀다.

쿠웅 하고 지축이 약간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

효과는 끝내줬다.

-우우우우우!

공기가 아닌 마나를 매질로 전파되는 잔해의 비명이 그걸 증명했다.

당연히 놈이 준비하던 큰 공격은 바로 끊어졌다.

거기까지 진행을 확인한 도진이 큰 소리로 파티원들에게 전달했다.

“전사는 최대한 어그로 끌면서 일반 패턴 빼고, 전 공격해서 파티 스킬 채울 겁니다. 힐러는 보조하면서 공격 조금 하고. 저나 힐러 쪽으로 어그로 돌아가면 전사가 도발. 도발 없으면 가까이 붙어서 공격해요. 최대한 딜을 쌓아서 특수 스킬 빨리 채워야 되니까.”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오더.

그러는 사이에도 잠시 고개를 처박았던 잔해는 점차 기세를 회복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공격에 노출되면 저랑 힐러는 개인 방어 스킬로 버틸 겁니다. 물 보호막 쿨이면 바로 콜하는 걸로 하고. 전사님은 그냥 몸으로 버텨요. 탱커는 아니더라도 한두 방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저랑 힐러님 둘 다 물 보호막 쿨이면 전사님 걸로 써야 되니까 마음대로 쓰지 마요.”

오더 끝. 보스 일어났습니다. 할 일 해요.

빠르고 담백하며 명확한 오더였다.

이미 도진과의 파티 사냥을 오래 겪으면서 단련된 테레사와 소소는 되묻지도 않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흑흑, 진짜 탱커할걸.’

하지만 행동하는 건 행동하는 거고. 탱커도 아닌데 맨몸으로 보스 공격을 버티라는 말을 들은 테레사는 속으로 울면서 달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맞기에는 너무 살벌한 공격들이었다.

* * *

이 던전의 공략법.

아주 단순하다.

잔해의 공격을 피하거나 방어하는 동시에 공격을 하면 된다.

말은 쉽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말이 쉽다고 실행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피할 공격과 생존기를 굴려야 할 공격을 순간적으로 구분하고, 개인 생존기 「물 보호막」의 쿨타임 배분을 완벽하게 하는 게 일단 첫 번째 과제.

그런 와중에 공격은 또 쉼 없이 해야지 잔해가 특수 공격을 차징할 때 공격기 「봉인 종유석」을 충전해 놓을 수 있다.

살아남는 데 정신이 팔려서 누적 딜량이 밀리면?

당연히 충전이 안 됐으니 전멸기 맞고 게임 오버.

‘톱니바퀴가 한 번만 삐걱대도 그대로 전멸이다.’

그런 전장에서 도진은 혼자서 3인분의 계산과 판단을 내리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심플하지만 어려운 공략을 진행함에 있어 도진의 오더는 완벽했다.

잔해의 어그로를 파악, 마안으로 얻은 한발 빠른 정보로 어떤 공격인지 인지하고, 알맞은 지시를 내린다.

「물 보호막」의 쿨타임도 서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조율해서, 생존기 공백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는 일을 방지하고.

“큰 패턴 나옵니다. 보호막 돌려요!”

《섬광창》

그러면서도 빈틈만 보이면 바로 딜을 쌓아 넣었다.

덕분에 잔해는 벌써 4번의 전멸기 충전을 시도했으나 한 번도 그 공격에 성공하진 못했다.

‘보통 5인 파티 기준으로 종유석 6번이면 컷이었지? 히든 던전 상태라 난이도 올라가는 만큼 피통 늘어나는 거까지 감안해도… 대충 3번쯤 더 박으면 끝나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이 또 한 개의 종유석을 잔해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타이밍에 죽을 리 없는 잔해의 육체가 밝은 빛을 내며 흩어지더니, 한 점을 향해 뭉치기 시작했다.

‘뭐지?’

의문은 잠시. 도진은 지금 보고 있는 게 최초 도전자만 볼 수 있는 이 던전의 히든 페이즈임을 빠르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까 전생에도 이 던전은 최초 클리어가 어떤 식으로 됐는지에 대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었다.

‘익숙한 던전이라고 방심했어. 인던이랑 히든 던전은 엄연히 다른 던전인데 말이야.’

“조심-”

도진이 경고성을 발하려 할 때.

한 점으로 뭉친 빛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커헉!”

퍼억 하는 커다란 충격과 함께 도진을 포함한 파티원 셋이 동시에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마법사치고 튼튼한 몸뚱이와 큰 피통을 가진 도진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절반이 날아갔다.

그뿐 아니라 계속해서 가해지는 압력에 서서히 생명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젠장… 저딴 걸 잡으라고?’

도진은 마나를 다른 사람보다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보이는 뭉친 빛은 단순히 에너지가 응축된 상태가 아니었다.

마치 알처럼 안에서 무언가가 태어나려 하는 실루엣이 언뜻언뜻 비친다.

심지어 마나 오염까지 일어나고 있는지 밝기만 하던 빛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저게 뭐가 됐든 완성된 후에는 감당할 수 없어.’

무엇이 되었든 딱 봐도 지금 레벨에 감당할 사이즈가 아니다.

‘봉인 종유석이라도 써서 저걸 끊어야 하나?’

변신과 합체를 밥 먹듯 하는 비겁한 주인공을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변신이든 합체든 하는 중간에 공격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위해서라도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당연히 개소리였다. 도진이 개소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왠지 지금 충전해 놓은 「봉인 종유석」을 쓴다 해도 저걸 어떻게 할 수 없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망설이는 것이었다.

‘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신중하게-’

까지 생각한 도진에게 두 번째 충격파가 날아왔다.

가뜩이나 압력에 짓눌려 있던 와중에 전해진 2차 충격파에 울컥 피가 올라왔다.

‘취소. 일단 쏘고 보는 게 맞겠어. 이러다 내가 먼저 죽…….’

그리 생각하며, 충격파에 의해 고개가 젖혀진 순간 도진의 눈에 생소한 게 들어왔다.

천장에 전생에는 본 적 없던 게 있었던 것이다.

‘보스룸 천장에 있는 종유석이 저렇게 생겼던가?’

도진이 기억하는 보스룸 천장은 그냥 평범한 수중동굴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런데 충격파에 맞아서 강제로 고개가 젖혀진 도진이 보고 있는 천장의 모습은 달랐다.

종유석들이 마나를 얼마나 열심히 빨아먹었는지 아주 날카롭고 거대하고 숫자도 엄청났다.

이 근처에서 저만큼의 마나를 저기에 공급해 줄 수 있는 건 딱 하나. 지금 도진 앞에서 밝게 빛나는 정체불명의 무언가.

‘저거다!’

피통이 간당간당한 마당에 생각을 길게 할 수는 없는 일.

도진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봉인 종유석》

하늘, 아니 천장을 향해 마지막 한 발을 쏘아 올렸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다.

저게 무엇이든 변신이 끝날 시점엔 이미 파티 전체가 너덜너덜해져 있을 터.

승부수를 띄우려면 지금이었다.

‘천장에 있는 저게 그냥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경험상.

‘내가 아는 거랑 다른 게 발견되면 웬만하면 그게 답이더라고.’

콰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봉인 종유석이 천장의 종유석 더미에 명중했다.

구르릉.

흡사 시동을 거는 듯한 소리.

가뜩이나 마나를 잔뜩 빨아먹고 덩치를 키워 불안정한 상태였던 그것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낙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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