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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창식은 오랜만에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 자취방에서 방송을 켰다.
“안녕, 호구들아. 오늘은 겜 방송 아니고 노가리 겸 히든 던전 공략 뒤풀이 방송이다.”
-창식이 이 새끼, 광대 쳐 올라간 거 봐라. 존나 꼴 보기 싫네. ㅋㅋ
-걍 둬. 던전 최초 발견에 최초 클하고 S급 무기까지 사다리 타서 분배받았으면 광대 승천할 만하잖아.
자신의 업적에 대해 대화하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본 호구창식이 거들먹거렸다.
“역시 내 방 시청자들이 뭘 좀 안다니까? 히든 던전은 발견하는 것도 발견하는 건데, 그걸 발견해도 깨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 최초 발견이랑 최초 클리어를 같이해야 진짜라는 거지. 두 글자로 실력. 오케이?”
-병신 ㅋㅋㅋ 실력은 무슨. 마지막에 번개 맞고 빈사 상태로 누워 있던 주제에.
호구창식이 인상을 팍 썼다.
“시발놈이 내가 언제 빈사가 돼. 일부러 파티원들 맞을 번개 대신 맞아 주느라 잠깐 넘어진 거지. 좆도 모르는 새끼는 채팅 칠 자격이 없어. 넌 내 방송에서 꺼져라.”
바로 시청자를 강퇴한 호구창식의 눈에 또 다른 거슬리는 채팅이 들어왔다.
-던전 깬 건 다 인정한다 치자 ㅋㅋ 근데 창식이가 먹은 S급 무기 그거 그냥 장식용 아니냐?
-S급이라뇨? 쓰레기급입니다만?
-그만들 해라 좀! 창식이 운다, 울어!
-ㅋㅋㅋㅋㅋㅋㅋ
호구창식은 속이 뒤틀렸지만, 겉으로는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내가 시발 너네 같은 애들이랑 같냐? 옵션이 뭐가 중요해. 히든 던전 최초 클 기념품이라는 게 중요하지.”
-그럼 왜 로트라넷 거래 페이지에 올려 놨음? 졸라 비싼 가격에 올려 놨던데. 골드도 안 받고 온리 달러는 뭐냐? ㅋㅋㅋ
“하아… 자랑이지, 자랑. 난 애초에 그거 팔 생각 자체가 없어요. 아시겠어요? 아, 몰라. 앞으로 내가 먹은 도끼 관련해서 언급하면 바로 강퇴다. 알겠냐?
대놓고 짜증을 낸 호구창식은 생각했다.
‘하아, 시발. 진짜 나와도 그딴 개쓰레기가 나오냐.’
잘생긴 것도 아니고, 실력도 떨어지는 그가 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는 돈을 써 가며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번개 속성 몬스터가 잔뜩 나오는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장비를 새로 맞추느라 그의 통장은 마이너스가 된 지 오래였다.
‘어디 호구 새끼라도 좋으니까 좀 속아서 사 가면 안 되나. 이게 팔려야 밀린 파티 분배금을 맞출 수 있는데.’
심지어 쌓여 있던 고정 파티 분배금까지 슬쩍해서 장비를 사 버렸기에 그의 마음은 현재 불안으로 가득했다.
-근데 창식이가 찾은 히든 던전은 별거 없는 데 아님? 도진 그 사람이 진짜지. ㅋㅋㅋ
-그렇긴 해. 창식이가 히든, 히든, 해서 그렇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던전 하나 발견하고 깬 거잖아. 어차피 처음 발견된 던전은 다 히든 던전 취급이니까.
-그 마법사 말하는 거지? 진짜 쩔긴 하더라. ㅋㅋㅋ 노는 물이 아예 다름.
-창식이가 평범~ 한 던전 하나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를 때 트루매지션갓킹더도진께서는 조용히 ‘신대륙’ 해 버렸죠?
그런 와중에 시청자들이 자신이 아닌 요즘 가장 핫한 주제인 도진에 관해 떠들기 시작하자 호구창식의 눈이 뒤집혔다.
“아, 이 미친놈들이. 내 방에서 타 방송인 언급하지 마라.”
-야야, 창식이 또 삐지니까 그만해. 가뜩이나 ‘그 마법사’님이 관심 독차지해서 자기가 던전 공략한 거 파묻히는 바람에 삐졌을 텐데!
