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40화 (4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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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 회사 ‘퍼포먼스’의 대표이사 권혁진.

그가 운영하는 퍼포먼스가 하는 일은 아주 다양했다.

평범한 바이럴 마케팅은 물론이고, 교모하게 거짓 섞은 과장광고도 진행하고, 단가만 맞으면 경쟁업체를 음해하는 루머도 유포해 준다.

신인 연예인을 띄우기 위한 의뢰를 받고 밑 작업도 하고, 잘나가는 연예인을 끌어내리기 위해 루머와 찌라시를 생산하고 뿌리기도 한다.

또 온갖 사건, 사고를 긁어모아서 조미료를 잔뜩 첨가해서 대중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공해 조회 수를 올리는 소위 렉카 채널도 운영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대중의 관심을 돈으로 바꾸는 일이라면 뭐가 됐든 기웃거리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 중에서도 아주 질이 나쁜 게 권혁진의 퍼포먼스였다.

“시발, 어이가 없네. 무기 하나로 팔자를 고치려고 드나, 미친 새끼가. 어차피 한두 달 뒤면 똥템 될 템을 뭐, 1억? 1억을 무슨 애새끼 이름으로 아나.”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나쁜 짓을 해서 돈을 벌어도 돈 들어가는 구석이 많으면 소용이 없는 법.

게임 외에도 도박, 여자, 술 등 온갖 곳에 돈을 쓰고 있는 그의 통장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권혁진. LOST에서는 혈왕이라 불리는 그는 원하는 아이템의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싼 것을 보고는 짜증을 내며 책상을 내리쳤다.

“시발. 방송이랑 광고 밥 먹는 새끼들이 뭐가 이렇게 느려 터졌어? 그 정도 떡밥 뿌렸으면 바로바로 입질을 해야 할 거 아냐.”

권혁진은 몇 시간 전에 올린 유혈 길드 대규모 레이드 예고 영상을 떠올렸다.

최초니 대규모니 레이드니 하는 자극적 단어를 키워드로 썼으니 겜돌이들의 어그로는 더 끌 수 없을 정도로 끌었다고 할 수 있었다.

어그로는 곧 관심. 대중의 관심은 돈이 된다. 그걸 잘 알기에 권혁진은 레이드에 대한 정보가 샐 것을 각오하고 레이드 예고 영상을 올렸다.

길드원들에게는 유혈 길드가 진정한 대형 길드, 진짜 강한 길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상은 다 돈을 위한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입질이 이렇게 안 오는-’

인내심 없는 권혁진이 다시 한번 짜증을 내려는 순간 메신저가 울렸다.

[사장님, 케이블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그리고 가상현실 캡슐 만드는 회사에서도 연락 왔고… 아, 잠시만요.]

[인터넷 방송 플렛폼 두 곳에서 동시에 연락이 와서요. 회사 쪽 말고 길드 쪽으로 계속 문의가 오는데 어떻게 해요?]

그의 비서이자 길드원인 김미리가 보내는, 돈 되는 메시지였다.

권혁진이 씨익 하고 웃음 지었다.

“역시 이런 이벤트에 붕어 새끼들이 안 꼬이고 배길 리가 있나.”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 권혁진은 확신했다.

이번 일만 잘 풀리면, 자신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성공을 거머쥘 거라고.

* * *

마철강 목걸이와 귀걸이는 도진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비싼 값에 팔렸다.

LOST 골드로는 1.2만 골드. 현금 가치 1,200만 원 근처에 팔렸다.

겨우 장신구 2개 가격치고는 엄청난 가격.

레벨 제한이 없는 데다 쓰다가 되팔면 어느 정도 회수가 된다는 메리트가 가격을 많이 끌어올린 것이었다.

이외의 전리품까지 처분하여 생각보다 큰돈을 쥐게 된 도진은 그것을 전부 복수를 위한 준비 자금으로 쓰기로 했다.

생활비와 비상금 등을 제외하고 남은 가용 금액은 1.8만 골드.

‘무기는 지금 쓰는 걸 조금 더 써도 될 거 같고. 장신구도 있는 걸 쓰면 되니까… 방어구만 쓸 만한 걸로 바꾸면 꽤 튼튼해지겠네.’

히든 던전에서 얻은 「수상한 의식용 검」은 아이템 등급도 높고 방어 페널티를 감수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고는 해도 공격 스탯만큼은 50레벨 무기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마찬가지로 히든 던전에서 얻은 레어 아이템은 「검게 물든 로브」 또한 아직까지는 바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좋은 아이템이었다.

해서, 도진은 그 외에 어설프게 맞춰 두었던 다른 방어구들을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문제라면, 가진 돈을 탈탈 털어도 좋은 방어구를 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현재의 LOST에서 가장 높은 레벨 구간인 50레벨대 장비의 가격은 비쌌다.

