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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49화 (5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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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단단히 닫힌 철문이 쭉 늘어서 있는 장소였다.

“저기 쇠창살 보이지? 저기로 살펴보고 골라. 좁긴 해도 대충 다 보일 거야. 고개 숙이고 있거나 울고 있으면 그냥 불러. 그러면 얼굴을 보일 테니까. 못 들은 척하는 년이 있으면 문을 여는 것처럼 소리를 내. 그러면 때리러 들어오는 줄 알고 알아서 길 거야.”

킥킥. 또 기분 나쁘게 웃은 비키가 들어온 방향을 막고 섰다. 감시를 하는 것처럼.

그 옆으로는 이쪽 감옥을 지키는 사내들 다섯 명이 의자에 앉아서 포커를 치고 있었다.

그들을 잠시 바라본 도진은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여러 개의 철문을 살폈다.

쇠창살로 막혀 있는 작은 창 안쪽으로 갇혀 있는 여자들이 보였다.

대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하긴 했지만, 방마다 한두 명은 처참할 정도의 구타 흔적이 남아 있다.

상품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보기로 한두 명만 폭행한 것 같았다.

‘…나중에 레벨을 올린 뒤에라도 여기 놈들은 싹 다 죽여야겠어.’

차가운 눈으로 다짐한 도진은 모든 방을 살피며 인원수를 셌다.

구출한 후 빠진 사람은 없는지 맞춰 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방을 살피려는데, 갇힌 사람 외에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저건 뭐지?”

“응?”

하품을 하며 포커를 치는 사내들을 구경하고 있던 비키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러고는 도진이 살피던 방 안을 보더니 ‘아하’ 하고 납득했다.

“저 관? 저건 우리 상품 아냐. 여기 보관만 해 주고 있는 거지. 다른 도시에서 넘어온 거 맡아 주는 것만으로 꽤 쏠쏠하게 돈을 내는 호구들이라고 보스가…….”

주절주절 떠들던 비키는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젠장,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가지고 놀 여자나 골라. 설마 남자 취향인 거 아니지? 그럼 곤란해. 우리는 여자만 취급하거든. 남자 노예는 관리하기도 빡세고 여자 노예보다 단가도 떨어져서.”

비키는 말을 멈췄다.

방 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도진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시선을 쫓아보니 관 근처에 쓰러진 여자애를 보는 것 같았다.

‘하여간. 좆 달린 새끼들은 다 똑같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키가 물러났다.

그러나 비키의 생각과 달리 도진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여자들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퀘스트 발생!]

쇠사슬에 감겨 있는 검은색 관을 인식한 순간 떠오른 퀘스트 창.

퀘스트 발생 조건은 사건의 조각을 모으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마르지아 자작령에 닥칠 재앙에 관련된 퀘스트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정보나 만남 등 사건의 발단이 될 조각이 필요하다.

도진은 그것을 멸망교 사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를 만나거나 찾아내면 퀘스트가 발현되고, 그로 인해 사건을 막을 방법이 제시될지도 모른다고.

예전 굴락 마을에서 운명 퀘스트를 받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간 끝에 검귀로 자랄 예정이었던 소녀 디아나의 미래를 바꾼 것처럼.

그래서 멸망교 사제의 소재를 추적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은 건데… 생각지도 못 하게 실마리가 될 조각을 미리 발견하게 된 것 같았다.

[퀘스트]

불길한 관

등급: 운명

[불길한 기운이 흐르는 의문의 관을 발견했다.

평범한 범죄자 소굴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조사를 해 보면 혹시 모를 위험을 미리 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상: 경험치, 골드, ???

회귀한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운명 퀘스트.

이 퀘스트의 동선을 따라가면 크든 작든 무언가의 운명이 바뀐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시점에 이 근처에서 운명이 바뀔 만한 건 매우 높은 확률로 마르지아 자작령 자체일 터.

‘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설마 그게 여기서 튀어나오진 않을 텐데…….’

도진은 전생의 지식이 제시하는 가능성 하나를 부정하며 입구 쪽을 살폈다.

일단 저 관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어떤 방법이 가장 깔끔할까?

마음 같아선 문명인답게 싹 다 쓸어버리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건 좀 위험한 선택지였다.

‘싸우자면 어떻게든 될 거 같긴 한데… 퀘스트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일단 보류해 두는 게 좋겠어.’

판단을 마친 도진은 먼저 관을 살핀 후에 어떻게 할지 정하기로 했다.

그 전에 상황이 어떻게 흐르든 대처할 수 있게 포석 좀 깔아 두고.