-맞아, 맞아. 그만들 좀 해라. 왜 천상계에 있는 분이랑 우리 모자란 창식이를 비교해. 애 서럽게.
-ㅋㅋㅋㅋ 별것도 아닌 던전 깨고서 ‘혹시 나도……?’ 하고 기대했을 거 생각하면 개웃기긴 해.
뼈를 때리는 말에 호구창식이 폭발했다.
“좆 까세요, 시발. 도진? 그 마법싸개 새끼가 대단하면 또 얼마나 대단하다고. 다 운빨이고 장비빨이야. 하베르칸 솔플? 솔플은 시발.”
호구창식은 비웃음을 지었다.
“제에~ 발 웃기지 좀 마세요, 병신님들아. 유혈 길드가 다 잡아 놓은 거 막타만 친 게 무슨 솔플이에요. 네? 이번에 올라온 영상도 운 좋게 퀘스트 하나 잘 물어서 그냥 흘러가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운빨 수저 물고 앞서가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된 거예요. 알겠냐, 이 게임 좆도 모르는 빙신 새끼들아?”
-와… 역시 빠꾸 없는 우리 창식이! 할 말은 한다! 근데 하는 말이 맞는 말은 아니다! ㅋㅋㅋ
이 채팅을 마지막으로 호구창식은 방송 채팅을 전부 금지시켰다.
‘도진인지 도찐인지 하는 찐따 새끼 때문에 난 화제도 못 되잖아. 시발.’
속으로 욕을 하며 화를 삭이는 호구창식에게 알림이 떴다.
[로트라넷 거래 페이지 알림]
[등록된 물품 구매를 희망하는 구매자가 나타났습니다.]
“어?”
호구창식은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에 놀랐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다, 쓰레기들아.”
방송을 끈 호구창식은 로트라넷을 열고 대화창을 띄웠다.
[판매자: 도끼 사신다고요?]
[구매자: 네.]
“예쓰! 예쓰! 이딴 쓰레기를 좋다고 4만 불에 산다는 병신이 나올 줄이야!”
좋아서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는 호구창식이었으나 거래는 이제 시작이었다.
[구매자: 그런데 옵션에 비해서 좀 비싼 거 같네요. 가격을 좀 조정하고 싶은데요.]
“아, 이 쪼잔한 새끼가. 몇 푼이나 된다고 값을 깎아.”
마이너스 통장을 메우기 위해 한 푼이 아쉬운 주제에 호구창식은 상대를 까 내렸다.
호흡처럼 몸에 밴 습관이었다.
[판매자: S급 장비인데 4만 달러 정도면 엄청 싼 거예요. S급 장비는 애초에 매물 자체가 별로 없는 거 모르시나?]
[구매자: S급도 S급 나름이죠. 전사가 낄 무기인데 기본 공격력이 50이면 등급 문제가 아니라 30레벨 무기보다도 약한 거잖아요. 특수 옵션 보고 사기에도 활용하기 엄청 애매하고. 그냥 컬렉션용 무기에 그 가격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하아… 거지 새끼가 돈이 없으면 없다고 구걸이라도 할 것이지. 말하는 싸가지 좀 봐라. 좆 같은 새끼. 돈만 안 급하면 바로 퇴짠데.”
맞는 말은 원래 듣는 입장에서 더 화가 나는 법이었다.
반박할 말이 궁해지기 때문에.
[판매자: 그럼 얼마 정도 생각하세요? 근데 말해 둘 게 있는데. 이거 제 입장에서는 안 팔아도 되거든요?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제시하는 게 좋을 거예요.]
[구매자: 2만에 쿨거래 가시죠. 어차피 이 옵션에 이 가격 못 받을 거 그쪽도 알고 있잖아요?]
“2만?”
깔끔하게 절반이 날아간 가격에 호구창식이 입술을 꿈틀댔다.
솔직히 무기 성능을 생각할 때 나쁜 가격이 아니란 건 그도 알고 있었다.
S급이라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 레벨이 급격히 올라가는 상황.
50레벨대 무기 가격은 감가상각이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중이었다.
“아이씨, 돈이 없으면 대출이라도 땡겨서 사 가든가. 그것도 안 되면 밖에 나가서 강도질이라도 할 것이지. 가격을 절반을 후려치려고 드네.”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호구창식은 망설였다. 그냥 팔까? 아니면 좀 버텨 볼까.