50레벨 이전은 사실상 튜토리얼의 연장선이고, 진짜 게임은 50레벨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투부터 성장, 아이템 파밍 등의 난이도가 확 상승하는 구간이 바로 이 구간이라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사실상 폐품이나 다름없는 F급만 아니면 100만 원부터 시작이고, 조금 쓸 만하다 싶으면 앞자리가 3으로 바뀔 정도.

타 게임의 레어 등급 정도 되는 B급만 되어도 옵션이 조금만 좋은 편이면 1,000만 원을 호가한다.

이것만 봐도 현재 상위권에 분포하고 있는 유저들의 장비에 대한 목마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밖에서는 LOST를 직업 삼아 하는 소위 쌀먹 유저들이 장비 하나만 먹어도 천 단위의 돈을 번다면서 자극적 기사를 써 대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말은 그냥 개소리에 불과했다.

그만한 가격의 아이템을 먹기 위해서 써야 하는, 사냥터 진입을 위해 소모되는 세팅 비용이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억이다.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건 난이도가 한참 낮으면서 아이템 가격도 준수한 40레벨 근처에 있는 유저들이고,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려는 유저들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버려 가며 성장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설픈 상위권에만 해당되는 얘기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서, 더 많은 돈을 써서, 더 많이 노력해서.

조금 더 앞서가는 정도로는 앞서가기 위해 쓴 만큼의 무언가를 돌려받는 게 쉽지 않다.

전생의 도진도 그런 사람이었다.

바짝 쫓아오는 경쟁자를 떨쳐 내기 위해 몇 배의 돈을 쓰고, 몇 배로 더 노력하고, 사냥하고…….

하지만 단순히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저 위로, 따라잡기 벅찰 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간 자들은 달랐다.

자신만 아는 정보와 기연, 실력 등 단순히 돈과 시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로 압도적인 차이를 벌린 자들은 많은 것을 얻었었다.

‘혈왕도 그런 부류였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놈이 얻었던 행운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될 거다.

도진은 혈왕이 가졌었던 기회를,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시작점이자 발판으로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아이템 가격 미쳤네. C급도 비싸서 못 쓰겠어.”

C급 장비마저도 최소 5천 골드쯤에서 오락가락하는 걸 보니 정신도 따라서 오락가락할 지경.

도진은 어쩔 수 없이 상의와 하의만 C급 장비를 구매하고, 신발 등 나머지 장비들은 D급 아이템으로 타협을 했다.

“그래도 이건 B급도 도전해 볼 만하지.”

하지만 언제나 가성비가 뛰어난 아이템은 존재하는 법.

도진은 B급 장비 「라마엘 디테일 실크 장갑」의 가격을 확인했다.

역시 도진의 예상대로 B급 장비 아이템임에도 「라마엘 디테일 실크 장갑」의 가격은 최저가가 2천 골드로 엄청나게 저렴한 편이었다.

“마나 소모 상승 옵션이 달린 장비를 쓸 미친놈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마나 회복 옵션만 보이면 마법사를 포함한 캐스터 클래스들은 마약에 찌든 중독자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게 현재 LOST 주류 메타다.

그런 세상에서 마나 소모 30퍼센트 상승 옵션이 달린 아이템은 천대를 넘어 그냥 똥 취급을 받는 게 당연한 일.

추가로 마나를 소모하는 대신 시전하는 스킬의 효과가 10퍼센트 증폭되는 효과가 있지만, 대마나 부족 시대에 이런 옵션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나 하트」와 마나 회복 옵션이 붙어 있는 마철강 장신구 3피스 착용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은 스탯 포인트까지.

마나 부족에 시달릴 일이 웬만하면 없을 조건을 충족시켜 놓은 도진으로서는 마나 소모 30퍼센트 증가를 감수하는 대신 마법 효과 10퍼센트 증폭 효과를 손에 넣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이런 데서까지 운이 따라 주네?”

막 도진이 2천 골드에 거래소에서 장갑을 사려 할 때였다.

누군가가 새로운 매물을, 무려 반값에 올린 것이다.

골드로는 1천 골드를, 현금으로는 100만 원을 아낀 셈이었다.

“어지간히 빡쳤나 보네. 하긴 그럴 만해.”

50레벨 이상 사냥터에서 일반 몬스터를 사냥해서 B급 장비를 얻을 확률은 엄청나게 낮았다.

엘리트나 보스급을 잡으면 확률은 쭉 오르지만, 애초에 그런 희귀한 몬스터는 마주치는 건 더 희박한 확률을 자랑한다.

어느 쪽이든 B급 장비를 획득하는 것은 게이머로서 벼락 맞을 확률에 당첨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기껏 그 낮은 확률을 뚫고 나온 아이템이 헐값에도 잘 안 팔리는 아이템이면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진은 자신도 겪었던, 더럽게 낮은 확률을 뚫고 튀어나온 쓰레기를 쥐고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름 모를 누군가를 애도했다.

손으로는 냉큼 싸게 올라온 물건을 구입하면서.