“당신, 이름이 비키라고 했던가?”

“어? 기분 나쁘게 이름을 부르고 그래? 뭐, 어쨌든 왜?”

“여자 하나는 얼마면 살 수 있지?”

“나이랑 품질에 따라 조금씩 갈리긴 하는데, 당장은 그렇게 비싼 물건은 없어. 잠깐 노는 정도는 150골드에 해 줄게. 아, 완전히 고장 내면 그냥 그걸 사야 돼. 두당 500. 시체를 만들면 그거 청소하는 비용도 내야 되니까 웬만하면 적당히 놀라고.”

“이 방에 있는 여자를 전부 사지. 다섯이니까… 2,500골드인가?”

와우. 포커를 치던 놈 하나가 입을 벌리며 익살스레 감탄사를 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돈 주머니를 꺼내 염동력으로 비키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 든 비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한참 모자라잖아. 기껏해야 500골드 언저리밖에 안 되는 돈으로 다섯을 고장 날 정도로 가지고 놀겠다는 거야?”

“그럴 리가. 그건 그냥 너랑 거기 있는 친구들한테 주는 선물이야. 내가 부끄러움이 좀 많아서. 마음 놓고 놀게 자리를 좀 비워 줄 수 있을까 해서 주는 뇌물이지.”

비키가 도진을 비딱하게 바라봤다.

“농담이지? 우리보고 외부인을 감시도 없이 방치하라고? 개소리 말고 여자나 골라서 나와. 침대든 고문대든 네 취향에 맞는 방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 거기서 박든 썰든 마음대로 질펀하게 놀라고.”

하아. 도진은 꾸며 낸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하던 적당한 악당 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나마 떨던 점잔까지 내려놓은 노골적인 쓰레기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내 취향에는 이 감옥이 딱이라 그래. 당신도 봤을 거 아냐? 갑작스레 끌려온 감옥에서 제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벌벌 떠는 모습을. 아마 저 여자들 평생에 이 감옥이 가장 두려운 공간이었을걸? 그런 곳에서 괴롭혀야 맛이 산다고. 안 그래, 친구들?”

도진은 비키가 아닌 다른 놈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면서 그들을 회유할 말을 덧붙인다.

“비키, 그건 너 다 가져. 저 친구들은 내가 잔금을 치르면서 따로 섭섭지 않게 챙겨 줄 테니까. 어때. 같은 남자로서 내 취향을 좀 존중해 줄 수 있겠어?”

크크큭. 남자들 중 하나가 포커 카드를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성깔 더러운 계집처럼 생긴 것치고는 남자다운 면이 있는 고객님이시군. 그래, 성적 취향이란 건 존중 받아 마땅하지. 돈까지 얹어진 취향이면 더더욱.”

“그래, 비키. 너도 노름빚 때문에 요즘 골치 좀 썩고 있잖아? 어차피 여기서 나가려면 길이 이 복도밖에 없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이 새끼들이…….”

비키는 낄낄대는 남자들을 노려보면서도 더 이상 반박하진 못했다.

다른 놈들과 나누는 거면 몰라도 혼자서 500골드를 꿀꺽할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던 탓이다.

결국 비키는 휙 돌아서면서 말했다.

“복도 끝에서 기다릴 테니까 실컷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른 남자들도 저급한 손동작을 해 보이며 삼삼오오 비키를 따라가려 했다.

“아, 맞다. 술이랑 물을 좀 가져다줄 수 있을까? 오크통으로 다섯 통쯤. 값은 치르지.”

“뭐? 그걸 다 뭐하려고?”

“나도 좀 마시고. 나머지는 뭐…….”

말을 흐리며 감옥 쪽으로 시선을 돌린 도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남자들은 질렸다는 눈으로 말했다.

“설마 억지로 여자들한테 먹일 생각인가? 여자가 다섯이니까 오크통 다섯? 하하하. 진짜 악질적인 고객님이시군. 알겠어. 제일 먹기 역하고 독한 술로 준비해 주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비키와 남자들이 다 사라졌다.

도진은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열쇠도 필요 없었다.

밖에서 고리를 잠그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만들어진 철문이었기에.

도진이 감옥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끅끅대며 울고 있었다.

따로 소리가 차단되는 곳이 아니니, 바깥에서 나눈 대화를 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제발 목숨만은…….”

그나마 용기 있는 여자 하나가 덜덜 떨며 사정을 했다.

자기보다 어린 다른 여자들을 감싸면서.

도진은 옅은 한숨을 뱉고는 작게 속삭였다.

