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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주문을 완성할 시간이 부족하잖아!’
생각보다 빡센 공격 패턴에 도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러나 길게 푸념할 시간은 없었다.
어느새 놈이 또 선회하며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디 누가 먼저 죽나 해 보자고.”
《전기 충격》
파직.
수면 위로 물고기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도진의 손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먼저 쏘고.
펑-
놈이 튀어나온다.
-키우우우우.
옆에서 보면 마치 즈라르크가 마법을 향해 뛰어들어 맞아 준 듯이 보일 정도로 깔끔한 설계.
‘아무리 빨라도 결국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놈의 궤도는 직선으로 고정된다.’
이것만 명심하면 얼마든지 어류를 농락하는 게 가능했다.
한 번의 돌격을 겪은 뒤 빨라진 즈라르크의 속도에 적응한 도진은 귀신같은 공격과 회피로 놈을 갉아먹었다.
즈라르크도 나름대로 자신의 능력을 전부 동원해 도진을 죽이려 했다. 물대포도 쏘고, 구체로 압축한 투사체를 여러 발 날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도진은 가장 효율적인 대처법으로 즈라르크의 모든 공격 수단을 무력화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이제 거의 막바지인가.’
즈라르크의 빛이 옅어졌다.
착취의 쐐기에 생명과 마나를 갈취당하는 동시에 격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뛰어오를 때마다 취약 속성인 전기 마법에 적중 당한 탓에 몸체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어진 것이었다.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그냥 곱게 죽을 생각은 없겠지, 너도.”
수중에서 즈라르크가 멈춰 섰다.
목숨을 건 마지막 공격을 시도하려는 의지.
도진도 그걸 느끼고 준비를 했다.
물이 요동친다.
즈라르크가 정령력을 총동원해 만든 것은 도진을 서 있는 작은 섬 전체를 뒤덮을 만큼 넓게 펼쳐진 파도였다.
피할 자리는 없었다. 다만 범위를 넓힌 만큼 위력적이진 않았다.
「암석 방패」만 써도 얼마든지 살 공간을 만들 수 있을 느리고 약한 공격.
하지만 도진은 암석 방패를 캐스팅하지 않았다.
‘이런 느린 공격으로 날 어쩌지 못하는 건 저놈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느릿느릿하고 넓게 펼친 공격을 한다는 건.
‘틈을 만들고 싶은 거다.’
그럼 보여 줘야지. 틈이란 걸.
도진의 마법회로가 빛을 내뿜었다.
「전기 충격」과 달리 상대적으로 더 많은 마나와 시간을 잡아먹는 주문.
이는 즈라르크도 알 만큼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즈라르크가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파도를 방어하기 위한 마법을 준비한다고 믿고 회심의 일격을 시도하는 것이리라.
파도 뒤에서 엄청난 가속도로 자신의 몸을 쏘아 내는 즈라르크를 보며 도진이 읊조렸다.
“머리를 열심히 굴린 건 알겠지만, 마법사한테 시간을 넉넉하게 준 걸 보면 역시 어류는 어류야.”
《섬광창》
급하게 발동된 것이 아닌 시간도 마나도 충분히 욱여넣어 위력을 끌어올린 4성 빛 속성 공격 마법이 도진의 손을 탈출했다.
동시에 파도를 가르며 튀어나온 즈라르크. 도진은 피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움직여 봐야 휩쓸릴 수밖에 없는 속도였기에.
다만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파아아앙-
자신이 쏜 빛으로 벼린 창이 먼저 놈을 조우할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미 빈사 상태에 빠져 있던 즈라르크는 공중에서 창과 충돌했고, 파칭- 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즈라르크의 반투명한 육체가 산산이 조각났다.
유리 조각 같은 파란 빛무리가 비산한다.
다만 고대어의 뼈는 그대로 남았고, 남은 운동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도진이 서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콰지지직.
그래도 다행인 건 죽는 순간 즈라르크가 꿈틀거린 덕에 아슬아슬하게 도진 옆으로 뼈가 지나갔다는 거였다.
‘…진짜 뒤질 뻔했잖아?’
뼈가 남는 것까지는 계산에 두지 않았던 도진은 속으로는 가슴이 철렁했으나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기껏 깔끔하게 잡아 놓고 호들갑 떨 순 없지.’
혼자 있으면 몰라도 저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르는 구경꾼이 있는 이상 마무리는 확실해야 했다.
도진은 태연한 눈으로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즈라르크의 뼈를 슥 바라봤다.
거의 동시에 즈라르크가 죽으면서 힘과 속도를 잃은 파도가 도진의 발치를 쓸고 지나갔다.
도진은 생각했다. 이번 영상은 끝내주게 나올 것 같다고.
* * *
“…무슨 일 있었어요? 꼴이, 아니 왜 그렇게 젖었어요?”
홀딱 젖은 테레사를 본 도진이 물었다.
“왜긴요. 그쪽 위험해 보인다고 다짜고짜 물로 뛰어들었다가 자기가 수영 못 하는 거 뒤늦게 깨닫고는 허우적대면서 올라오다가 저 꼴 됐어요.”
옆에서 소소가 한심하다는 듯이 대답해 줬다.
테레사는 욱한 얼굴로 소소를 째려봤다.
“아니거든! 전사는 원래 수영 못 하거든! 네가 갑옷 입고 물에 들어가 봐! 막 가라앉는다니까?”
테레사가 물에 뛰어든 시점은 즈라르크가 도진에게 돌격하고, 도진이 옆으로 몸을 날리던 때였다.
순간 도진이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단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딱히 수영과 관련된 스킬도 특성도 없었기에 바로 가라앉는 신세가 됐다.
그나마 소소가 뻗은 지팡이를 붙잡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거나 멀리 뛰었으면 그대로 익사였다.