총 쇼핑 금액 12,500골드. 상당한 돈을 써 버렸지만, 상의와 하의, 머리, 신발, 장갑까지 중요한 방어구는 전부 교체를 한 도진은 돈을 쓰기 전과 비교할 때 비약적으로 방어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도진이 자신에게 남은 돈의 거의 대부분을 투자한 곳은 바로 50레벨을 넘어서고, 마법회로가 팔꿈치 바로 아래까지 확장되면서 배울 수 있게 된 4성 마법 스킬이었다.

장비 아이템과 마찬가지로, 50레벨을 경계로 두고 있는 4성 마법 스킬북 또한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여러 개를 배우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기에 도진은 당장 가장 필요한 하나의 마법 스킬북만을 구매했다.

4성 공격계 빛 속성 마법 「섬광창(閃光槍)」.

“…아무리 게임 초기라지만 스킬북 하나에 500만 원이 넘는 건 진짜…….”

그래도 이렇게 돈 주고 살 수 있는 마법을 배울 때가 행복한 순간이다.

배우기 위해 이런저런 조건이 붙기 시작하는 마법을 건드릴 때가 되면 그때가 진짜 고생의 시작이었다.

하위 마법의 숙련도는 물론이고, 속성과 계열에 대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마법도 있고, 심지어 어떤 속성에 특화되면 반대되는 속성을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전생에 ‘파괴’에 특화된 마법회로를 갖게 되어 다른 마법은 아예 쓰지 못했던 도진이 대표적이면서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이제 나는 신경 쓸 일 없는 부분이지만.’

골치 아픈 마법사 육성 과정을 떠올리던 도진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이 맺혔다.

전생에는 극한의 고통을 받았지만, 「진리의 서」 덕에 속성이니 계열이니 하는 경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마법을 배울 수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마법사 꿈나무들이 겪을 미래의 불행에 진심을 다해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도진은 벌써부터 마법사 게시판이 온갖 욕설과 비명으로 가득해질 미래가 눈에 밟혀 매우 뿌듯했다.

“역시 사람은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야 한다니까.”

긍정적인 상상을 해서인지 방금 전까지 비싸게만 느껴졌던 스킬북의 가격이 적정 가격으로 보였다.

[「섬광창」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준비는 끝났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사이에도 열심히 사냥을 하겠지만.

* * *

10월 10일 오전.

유혈 길드의 길드장 혈왕은 혈왕이 아닌 권혁진으로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디자인된 엠블럼은 꼭 노출시켜 주셔야 합니다. 유혈 길드가 다이나믹 게이밍에 소속된 팀이라는 걸 깜짝 공개하는 자리나 다름없으니까요.”]

“네. 물론입니다. 레이드 과정은 전부 실시간으로 송출할 거고, 그 과정 내내 길드원들 어깨랑 등에 수정된 길드 엠블럼을 노출시킬 예정입니다. 레이드를 끝내고 마지막에는 길드 깃발도 시체에 꽂아 놓을 거고요.”

[“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형 프로게임 구단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새로운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KGN 황우영 PD입니다. 송출 3시간 전인데 아직 송출 허용을 안 해 주셔서요. 저희가 방송사 유튜브 채널 말고도 TV 송출도 하는 만큼 리허설 비슷하게 테스트를 좀 해 봐야 해서요. 최대한 빨리 영상 송출 허용 옵션 좀 켜 주셨으면 하는데.”]

“아, 네. 지금 막 접속하려던 참입니다. 접속하자마자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맞다 맞다. 저기, 그 뭐냐. 시점 전환 허용은 저희 쪽만 해 주시는 거 맞으시죠?”]

“당연하죠. 황금 시간대에 유혈 길드 광고를 5분씩이나 편성해 주셨는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 광고 1분씩 5번 맞죠?”

[“아유, 걱정 마세요. 레이드 방송 송출에 문제만 없으면 5분이 아니라 10분, 15분도 편성 나올 겁니다. 대신 인방 쪽 들르기 전에 저희 인터뷰 먼저 하시는 거 아시죠? 저희가 케이블이긴 해도 정규방송사 아닙니까. 인방이랑은 급이 달라요, 급이.”]

“하하, 물론입니다. 아무쪼록 시점 전환 부분 끝내주게 해서 실시간 방송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마무리한 권혁진은 상대방을 비웃었다.

“병신이 정규방송 타령은. 세금 빨아서 연명하는 새끼들이 자존심만 세다니까. 어차피 지들도 유튜브랑 인터넷 송출로 적자 메우는 주제에.”

그러면서 통화하는 사이 쌓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스마트폰 화면이 돈 되는 이야기로 가득해서, 권혁진은 활짝 웃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 끝나면 법인 하나 더 파야겠어.”

장밋빛 미래를 구상하는 권혁진, 아니 혈왕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꿈꾸는 탄탄대로에 아주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그것도 모른 채 그는 캡슐에 누워 LOST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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