“이제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 하면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습니다.”

“네, 네! 시키는 건 다 할게요. 할 수 있는 건 다 할 테니 제발……!”

나중에라도 구출해 주겠다는 말이었는데 여자는 다른 식으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말 잘 들으면 목숨은 붙여 주지.’ 정도로.

젠장, 정말 내 눈매가 더러워서 그런가? 아니지, 그냥 연기를 너무 잘해서라고 생각하자.

혀를 찬 도진은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한 명이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다른 여자들이 그 여자를 말리고, 한 명은 도진에게 이 애가 겁이 많아서 그러니까 제발 봐달라고 사정하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겁먹은 척하면서 비명 좀 질러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건 뭐 따로 부탁할 필요도 없겠네.’

이걸 편하다고 해야 하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하하하. 벌써부터 화끈하게 놀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 좋구만! 술이랑 물은 여기 둘 테니까 잘 쓰라고!”

“어이, 친구! 목숨은 붙여 둔다고 했지? 어차피 가져가서 처리할 거면 포장해서 가져가기 전에 우리한테도 한 번씩 달라고!”

“하여간 이 새끼는. 다 고장 나서 넋 나간 년들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

그때 밖에서 낄낄거리는 웃음과 음담패설이 들렸다.

감옥을 지키던 남자들이 부탁한 오크통을 가지고 온 모양.

도진은 귀를 기울여 그들의 걸음이 멀어지는 걸 확인했다.

충분히 멀어져 그들의 걸음 소리가 안 들릴 때쯤.

도진은 몸을 일으켰다.

당장 여자들을 달래는 건 미뤄 두고 관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봉인… 인가?’

슬쩍 본 것만으로도 관 그리고 관을 묶고 있는 쇠사슬에 특수한 조치가 취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에서 무언가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오려 하고, 그걸 봉인이 틀어막으려는 대치 구도가 느껴진다.

‘일단 건드려는 봐야겠지.’

위험할 수야 있겠지만, 쳐다만 보고 있어서는 유한한 자원인 시간만 태울 뿐이다. 그런 생각으로 손을 움직일 때였다.

파지직.

관을 감싼 봉인이 도진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듯 거칠게 스파크를 튀겼다.

그리고.

파지직-

봉인에 균열이 생겼다.

안쪽에서 터져 나오려는 힘과 바깥에서 그것을 누르던 봉인의 힘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도진의 사소한 개입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거대한 댐이 작은 균열로 인해 무너지듯 한번 깨지기 시작한 봉인은 삽시간에 무력화됐고, 관과 쇠사슬은 격하게 진동하며 부서져 갔다.

“…무슨 봉인이 이렇게 허술해?”

도진은 마나 충돌 스파크로 인해 얼얼한 통증이 올라오는 오른손을 털며 약간 물러났다.

마나 배열의 밸런스를 무너뜨려서 자멸하게 만드는 게 파훼의 기본 개념이긴 하지만, 겨우 마법회로 접근에 반응한 걸로 무너질 정도라니.

아무래도 상당히 급하게 만든 봉인 마법 같았다.

그게 아니면…….

‘안에 들어 있는 게 그만큼 통제하기 어려운 거거나.’

약간 긴장한 눈으로 관을 바라보길 잠시.

이윽고 자신을 억누르는 봉인을 모두 걷어 낸 안쪽의 무언가는 무섭도록 서늘한 기운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에 도진은 등골에 차가운 무언가가 흐르는 감각을 느꼈다.

‘이 느낌은 아무리 봐도 그건데……?’

불길한 관을 보자마자 떠올렸으나 그럴 리 없다며 부정했던 가능성을 다시 떠올리고 있을 때 쿵 하고 세로로 세워진 관의 뚜껑이 요란하게 넘어졌다.

그렇게 드러난 관 안쪽에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잠들어 있는 것은 도진의 예상을 그대로 긍정하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중앙대륙에서는 볼 수 없어야 할 종족.

북해 끝자락의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부유대륙 밑바닥에 있는 그림자 공국의 백성.

바로 피를 탐하는 아름다운 괴물, 흡혈귀였다.

‘미친. 거기다 이건 엘더잖아!’

인간의 목을 물어 피를 탐하기에는 약간 모자란 듯한 송곳니 길이는 굳이 흡혈할 필요가 없는 고위 뱀파이어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 자들을 엘더라 부르는데, 이는 퍼스트 블러드 티룬드 대공이 직접 피를 내린 가장 격 높은 뱀파이어를 칭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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