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60화 (6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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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상은 대박을 쳤다.

부유대륙, 뱀파이어, 그림자 공국.

현재 유저들로선 갈 수 없는 지역, 마주칠 수 없는 종족, 발을 붙이지도 못할 국가가 동시에 드러났다.

폭발적인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안타까운 과거를 지닌 아름다운 뱀파이어 소녀.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금기에 손을 댄 미중년 뱀파이어 로드의 부성애.

산재한 위기를 차례차례 극복하며 전진하는 도진의 모습까지.

치트키가 한두 개가 아니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공국 포스 미쳤네. 하늘이 있어야 할 곳에 검은 파도 치는 거 진짜 분위기 돌았다.

-카린아 미안해 ㅠㅠㅠ 이모가 처음에 너 흑막인 줄 알고 막 의심해 버렸어… 그렇게 아파한 줄 모르고 미안해애애애애 ㅠㅠㅠ

-난 이 영상에서 티룬드 대공이랑 대화하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더라. 카린만큼이나 방황하던 티룬드 대공이 길을 찾은 느낌? 그런 게 느껴져서.

-하아… 언덕에서 도진, 카린 두 명이 해 뜨는 거 보는 장면에서 탈출을 못 하겠다. 벌써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계속 보게 되네.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영상에 녹아 있는 다양한 감성에 취해 허우적댔다.

-지금 중앙대륙 중부도 못 벗어나는 게 현재 유저 수준인데 부유대륙쯤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레벨은 몇이나 찍어야 하고.

-와, 저렇게 좁은 장소에 적이 도적 클래스에 숫자까지 많으면 마법사한테는 그냥 무덤인데 저걸 저런 식으로 극복하네. 진짜 싸우기 전부터 유리한 전장 설계하는 건 감탄만 나온다.

-실력도 실력인데 템빨도 진짜 미친 수준인 거 같아. 아닌가? 실력이 받쳐 주니까 저런 템들도 구할 수 있었던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저 발동 스킬 나가는 단검은 진짜 부럽다.

-그래서 결국 뱀파이어 여자애 납치한 사제는 뭐 하는 애임? 혼자 퀘스트 독식하려고 그러나. 디테일한 부분은 전부 편집으로 정보 안 주려고 잘라 냈네.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냐? 같이 좀 먹고 살자!

게이머답게 플레이에 도움이 될 부분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활용이 가능할 만한 정보는 편집 단계에서 교묘히 가리고 잘라 둔 상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건 부유대륙과 뱀파이어의 존재 정도뿐.

단기적으로 유의미하게 도움이 될 정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 뱀파이어를 납치한 사제의 정체는 무엇인지 같은 정보조차 공유되지 않자 몇몇 사람들은 도진을 비난하기도 했다.

-진짜 이기적이다. 혼자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건가? 어차피 끝난 퀘스트인데 알려 줄 수 있는 건 좀 알려 주지. 조회 수 빨아서 돈은 벌고 싶고, 쓸모 있는 정보는 공유하기 싫고.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심보가 보여서 구독 취소함.

그렇다 보니 가끔 이런 악플도 달렸다.

이에 대한 도진의 반응은.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한없이 시큰둥했다.

혼자서 다 독식하려고 한다고? 이기적인 놈이라고?

맞는 말이다.

“난 이기적이라서 혼자 다 차지하련다.”

멸망교단과 관련된 건 나중에 다 굵직한 퀘스트로 연결된다.

그런 알짜 정보를 굳이 알려 줄 리가 있겠나.

“어쨌든 이쪽은 이대로 두면 될 거 같고.”

채널 ‘도진’은 벌써 구독자 100만을 넘기며 순항 중이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회사에서 알아서 관리하고 있고.

도진이 할 일은 그저 새로운 영상의 소스가 될 플레이 결과물만 내면 됐다.

“역시 이러는 게 편해.”

잡다한 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가는 환경.

도진은 그것에 만족하며 천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누나. 처리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 * *

태레사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어쩌다 내 집이…….’

좁지만 행복한 자취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절친이자 웬수인 김소소가 커다란 캡슐을 끌고 쳐들어온 순간부터 그랬다.

‘내가 미쳤지. 왜 그런 말을 해서.’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그룹 입사를 한 달 유예 받은 김소소는 친구인 태레사에게 놀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태레사는 가상 세계의 자신, ‘테’레사의 레벨업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기에 거절을 했었다.

「안 돼. 나 시간 없단 말야. 정 그렇게 나랑 놀고 싶으면 게임이나 같이하든가.」

그 발언이 문제였다.

「그래?」

전화기 너머로 되묻는 그 말을 가볍게 넘기면 안 됐었다.

‘비밀번호를 괜히 알려 줘서는…….’

김소소가 캡슐을 대동하고 태레사의 자취방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로그아웃하고 캡슐에서 일어났을 때 집안에 떡하니 들어온 남의 캡슐과 그 옆에 도도히 서 있는 소소를 봤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야, 김소소! 너 진짜 이럴 거야? 빨리 밥 챙겨 먹고 사냥해야 한다니까? 좀 도와!”

지난밤의 참혹했던 침략의 기억을 떨쳐내며 태레사는 친구 겸 웬수를 구박했다.