‘욕심내 보자. 컬렉션용 어쩌고 하는 거 보면 이 새끼 돈 있는 수집가 같은데. 그냥 내가 써 버리면 그만이라고 튕기면 못 해도 조금은 더 올려 부르겠지.’
[판매자: 이거 제가 히든 던전 발견해서 최초 클리어로 얻은 보상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후려치려고 하면 그냥 추억 보관용이라고 치고 제가 쓰면 그만이에요.]
호구창식은 긴장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그러면서 생각했다.
‘쯧. 이래도 안 넘어오면 그냥 2만에라도 팔아야지.’
그 순간 답장이 도착했다.
[구매자: 1.8만에 살게요.]
뭐? 호구창식의 뇌가 멈췄다.
[판매자: 오타 친 거죠?]
[구매자: 1.8만 정확히 썼습니다.]
[판매자: 뭐 이 시발 새끼야? 2만에도 안 판다니까 뭔 놈의 1.8만이야?]
흥분한 호구창식은 욕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구매자: 욕설값으로 1천 달러 더 깎겠습니다. 1.7만 달러. 빨리 파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 안 팔면 어차피 똥 될 건 본인도 알고 있잖아?]
[판매자: 하… 병신 새끼가 어이가 없네? 그냥 안 팔아. 너한테 파느니 그냥 변기통에 넣고 물 내린다. 개새끼야.]
[구매자: 1.5만 달러. 마지막 제안이니까 잘 생각해. 어차피 네가 아니어도 언젠가 매물은 풀릴 거고. 한두 달만 지나도 유저 평균 레벨 훅 오를 텐데. 옵션 쓰레기 50레벨대 S급? 1천 달러라도 받으면 다행일걸?]
“아오!”
쾅 하고 호구창식이 책상을 내리쳤다.
좆 같은데 다 맞는 말이라 더 좆 같았다.
“그래, 씨발. 이딴 거 1.5만 달러에 팔아도 난 개이득이고, 넌 병신 호구짓 하는 거지.”
흥정? 웃기고 자빠졌네.
2.5만 달러나 깎았다고 좋아하겠지만, 그래 봐야 쓸모도 없는 장비를 1.5만 달러에 산 셈이다.
한화로는 2천만 원 돈을 날리는 거란 말씀.
그러니까 난 진 게 아니라 저 새끼한테 바가지 씌우는 거야.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헛똑똑이 자식한테.
합리화를 한 호구창식은 답장을 보냈다.
[판매자: 에휴, 거지 새끼. 돈이 없으면 없다고 형한테 말을 해. 내가 그냥 안 팔려다가 네 인생이 불쌍해서 1.5에 줄게.]
[구매자: 딜.]
“존심도 없는 새끼.”
안 판다고 했다가 돈이 아쉬워서 파는 주제에 호구창식은 상대를 욕했다.
그렇게 S급 도끼의 주인이 바뀌었다.
로트라넷 거래 시스템을 통해 돈이 입금됐고, 로트라넷에 위탁된 호구창식의 판매 물품은 구매자에게 전달될 것이었다.
모든 거래가 익명으로 이루어지고, 로트라넷 직원에 의해 물품이 전달되는 시스템 때문에 호구창식은 구매자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 * *
거래 완료라는 글자를 보며 도진은 피식 웃었다.
“끝까지 안 판다고 하면 그냥 제값 주고서라도 사려고 했는데.”
어차피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흥정이 안 되면 제값을 주고 사려고 했었다.
호구창식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도 돈이 걸린 이상 거래가 불발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운 좋게도 가격을 2.5만 달러나 깎을 수 있었다.
3천만 원이 넘는 돈을 세이브한 것이다.
“내 돈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 눈치를 덜 봐도 되는 게 어디야.”
도진은 천지현에게 톡을 보냈다.
[말했던 장비 샀어. 가격은 15,000달러. 주강희 실장님한테 콘텐츠 제작 비용 지원 감사하다고 전해 줘.]
“내 덕에 회사 이름 사방팔방 홍보했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콘텐츠 제작 비용 지원. 그렇다. 도진은 자기 돈이 아니라 라엘 엔터 돈으로 도끼를 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