“내가 갑옷을 입고 왜 물에 들어가? 저능아도 아니고.”
소소의 촌철살인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테레사. 의기소침해 있던 것도 잠시.
친구의 팩트 폭력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날려 버린 테레사는 본격적인 호들갑에 돌입했다.
“아무튼! 진짜 멋졌어요. 아니, 미쳤어요! 저 진짜 태어나서 이런 장면 실제로 보는 거 처음이라니까요? 팍 하고 화살처럼 날아오는데 휙 피하고. 아니, 피하는 것만 하는 것도 아냐. 막 그 순간을 캐치해서 마법으로 저격하기까지.”
캬아아- 하고 입으로 효과음을 넣은 테레사는 그치, 그치, 하는 표정으로 소소를 툭툭 쳤다.
같이 관람한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이에 소소는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테레사를 째려봤으나 다시 도진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 나쁘지 않았어. 확실히.”
“크으으~!”
이에 테레사가 아저씨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마법사님은 모르시겠지만, 소소 얘가 진짜 칭찬에 인색하거든요? ‘나쁘지 않았다’에 ‘확실히’까지 붙으면 최근 5년 내에 얘가 한 칭찬 중에 최고인 거예요. 굿굿.”
따봉을 날리며 하는 말.
처음부터 끝나는 시점까지 쉬지 않고 다다다 뱉어 내는 칭찬 일색에 약간 머쓱해진 도진은 할 말을 고르다 결국 가장 무난한 걸 골랐다.
“어… 감사합니다.”
칭찬에는 역시 고맙다는 말이 제일이었다.
* * *
즈라르크의 죽음으로부터 다시 열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열흘 동안 도진은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에 있는 몬스터를 열심히 학살했다.
그러는 사이 점차 네임드 몬스터 등장 주기가 빨라졌고, 벌써 네 마리의 네임드 몬스터가 새롭게 등장했다.
암석 메기, 진흙 정령, 종유석 골렘, 기형 물뱀까지. 새로운 모습과 위협적 능력을 과시했던 놈들이었으나…….
‘다 아는 얼굴들이구만.’
도진은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할 때마다 여유롭게 오더를 내렸고, 전사, 사제, 마법사 3인으로 이루어진 파티는 사정없이 네임드 몬스터를 유린했다.
‘네임드 다섯이 나왔으니 다음은 보스겠군.’
그리고 이제 드디어 다음은 던전 보스 차례였다.
‘이번에 꼭 정령 정수가 나와 줘야 하는데.’
도진은 긴장됐다.
자신이 노리는 아이템이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최초 클리어에 한해 보상 중 가장 등급 높은 아이템 하나가 확정적으로 드롭되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게 딱 나오리란 보장은 없는 법.
‘동급 아이템 중 하나가 랜덤하게 나오니까… 확률은 대충 10분의 1 정도 되는 건가.’
도진은 기도했다. 드롭 테이블에 있는 아이템 중 꼭 정령 정수가 골라서 나와 주기를.
‘아니면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나와 주든지.’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받기에 정령 정수는 그다지 귀한 아이템은 아니지만, 지금 도진에겐 그만큼 정령 정수가 간절했다.
왜냐하면 이제 곧 LOST 첫 번째 월드 이벤트가 곧 시작될 것이고, 그 이벤트에서 정령 정수가 히든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던전 보스 몬스터 ‘정령용의 잔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왔군.”
기도가 닿았는지 귀신같은 타이밍에 보스가 등장했다.
결과를 보려면 상자, 아니 보스 몬스터를 갈라 봐야 알 일.
도진은 조용히 마법사용 연초를 태워 마나를 안정시켰다.
* * *
“보, 보스?”
보스 몬스터 등장 메시지가 테레사가 펄쩍 뛰었다.
그런 그녀에게 도진이 말했다.
“그것보다 아래쪽 메시지 확인해 봐요.”
도진의 말에 허공에서 눈을 굴리는 테레사.
소소의 눈도 비슷하게 움직였다.
[흡수한 물의 정령 네임드 몬스터의 기운이 2개 있습니다.]
[던전 특수 스킬 「물 보호막」 Lv.2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흡수한 땅의 정령 네임드 몬스터의 기운이 3개 있습니다.]
[던전 특수 스킬 「봉인 종유석」 Lv.3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생소한 메시지를 본 두 사람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네임드 몬스터를 소환하고 잡은 이유가 아마 이거인 거 같네요. 최종 보스를 상대할 때 쓸 스킬을 얻기 위해서.”
도진의 말에 테레사와 소소가 생성된 스킬 설명을 확인했다.
[물 보호막: 개인]
3초간 유지되는 물 속성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0초
[봉인 종유석: 파티]
보스 몬스터에게 일정 피해를 입힐 때마다 「봉인 종유석」 사용 횟수가 충전됩니다. 「봉인 종유석」은 큰 고정 피해를 입히며 보스 몬스터에게 봉인의 기운을 중첩시킵니다.
현재 사용 가능 횟수: 1회
던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스킬.
누가 보더라도 물은 방어용, 땅은 공격용임을 알 수 있는 설명이었다.
“이걸 활용해서 잡으라는 거네요.”
테레사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 소소가 도진에게 물었다.
“이거 잡으면 이 던전 끝나는 거죠?”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소소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겨웠는데 잘됐네요. 언제 끝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긴장 안 돼요? 그래도 보스전인데.”
도진의 물음에 소소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그쪽이 알아서 할 거잖아요? 지금까지 하는 거 보니까 보스라고 별거 있겠나 싶은데. 아니에요?”
무표정한 얼굴로 하는 말에 도진이 쓰게 웃었다.
“노력해 보죠.”
이것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