밥은 현실에서 먹고 싶다며 고집을 부려서 나왔더니 준비는 돕지 않고 스마트폰만 보는 게 밉살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소가 시크한 얼굴로 하는 말에 태레사의 표정이 풀렸다.

“뭘 준비해? 그냥 사 먹으면 되지. 네가 좋아하는 초밥 시켰어. 스시 사카모토 거 좋아하잖아.”

“헉.”

“왜?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럼 그것도 시키고.”

스시 사카모토. 최근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유명 초밥집으로, 맛집 탐방 명목으로 김소소에게 끌려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끌려갔다가 너무 맛있어서 행복에 겨운 얼굴로 나왔던 곳이었다. 소소는 그걸 기억해 뒀다가 이렇게 무심한 척 주문을 한 것이다.

‘에휴, 이러니까 내가 얠 미워할 수가 없지.’

약간 감동을 받아 마음이 풀리려 할 때 태레사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메신저 알림음이었다.

[도진]

상대는 도진.

함께 파티 사냥을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네임드 유저가 된 ‘그 마법사’님이셨다.

황급히 메시지를 확인하는 그녀.

[테레사 님이랑 다른 두 분 지금 레벨이 몇이에요?]

짧은 물음에 태레사의 심장이 두근댔다.

‘설마 이번에도……?’

도진과 연관되면 크든 작든 득이 될 게 확실했다.

테레사는 피어나는 기대를 품고서 답장을 보냈다.

[저는 50이고, 소소는 44요. 상수는 게임 접었어요. 이제 곧 군대 가거든요.]

콩닥콩닥. 답장이 돌아오기까지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살짝 부족하네요. 이번에 파티원이 좀 필요해서 그런데 일주일 안에 52레벨까지 올릴 수 있겠어요? 사제님 레벨은 충분하고 「마나의 축복」 스킬만 있으면 됩니다.]

테레사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기회다.’

파티 사냥을 끝내고 도진이 알려 줬던 정보에 따라 갈리엘 숲을 뒤져 보니 필드 보스가 숨어 있었다.

잡는 데 엄청 고생하긴 했지만, 그때 얻은 갑옷은 현재 테레사의 보물 1호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도진, 그 사람이 직접 파티원을 구한다? 이건 무조건 대박이라고, 태레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조건이요, 무조건!”

흥분한 태레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급히 답장을 보냈다.

[무조건 가능해요! 무조건 올릴게요. 52가 아니라 더 올릴 수도 있… 지는 않은데. 하여튼 무조건 찍어 올게요.]

[좋습니다. 그럼 일주일 뒤에 봐요.]

“네! 네! 그때 뵙겠습니다!”

허공을 향해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는 태레사.

그런 그녀를 소소가 미친년 보듯 보고 있었다.

“뭐 해? 누구길래 그래?”

소소에게 태레사가 후후, 하고 웃어 보였다.

“내 쌀먹 인생의 구세주.”

“……?”

더욱 표정을 구기는 소소였으나 태레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김소소에게 엄지를 척 세워 보이며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어이, 김소소, 자네 나랑 일 하나 같이하지 않겠나?”

이에 소소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런 게 내 유일한 친구라니…….”

“히, 히, 히.”

한 음절씩 끊어서 얄밉게 웃음소리를 내는 친구를, 소소가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봤다.

* * *

파티원 수급에 성공한 도진은 로트라넷 거래 페이지를 열었다.

“그래도 매물이 딱 나와 줘서 다행이야.”

[벼락 맞은 나무 도끼]

레벨 제한: 52

능력치 제한: 힘 150 이상

등급: S

공격력: 50

고유 발동 스킬: 뿜어내는 벼락

뿜어내는 벼락: 매초 무기 공격력의 100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히는 번개 속성 공격을 15초간 방출합니다. 번개 피해를 입는 대상은 감전 상태가 되어 마비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0초

도진이 운명 퀘스트를 하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공략된 어느 히든 던전 보스가 드롭한 S급 무기.

올라온 가격은 4만 달러가 약간 넘었다.

“S급이긴 해도 옵션이 이상해서 이때는 안 팔렸었지.”

아무리 S급이라 해도 중요한 건 실제 성능이다.

공격력이 50밖에 안 붙어 있는 주제에 높은 힘 스탯을 요구하는 웃긴 무기를 굳이 4만 달러가 넘는 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은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 도끼의 활용 방법을 알기만 하면, 이건 50레벨대에 구할 수 있는 S급 장비를 통틀어 가장 사기적인 성장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호구창식아, 네가 구한 도끼는 내가 잘 써 줄게.”

호구창식.

이번에 도끼를 구한 파티원인 동시에 어느 정도 유명한 스트리머인 유저.

그는 전생에 도진을 두고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아아~ 그 방전된 건전지? 마법 한 방 날리면 팍 식는 조루 새끼라던데? 내가 랭커는 아니어도 그런 새끼는 붙으면 그냥 발라 버리지.」

랭커 근처에도 못 와 본 놈이 했던 말을 도진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진은 사소한 응징으로 호구창식에게 약간의 복통을 선사할 계획이었다.

“일단 4만 달러를 태우는 건 좀 아까우니까 흥정부터 해야겠지?”

상대가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모를 때 사전 후려치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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